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동 / 사회적 기업 ‘바리의 꿈’ 대표

 

▲ 2005년 우정마을의 추석 [사진제공-김현동]


내년 2014년이면 고려인 이주 150주년의 해가 된다. 또한 이주 140주년이 되던 해였던 2004년, 고려인이주기념관 건축과 농업정착지원사업을 시작한 때로부터 어느덧 10년이 되어간다.

근현대 재외동포역사에서 한반도로부터의 첫 해외이주를 조선인들의 두만강 월경-연해주 이주로 기록하고 있다. 이후 연해주에는 일제강점기에 본격 이주가 이루어졌고, 17만명이 넘는 이주동포들이 민족공동체를 이루었다. 하지만 1937년 스탈린의 민족이주 정책에 의해 전체 고려인들이 연해주로부터 중앙아시아 등으로 강제이주 당하고 약 10%에 달하는 동포들이 희생당하는 등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1989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언어와 종교 등의 민족주의적 경향이 대두되고 지대 및 이자의 폭등으로 생활이 힘들어지자 고려인들은 할아버지의 고향인 연해주를 다시 찾기 시작하였고 현재 약 4만여명이 연해주로 재이주 한 상황이다.

한국의 시민단체가 중앙아시아 고려인 동포들의 연해주 재이주를 돕기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이다. 당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주관한 '연해주부터 중앙아시아까지의 강제이주 노정'을 기차로 달려보는 ‘강제이주 60주년, 회상의 열차’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고려인 동포를 우리 사회에 알리기 시작하였고, 1999년 당시에 고려인 이주 정착를 위해 연해주 정부가 고려인재생기금에게 제공한 군대 부지의 임시 정착촌들을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긴급지원사업이 시작되었다. 2001년에는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한국의 시민단체가 고려인동포들의 정착을 지원할 연해주동북아평화기금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졌으며 2004년에는 고려인이주 140주년을 맞이하며 고려인이주기념관 건축과 농업정착지원사업 등 본격적인 지원사업을 시작하였다.

▲ 우수리스크의 고려인 정착마을 [사진제공-김현동]

당시 재외동포재단과 동북아평화연대, 사회연대은행, 아름다운가게 등 한국의 시민단체와 연해주동북아평화기금은 1999년부터 시작된 대한주택건설협회의 연해주 미하일로프까군의 고려인 정착마을인 ‘우정마을’ 건설사업을 이어받아 ‘우정마을’을 고려인 농업정착사업의 본부로 삼고, 그 후 6개의 마을에서 농업정착지원사업을 벌였다.

여섯 개 마을 중 우정마을(35호)과 인근 고향마을(18호)은 중앙아시아에서 갓 이주한 고려인들을 위하여 새롭게 마을을 만든 경우이며 고려인 가구들로 구성된 마을이다.
미하일로프까군의 끄레모바(30호), 아시노브까(12호), 쑨야센 마을(30호)과 스파스크의 치까로브까(79호), 노보르사노브까(25호)는 기존의 러시아 농장마을에 고려인들이 하나둘 이주하여 마을센터, 마을공동작업장을 통해 고려인 커뮤니티를 이루며 다민족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스파스크군의 2개 마을과 미하일로프까의 쑨야센 마을은 이미 고려인 가구가 다수 이주정착을 시도하고 있어서 소액대출, 농업기술교육, 마을센터 설치 등으로 돕는 방식이었으며, 끄레모바 마을과 아시노브까 마을은 거의 고려인 동포들이 거주하지 않고 있었으나 당시 약 1500달러면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조건이기에 국내 후원자들과 자매결연을 통하여 주택을 마련하면서 정착마을로 형성된 경우이다.

▲ 8월의 보리수확 [사진제공-김현동]

연해주는 한반도의 약 80% 크기에 인구는 200만이 되지 않는데다가 그 인구도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그래서 러시아의 극동지역 최대 현안 중의 하나가 인구안보라고 한다. 더구나 농업은 소련붕괴와 함께 거의 완전 몰락되었다가 아직도 여전히 복구상태라 할 수 있다. 붕괴 초기에는 많은 대형농장이 경영을 포기하였고, 대부분의 먹거리는 거의 수입으로 해결하였다. 특히 바로 경계를 접하고 있는 인근 중국의 흑룡강성과 길림성으로부터 많이 의존하고 있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러시아 농업개척의 상징인 고려인들의 귀환은 연해주의 인구와 식량생산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기대되는 일이었고 귀환을 위한 지원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1999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조사 방문한 적이 있는 임시 정착촌 군부대 부지 5곳도 러시아정부의 대표적 지원프로그램이었다.

2004년 당시 노무현정부와 푸틴정부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반도 종단철도의 연결, 시베리아 가스관과 송유관 등 에너지의 한반도 연결 등 동북아 최대의 경제협력 프로젝트들을 구상하고 이슈화하고 있던 시점이라 연해주의 고려인의 귀환과 그들을 돕는 것은 한반도와 러시아의 현실적 상징적 협력 프로젝트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고려인 이주 140주년 행사는 러시아 정부의 부총리가 의장으로 선임되고 장관급 7-8명이 참가하는 등 러시아 소수민족역사에서는 보기 드물게 국가급의 행사로 치뤄지기도 했으며 한국에서도 적극적으로 호응하였다. 특히 이때 연해주 동북아평화기금은 고려인기념관과 민족학교 부활의 라이센스를 받았고 한국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계기를 만들어 내었다.

▲연해주 장공장의 메주 [사진제공-김현동]


내년이면 농업정착지원사업이 시작된지 벌써 10년이 되어가고, 고려인 연해주 이주 150주년이다. 그동안에 한반도와 러시아간에는 많은 변화들이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이라는 기조를 살리기 보다는 오히려 세상을 거꾸로 돌려 냉전을 강화하고, 협력을 어렵게 하는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연해주 고려인 농업정착사업도 그 변화의 과정에서 내외적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개별농가의 농업 시도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많은 부분 실패로 끝났으며 청년들은 농업생산보다는 유통분야에서 일하기를 원하고 있다. 특히 강제이주와 재이주의 어려운 환경을 겪어온 고려인동포사회에서 ‘협동’이라는 문제는 가족이나 핏줄 단위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은 문화로 정착되고 있었다.

 

▲ 농사일을 하는 고려인 동포들 [사진제공-김현동]

9년간의 농업정착지원 사업은 지금까지 성공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현재 한국시민운동의 지원으로 시작된 연해주 고려인정착마을들과 한국의 시민사회로부터 배태된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의 경험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여 자립적 협동조합운동으로의 방향을 세우고 동북아 협동네트워크라는 실험을 하고 있다.
유기농 NON-GMO 콩, 유기농 축산사료, 비닐하우스 유기농 채소협동단지, 연해주 장공장의 생산협동조합으로의 전환, 바리생협운동, 한국에서 ‘바리의 꿈’의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 전통장협동조합 건설, 콩타닥장독간운동 등이 고려인이주 150주년, 농업정착사업 10년을 앞두고 눈앞에 펼쳐진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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