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섬, 제주가 지난 해 부산영화제때부터 소란스럽다. 독립영화처럼 만들어진 어떤 영화 한 편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개 부문 상을 받고, ‘꿀꿀꿀’라는 제목으로 영화 후원인을 모은다고 부산스럽다. 그러더니 ‘지슬’이란 제목으로 갈아타고 뭐 유명한 다른 세계의 영화제 상까지 받는다. 그런데 그 영화가 4.3을 다뤘단다. 그 이유만으로 그 소란스러움을 기쁘게 즐겼다.

4.3은 내가 아는 역사의 흐름에 있어 5.18보다 먼저였고, ‘5.18 광주민주화운동’보다 먼저 규정되어야 마땅한 역사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그렇기에 난 그 소란스러움을 즐겼다. 먼저 제주도민들이 이제는 ‘레드 컴플렉스’에서 벗어나 일어나길 기다리며!

기회가 있었지만 시사회에 못 가고 우여곡절 끝에 월요일에 개봉관에서 그 소란스런 영화를 봤다. 영화관 맨 뒷자리 가운데 앉아 그 소란스러움의 실체를 확인했다. 월요일 6시 45분, 퇴근하고 저녁 먹을 시간도 없이 들어서는 정장 혹은 정장에 준하는 옷을 입고 좌석을 채우는 사람들......

‘슬픔’의 역사, ‘아픔’의 역사라고 하기에는 4.3은 아직도 규정되지 않은 채 역사적 사실을 찾아가고 있는 여정일 뿐이다, 최소한 내 생각에는. 그런 4.3을 오멸이란 이름도 생소한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영화제를 휩쓸며 이 작은 섬뿐 아니라, 곧 전국을 떠들썩하게 할 것이다.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 시민평론가상, CGV무비콜라주상, 넷팻(아시아영화기구)상 등 4개부문 수상에 이어 2012년 올해의 독립영화상, 제29회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 극영화 부문 심사위원상 그리고 프랑스에서 열린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에서 황금수레바퀴상(장편영화 경쟁부문 대상)을 받은 것은 시작일 뿐이다, 최소한 내 생각에는.

 

▲ 4.3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 포스터. [사진출처 - 지슬 공식페이지]


영상매체가 보여주는 파급력, 내게 영화 ‘꽃잎’이 그랬듯이 이십 대, 삼십 대 4.3을 모르는 청년들이 이 영화를 통해 4.3을 알고 배워가는 그 파급력이 더 크리라고 기대한다.

감독이 제주도 사람들에게 먼저 선보이고 싶어 한 영화, <지슬-끝나지 않는 세월2>은 이번 주 중에 제주에서 1만 관객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영화가 4.3을 다루고도 국내외 영화계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 충분히 가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치는 그 이상이다.

제목 ‘지슬’은 표준어로 감자를 뜻한다. 역사를 바꾼 씨앗 5가지에 들어가는 감자, 세계 곳곳에서 식량난을 해결하기도 하고, 지금 제주의 가장 각광받는 수확물 중 하나이다. 일제수탈이 막 끝나고 발발한 4.3, 제주의 역사는 양민이 먹고 살기 막막한 시기에 맞물려 있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지슬의 의미, 민중이 죽음과 맞서 있음을 내포하는 듯 보인다.

게다가 영화 초반 자막에 뜨는 ‘총 제작 지휘 故 김경률’의 의미다. 김 감독은 ‘끝나지 않는 세월’이라는 4.3 첫 영화를 2005년에 만들고, 그 해 뇌출혈로 작고한 제주의 감독이다. 4.3을 예술작품 안에 담고 싶어 하는 문화예술인들이라면 한번쯤 이야기하는 이름이다. 그 작품에 오멸 감독이 미술 스태프로 참여했고, 김 감독이 4.3을 다룬 목적과 방향, 가치가 동일하기 때문에 부제를 ‘끝나지 않는 세월2’라고 붙였다고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4.3을 영화로 만드는 목적은 무엇일까? 4.3을 알리는 것이 아닐까!
4.3을 영화로 만들 때 방향이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듯 당시 제주에는 ‘폭도’나 ‘빨갱이’는 없다는 것이 아닐까!
4.3을 영화로 만들고 나서 그 가치는 무엇일까? 4.3이 역사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현 시점에서도 분명한 것은 양민의 희생을 기록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작고한 김 감독의 제목을 부제로 달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앞으로도 누군가에 의해 계속 제작될 수도 있는 ‘끝나지 않는 세월’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4.3의 역사 중 한 마을의 비극을 담고 있다. 바닷가에서 5Km 밖에 있는 사람은 폭도로 간주한다는 제9연대장 송요찬의 포고문이 발표되고 난 후 동광리에서 일어난 양민 학살사건을 담고 있다. 당시 동광리 큰넓괘라는 동굴 안에 100명에서 120여 명 정도가 60여 일 피해 있었다고 한다. 토벌대에 발각되었지만 동굴 내부의 구조상 진입이 어렵게 되자 토벌대는 굴을 막았고, 다른 곳에 있던 청년의 도움으로 동굴을 빠져 나온 사람들은 더 높이 한라산 영실 부근까지 올랐다. 하지만 결국은 모두 잡혀 정방폭포 위에서 죄없이 죽어가고 동광리 부근에 잃어버린 마을들이 남아 있다.

영화는 세 부류 사람들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양민(良民), 선량하고 순진한 사람들. 무시무시한 포고문에 의해 쫓기듯 동굴로 피해 들어가면서도 본인이 아는 곳이 맞다고 우기고, 우기다 맞기도 하고, 동굴 속에서도 돼지 굶어죽을까, 누구는 언제 장가를 가느냐를 걱정하는 그런 사람들. 그런 그들을 폭도라며 목을 따오라고 졸병들에게 고함치고, 어머니가 빨갱이에게 죽어 빨갱이는 씹어 삼키고 싶은 서북청년단원과 사람들. 폭도를 죽여야 하는 명령을 받았지만 죽일 수 없는 사람들.

영화는 그 모든 사람들을 위한 제의처럼 신위(神位), 신묘(神廟), 음복(飮福) 그리고 소지(燒紙)의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다.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의지할 자리, 그 곳은 4.3의 역사적 규명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첫 장을 넘겼다.

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당을 뜻한다는 신묘의 장으로 들어서며 문득 영화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장에도 제주의 방언과 함께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의 오름이 신묘가 되는 순간에 박수를 칠 뻔 했다. 미술을 전공한 감독답게 무채색만으로도 영상미가 절묘했다.

어차피 장을 나눈 영화였기에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꼽으라면 난 음복 장면을 꼽을 것이다. 돌아가신 조상님을 위해 차린 음식은 아니지만 돌아가시면서까지 자손들을 생각하며 손을 뻗은 음식, 지슬을 먹으며 무채색 동굴에 딱 한 방울 떨어지는 굵은 눈물.

마지막 장에서는 사실 좀 장면이 길어지면서 첫 장면에서 끝내지라는 생각도 했었다. 세 부류의 사람들의 시체 위에서 흰 종이를 태워 올리며 소원을 빌 때 ‘각각에게 무슨 소원을 빌 수 있을까, 감독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며칠이 지나 곱씹어보니 그 장면들이 꼭 이 영화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많은 영화 정보를 흘리는 관계로 여기까지만 하련다. 마지막 장에 관해 제 생각이 궁금하시다면 따로 문의해 주시길!

제목의 의미 부여와 감히 작품성(?)까지도 내가 리뷰하기엔 너무 많이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마디는 더 하고 싶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계에 여러 가지 진지한 시사점을 던진다. 지역의 배우들로 이루어진 영화라는 점, 시민들의 소셜 펀딩의 힘으로 완성된 영화라는 점. 그래서 난 제주로 내려와 사는 것에 또 다른 자긍심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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