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군사전문가)

최근 민주당 내 동교동계에서 `성공한 대통령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 내용인즉 현정부가 추진해 놓은 개혁을 완결짓고 남북 화해·협력을 완수하기 위해, 더 나아가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주장의 핵심은 집권 후반기 김대중 대통령의 레임덕 방지에 있다. 그러나 이 논지는 형용의 모순을 안고 있다.
 
김 대통령의 개혁 드라이브가 집권 후반기까지 일관되게 지속되고 남북 화해·협력의 정책기조가 끝까지 관철된다는 것은 곧 김 대통령의 국내정치 실패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름답고 숭고한 실패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김 대통령이 국내정치에서의 실패를 감수하고서라도 개혁과 평화의 길로 나아갈 것이냐의 문제다.
 
역사 속에서 냉전을 해체하고 평화를 정착시킨 인물의 면면을 보자.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가 아라파트 PLO 의장을 만나 회담을 하고 나서 요르단강 서안의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내 보수강경의 흐름을 주도한 시온주의자들에 의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지 3년만에 암살 당했다. 이 시온주의자들이 라빈 총리를 비난한 논조가 對팔레스타인 `퍼주기론`이다.  지금의 월간조선 조갑제 사장이 외치고 있는 주장, 바로 그것이다.
 
고르바초프 구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일방적 군축으로 냉전을 해체하자 즉각 구 소련 내 군부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노벨평화상을 받은지 3년만에 군사쿠테타로 실각하게 되었다.
 
구 서독의 브란트 총리가 신동방정책으로 동독과 협력하자 냉전주의자들은 즉각 반발했다.  그 결과 신동방정책을 표방하고 노벨평화상을 받은지 3년만에 `기욤 사건`이라는 동독 스파이 사건으로 권좌에서 물러난다.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중동 평화정책을 발표하고 이스라엘과 대화를 시작하자 즉각 주변 아랍국들의 반발을 초래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지 3년만에 군 사열 도중 총탄을 맞는 비운을 맞이한다.
 
인도의 간디가 3개종파 통합을 시도하다가 광신적 힌두교도에게 암살 당한 것은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지 채 3년이 안된 시기였다.
 
백범 김구 선생이 38선을 넘어가 김일성과 회담하고 돌아와 안두희에게 암살 당한 시기가 회담 후 햇수로 3년째 되는 때였다.
 
20세기의 세계 햇볕론자들이 국내정치에서 성공한 경우는 없다. 무수한 도전과 역경으로 얼룩진 `세계 햇볕정책 수난사`가 20세기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바로 이들의 `실패`가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고 내일의 희망을 비로소 설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고 3년 후 대통령 임기를 마친다. `햇볕정책 이후 3년`이라는 시기는 우리에게 참으로 시사하는 바 크다.
 
이 시기는 광신주의자, 분열주의자, 냉전주의자, 반통일주의자에 의한 반동과 역풍의 시기다.  그러나 그 3년이 지나면 세계 햇볕주의자들의 정책을 전세계가 지지하고 분열과 반동의 흐름은 봄볕에 잔설이 녹듯이 사라진다.
 
김대중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론`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3년 이후`의 시기에 주목하는 역사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해서 그의 반대자들까지 궁극적으로 흡수하고 포용하는 최종적 승리의 길을 갈 수 있다.
 
김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실패를 기꺼이 감수하는 지도자를 국민이 갖고 있느냐, 못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것이 나의 `실패한 대통령론`이다.


[지난 김종대 시평]

미군철수에 대한 이상동몽(異床同夢)


<약력>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반핵평화운동연합 정책위원
평화연구소 연구원
14,15,16대 국회 국방위, 정보위의원 보좌관
15대 대통령직 인수위 국방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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