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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식자료실] 6.15공동선언의 역사적 의의와 성과

저자
김남식
출처
일본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3주년기념 통일강연회` 실행위원회
발행일
2003-07-24

6.15공동선언의 역사적 의의와 성과
- 김남식 `통일뉴스` 상임고문 강연록


김남식(통일뉴스 상임고문)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6.15공동선언에 의해서 그간에 이룩된 성과에 의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생각할 때 6.15공동선언이라는 것이 3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먼저 이 자리에 초청해주신 주최자측에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또한 어려운 역경과 환경속에서 조국의 통일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시는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박수)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세 가지 내용입니다. 우리들은 6.15공동선언에 대해 여러 가지 시각에서 분석도 하고 풀이도 합니다만, 제가 보는 시각과 관점에서 한번 6.15공동선언의 민족사적 의의와 세계사적 의의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리고, 두 번째로는 3년이란 결코 긴 세월이 아닙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큰 성과가 달성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세 번째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안문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북한의 `핵문제`를 가지고 지금 여러가지 상황들이 전개되고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는데 이런 것들에 대한 현황과 앞으로의 전망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러한 세 가지 내용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6.15공동선언의 민족사적 의의와 세계사적 의의
 

6.15공동선언은 내용으로 보아서 어디다가 그 기준을 두어야 하느냐,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7.4남북공동성명에서 밝힌 통일의 3원칙, 자주, 평화통일, 민족적 대단결이라는 그 정신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 내용이 다섯 개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 민족의 힘에 의해서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통일한다는 통일의 원칙적인 문제가 들어 있고, 두 번째는 통일의 모양새를 어떻게 하는게 좋겠는가, 연방제로 할거냐 국가연합으로 할거냐 이런 것들에 합의를 본 것이고, 세 번째는 이산의 아픔을 풀고 장기수들을 북송하는 문제, 이런 인도주의 문제가 들어가 있고, 네 번째는 경제교류·협력, 남북한의 경제를 민족경제라는 틀속에서 어떻게 균형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이런 것들을 수행하기 위해서 당국간회담이 제도화되어야 되겠다고 합의를 본 것이고, 그 다음에 별도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한다는 것, 이것이 6.15공동선언에서 합의된 내용입니다.

그 다섯 가지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제 1항입니다.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서 자주적으로 통일문제를 풀어 나가자, 여기에 합의한 것이 6.15공동선언의 기본핵심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다음에는 남측의 연합제―김대중 대통령이 30년동안의 연구 끝에 내놓은 3단계 통일방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남북연합제 단계가 첫 번째 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남북연합제는 그전의 대통령도 얘기는 했습니다만, 김대중 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은 연합제를 거쳐서 연방제, 단방제로 가는 통일방안입니다.

그러므로 북한에서 1991년에 제시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그 공통점을 살려 가지고 통일한다는 것이 두 번째 항목인데, 쉽게 말해서 양쪽 이념과 체제를 그대로 존속시키는 전제하에 통일기구를 중앙에 내세워 가지고 처음에는 그 통일기구가 힘없는 통일기구이지만 점점 힘을 심어주어 가지고 결국은 연방제로 가는데 합의를 본 것입니다.

이와 같이 6.15공동선언은 그 내용으로 보아서 1972년의 7.4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자주, 평화통일, 민족적 대단결이라는 통일의 3원칙 정신이 반영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왜 2000년 6월 15일에 나왔을까, 이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한반도의 모순구조를 알아야 되는데, 한반도의 모순구조는 북미간의 군사적 적대관계와 남북간의 이념과 체제 차이로 오는 모순관계, 갈등관계가 겹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미간의 문제와 남북간의 문제가 겹쳐 있는 2중구조입니다. 그 가운데서 북미간의 군사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문제가 풀릴 수 없는, 그런 상황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축으로 비교한다면 북미간의 군사적 적대관계가 기본축이 되고 남북간의 이념과 체제간의 갈등이 보조축으로 됩니다. 이러한 기본축과 보조축이 전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면서 거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북미간의 기본축입니다.

그런데 1998년 8월에 북쪽에서 3단계 로켓을 쏘아 올렸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깜짝 놀래 가지고 페리라는 전 국방장관을 조정관으로 임명해서 북한과의 관계문제를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를 연구해 가지고 보고해라,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페리는 전문가의 의견도 듣고 평양도 방문하고 중국도 방문하고 일본도 방문하고 서울도 방문하고 연구분석한 끝에 의회에 보고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1999년 9월이었습니다. 핵심적인 내용은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개선까지 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국무장관인 올브라이트도 한반도에서 냉전의 먹구름이 가시지 시작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까지 남북관계가 전혀 진전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북미관계인 기본축은 클린턴 말기에 다시 가동되었는데 남북관계의 보조축은 딱 멈추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북미관계인 기본축을 다시 큼직하게 회전시키려면 남북관계인 보조축의 뒷받침이 있어야 되겠다고 해서 시작된 것이 정상회담입니다. 보조축을 최대한으로 가동시키자고 한 것이 정상회담이며 거기에서 나온 것이 6.15공동선언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서울에 온 후 클린턴 대통령이 어떻게 말했습니까. "이제 공은 우리한테 넘어왔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 공을 다시 넘겨야 될텐데, 그 단계에서 10월에 북한의 조명록 차수가 미국을 방문한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10월 12일에 북미공동코뮈니케가 발표되었습니다.

이 공동코뮈니케를 보면 북미간의 관계개선, 그리고 6.25전쟁 종식문제, 그 다음에 경제협력문제 등등 여러 가지가 다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클린턴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는 것으로 되었으며 그를 실현시키기 위해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먼저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이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되느냐. 6.15공동선언은 남북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통일문제입니다. 그리고 북미공동코뮈니케는 북미간의 적대관계 해소와 관계개선 문제입니다.

따라서 북미간의 적대관계를 해소함으로써 민족의 자주권 획득문제는 북미공동코뮈니케로 해결하려고 한 것이고, 남북이 6.15공동선언 실천을 통해서 근대적인 자주적인 통일민족국가 건설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가지가 연결된 상태에서 우리가 이해를 해야 합니다. 하나는 민족의 자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근대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에 의해서 클린터 시대의 북미간의 기본축이 깨졌습니다. 그래서 남북간의 보조축만이 남게되었는데,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한반도문제 해결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아직도 북미간의 기본축이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오늘날 남북간의 6.15공동선언 실천이라는 보조축은 북미간의 문제가 해결 안되니까 잘 작동이 안되는데, 그럴수록 6.15공동선언을 성실하게 실천하고 성과를 올림으로써 보조축이 기본축이 되도록 발전, 강화시켜야 합니다. 그래가지고 그간 북미간의 기본축이었던 것을 격하시켜 힘없는 보조축으로 떨구어야 됩니다.

결론적으로 지금 미국은 자기들의 추종국가들을 내세워 북한을 몰아붙이고 그 무슨 `공중봉쇄`다 `해상봉쇄`다 `폭격`이다 하는 별 소리가 다 나오고 있는데, 남북간에 민족공조로 6.15공동선언을 제대로 실현시켜나가고, 민족대단결과 우리 문제는 우리가 주체가 되어 풀어 나간다는 민족자주의식으로 강력한 축으로만 되면 지구상에서 겁날 것이 없습니다.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들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방법은 그 길 밖에 없습니다.

저는 원래 몰락된 양반의 집안입니다.(웃음) 신라의 56대왕 경주 김씨 후손입니다. 그래서 증조할아버지는 위정척사론자여서 저는 어렸을 때 엄격한 봉건적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심지어 1894년 농민전쟁 때 불행하게도 우리 집안 선조가 봉건적인 왕조편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외세에 대해서는 가만히 안 있었습니다. 그 영향을 받은지 모르지만 외세하고는 조상을 생각해서라도 끝까지 싸울 입장입니다(웃음).

여러분들이 역사를 다 아시겠지만 고구려가 얼마나 셌습니까. 제가 신라의 마지막 왕의 후손이지만 신라 때 당나라를 끌어들여 가지고 고구려를 망치고 백제를 망치고 거란하고 싸웠고 그때부터 사대주의가 들어온 것입니다.

이조 때는 사대입국이니 말할 것도 없고, 19세기 후반, 우리 나라 근대사가 시작될 때 서방열강들이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고 마지막에 동북아시아 쪽으로 왔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나라는 식민주의자들한테 침략을 받기 시작해 가지고 그것을 물리치는 싸움이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우리 나라 근대사 시작입니다.

제일 먼저 온 것이 `셔먼호`라는 미국의 해적단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프랑스, 일본이 뒤질세라 함대가 인천에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그때부터 우리와 외세와의 싸움입니다. 그때부터 자주권이 침략 당한 것입니다.

우리 나라 민족은 우수한 민족입니다. 시민혁명을 자체적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김옥균 개화파들이 갑신정변을 일으켜 가지고 시민혁명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외세에 의해서 실패했고, 1894년 갑오농민전쟁, 그것도 하나의 부르죠아혁명인데 외세에 의해서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나라가 혁명도 못하는 나라냐, 절대 아닙니다. 외세가 워낙 세게 탄압했기 때문에 못한 것입니다.

영국이 거문도를 2년간 침략하지 않았습니까. 그 다음에 한반도를 먹기 위해서 청나라하고 일본이 싸운 것이 청일전쟁입니다. 결국은 일본 낭인들이 궁궐까지 쳐들어와서 민비를 칼로 죽여서 연못속에 집어넣은 것을 다시 꺼내 가지고  궁궐 뒷산에서 태워버렸습니다. 지구상에 남의 나라 왕비를 칼로 쳐서 그것도 모자라 불로 태워서 뿌린 그런 야만민족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당했습니다. 결국은 을사5조약으로 우리가 침략 당하고 말았습니다.

다 아다시피 영일동맹 해 가지고 영국의 지원을 받고 또한 가츠라-태프트 비밀협약으로 미국과 짜서 일본이 한국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래가지고 근 40년동안 식민지통치를 받았는데 민족의 자주권이라는 것은 완전히 빼앗긴 것이지요. 그것이 해방후에 새로운 외세가 들어와 가지고 계속 빼앗기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취임이 되면 반드시 미국에 인사하러 가야 합니다. 절대로 사진 찍기 위해서 가지 않겠다고 한 사람도 안 갈 수가 없었습니다. 군사 작전지휘권이 있습니까?  경제가 지금 외국자본에 의해서 침탈 당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사적으로 보아 근대사 흐름만 보더라도, 우리 민족 앞에 나서는 가장 기본적인 과제가 무엇입니까?  민족의 자주권입니다. 민족의 자주권을 확보하는 것, 이것이 민족사적 과제입니다. 두 번째 과제는 근대국가를 우리 스스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주적인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 그것이 민족사적 과제입니다. 자주권 확보와 근대민족국가 건설, 그것이 바로 6.15공동선언에 반영되었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20세기를 마감하는 2000년에 그 불행했던 역사를 다 씻어버리고 21세기에는 당당한 자주권을 가진 민족으로서 우리가 나가야 됩니다. 거기에 6.15공동선언의 내적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세계사적 의의는 무엇입니까? 1989년에 몰타에서 부시 전 대통령과 고르바초프가 회담을 해가지고 냉전종식을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소련도 해체되면서 그 냉전의 모든 요소들이 한반도에 집결되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그래도 협상하고 수교를 하려고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나쁜 사람 아니지 않느냐? 천만의 말씀입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들어서자 마자 무슨 정책을 썼습니까? 이른바 북한을 연착륙 시키겠다는 정책, 평화적으로 이행시켜야 되겠다, 그러니까 개혁·개방을 시켜 가지고 결국은 시장주의에 편입시키겠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클린턴 행정부입니다. 그것을 무력적 수단에 의해서 하지 않겠다는 측면이 있기는 있는데, 그 사람도 1994년도에 한번 무력으로 침략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정책상에서 개입이냐 억제냐 하는데서 어디에다 무게 중심을 둘 것인가 하는데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다 같습니다.

냉전시대에 분단된 것은 한반도와 함께 독일하고 베트남입니다. 독일은 이미 해결되었고 베트남도 해결되었는데 마지막에 남은 것이 한반도입니다. 그런데 한반도는 6.15공동선언을 통해서 통일한다, 그러니까 냉전시기의 마지막 잔재로 남아 있던 한반도가 6.15공동선언을 통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런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독일은 서독에 의해서 흡수통일한 것이고, 베트남은 북부 베트남에 의해서 무력통일한 것이고, 그러나 한반도는 6.15공동선언을 통해서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점으로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통일한다, 이렇게 합의를 보았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후에 형성된 냉전의 마지막 보루가 깨트려지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세계사적 의의가 있었다, 그래서 밀레니엄 유엔 정상회담에서도 지지결의를 했고 유엔에서도 지지결의를 했고, 아세안이나 모든 국제회의 때마다 6.15공동선언을 전부 지지 환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도 노벨평화상까지 받을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고, 이렇게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국제사회가 지켜보는 가운데 지금 6.15공동선언이 실천되는 과정에 있는데, 이것이 오늘날 부시 행정부 때문에 제대로 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2. 그간에 이룩된 성과
 

그러면 불과 3년이지만 그동안에 어떤 성과가 있었느냐. 엄청난 성과가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하나다", 요즘에 와서는 "우리는 단군의 후손이다", "하나의 핏줄이다" 이런 생각을 거의다 가지게 되었습니다. 핏줄도 같지 말도 같지, 역사가 같지 문화가 같지, 생활 습관이 같지, 그러니까 어렸을 때 반공교육을 받은 아이들도 이제는 그게 아니예요. 달라졌습니다.

해방후 50년 동안에 가장 해악의 하나가 민족의식의 말살인데, 민족의식이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상당히 걱정했습니다. 민족 얘기하면 "그건 이조시대 이야기다"하고 젊은 교수들도 안 들으려고 해요. "민족이 밥 먹여 주느냐"하고(웃음). 이젠 그게 아니예요.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민족 성원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민족을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운명적으로 한 민족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귀중히 여겨야 합니다. 2천개 민족이 있고 200개 나라가 있고 그중 한 20개 나라가 단일민족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철저한 단일민족이 우리 민족입니다. 이런 민족의식이 되살아났습니다.

두 번째로는 남북간의 민족적 연대가 이루어졌습니다. 노동자 연대가 이루어졌습니다. 농민 연대가 이루어졌습니다. 여성 연대가 이루어졌습니다. 청년학생 연대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4대 기본계층의 연대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하나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기초가 되어 가지고 민족대단결이라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성과가 올라가는 것이지, 축소되지는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성과가 뭐냐, 모순구조입니다. "남북한은 하나", "우리 민족은 하나의 핏줄이다", "원시조 단군의 후손이다", 그래서 남북한 대 외세라는 단일모순구조로 지금 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모순구조가 일제 때까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방후 한국과 일본이 국교정상화됨으로써 북한 대 한.미.일이라는 식으로 모순구조가 바꿔졌는데 이제는 그것보다도 남북한 대 외세, 그런 방향으로 발전의 궤도가 형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엄청난 변화입니다.

그 다음에 교류·협력이라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금강산이 이제는 북쪽만의 금강산이 아니라 남북이 공유하는 산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 남북간에서 참 중요하게 변한 것은 휴전선이 묵사발된 것입니다.

경의선이 뚫리고 거기를 따라서 도로가 뚫립니다. 동해선이 뚫리고 도로가 또 뚫리고. 이것은 지맥과 혈맥을 잇는 것이나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구역을 북한의 인민군대와 남쪽의 한국군이 같이 관할하는 공동구역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유엔사는 간섭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제동을 걸었습니다. "아무리 관통된 지역이지만 역시 비무장지대(DMZ)다. DMZ이기 때문에 관할권은 유엔사와 북한의 인민군에게 있다. 때문에 유엔사와 인민군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한때 옥신각신 했습니다. 남북한의 관할구역으로 되었다는 것은 50년 동안 유지되어온 DMZ가 뚫어졌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변화이지요.

이렇게 되면 유엔사가 별 볼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DMZ라는 것이 관할하는 기구가 사실상 없어요. 정전위원회도 깨져버렸고 중립국감독위원회도 다 나가버렸고, 그래서 북미 장성급회담이라는 것이 있어 가지고 문제를 불규칙적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만 그것도 시원치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다가 이번에 도로와 철길이 뚫렸기 때문에 유엔사가 이를 어떻게 할건가 하는 문제에 지금 부딪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8.15축전을 남북이 평양에서 한다고 하고, 또 8월의 대구 유니버시아드에는 북쪽에서 520명이 옵니다. 아시안게임 때 왔던 그런 응원단이 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정몽헌 회장이 평양에 세우는 유경체육관 준공식이 있게 됩니다. 여기에 육로로 1천명이 갑니다.

그 다음에 전교조에서 130명이 평양에 가고, 제주도에서 남북의 대규모 공동행사를 하게 되어있고 또 추석을 전후해서 대규모 이산가족 상봉을 계속하려는 등 앞으로 엄청난 일들이 쌓여져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잘 이루어지면 남북관계는 한 차원 높은 방향으로 갈 것이 아니겠습니까. 때문에 이런 것들을 잘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장관급회담이 6.15공동선언을 실천하는 당국간의 회담이며, 그 장관급회담의 합의사항이 잘 돼야 민간차원도 순조롭게 나갑니다. 6.15공동선언의 이행은 민간차원의 통일운동만이 아니라 당국차원과 같이 하는 거족적 통일운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통일운동을 잘 하려면 당국간 회담도 잘 되어야 되는 것인데 장관급회담이 지금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6.15공동선언은 지금 그런대로 모가 나게 추진되고 있고 북쪽에서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 하고 있으며 남쪽에서는 일부 발목 잡는 세력이 있기는 합니다만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추석날 차례상에 놓는 고사리 나물이 있는데, 대체로 중국에서 들어오는 농산물이라는 것이 한국에 70∼80%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 것이 또 들어옵니다. 북한의 호두 같은 것이 들어오는데 중국 것보다 가격이 배나 비쌉니다. 맛이 있다고 해서.

그런데 추석날 아낙네들이 나물반찬을 하기 위해 고사리를 사는데 중국산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아나운서가 왜 북한 것을 사려고 하느냐고 물으니, "차례상 받는 조상님들이 북한 것을 더 좋아할 것 아닙니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웃음과 박수)

지금 이렇게 달라져 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변혁기에 그 변혁에 의해서 손해보는 계층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지금 일부 언론을 장악하고 있고 돈을 장악하고 있지만 숫자적으로는 적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아까 얘기한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남한의 많은 사람들은 "과거 묻지 말아라". "냉전시대 때 있은 것을 뭘 따지느냐, 냉전이 강요된 것 아니냐, 남쪽도 손해보고 북쪽도 손해본 것, 그것 따지지 말자". "이제는 민족문제다. 5천년 역사를 지켜온 민족을 살려야 될 것 아니냐", 이런 생각들을 지금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제주도 분들이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주도에서는 북한에 없는 귤을 3만톤, 4만톤 보냅니다. 그리고 또 제주도에는 조랑말이 있는데 그것 세 마리 잘 길러 가지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선물하겠다고 가져갔습니다.

2000년 추석 전날 북한의 인민군대 1개 사단을 어디다 풀었느냐면, 북한의 칠보산, 그 바위산에 있는 천연 송이버섯을 수 없이 따 가지고, 그것이 하루 이틀 지연되면 안 된다고 해서 비행기로 가지고 서울로 오지 않았습니까. 저쪽의 인민군 장성이 가져왔습니다. 여기 한국군 장성이 또 그것을 받았습니다.

그 인민군대들이 송이버섯을 딸 때 이것 한 송이 따는 것이 남쪽의 군인들, 남쪽의 동포들에게 주는 것이다 해서 성의껏 땄습니다. 거기에 무슨 적개심이 있겠습니까. 이런 것들을 한국사람들이 다 지금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6.15공동선언은 이제는 그를 뒤로 가게 시킨다든가 옆길을 가게 한다든가 하는 것이 있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자기 궤도에 들어섰습니다.

노무현 정부도 햇볕정책을 계승하고 있으며, 장관급회담과 경제협력, 그리고 비료지원 하는 문제, 식량지원 하는 문제 등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으며,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6.15공동선언은 역사적 평가를 이미 받은 것이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이기 때문에 이를 계승한다는 입장인 것입니다.(박수)
 

3. 현안문제
 

그러면 현안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핵에 대한 것입니다. 먼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핵문제 때문에 북한이 지금 벼랑끝으로 몰리우는 것이 아니냐, 결국은 북한이 손드는 것 아니냐, 지금 급한 것은 북한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들 하지요? 반대입니다. 급한 것은 부시 행정부입니다.

북한은 체제보장만 하면 당신네들이 우려하는 것 해소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정당한 주장입니까. 체제를 위협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체제보장 해라, 불가침조약 체결하자, 그러면 당신네들이 우려하는 문제를 다 해결해 주겠다, 그렇게 원칙적인 문제를 딱 던져놓고 있습니다. 이것 받아들이면 해결하는 것이고, 안 받아들이면 북한이 아홉 번째 핵보유국이 되는 것이고, 겁낼 것 없다 이겁니다.(웃음)

급한 것은 부시 행정부인데 왜 급하냐,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출마해 가지고 "나는 사진 찍으러 워싱턴방문 안 하겠다" 이렇게 했습니다. 누구는 5분 만났니, 아니 5분이 아니라 7분 만났다, 나는 10분 만났다, 이런 사대주의자들이 그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걸 보고 역사의 종속변수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주체적으로 해야 되겠다, 그런 말을 하면서 절대로 사진 찍으러 안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한미관계가 평등관계, 성숙된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이 핵을 갖는 것은 안된다, 핵문제는 절대로 전쟁의 방법이 아니라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핵은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는 3원칙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이 걱정되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경의선이 뚫리지요. 동해선이 뚫리지요. 사람이 왔다 갔다 하지요. 그러니까 미군은 계속 주둔시켜야 되겠지 야단난 것입니다. 그래서 한미동맹이 균열상태에 있다. 이것을 겁먹은 것입니다. 한미동맹 50년 동안 쌓아 올린 것이 순간적으로 균열상태로 가게 되면 큰일난다. 그렇기 때문에 6.15공동선언, 이것을 못하도록 해야 되겠고 노무현으로 하여금 한미동맹 강화 쪽으로 돌려놓아야 되겠다, 이것이 부시가 기본적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무슨 북쪽에다가 5억 달러가 갔다니 하는 것들을 미국이 퍼뜨린 것으로 보는 견해가 설득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미국은 달러를 자기들이 찍지 않습니까? 그래서 뭉치돈이 몇 억씩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돈의 흐름을 그 사람들이 체계적으로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 정보를 한나라당에 준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대통령선거 해 가지고 노무현씨를 떨어뜨리게 했는데 그것도 안되니까 켈리를 보내 가지고 북이 핵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한나라당이 핵을 가지고 있는 북쪽하고 왜 남북대화를 계속 하려고 하느냐 했습니다. 그러니까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이 어쩌면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그렇게 똑 같느냐, 이렇게 되었습니다.(웃음)

그래서 당연히 한나라당의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줄로 믿었는데 그것도 시원치 않을 것 같으니까 예멘 앞바다에 있는, 합법적으로 가는 북한 선박을 나포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석방했습니다. 그래도 미국은 한나라당의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줄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뒤집어졌거든요.

그래서 한미동맹에 균열을 가져올까 해서 계속 압력을 가하는 것이 바로 부시 행정부인데, 경제신용평가(무디스) 같은 것을 보내 가지고 한국의 신용평가를 한 단계 낮춘다, 그러면 주식시장이 흔들립니다. 그리고 미군 철수다, 철군이다 이렇게 하니까 외국인들이 투자도 안하고 회수해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과 관련되어서 결국은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마음에는 안 들지만 불가피하게 그런 입장을 취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이 골프 치면 소비가 확장돼 가지고 경제가 발전한다니 뭐니 하는 소리까지 나와서 실망도 가져오고 했는데, 어떤 사람은 `악어의 눈물`이라는 칼럼을 썼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때 눈물도 흘리고 그랬습니다. 분명히 노 대통령은 선거전에서 돈 쓴 것은 역대 대통령선거 때보다 가장 깨끗하게 했습니다.

이 `악어의 눈물`에 대해서 동물학자에게 물어보았더니, 악어라는 동물은 눈물집 신경하고 입에 들어가는 구간신경하고 분리가 안되어 붙어 있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어는 먹을 감이 입에 들어가서 깨물기만 하면 눈물이 자동적으로 나온다는 것입니다.(웃음) 그래서 `악어의 눈물`이라는 평이 나왔는데, 한국 언론은 그 정도는 자유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생활보조비 받는 사람한테 10만원 받고 눈물 흘렸기 때문에 `악어의 눈물`이라고 쓴 모양입니다.

현안문제가 바로 핵문제인데, 과거지사는 여러분들이 다 아시기 때문에 제가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1994년 10월에 발표되었던 북미합의문은 분명히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클린턴 대통령의 담보서한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대로만 실천이 되었으면 다 해결이 되는 거예요. 그게 실천이 안 돼 가지고 지금 그렇게 된 것이지요.

경수로 지원이라는 것이 지금 30%밖에 진척이 안되어 있습니다. 원래 2002년이면 100만키로가 완성되어 가지고 북한에 열쇠를 넘겨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2003년이면 또 100만키로가 완성되어 가지고 북한에 열쇠를 넘겨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는데 아직껏 지금 경수로 2기 건설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것이 1기의 원통 여섯 개가 올라가 있는 정도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 클린턴 대통령이 늦으면 미 의회 승인을 얻어 가지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건설하겠다고 약속한 것이거든요. 결국 "그쳐라, 북한은 망한다", 이런 식이었습니다.

당시 5만키로, 20만키로 원자력발전소가 거의 준공상태에 있는 것을 딱 동결했기 때문에 북쪽에서는 전력 손실이 얼마나 큽니까. 거기다가 50만톤 증유는 거저 주는 것이 아니고 전력손실을 보충하기 위해서 주게 되어 있었는데 이것도 부시가 끊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은 "너희들이 지키지 않은 것 우리가 지킬게 있느냐" 해 가지고 NTP 탈퇴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북쪽에서는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자, 우리 자주권을 보장하라, 경제건설에 대해서 발목 잡지 말아라, 내정간섭 하지 말아라, 우리를 시비하지 말아라, 그러면 당신네들이 우려하는 것들도 다 풀어주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부시는 IAEA를 통해서 북에 압박을 가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먹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IAEA가 또 유엔에 상정했을 때 그것도 안되게 되었습니다. 부시가 이라크 침략전쟁도 유엔의 결의 없이 한 것이기 때문에 전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유엔의 상임이사국들은 북한 핵의 유엔 상정을 아주 가소롭게 봅니다.

그런데 부시가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내가 말로 보장하면 됐지, 왜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려고 하느냐, 미국은 지금까지 다른 나라하고 불가침조약 체결한 적이 없다"고. 그 사람 말을 어떻게 믿어요?(웃음) 지금 부시가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때문에 골치 아픕니다. TV를 보니까 사담 후세인의 아들이 죽었다고 하는데 그것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릅니다. 전부 조작들을 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이렇게까지 나왔습니다. "부시의 싸인만 하면 어떠냐", 또 나중에는 "상원 의장, 하원 의장이 동시에 싸인해 가지고 조약이 아니라 문서로만 하면 어떠냐"고. 그런데 그럴 수 없습니다. 의회에서 토의해서 의회 비준을 내라. 왜? 클린턴도 "김정일 각하"라고 하면서 담보서한까지 보냈지만 그것도 실현하지 않았는데, 부시의 그 말을 어떻게 믿어요? 부시는 어떤 사람인가, 올브라이트는 "그 사람은 양극성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웃음)

그들이 전부 우파들 아닙니까. 부시가 자기 측근들을 서울에도 보내고 도쿄에도 보내고 그러지 않습니까. 저는 미국사람 이름 외우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그래서 동물하고 비교하면 괜찮겠다 해서 아미티지는 `암퇘지`로 생각하고(웃음), 월포위츠라는 사람은 `올빼미`로 생각합니다(웃음). 두 사람 생김새가 똑 같습니다(웃음). 이 사람들이 정보를 조작해서 국방비 올려라, 뭘 해라고 지금 야단입니다.

그래서 현안문제가 지금 이렇게 되었고 그럼 3자냐 5자냐 6자냐 그러는데, 미국은 5자입니다. 그러니까 북한하고 대화를 안 하려고 그래요. 그래서 북한의 핵문제는 관련국가들의 이해관계 문제이기 때문에 외교적 문제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해서 한국, 일본까지 포함하는 5자회담을 하자고 그럽니다. 또 푸틴한테 전화할 때는 "다자회담으로 합시다"하니까 푸틴도 좋다, 다자회담이면 우리도 끼어야되겠다 해서 6자회담 이야기가 또 나오는 것입니다.

한국도 5자회담, 그렇지 않으면 6자회담이라는 다자회담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기본적으로는 북미간회담을 우선으로 합니다. 그래가지고 한반도, 동북아의 안보질서는 6자회담으로 하자, 미국에 혼자 맡기지 말자고 하고 중국은 어디까지나 당사자회담입니다. 당사자회담 의제와 다자회담 의제가 다르기 때문에 선 당사자회담, 후 다자회담입니다. 중국은 3자회담입니다. 말이 3자회담이지 주선은 중국이 하고 실지 회담은 북미간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에서 주장하는 3자회담은 북미회담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미국도 다자회담, 5자회담을 하자고 하거든요.

핵문제는 군사문제이지요. 그럼 한국이 군사적인 독자발언을 할 수 있습니까? 없지요. 일본이 군사문제에 대해서 자기 독자적인 발언을 할 수 있습니까?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무엇때문에, 거기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5자회담을 하자고 합니까?(웃음)

들러리 서자는 것입니다. 들러리 서게 하여 북한에 압력이나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북정책은 `한, 미, 일 3자공조체제`로 하고 있는데, 어떻게 5자회담에서 미국과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후진타오가 "말도 안된다 너희들, 독립변수라야 어떻게 이야기가 되지 독립변수가 아닌데 어떻게 5자회담이냐"해서 당사자회담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북한은 "일본? 웃기지 말아라, 일본은 5자회담 자격이 없다. 한반도에 대해서 해를 끼친 나라가 어떻게 참가하느냐", 이것입니다. 작년에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선언한 것을 차근차근 했으면 그래도 몰라요. 그것도 아미티지인가 암퇘지인가 뭔가가 일본에 와서 압력을 가한 바람에 안된 것 아닙니까.

북쪽은 외교정책이 그렇습니다. "원칙적으로 하자".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추호의 양보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원칙을 어기게 되면 민족자주권이 한반도에서 완전히 상실된다는 입장입니다. 원칙을 지켜야 됩니다. 그들은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서 김일성 주석 사망후 그 비가 막 오고 냉해가 오고 식량사정이 나빠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그 어려운 `고난의 행군`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이 자주권 만큼은 지켜야 되겠다고 해서. 100달러 생기면 미사일 만들어라, 500달러 생기면 미사일 만들어라, 그래야 우리의 자주권을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3단계로켓 발사를 하지 않았으면 미국한테 벌써 다 밀렸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선군정치는 결코 병영국가로 가기 위한 선군정치가 아닙니다. 민족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서 선군정치를 합니다. 한국사람들도 이제는 북한의 군사력은 위협이 아니다, 북한의 선군정치는 바로 미국과 싸우기 위한 것이라고 다 생각하고 있습니다.(박수 오래 계속)

그간 우리 민족은 수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전쟁 아닌 상태에서 제주도라는 조그마한 섬에서, 인구가 20만 조금 더 되는 곳에서 현재 확인된 것만 해도 3만이 죽었습니다. 세계 전쟁사에서 전쟁이 아닌 상태에서 조그마한 섬에서, 인구 20만 조금 넘은데서 3만명이 죽었다는 것은 기록에 없습니다.

6.25 전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그게 이제 와서는 다 복권이 돼야 되고 해결되어야 합니다. 토벌대로 동원된 사람들도 상부 명령에 의해 움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도 사실은 피해자입니다. 저는 그래서 제주도에 갔을 때 "가해자도 피해자다, 분단이 아니었다면 그런 일이 있었겠는가, 이제는 화합해서 보상받자는 것이 아니라 명예회복 시켜라, 그 사람들 영혼을 안치시켜야 될 것 아니냐",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나라 현대사가 이러한 사건과 희생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제주도 사람들은 광주항쟁은 100명, 120명이 희생됐지만 제주도를 생각해 봐라, 3만명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역사입니다. 순천, 여수 반란사건은 제주도에 토벌 나가는 것을 반대한 것인데, 여수에서 희생자가 2,500명, 순천에서 3,000명, 그것만해도 5천명 아닙니까.

제가 추모시를 하나 기억나는 대로 소개해 드립니다. 경상북도에 문경이라는 데가 있습니다. 태백산, 소백산 연결되는 아주 산골인데, 1949년 12월 24일이니까 이제 50년이 넘었습니다. 문경에 섣달마을이라는 데가 있습니다. 거기가 빨치산들이 많이 활동하던 곳입니다. 그때 빨치산들은 단선반대 투쟁을 했는데, 그 부락이 유격대들과 연계가 있다고 해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었는데, 86명이 죽었습니다.

그 가운데 12살 이하 짜리가 24명인데, 그 가운데 다섯 명인가 여섯 명이 태어나서 이름을 호적에 올리지 않은 이름 없는 어린이들이었습니다. 그들도 죽었습니다. 그래서 작년 12월 24일에 추모비를 세웠는데, `이름 없는 아기 추모비`라고 합니다. 거기에 이름이 없으니까 `박 아무개 딸`, `김 아무개 아들`, 이런 식으로 새겨졌습니다. 그 옆에 유춘도라고 하는 할머니 시인이 지은 이런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산 넘어 넓은 세상
머물 곳 찾아
구천 떠도는 어메 아베 기다리며
섣달마을 산 모퉁이에
이름 없는 아가 혼들 울고 있네

아가들아 아가들아 이름 없는 아가들아
피 묻은 아베 조바위 쓰고
눈물 젖은 엄메 고무신 신고
그 옛날 이야기 말해주렴
지나가는 길손이 발 멈추거든
 
아가들아 아가들아 오늘 밤은
어메 품에 안겨 아베 등에 업혀
백토로 사라지기 전
그 옛날처럼
좋은 세상 꿈 꾸며 잠들어라
 
기가 막히는 시입니다.(한 동안 목이 메인다) 우리 나라 현대사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더 한심한 것은 그때 잘못했다, 잘못 쏜 것이다고 사단장을 해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지금도 호적등본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어요. 열두살쯤 되면 호적에 등록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사망 이유를 어떻게 적은지 아십니까? `공비`, `빨치산`, 열두살짜리가 빨치산입니까? 이게 현실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6.15공동선언 3년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많이 해소되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변혁입니까.

현재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부산, 대구 이런 데서는 많은 통일단체들이 있습니다. 각자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싸웁니다. 그러나 통일이라는 공동목표를 위해서는 연대를 합니다. 그래서 5만이 모이고 10만이 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통일은 분명히 민족문제입니다. 민족이 있고서 이념과 제도가 있는 것입니다. 이념과 제도 차원에서 통일을 하려고 하면 일방이 일방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양 체제, 이념이 생긴 것은 분단이라는 것의 결과로서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 가지고 따지지 말고, 이것은 과거지사 때문에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묻어 두고, 그 위의 차원의 민족의 공동체생활을 깨어서는 안되겠다, 하나의 생명유기체다, 이것을 살려야 되겠다, 거기에 우리가 복종해야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노동단체, 농민단체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역시 민족이 있고서야 이념이 있고 계급이 있는 것이지, 우리 나라 민족사를 보더라도 시대에 따라서 계급과 계층은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족이라는 생활공동체는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역사가 존속하는 한 우리 민족의 생활공동체는 영원히 존속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제대로 지키고 살리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계각층의 이해관계가 있더라도 그것에 충실하면서도 반드시 통일운동과 연계시킬 줄 알고 큰 일을 할 때는 서로가 연대해야 됩니다. 그래서 연대기구들이 서울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남한과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 6.25를 겪고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갈등들이 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간의 민족적 연대가 강화되면서 과거를 묻지 않게 되었습니다.

민족대단결의 원칙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주권을 우리가 지킨다는데 같이 뜻을 모아야 되고, 또 하나는 통일하자는데 뜻을 같이 해야 되고, 다른 하나는 과거를 묻지 말자, 그리고 일시적으로 제휴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단결하여 같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생각해 가지고 단결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시적 차원에서 자꾸 이러쿵 저러쿵 하면 우리가 큰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큰 것을 우리가 이 시기에 잡아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모든 것을 다 초월하여 민족통일, 자주권 확보, 하나의 민족, 하나의 생활공동체, 생명유기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바깥에 있건 서울에 있건, 또는 미국에 있건 다 주체가 되어서 단결해야 됩니다. 이렇게 된 것이 바로 조국통일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말씀드리면서 제 강연을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원고는 2003년 7월 24일 일본 도쿄에서 `강연회 실행위원회` 주최로 열린 통일뉴스 김남식 상임고문 초청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3주년기념 통일강연회`에서 김남식 선생이 한 강연을 녹취.정리한 것입니다.)
 

 

작성일:2020-10-13 10:09:30 112.160.1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