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선언 발표 5돌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10.4선언은 6.15공동선언과 함께 이른바 ‘6.15시대’에 들어와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가 합의한 역사적인 문건입니다. 통상 6.15선언은 ‘통일의 이정표’로 불리고, 10.4선언은 6.15선언의 ‘행동지침이자 실천강령’으로 불립니다. 따라서 이 두 개의 선언은 함께 짝을 이룰 때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두 개 선언에 합의한 당사자인 김대중-김정일-노무현 세 사람이 세상을 떴지만 그와 관계없이 앞으로도 두 개 선언은 남북관계를 계속 지탱해 줄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2000년 6.15선언 이후 남과 북은 당국 차원이든, 민간 차원이든 숱한 공동행사를 치렀으며, 교류와 협력사업을 해왔습니다. 말하자면 두 개의 선언이 모든 남북관계 발전의 방향타 역할을 해온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남북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적이 없습니다. 이제 이명박 정부 임기가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 중 마지막 남은 10.4선언 발표 5돌인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남북관계는 완전히 종을 친 듯합니다. 이제 와서 남북관계가 왜 이렇게 됐는지,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는 게 부질없다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역사의 진실을 위해서 따질 건 따져야 합니다.

무수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래도 5년간 남과 북의 대화가 이뤄지지 않은 단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는 어느 쪽인가에서 6.15공동선언과 10선언을 존중도 하지 않고 이행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입니까? 당연히 남측, 보다 정확하게는 이명박 정부쪽입니다. 북측은 간단합니다. 줄곧 6.15와 10.4를 존중하고 이행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출범 초부터 대북정책으로 ‘선핵포기’에 입각한 ‘비핵, 개방, 3000구상’을 내세웠으며, 6.15선언과 10.4선언을 공공연히 부정해 왔습니다. 모두가 일방적인 정책이자 힘의 정책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 담당자가 대북 압박정책을 3년만 쓰면 북한이 무릎을 꿇고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는데, 세상에 이런 오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10.4선언 발표 5돌인데도, 정부는 뒷전이고 정당들도 뜨뜻미지근하고 또 대선 후보들도 그리 분주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2007년 남북정상회담 추진 당시 추진위원장을 맡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만이 10.4선언을 고리로 하여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이어온 대북정책의 기조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민간 차원에서는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북.해외본부가 각각 기념식과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전반적으로 올해 10.4선언 5돌도 가을 날씨처럼 쓸쓸한 편입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내년에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활력을 되찾아 한반도와 남북관계에 새로운 변화가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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