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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의 우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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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08.15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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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세상

과학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 자고 나면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들이 쏟아져 나온다. 눈부시게 발전한 컴퓨터와 통신기술은 현대문명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제는 누구나 핸드폰을 가지고 있고, 초고속 통신망이 깔린 컴퓨터로 쇼핑을 하고 게임을 하며 사이버 공간에서 사람관계를 만든다. 시골에 사는 영자도, 오지마을의 농사꾼도 이 거대한 흐름을 피해 가진 못한다.

컴퓨터와 인터넷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 우편함을 기웃거리는 대신에 컴퓨터를 켜고 e-mail을 확인한다. 우스개 소리는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확산되고, 방석을 깔고 팔 아프게 고도리를 치는 사람보다는 게임네트워크에 접속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부모와 자식관계도 컴퓨터 게임을 통해서 풀고, 통일된 미래에 남북의 어린이들도 컴퓨터 게임으로 동포임을 확인한다.

사이버 공간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만들어낸 가장 놀랍고 대단한 성과이다. 거기에는 현실과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나이도, 성별도, 학벌도, 지연도 필요 없는 공간이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자유가 보장된 듯이 보인다. 누구나 자유로운 발언을 하고, 정보를 교환한다. `안티조선`이나 `딴지일보` 따위의 사이트는 언론개혁의 불을 지폈고, 네티즌의 의견은 공중파 방송이나 신문지상에 중요한 여론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여전히 일부 사람들의 몫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저 쇼핑과 게임, 약간의 업무용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을 사용하고, 예민한 문제에 대해서는 방관자 입장을 취할 뿐이다. 핸드폰을 가진 청소년을 나무라고, 게임중독을 걱정하며, 행여 음란물을 접할까 노심초사한다. 기계를 사용하긴 하지만 정서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몇 년 전, 친구가 컴퓨터의 능력과 성능을 예찬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선배가 한마디 던졌다. "그 기계가지고 뭘 할건데?" 사람들이 최신 기종의 핸드폰과 컴퓨터로 바꾸는 것은 멀쩡한 차를 놔두고 새차를 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컴퓨터와 인터넷은 그야말로 기계와 기계적인 네트워크일 뿐이다. 컴퓨터를 인간과 사회에 유익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람의 생각과 능력이다. 사이버 공간을 아름답고 살만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기계가 인간의 사상과 미래를 대신하지 않는다. 책을 편집하고 그래픽과 애니메이션 따위를 만들 수 있는 최신 컴퓨터를 사다놓고 게임이나 하면 그 기계는 비싼 오락기 수준에 머물러 버린다.
 
이런 문제는 예술분야에서도 드러난다. 한동안 컴퓨터 그래픽이나 홈페이지 관련 학원에는 젊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컴퓨터 디자이너는 전망 좋은 직업이었고, 학원비는 대학 등록금을 육박했다. 하지만 학원을 졸업한 사람도 드물었고, 설사 졸업했더라도 디자이너가 된 사람은 적었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수한 컴퓨터 기종과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도 뭔가를 `창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는 창작의 도구일 뿐이지 대신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미술학원에서 지루한 형태잡기나 색채기본을 배우거나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최근에는 홈페이지 관련 디자이너는 미대출신이 아니면 잘 뽑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음악이나 건축, 인테리어, 문학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워드를 잘 치고, 편집을 예쁘게 한다고 좋은 글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창조능력`이다. 창조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지루하고 힘든 과정이 필요하다. 사실 창조능력을 가장 빨리 배울 수 있는 길은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길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미술이나 문학 혹은 음악 따위의 예술을 배우라고 권장한다. 배워서 전문가가 되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정보와 문화의 시대에는 뭔가를 창조하는 사람들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은 놀라운 재주와 많은 돈이 없어도 전문가 못지 않은 창조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어찌 보면 `창조정신`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 중요한 `필수`일지도 모른다.

드레스의 우편원

▶박영삼/우편원/조선화/87*135/1989

이번 작품은 북한화가 박영삼이 그린 <우편원>이란 조선화이다. 이 작품은 북한의 미술전람회에 출품해서 낙선했다고 한다. 낙선한 작품을 소개하는 것은 북한미술과 북한사회를 제대로 보기 위함이다.

예술은 사회와 시대를 반영한다. 또한 나름대로 사상을 담고 있다. 낙선한 작품은 그 사회와 시대에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품의 어떤 요소가 북한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일까? 이것을 뒤집어보면 북한미술과 사회를 더 잘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작품을 살펴보자. 추수가 진행중인 황금들판을 배경으로 여성 우편원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노동신문과 책자 그리고 우편물을 자전거에 싣고 달리는 여성 우편원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앞쪽에는 누렇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고, 먼 배경에는 트랙터와 깃발이 보이는 걸로 봐서 `추수전투`가 한창이다.

이 모든 요소를 합쳐 정리를 하면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작가는 풍년의 기쁨과 편지를 받는 기쁨, 그리고, 노동신문과 김일성 저작집 따위를 동일시하려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신문과 김일성의 교시는 마음의 풍년이라고 의도한 것이 작품의 핵심이다.

하지만 작품을 감상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우편물과 노동신문을 전하려 가는 우편원의 사명과 기쁨을 표현한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형상화에 실패한 이유이다. 언젠가 소개하겠지만, 비슷한 소재의 작품을 본 적이 있다. 그 작품에서는 평양의 아침을 부드러운 표정으로, 자전거를 타고 노동신문을 배달하는 여성 우편원 두 명이 표현되어 있다. 그 작품의 핵은 단순하다. 평양의 아침은 노동신문으로 시작한다는 이미지이다.

아무튼 이 작품에서 여성 우편원의 밝은 표정은 별 근거가 없다. 특별한 동기 없이 웃는다면 그것은 오버한 것이다. 노동신문을 실었다고 먼 길을 내내 웃으면서 달릴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표현상의 문제도 있다. 드레스 비슷한 원피스를 입은 것도 거슬린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여성 우편원이 치마를 입는 것은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표현에 어울리지 않는다. 배경은 너무 단순하게 처리되었거나, 혹은 필요 없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억지로 넣은 듯한 느낌도 준다.
 
사람들은 가끔 북한의 미술을 보고 근거 없이 낙관적이라고 . 혹은 비판이 없는 예술은 관제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틀린 말은 아니다. 북한은 철저히 당과 사회 중심의 나라이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보다 긍정하고 낙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문제는 무엇을 긍정하고 무엇을 낙관적으로 생각하는가를 아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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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1)
한씨 () 2001-08-17 12:00:00
글이 갈수록 조금 달라지는 것 같네요.
관조가..

전반의 내용 잘 모르겟습니다.
그리고 우편원의 입매무새와 옷차림새를 두고
사회주의 운운하는 것은
더 비약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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