궁중회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면 으레 서양의 미술과 비교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우리그림의 기준은 우리에게 있기에 다른 것과 비교할 문제가 아닌데도, 서양미술과 상대적으로 비교하면서 따지면 곤혹스럽다.
궁중회화를 분석하고 연구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의 미술과 비교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서양미술을 중심에 놓고 우리그림을 비교하는 것은 사대주의적인 발상이면서 문화적 자해행위(自害行爲)이다.
예전에 유명인이나 인기 있는 대중가수를 ‘한국의 빌 게이츠,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 한국의 폴 엥카, 한국의 마이클 잭슨, 한국의 마돈나’라고 치켜세웠는데 이것은 우리 IT산업과 대중음악의 뿌리가 미국에 있기 때문이다. 입맛이 씁쓸하지만 뿌리가 없으면 아무리 대단한 가치를 만들어도 아류로 전락해 버린다.
조선시대 궁중회화는 짧게는 500여년, 길게는 수 천 년의 역사를 통해서 정립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중국이나 일본, 유럽미술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수용하면서 발전했다.
궁중회화의 뿌리는 우리에게 있고 그 가치의 높낮이도 우리 내부의 기준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궁중회화의 종류와 양이 너무 적다고 비판한다.
“궁궐에 있는 궁중회화작품이 100점 정도라도 있나? 5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것 치고는 너무 적지 않아? 또한 조선시대 미술을 대표한다는 궁중회화의 종류가 너무 적은 거 아냐? 장생도, 모란도, 오봉도, 책가도를 제외하면 뭐가 있냐? 서양미술의 종류는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다는데.”
이런 비판에 발끈하며 되묻는다.
“궁중회화 작품이 많지 않은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도화서는 조선 건국 초기부터 존재한 국가미술기관인데 그곳에 소속된 수 십 명의 궁중화원이 놀고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500여 년 동안 수 천점 이상의 작품을 창작했겠지만 화재나 전란 때문에 소실되거나 보관상의 문제로 폐기한 작품도 많고, 특히 일제에 의해 약탈당하거나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가항력의 문제이고 일제에 의한 훼손은 우리 책임이 아니니 일단 넘어가자.
미술의 종류? 그럼 네가 말하는 서양미술의 종류가 뭐야? 일단 질문을 정확히 해야 할 거 아냐. 미술재료에 따른 분류냐? 사조나 유파로 분류하는 거야? 소재나 주제에 다른 분류를 말하는 거야? 그것도 아니면 작가의 화풍을 말하는 거야?”
“뭐, 사조도 그렇고 화풍도 그렇고...”
“서양 중세시대의 그림은 종교화 하나 밖에 없었다. 그 이후 신화그림, 귀족들의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 풍속화 따위가 추가되었지. 근대에 들어와서는 상상화(초현실주의)와 추상화가 만들어졌고. 남아 있는 작품은 대부분 판넬이나 판넬 위에 면천을 씌워 유화로 그린 것들이다. 설마 풍경이나 정물의 소재가 다르다고 독립적인 종류로 보는 것은 아니겠지? 종교화란 하나의 종류에도 수 천 수 만 가지의 작품이 창작되고 그 안에 세계와 인생을 통째로 담아 표현할 수 있다. 종류의 많고 적음이 미술문화의 수준이나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아니다.”

우리그림은 서양의 분류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 추상화 따위로 그림을 분류하지 않았다.
또한 먹과 수성물감만 사용했다. 단지 종이나 비단, 혹은 담채냐 진채냐의 차이 정도가 있었다. 화가들의 그림에는 사조나 유파가 존재했지만 궁중회화에는 적용되지 않았고 시대에 따른 작은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 궁중회화의 종류는 다양하다. 각 종류마다 뚜렷한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있다. 또한 궁중회화의 특징 중 하나는 비빔밥처럼 복합적이다. 특정 소재만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의 주제에 다양한 소재를 결합시킨 그림이 많다. 그래서 풍경, 인물, 정물화 따위의 분류법을 사용하지 않고 소재와 주제가 곧 그림의 종류이자 제목이 된다. [자료사진 - 심규섭]

소재와 주제에 따른 궁중회화의 종류는 다양하다.
‘장생도, 오봉도, 모란도, 책가도, 문자도, 초상화, 화조도, 운룡도, 요지연도, 곽분양 행락도, 백자도’와 같이 10종류가 훨씬 넘는다.
화가들의 산수화나 영모화, 풍속화, 유교화, 문인화가 있고 민화의 세화나 장식화, 사찰의 불화, 무당집의 무속화 따위는 모두 독립적인 종류들이다.
여기에 분류가 애매한 꽃과 나비를 그린 ‘화접도’, 유교적 내용과 문자가 결합한 ‘윤리문자도’, 사계절 꽃을 모아놓은 ‘사시군방도’, 사람의 일생을 그린 ‘평생도’ 따위를 더하면 수 십 종류도 넘을 것이다.
우리그림에는 특별히 제목이 없는데 그것은 그림의 종류가 곧 작품의 제목이 되기 때문이다.
‘모란도’는 그야말로 모란을 소재로 생명의 만개(滿開), 혹은 부귀영화라는 주제를 담아 그린 그림이다. 여기에 나비가 들어가고 괴석이 들어가도 그냥 ‘모란도’라고 한다. ‘십장생도’에서 열 가지 요소가 들어가지 않아도 모두 ‘십장생도’라고 부른다.
같은 주제의 그림이라도 시대에 따라, 혹은 작가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어 창작된다. 비슷하게 보여도 똑같은 그림은 하나도 없다.
당연히 똑같은 소재나 주제의 그림을 그려도 잘 그리고 못 그리는가를 가늠하는 수준의 차이는 존재한다.

서양화는 사조와 유파를 중심으로 발전하고 우리그림은 변주를 통해 발전한다. 모두가 시대의 흐름에 따른 화가 개인의 능력과 정서가 반영된 결과이다.
미술작품의 제목과 종류가 일치하는 우리그림과 각각의 작품마다 새로운 제목이 붙어있는 서양그림의 차이는 높낮이가 아니라 그냥 다름이다. 이 다름이 앎에 대한 즐거움을 주고 문화적 다양성을 만들어낸다.

예술은 세계적인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까 서구의 유명한 예술가의 작품을 아랍국가나 중국의 오지에 사는 소수민족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을 반대로 하면 중국의 소수민족의 그림, 혹은 우리의 궁중회화를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말이다.
나는 민족과 인종과 국가에 관계없이 공통성과 보편성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인류가 지구라는 동일한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구라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것을 유지, 발전하기 위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제도와 문화 속에는 분명 보편성이 존재한다. 오래 살고,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고 가족의 화목과 형제와 친구 간에 우의가 있고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류 모두의 보편적 욕망이다. 또한 살인, 방화, 착취, 사기, 도둑질 따위를 공동체를 파괴하는 범죄행위로 간주하는 것도 세계 어느 나라, 문명도 거의 동일하다.
예술이 사람들의 이러한 보편적인 욕망을 구현한 것이라면 당연히 ‘예술의 세계적인 보편성’이 있다고 여기는 게 맞다.
하지만 모든 예술에는 보편성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특수성도 존재한다.
‘보편성과 특수성’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공동체와 개인성’의 관계처럼 다르지 않다.
‘집단과 개인’, ‘보편성과 특수성’을 대립시켜 한쪽으로 몰아가면 파쇼국가나 이기적인 사회가 된다. 모든 특수성은 보편성의 바탕 위에서 허용된다. 또한 보편성은 특수성을 수용하면서 발전한다.
‘자유와 파격’이라는 특수성은 엄격하게 구속하는 제도나 형식 속에서 태동한다.
다시 말해, 자유를 원하고 형식을 파괴하려면 구속하는 제도나 엄격한 형식을 알아야 한다. 흔히 구속하는 제도나 엄격한 형식을 사회보편성이라고 한다.
젊은이들은 본능적으로 형식을 벗어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를 ‘질풍노도(疾風怒濤), tender age’의 시기라고 한다.
아무튼 젊은이들의 ‘자유와 파격’은 또래문화를 만들고 기성세대의 보편성에 도전한다. 이들이 나이가 들면, 추구했던 자유와 파격은 보편성으로 바뀌고 다음 세대에 의해 도전을 받는다.
그러니까 ‘보편성과 특수성’은 마치 ‘부모와 자녀’의 관계와 같다. 혈연으로 맺어진 끈끈한 관계라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구현하는 방법이나 형식은 민족이나 국가, 지역, 문화권마다 다르다. 다른 말로 인간과 환경과 결합해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음식, 복식, 제도, 풍습 따위가 다양하다. 나무와 숲이 풍성한 지역에서는 목재를 이용한 예술방식이 만들어지고, 산과 돌이 많은 지역에서는 석재를 활용한 예술이 만들어진다. 신과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사람의 모습을 표현하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여기에 각 공동체 성원끼리 공유하는 상징도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도 다르다.
그래서 중국의 어떤 소수민족이 죽순을 먹어 장수한다고 해서 모든 문화권의 사람들이 ‘죽순’을 먹지 않듯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모든 나라 사람들이 명작으로 여기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모나리자’라는 작품을 보고 공감하며 감동을 느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단, 돈 얘기는 빼야 한다.
문제는 ‘예술의 세계적 보편성’이란 말을 대부분은 정치역학의 논리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패권의 논리이고 자연의 원리나 인류의 보편성을 훼손하기 때문에 응징을 당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세계의 모든 예술에 대해 힘과 돈의 논리가 아닌 ‘겸손과 배움’의 자세를 가지는 인류공통의 보편성이 필요하다.

조선시대라는 배경에서 궁중회화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엄격한 형식이 지켜졌고 사용하는 미술재료나 표현기법, 조형원리도 정해져 있었다. 이것은 아무리 뛰어난 궁중화원이라도 바꿀 수 없었다. 궁중회화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미술이기 때문에 검증된 것만 수용했고 파격이나 자유는 허용되지 않았다.
반면 화가들은 자유와 파격이라는 특수성을 가졌다.
궁중화원의 신분이라도 퇴근 후에 개인적인 창작활동은 국가에서 규제하지 않았다.
화가들은 궁중회화를 자신의 정서나 능력에 맞게 파격적으로 변주해 창작하고 중국에서 유행하는 새로운 미술경향을 빠르게 수용하였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신윤복의 ‘풍속화’는 보편성을 뛰어넘는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화풍이었다. 이런 파격적인 화풍이 화단에 수용된 것은 시대의 흐름에 잘 맞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이들이 조선미술의 보편성 철저하게 획득한 궁중화원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파격적인 화풍은 다시 보편성으로 바뀌어 궁중회화에 반영되었다.
궁중회화의 엄격한 보편성과 화가의 자유롭고 파격적인 특수성이 좋은 관계를 맺을 때 미술문화는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이때가 바로 조선시대 제2의 전성기라고 하는 영.정조시대이다.

가끔 궁중회화와 화가의 그림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궁중회화를 개인화가의 관점에서 평가하거나 반대로 화가의 그림에 궁중회화의 잣대를 댄다.
조선시대 궁중회화는 평가의 대상이 아닌 절대영역이다. 잘 그렸거나 못 그린 작품으로 구별하거나 수준의 높낮이를 매길 수 없다. 다른 말로 미술교과서라고 보면 된다.
화가의 그림은 궁중회화의 잣대가 아니라 화가끼리의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궁중회화를 통해 미술공부를 하고 궁중회화를 변주해 화가의 개인의 화풍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개인화가가 궁중회화를 창작하거나 바꿀 수는 없다. 궁중회화는 오로지 도화서의 엄격한 규율과 전통에 따라 궁중화원들만이 할 수 있었다.
우리가 궁중회화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은 일제에 의해 끊어진 역사와 전통을 되살리기 위함이다. 역사와 전통 속에 녹아있는 선조들의 지혜와 경험은 새로운 미술문화를 창조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밑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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