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든 직장이든 따돌림을 받는 사람이 있다. 대놓고 무리에 섞이지 못하게 배척받는 이들을 우리는 '왕따'라고 부른다. 그나마 '왕따'는 양반이다. 무리에 섞여 있고 대화도 되는 듯하지만 알고보니 나도 따돌림을 받고 있더라는 생각 들어본 적 없는가.

그러한 현상을 '은근히 따돌린다'고 해서 '은따'라고 일컫는다.

최근 남북관계 주무부서인 통일부가 청와대에 '은따' 당하고 있다. 그것도 대북 대화제의 상황에서 말이다.

4개월 째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 지난 11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성명'을 발표해 '대화의 장'으로 나올 것을 북측에 촉구했다. 당시에는 공식적인 대화제의가 아니었다.

류 장관은 "대화를 제의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지금 현재 개성공단의 문제, 북한의 가중되는 위협적인 행동, 이런 모든 문제들을 대화를 통해서 풀어야 한다라고 하는 점을 대내외에 천명하려고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불과 몇시간 뒤에 뒤집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고, 청와대 측은 "공식 대화제의로 봐도 된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 사이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청와대는 통일부 장관의 성명을 뭉게버린 셈이다.

물론, 여기에는 통일부의 어쩡쩡한 '대화'에 대한 인식도 문제가 있다. 대화의 급, 일정, 의제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일반적 의미의 '대화'이고 이를 제의한 것이라니. 봄이 오고 벚꽃이 폈으니 남북이 만나서 꽃놀이나 하자는 것인가.

이어 지난 14일 북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의 '빈껍데기' 라는 반응에도 통일부와 청와대는 엇박자를 냈다.

통일부는 "우리의 대화제의에 대한 1차적인 반응으로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다소 대화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하루도 못가 청와대가 "대화를 거부한 것"이라고 발표해, 통일부는 뻘쭘해졌다.

조평통 대변인의 반응을 두고, 청와대에서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상황점검회의를 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회의에 통일부가 어떤 역할을 했을지, 모기 같은 소리로 '두고 봐야한다'고만 말한 것은 아닌지. '은따' 대상이라 뭐라고 말했어도 국가안보실은 듣지 않은 것은 아닐까. 아니면 아예 참석대상에도 들지 않은 것인가.

심지어 이번 북측의 첫 반응을 내놓은 기관이 조평통인데 이를 청와대가 맞받아쳐 격식 면에서 어색한 상황이 연출됐다. 지금까지 통일부는 북측의 기관들이 내놓은 입장에 대해 '급'을 운운하며 일일이 대응할 필요없다고 했는데, 청와대는 이를 무시해버렸다.

한 북한 전문가의 "어떻게 조평통 대변인의 반응에 청와대가 답을 하느냐. 청와대 외교안보 컨트럴타워가 문제이다. 통일부는 정확하게 분석해서 내놓은 반응이다. 이는 청와대에도 보고된다. 하지만 청와대 외교안보 담당자들이 통일부의 말을 건성으로 들은 것 아니겠느냐"는 지적처럼, 청와대의 통일부 '은따'가 드러난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이제 남북관계에 대한 정책, 발언을 통일부에서 듣기란 어려워 진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하다. 엄연히 남북관계 주무부처로 4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통일부를 무시하는 듯한 처사를 청와대가 계속 한다면 누가 통일부를 상대로 정책을 논할 수있겠는가.

청와대의 통일부 '은따'는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부터 우려됐다. 외교안보 컨트롤 타워인 국가안보실에는 군 출신인 김장수 실장이 자리했고,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은 정통 외교관 출신이다. 게다가 통일비서관은 학자출신인 홍용표 전 한양대 교수가 차지했다. 통일외교안보 핵심사안을 다루는 자리에는 통일부 출신 인사들이 전무한 것이다.

여기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박 대통령의 오랜 측근이고,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전 정권에서 유임된 인물이다. 이들과 비교해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외교안보장관회의 발언권자 중에 다소 약하다는 평이 있다.

물론, 류길재 장관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인물이다. 하지만 열 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도 있고, 반지를 끼워주기 싫은 손가락도 있다.

류길재 장관은 취임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의 정책을 집행하는 위치"라고 말했다. 어찌보면 집행만 하겠다는 생각이 오늘의 이 사단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이번 대화제의를 둘러싼 통일부와 청와대의 엇박자 현상에서 보듯 통일부가 청와대에 '은따'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정책결정을 위한 소신도 없어 보인다.

통일부는 5년전에 없어질 뻔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지켰다. 그런데 지금은 청와대에 '은따' 당하며 '헛소리' 부처로 취급받을 처지가 됐다. 죽을 뻔한 사람을 살려냈더니 이젠 사람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셈이다.

통일부는 스스로 왜 '은따'를 당하는지 알아야 한다. 대북 대화제의를 두고 통일부의 목소리가 왜 청와대에 밀리고, 청와대의 결정에 뒤집혔는지 분석도 해야하지만, 주체적인 정책결정 목소리를 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 정부에 이어 또 다시 5년 내내 통일부 직원들이 그토록 듣기 싫어하는 '식물부처'가 될 수 있음을 통일부 고위 관료들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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