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그림은 탁월한 미술교육방법이다

예술의 기본 요소인 ‘미학, 조형방법, 재생산체계’에서 본그림은 재생산체계에 해당한다.
‘재생산체계’란 쉬운 말로 민화를 확대, 재생산하는 ‘미술교육’이다.
우리그림에서 모든 미술교육은 본그림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것이 궁중화원이든, 혹은 지전에 소속된 화공이든, 떠돌이 환쟁이든 본그림이란 재생산체계를 통해 그림을 배웠고 본그림을 통해 후학을 길러냈다.
본그림은 앞선 세대와 다음 세대를 연결하는 고리였고, 우리그림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끈이었으며 우리민족의 정서를 통합하는 그릇이었다.
1900년대 초에 맥이 끊겨버린 민화를 21세기에 다시 부흥시킬 수 있었던 것도 본그림 때문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남아있는 작품을 다시 본뜨고 모방함으로서,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미학과 조형방법이라는 보물을 찾아낼 수 있었다.
왜냐하면 미술교육 안에는 창조하는 방법인 ‘복제와 융합’의 원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구의 ‘르네상스’도 비슷하다.
그리스로마문명은 이미 1000년 전에 폐허가 되고 사라져버렸다. 남은 것은 폐허 속에서 건진 조각품과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과 조금의 신화나 철학에 관련한 서적, 구전하는 전설과 영웅담이 전부였다. 이탈리아의 돈 많은 가문들은 유럽지역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로마시대의 책과 예술품을 사들여 집안을 장식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은 남겨진 작품을 모방하여 조각하였으며 문학가는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희곡을 썼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셰익스피어 같은 거장들은 그리스로마시대의 예술을 모방하여 서양예술의 새로운 기초를 마련한 사람들이다.

미술교육 안에는 창조의 원리가 숨어있다고 했는데, 이것을 통해 ‘미학과 조형방법’을 배울 수 있다.
아름다움을 다루는 미학은 곧 가치를 담은 철학체계이다.
아름다운 것은 좋은 것이고, 유익한 것이며, 추구해야할 가치이다.
또한 ‘조형방법’은 아름다움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 방법이다.
이것은 사회구조와 짝을 이룬다.
흔히 ‘미학과 조형방법’을 사회적으로 본다면 ‘사상과 사회체계’라는 것과 짝을 맞출 수 있다.
서양화법에서 조형방법은 ‘일인칭 시점에 따른 원근법’이고, 우리그림에서 조형방법은 ‘여러 시점에 따른 확대원근법’이다.
이것을 단순하게 적용하면 서구는 일인칭 원근법에 따른 ‘개인주의’가 사회의 바탕을 이루고, 우리민족은 여러 시점 확대원근법에 따른 ‘공동체주의’가 사회적 근간이 된다.
서양화법의 재생산체계는 ‘비례법을 이용한 사물의 복제’와 ‘상대성을 기준으로 한 명암법’인데, 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해 사물을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내는 방법을 배운다.
그래서 단지 ‘형태와 명암법’을 배울 뿐이지만 결국 서구 사상과 문화를 배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미국의 사상과 정치, 경제, 문화의 원리를 배울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미국의 사회를 알고 배우듯이 민화의 본그림을 통해 우리그림의 미학과 조형원리, 즉 우리민족의 철학과 사회구조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우리그림에는 공동체의 요소가 아주 많이 들어있는데 사회구조와 연관된 민화연구는 앞으로 관심을 가져볼만 하다.

▲ 심주이/일월오봉도/디지털회화/2013.
궁중회화인 일월오봉도를 변주해 새로운 작품을 창작했다. 변주하는 과정은 본그림을 베껴 만드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본그림을 만드는 과정에서 원작품을 충분히 분석하고 해석해야 변주가 가능하다. 바다의 모양과 소나무를 작가의 요구에 맞게 약간 바꾸고 채색과정에서는 시대의 흐름이나 정서를 많이 반영해 밝고 화려하게 그렸다. 누가보아도 틀림없는 일월오봉도이지만 새로운 창작품이다.
물론 장생도나 일월오봉도 정도의 궁중회화를 본그림을 통해 변주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정도면 10년 정도의 배움이 필요하지만 모란도나 화조도, 문자도, 연화도 따위는 3년 정도의 배움이면 충분히 본그림 변주와 창작이 가능하다. [자료사진 - 심규섭]

재생산체계, 즉 미술교육으로써 본그림은 탁월하다.

첫째, 미술교육이 쉽고 빠르다.
본그림 안에는 구도와 형태, 상징, 색상정보 따위의 창작에 필요한 핵심 요소가 들어가 있다.
창작에 필요한 조형요소의 약 70% 이상이 들어가 있어서 베껴 그리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빠르게 배울 수 있다.
화면의 구도를 짜고, 각각의 사물을 상징화 시키고 배치하며, 선묘의 강약을 주고 색상을 선택하는 일은 아무나 하지 못한다. 특히 미술교육을 받는 초급자에게 어림없는 일이다.
본그림에는 역사와 전통을 통해 검증된 조형요소가 들어가 있기에 따라 베끼기만 해도 과거의 경험을 통째로 배우는 효과가 난다.
또한 서양화법의 미술교육이 간접적으로 베껴 그리는 방식이라면 우리의 본그림은 직접적으로 베껴 그린다. 기존의 완결된 본그림을 바닥에 놓고 그 위에 비치는 형상으로 따라 베끼기에 쉬우면서도 조형상의 오류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
조형상의 오류를 줄인다는 것은 습작기간을 줄일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일정한 수준에 이르기까지의 교육기간이 빠르다.
교육기간이 짧기에 그만큼 교육비용이 절감되는 것은 당연하다.

둘째, 변주가 용이하다.
변주는 완성본을 시대의 흐름과 정서에 맞게 재창작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변주는 작가의 독창적인 창작세계를 만드는 방법이다.
독창성은 원본을 시대의 흐름에 맞게 해석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본그림을 베껴 그려도 완벽하게 똑같은 그림은 나오지 않는다. 베껴 그리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베껴 그리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본그림을 해석하고 분석하게 된다는 말이다.
본그림을 반복해서 베껴 그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변주가 일어나고 이것이 굳어져서 작가만의 독창적 세계가 형성된다.
주제별, 종류별 본그림이 존재하고 각각의 본그림에 산재되어 있는 여러 요소를 결합하거나 융합하면 새로운 그림을 창작할 수 있다.

셋째, 확산이 넓고 빠르다.
본그림에는 공동체의 원리가 담겨 있다.
우리그림이 폭넓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원인 중에는 본그림의 자유로운 소통이 한몫을 했다.
도제방식으로 비법을 전수하는 여타의 공예와 달리 본그림은 공개되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우리그림을 배우고 확산될 수 있었다.
보통은 본그림을 가지고 다시 본그림을 만든다. 본그림을 베껴 그리면서 연습한 습작의 소유자는 당연히 베껴 그린 학생이다. 여기에 채색까지 넣어 완성된 작품을 가지고 또다시 본그림을 만들 수 있다. 남의 작품이라고 해도 본그림을 추출해 낸 사람이 또 다른 본그림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또한 기억력과 손재주가 있는 작가라면 어깨너머로 관찰한 작품을 기억하여 새로운 본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

▲ 신부미 작품들/연화도 10병풍과 연화도/2011.
60대 중반의 할머니가 민화를 3년 정도를 배워 개인전을 한 작품들이다. 본그림을 통한 미술교육은 유소년부터 노인, 남녀에 관계없이 일정한 성과를 낼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물론 본그림에도 수준별 차이가 존재한다.
초급자는 초급자에 맞는 본그림을 사용하고 고급자는 수준 높은 조형적 내용이 담겨있는 본그림을 사용한다.
다시 말하면, 고급스런 본그림을 베껴 그릴 수 있는 사람은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인맥관계나 약간의 돈만으로도 본그림을 구입할 수 있었고, 그 본그림을 다시 베껴 자신만의 본그림으로 만들었다.
본그림은 개인 작가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독점권은 행사할 수 없었다. 독점권, 요즘 사용하는 용어로 한다면 ‘라이선스, 지적재산권’은 오로지 서명과 낙관을 넣은 선비그림에서만 가능했다.
하지만 선비그림은 본그림으로 만들 수 없기에 본그림 소통에서 제외된다.
우리그림에서 모든 본그림의 실제 소유자는 국가이다.
표준이 되는 궁중회화의 모란그림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변주된 수많은 모란그림이 창작되었다. 또한 장생도를 기본으로 부분을 차용해거나 재해석한 수많은 장생도가 그려졌다.
국가미술기관인 도화서나 자비대령화원에서 계승되고 검증되고 창작된 본그림은 국가의 소유이자 공동체에 속한 모든 백성의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언급하자면,
본그림을 통한 우리미술교육은 심리적 부담이 없고 연령과 남녀에 관계없이 누구나 배울 수 있다.
현재 초등학교부터 중, 고등학교 미술교육은 교양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미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실기는 그야말로 맛보기 수준이다. 전문교육은 사설학원에 맡겨진다.
학교미술교육은 심하게 말하면 ‘그림을 포기해 가는 과정’이다.
서양화법의 미술교육은 너무 어렵다. 아무런 조형적 가공이 없는 사물을 연필이나 물감으로 똑같이 재현하는 능력은 거의 서커스 묘기에 가깝다. 학생들은 실제 사물과 그림을 비교하면서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금도 ‘영혼이 없는 그림’ 즉 미학적 내용 없이 연예인 얼굴이나 사물을 완벽에 가깝게 재현한 그림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러면서도 사실적인 형태가 없는 회화적인 그림에는 고개를 돌린다. 회화성이 높은 그림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사실적 재현에 대한 충격파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재현능력은 미술작품에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필요조건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별 문제없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현 미술문화에서 남녀비율의 차이는 심각하다. 미술지망생은 여성이 훨씬 많지만 창작활동을 하는 화가는 남성이 대부분이다. 이게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문제인지 서구나 미국에서도 보편적인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서양미술교육이 상당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남성적인 것만은 틀림없다.
본그림을 통한 미술교육은 유소년을 비롯한 청소년들이 심리적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다. 이미 완성된 상징을 사용하기에 재가공해야 하는 부담이 없고 베껴 그리기에 결과의 차이가 크지 않아 상대적 열등감이 덜하다. 또한 본그림을 이용하면 작품의 완성이 빠르다. 여기에 자유롭고 화려한 채색을 통해 성취감을 높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60~70세 정도의 노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본그림’이란 개념 속에는 ‘완성본’이란 전제가 들어가 있다.
모방하거나 복제하려면 반드시 ‘원본이나 완성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완성본이나 아류를 베끼거나 모방하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다.
결론적으로 우리그림의 완성본은 떠돌이 환쟁이나 화공들의 그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 최고의 미술천재들이 국가미술기관에 모여 창작한 궁중회화에 있다.
궁중회화가 곧 민화의 시작이자 끝이다.
떠돌이 환쟁이가 그린 ‘까치호랑이’ 그림을 본그림으로 삼아 그림을 배우면 아무리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뛰어난 작품을 그려도 뿌리와 정체성은 ‘환쟁이 그림’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래서 민화작가가 자신의 뿌리를 국가미술기관에 속한 조선 최고의 화가에 두느냐 아니면 떠돌이 환쟁이나 화공에 두느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청소년과 20~30대의 젊은이들을 민화작가로 양성하기 위해서는 왕실의 권위에 준하는 자부심과 정체성을 부여해야 한다.
본그림은 미술교육방법이기 때문에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인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그림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이다.
우리그림의 가치와 뿌리, 정체성을 스스로 높여야 한다.
일제는 우리그림을 말살하려 했고 외국인들은 관심이 없다.
잘못되면 민화는 늙은이들의 치매방지용 그림이나 아줌마들의 한풀이용 그림으로 전락할 수 있다.
젊은이들이 우리민족의 뛰어난 미술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그 보상으로 명예와 재부를 얻는 좋은 선택을 하느냐는 본그림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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