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사과했습니다. 박 후보는 24일 여의도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공식적인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박 후보는 기자회견 모두에서 “저는 오늘 한 아버지(박정희)의 딸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제 18대 대통령 후보로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과거사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혀 공인의 위치에서 사과했음을 명확히 했습니다.

그간 박 후보는 5.16쿠데타와 관련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 유신체제에 대해서는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서는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나” 하는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 다소 무지하거나 삐뚤어진 시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사 문제만 불거지면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며 교과서적인 발언을 하거나 또는 “이미 수없이 사과했다”, 심지어 “정치권이 민생을 제쳐놓고 과거사 문제를 갖고 싸우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는 등의 일방적인 발언을 해왔습니다.

이 같은 발언에서 보면 이번 사과는 분명 기존 입장에서 물러선 것으로 진일보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후보의 ‘뒤늦은 사과’가 가슴에 와 닿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박 후보의 사과 발언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한 인간의 인생관과 역사관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50-60년을 산 사람의 철학은 거의 고착화됐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물론 변화를 꾀할 수도 있습니다. 진정 변화를 위한다면 그에 걸 맞는 필연성과 성찰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박 후보의 사과 발언을 두고 ‘진정성’이냐 ‘악어의 눈물’이냐를 판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봐서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박 후보는 사과에 이르기까지 변화의 과정에서 인간적 고뇌와 깊은 성찰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대선을 불과 3달 앞둔 시점에서 눈에 띄게 하락하는 지지율 때문에 하릴없이 ‘사과’쪽을 택한 것으로 밖에는 달리 해석되지 않습니다. 역으로 “인혁당 사건은 판결이 두 가지”라는 발언으로 지지율에 변동이 없거나 올랐다면 사과는커녕 고려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과가 임시방편적이고 등을 떼밀려 마지못해 나왔기에 당연히 진정성에 의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막판까지 회피하다가 지지율이 나락에 떨어지자 표를 의식해 고개를 숙였기에 ‘악어의 눈물’이 아니냐는 강한 의구심도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불리한 상황이나 다급한 피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인생관과 관계없이 원칙을 저버리거나 바꾸는 행위입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원래대로 “과거사 문제는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계속 우기면서 국민과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 게 더 떳떳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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