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독립영화 ‘지슬’이 화제입니다. 특히, 이 영화는 제주도 ‘4.3사건’을 사실상 처음으로 다룬 것이기에 더 흥미를 끕니다. 여기서 지슬이란 감자의 제주도 방언이라 합니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제주 4.3사건이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봉기사태와 그로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양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됩니다.

이 영화는 4.3사건의 역사 중 한 마을의 비극을 담고 있습니다.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들을 폭도로 간주한다”는 미군정 소개령을 듣고 동광리 큰넓괘라는 동굴로 피난길에 오른 양민들의 학살사건인 것입니다. 물론 실화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 섬사람들의 처절한 이야기가 65년이 넘어 지금 뭍사람들에게까지 커다란 울림으로 와 닿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제주 4.3사건의 시발점이 되었던 날인 3월 1일에 제주에서 개봉됐습니다. 제주 개봉일에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저명인사들이 ‘영화인원정대’라는 이름으로 단체 관람을 하기 위해 일제히 서울에서 제주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특히, 배우 강수연 씨가 ‘지슬’ 관람 독려를 위해 한 영화관의 한 회차 티켓을 통째로 구매해 영화 팬들에게 증정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강수연 씨는 왜 ‘지슬’ 티켓을 구매했을까요?

알고 보니 강수연 씨는 26년 전인 1987년에 김동인의 소설을 원제 그대로 영상화한 영화 ‘감자’에 출연해 복녀 역할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20세 연상의 남자에게 팔려가 기구한 운명을 겪던 복녀는 어느 날 중국인 감자 밭에서 감자를 훔치다 주인 왕 서방에게 끌려 들어가 몸을 주고 돈도 받게 되면서 인생이 나락에 빠져 결국 비극적인 죽음에 이릅니다.

영화 ‘지슬’에서 산 속으로 피신한 마을 양민들은 곧 돌아갈 생각으로 따뜻한 감자를 나눠먹습니다. 영화 ‘감자’에서 복녀는 감자를 훔치다 걸려 인생이 뒤틀려 버립니다. 영화 ‘지슬’에서의 감자와 영화 ‘감자’에서의 그것은 모두가 삶에 대한 원초적인 모티브를 제공해 줍니다.

그런데 복녀의 감자에는 인간의 사심과 모략이 은폐돼 있지만 제주 피난민들의 감자에는 4.3사건의 처절함과 애환이 깃들어 있습니다. 강수연 씨는 자신을 몰락시킨 복녀의 감자보다는 제주 피난민들의 애환이 어려 있는 감자에 더 끌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지슬’ 티켓을 구매해 영화 팬들에게 증정하는 선행을 베풀게 했다면 지나친 해석일까요. 아무튼 이 정도면 강수연 씨야말로 요샛말로 ‘개념배우’의 원조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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