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서양의 그림은 액자에 담고 우리그림은 표구를 한다.
이렇게 미술작품에 액자나 표구를 하는 이유가 있다.
첫째, 작품의 안정적인 보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액자나 표구는 작품의 틀을 안정적으로 잡아주고 뒤틀리거나 찢어지지 않도록 한다.
또한 말거나 구김을 주면 물감이 부서지거나 변형이 일어난다. 그래서 평평하게 펴서 보관해야만 훼손 없이 수명이 오래간다.
둘째, 작품의 장식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기 위해서 작품에 장식을 한다. 일종의 포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금분이나 비단 같은 고급 재료를 사용해 화려한 조각을 새기거나 문양을 넣는다. 예나 지금이나 미술작품은 값이 비쌌다. 비싼 작품을 구매하는 사람도 부자일 수밖에 없다. 부자들의 권세와 허영에 걸맞은 권위를 채워주기 위해서 작품에 더욱 비싼 포장을 하게 된다.
셋째, 작품 속의 세계와 현실세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이건 조금 어려운데, 그림은 현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결국은 이상세계를 표현한다. 현실에는 없는 곳이다. 이상세계를 담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작품 속에는 과장, 왜곡, 변형, 축소된 이미지로 가득하다. 사람이나 풍경, 정물 따위를 아무리 실감나게 똑같이 그렸다고 하더라도 그림은 그림일 뿐이다. 그림 속의 사람과 대화할 수도 없고, 풍경 속으로 들어가 생활할 수도 없으며 사과를 먹을 수도 없다.
액자와 표구는 현실세계와 이상세계의 경계를 만들어 인식의 지평을 높인다.

▲ 우리그림은 표구로 작품을 보관하고 장식한다. 표구방법에는 걸거나 말아서 보관할 수 있는 족자와 그림을 분할하여 세워두는 병풍이 있다. 이런 차이는 어떤 미술재료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자료사진 - 심규섭]

우리그림에서 표구가 서양의 액자와 같은 역할을 하지만 그 안에는 미술재료에 따른 복잡한 사연이 있다.
표구방식 안에는 다시 족자와 병풍으로 나뉜다.
족자는 그림이나 글씨 따위를 벽에 걸거나 말아 둘 수 있도록 양 끝에 가름대를 대고 표구하는 방식이다.
병풍은 그림이나 글씨를 표구하여 나무판 위에 붙여서 만드는데 바람을 막거나 공간을 구분하고 방안을 장식하는 따위의 다용도로 사용된다.
대략적인 구분이지만 궁중회화에서는 병풍그림이 주류를 이루고, 선비그림은 족자나 화첩형태가 대부분이다. 또한 떠돌이 환쟁이의 싸구려 그림이나 세화는 표구 없이 벽이나 문지방에 붙인다.
이렇게 계층이나 그림에 따라 표구의 방식이 차이가 나는 것은 물감과 화폭이라는 재료의 차이 때문이다.
궁중회화는 그야말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대표하는 궁궐을 장식하는 그림이다. 왕이 거처하는 곳이고 종묘사직이 있으며 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조선이 청렴한 선비들의 나라라고 해도 대내외를 대표하는 궁궐의 권위를 버릴 수는 없었다.
궁중회화에는 고급스런 비단이나 종이가 화지로 사용되었다. 또한 화려한 색채를 낼 수 있는 다양한 물감을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
비단을 화지로 사용한 것은 종이보다 보관하기 쉽고 수명이 오래 가기 때문이다. 종이는 물기에 약하기 때문에 여름날 습기가 많아지면 곰팡이가 피고 잦은 이완과 수축으로 변형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에 반에 비단은 종이보다 값이 비싸긴 하지만 습기에 의한 변형이나 좀벌레나 곰팡이로부터 비교적 안정적이다.
비단 위에 채색을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미세한 결과 구멍이 있는 비단에 수성물감을 칠하면 흘러내리거나 샌다. 그래서 물감을 비단에 고정시키고 물감끼리 잘 붙는 미술용 접착제인 아교를 수시로 칠하면서 그린다. 또한 수성물감을 사용해 색깔을 내려면 한번으로는 자기 색이 나오지 않는다. 여러 번을 겹쳐 채색해야 원하는 색깔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진하게 색을 칠하는 것을 ‘진채 혹은 진채기법’이라고 한다.

문제는 또 있다.
진채기법으로 색을 여러 번 칠하면 화려하고 진한 색상을 얻을 수 있지만 비단이나 종이 위에 물감은 두꺼워진다. 접착제를 사용해도 두껍게 칠해진 물감이 마르면 갈라지거나 떨어져 나갈 수 있다. 완성된 그림에서 아주 일부분이라도 물감이 떨어져나가면 전체를 망치는 것과 같다. 또한 진채기법을 사용한 그림을 말거나 구기는 것은 그림을 훼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나의 장생도를 완성하기 위해 들어가는 미술재료비, 인건비, 시간 따위는 상상을 초월하는데 작은 실수라도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진채기법을 사용한 그림은 말거나 고정되지 않은 족자형태의 표구를 하지 않는다.
말거나 구기지 않는 표구를 하기 위해서는 나무판 위에 그림을 고정시키는 방법 밖에는 없다. 그림을 고정하는 나무판은 뒤를 완전히 막지 않고 작은 나무를 촘촘히 배열하여 만든다. 그래야 통풍이 잘되고 완충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옛날 창이나 문 위에 한지를 붙이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나무판 위에 표구한 그림은 다시 기존의 병풍문화와 결합하게 된다. 병풍은 원래 바람을 막거나 공간을 나누는 역할을 했다. 여기에 글씨나 문양 따위를 넣어 장식을 했다.
하지만 그림과 만나면서 장식의 역할이 중심을 이룬다.

▲ 수묵담채화와 진채화는 확연히 다르다. 선비그림은 대부분 수묵화이거나 수묵에 엷은 채색을 한 담채기법을 사용한다. 그래서 먹이나 물감이 종이에 스며들어 말아서 보관할 수 있는 족자표구를 선호했다. 하지만 궁중회화는 고급스런 비단이나 종이에 진하고 여러 번 색깔을 올리는 진채기법을 사용한다. 두껍게 물감이 칠해진 그림은 자칫 갈라지거나 부서질 수 있기에 나무판 위에 고정시켜 표구를 하는데 이것이 병풍표구이다. 수묵담채화가 소탈하면서도 정갈하다면 진채화는 화려하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자료사진 - 심규섭]

선비그림은 대부분 ‘수묵담채화’이다. ‘수묵담채화’라는 말 속에는 물에 녹는 먹과 간단하게 초벌 채색을 한 물감을 사용했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그러니까 종이나 비단에 먹으로 그림을 그리고 채색은 담백하게 살짝 올린 것이다.
이런 방식의 재료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것은 선비문화와 연관되어 있다. 선비들은 색채가 화려하면서 크고 값비싼 그림을 소유하기를 꺼려했다. 그것은 ‘청렴과 청빈’이라는 선비들만의 보이지 않는 규율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선비들의 그림은 화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지식인이자 공직자인 선비는 조선이 추구하는 이상을 구현하고 실천하는 사람이지 향유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공식적으로 향유의 대상은 백성이다.

먹은 수성재료이고, 담채기법도 수성물감을 사용하기에 먹과 물감은 종이나 비단 속으로 스며든다. 그래서 말거나 구겨도 물감이 부서지거나 떨어져 나갈 염려는 없다. 이렇게 그린 ‘수묵담채화’는 족자형태로 표구를 하여 말아서 보관하거나 벽에 걸어 놓았다.
‘화첩’은 그림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책으로 묶으면 보관과 이동이 편리해 여러 사람들이 돌려 볼 수 있는 장점이 있고, 평소에 책을 읽듯이 그림을 보는 익숙함이 있다. 책은 먹으로 글씨를 쓴 종이를 묶은 것이다. 화첩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종이에 스며드는 수묵으로 그렸고 채색도 간단한 담채방식을 사용했다.
책자형태이기에 작품은 크기는 일반적인 책의 크기에 기준을 둔다. 김홍도의 풍속화는 화첩형태로 만들었는데 궁중회화에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크기이다.

전문화공이나 떠돌이 환쟁이의 대중적인 그림인 민화는 판매가 목적이다. 주문자의 필요나 값에 따라 병풍이나 족자형태의 표구를 한다. 진채기법을 사용해 4폭, 8폭, 10폭으로 나누어 병풍을 만든 값 비싼 그림부터 허름한 종이에 간단히 채색을 한 싸구려 그림까지 여러 가격대의 그림을 만들어 팔았다.
연초에 사용하는 세화를 다른 말로 ‘문배화’라고 부른다. 쉽게 풀이하면 문에다 도배하듯 붙이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이런 그림들은 족자나 병풍형태로 표구하지 않고 둘둘 말아 팔았다. 문이나 벽에 붙여 놓았다가 시기가 지나거나 훼손되면 아궁이의 불쏘시개로 사용되거나 버려졌다.

▲ 병풍이라는 표구방식 때문에 화면구성이 다양해졌다. 병풍의 접히는 부분을 그림구상에 반영하여 각각의 폭이 독립적인 그림이 되기도 하면서 전체를 이룬다. 큰 그림을 세로로 잘라 여러 작은 그림으로 만드는데 이것은 가로그림인 병풍을 족자형태로 전환하는 것이다. 반대로 족자형태인 세로그림을 가로그림인 병풍형태로 바꾸기도 하는데 주로 하나의 그림을 복제, 반복, 변주라는 방법으로 8폭, 10폭 병풍으로 전환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작은 그림의 독립성과 큰 그림의 전체성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탁월한 화면구성방법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미술작품은 한 폭 안에서 완성된다. 하나의 화면 속에 구현된 세계는 독립성을 갖는다.
커다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여러 화폭을 연결하는 경우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하나의 그림이다. 장생도를 병풍방식으로 표구하여 8폭이나 10폭으로 나눈다고 해도 결국은 하나의 그림이다. 병풍의 한 면을 하나의 독립된 그림으로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나의 화폭으로 완성된 그림을 병풍이나 족자형식으로 표구하는 것은 미술재료의 한계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을 표구하는 형식이 반대로 화면을 구성하는 방법에도 영향을 주었다.
궁중회화인 책거리그림은 가로로 긴 병풍그림이다. 하지만 선비들의 그림이나 전문화공의 그림에서는 세로그림으로 바뀐다. 가로그림이 세로그림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화면의 구도나 사물의 배치와 같은 파격적인 조형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가로 책거리가 세로 책거리로의 변형이 필요했던 것은 선비들이 세로형의 족자그림을 선호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병풍과 같은 큰 그림은 값이 비쌌고 방안에 둘 공간도 없었다. 형식은 달라졌지만 같은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 값도 싼 작은 족자그림이 훨씬 수요가 많았을 것이다.
궁중회화는 병풍그림이 대부분이다. 벽장문그림이나 일월오봉도와 같이 한 폭으로 표구를 한 그림도 있지만 장생도, 책가도, 궁중모란도, 요지연도, 곽분양 행락도, 화조도, 연화도와 같은 그림은 적게는 4폭, 많게는 10폭에 이르는 병풍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병풍이란 표구형식의 문제는 한 폭의 그림을 여러 화폭으로 쪼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림은 일단 한 폭으로 그린 다음 여러 폭으로 병풍을 만들기 위해 잘라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병풍 사이의 이음새 부분이 표구 때문에 말려들어가 유실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림을 감상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지만 온전한 그림이 훼손되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족자로 표구하면 되는 세로그림을 가로그림인 병풍에 억지로 맞춰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폭 그림을 병풍으로 만들기 위해 잘라야 하는 문제, 족자형태의 세로그림을 병풍형태의 가로그림을 바꾸어야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화서 화원들은 생각과 생각을 거듭했을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은 처음부터 병풍표구방식을 염두에 두고 그림을 구상하는 것이다.
병풍 전체를 보면 한 폭의 그림이지만 낱개의 폭도 각기 독립된 그림이 되게 한다.
궁중모란도의 경우, 한 폭의 그림을 그리되 8폭이나 10폭으로 갈라지는 지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경계선을 중심으로 한 폭 한 폭 독립된 화면을 구성한다. 8폭 병풍그림인 경우 전체를 보면 하나의 그림이지만 그 안에는 다시 8폭의 그림이 독립되어 있다.
화조도의 경우는 새와 꽃을 각 폭마다 다르게 구성한다.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는 전체를 보아도 하나의 그림이고, 각각을 분리해도 독립된 그림이 된다.
책가도 중에는 책장 크기와 병풍의 각 폭을 같은 크기로 구성하여 낱개로 분리해도 독립된 작품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반대로 한 폭의 작은 세로그림을 여러 장 복제, 변주하여 커다란 병풍그림으로 만들기도 한다. 주로 궁중모란도에서 하나의 본그림을 가지고 8폭, 10폭은 복제, 변주하는데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그림이 반복적으로 펼쳐서 커다란 병풍그림을 만든다.
음식으로 친다면 밥과 국을 함께 섞어 먹어도 되고, 따로 먹어도 되는 따로국밥과 비슷하다.
하나의 완성된 그림 속에 독립된 그림이 병풍 폭 수만큼 존재하는 방식, 전체와 부분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탁월한 화면구성이다.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사회가 있고, 개인의 욕망을 위해 공동체를 파괴하는 사회도 있다. 이상적인 사회란 개인의 존엄과 개성과 같은 독립성을 인정하면서도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우리그림에서 개별과 전체가 하나로 통합된 화면구성을 사용한다면 사회적으로 개인과 공동체가 어우러지면서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를 상상하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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