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동포가 남북 당국에 보내는 통일론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필자는 경제적 민주주의에 근거한 통일을 주장한다. 필자는 미국은 자신의 비민주적 자본주의를 한반도 전체에 주입하려는 우를 범하고 있고, 또 중국식 자본주의 도입도 실패작이라 확신한다. 그러면서 필자는 남북이 단일경제체제 하에서 통일할 것을 권유하면서 그 방법론 중의 하나로 상속제도를 포기할 것을 주창한다. 진정한 경제적 민주주의체제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 편집자 주
필자는 경제체제를 인간 간의 경제역학적 관계를 근원적으로 규정하는 제도라 이해하면서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와 우리와 대치하고 있는 북한 공산사회주의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오랫동안 인류의 이상적 경제체제에 대해 많은 사고와 고민을 해왔으며 그간 정리된 생각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통일문제와 결부시켜 재정리하게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과학이 첨단의 시대를 걷고 있는 것처럼 체제도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현대과학문명과 잘 조화된 민주적 첨단체제가 강구되어야 한다고 사료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다 민주적 체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 하에 남북한 학자들 및 관료들 간에 참민주주의적 경제체제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이를 기초로 단일체제 하의 완전통일을 위한 운동이 이뤄지기를 소망합니다. / 필자 주
▲ 2000년 6월 남과 북의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첫 상봉을 하고 회담을 통해 6.15공동선언에 합의했다.
기존 상속제도의 폐지와 그 대안
기존의 상속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개인의 재산은 그 개인이 죽음과 동시에(일정한 한계까지만 상속되거나) 모두 국가에 반환되어야 한다. 개인의 재산은 그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축적된 것이지 자식의 능력과는 무관하다. 따라서 그 재산은 전적으로 그 개인의 것으로 자식에게 무조건 무한정 상속될 수 없는 것이며 이는 국가에 반환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치적 권력이 세습될 수 없는 것처럼 경제적 재산권도 세습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재산권은 너무나 중대한 권력이다. 따라서 재산권의 세습은 범죄이다.
아무런 노력이나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부모로부터 재산을 상속받는 것은 성인으로서의 경제사회생활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공정하게 출발되었다고 볼 수 없다. 공정한 경제사회생활의 출발선은 오직 보이지 않는 한 개인의 경제적 능력 및 가치와 관계되어야 한다. 이제 상속은 자본주의제도중 가장 독소적인 것 중의 하나로 전락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장기적으로 지속시키는 주범이다. 개인간의 경제적 역학관계를 왜곡시키는 주범이다.
자식은 부모의 전유물이 아니고 부모, 국가, 사회의 공동소유이다. 어린 시절의 자식은 대체로 그 부모의 슬하에 있을 지라도 그 자식이 성인이 되면 이는 부모의 사유만이 아니고 국가사회의 일원으로서 의무와 권리를 갖게 된다. 그 의무와 권리는 그 개인의 인간적 가치에 따라 주어지고 행사되어야 하며 부모의 영향하에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부모재산의 독점적 과다상속은 이 사회를 그만큼 왜곡시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사회는 정직한 사회가 될 수 없다. 부모의 재산에 의존하려는 비굴한 자식을 만들지도 말고 그러한 자식이 되지도 말자. 그런 떳떳하지 못한 자식에게서 무슨 자랑스러운 비전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자식들이 득세하는 이 나라 이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이며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상속의 적정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물론 상속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공평하게 적정한계까지만 인정하는 방법도 있다. 다각적인 관점에서 볼 때 후자가 보다 인간적이고 합리적이다. 자식이 독자적 경제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어느 정도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도 부모 및 국가사회의 인간적 책무이다. 원시시대도 아닌데 처음부터 개인의 경제적 가치만으로 성인으로서의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어느 한 개인이 독립된 경제생활을 시작하고자 할 때는 일정한 기준에 의거 국가가 출발재산을 부여해 주어야 한다. 국가가 개인에게 독립된 경제생활의 첫 출발을 위해 “종자재산”으로 분배해 주는 재산은 이미 생을 마감하면서 다른 개인들이 국가에 반납한 재산을 모아 형성된 것이다. 국가가 개인에게 종자재산으로 부여해주는 재산은 일정한 기준에 의해 개인의 능력에 관계없이 공평하게 주는 것이기에 어느 개인이든 사회적으로 공평한 여건에서 경제사회생활을 출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기준이 공평할까?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안코자 한다. 전체국민의 개인재산(국유재산 제외)의 총합을 – 아이들의 교육과 노인들의생활지원비를 어느 정도 제하고 - 전체국민의 나이의 총합으로 나눠 나이 한 살 당 평균 단위 재산규모를 구한 다음 새로 경제생활을 출발코자 하는 개인의 나이에 이 평균단위재산액을 곱한 결과만큼을 종자재산으로 부여해 주는 것이다. 가령 국민의 나이 한 살당 평균단위재산액이 200만원이라면 25세 된 자식이 부모로부터 독립된 경제생활을 출발하면서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총 종자재산규모는 5,000만원이 될 것이다. 그 자식이 25세된 배우자와 결혼했을 때 이 부부가 갖는 종자재산 규모는 1억 원이 될 것이다.
평균단위재산액은 일정기간마다 측정해서 다음 측정 시까지 이를 종자재산액의 계산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예외를 둘 수도 있다. 가령 대대로 내려오는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재산이나 독특한 소규모 가족사업 같은 경우는 종자재산의 범위에서 그 전부 또는 일부를 현 소유자의 자손이 원하는 한 우선적으로 매입하여 영속시킬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국가사회를 위해서도 의미 있는 일이다. 또한 부모의 현 재산도 당사자들이 원하면 우선적으로 그 자식에게 매각형식을 통해 종자재산의 범위 내에서 취득할 수 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국민의 재산은 경제생활이 가능한 성인시대에는 사유재산의 형태로 있다가 그 소유주가 죽음과 동시에 국가에 반납되고 국가는 이를 경제생활을 하고 있는 국민에게 다시 매각하고 여기서 나온 재원을 종자재산, 후손들의 생육과 교육 그리고 노인들의 노후 생존지원을 위해 쓰게 되면 국민의 재산은 그야말로 원활한 순환을 하면서 소유주가 바뀌며 무제한적으로 어느 한 집안의 배타적 반영구적 소유가 되지 않을 것이다.
넓은 초원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초식동물의 세계를 보자. 어찌 그들에게 상속제도가 있는가? 부모에게서 재산을 상속받지 않고 자신을 위해 그저 열심히 일(먹이를 찾아 다니는 것)을 해 자신의 경제적 욕구를 충족시킨다. 각자의 영유권을 주장할 필요가 없이 어느 순간 자신이 서 있는 곳만이 영유지이고 그 곳에 있는 초목과 물 그리고 공기만이 자신의 것이다. 이것들은 부모가 상속해 준 것이 아니고 자신의 노력에 의해 그 곳에 와있기때문에 그의 것이다. 재산상속이라는 폐해 면에서는 이들 동물의 세계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신체제하의 한 인간의 전 생애의 이상적인 경제생활의 모습
이러한 체제하에서의 한 개인의 생육과 교육의 과정을 조명해 보자. 일단 한 생명체가 엄마의 뱃속에 생기게 되면 이는 국가가 무료로 보호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 부모도 이 생명체가 생기게 한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으므로 그 능력의 범위에서 그 아기의 전 성장과정을 통해 금전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 국가와 부모의 책임과 보호 하에 태어난 아기는 부모의 직접적인 책임하에 생육되지만 국가에 의한 지원과 감독이 필요하다. 그 아기가 커서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 그 비용은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지되 그 부모도 일정부분 세제상으로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또한 자식을 갖지 않은 부모라도 이들의 생육과 교육을 위한 세부담은 공동으로 져야 한다. 어느 자식이든 우리 모두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고등학교 수준까지는 개인이 원하는 한 무료교육혜택이 주어져야 하고 대학교육 시부터는 융통성 있는 제도를 통해 피교육자 개인의 부담을 어느정도 가미한 국가지원체제를 가정해 볼 수 있다. 이는 국가 지원능력 정도를 고려한 신축적 제도를 의미한다. 가령 피교육자 개인을 상대로 한 융자제도 또는 피교육자의 사회봉사활동 등을 통한 개인의 부담을 제도화해 성년이 된 피교육자의 경제적 의무감을 고취시키는 것이다.
이와 병행하여 각종 장학제도도 적극 활성화 되어야 할 것이다. 실력과 재능을 가진 우수한 자질의 학생들은 자신의 개인적 경제부담을 장학제도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하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장학금은 전인교육의 차원에서 수혜학생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주어져야 한다. 유학교육도 대학교육 지원제도의 연장선상에서 관리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장학재단은 대폭 확충되고 다양해져야 한다. 기업, 금융, 학술단체, 학교, 정부기관, 지방자치단체, 시회단체 등에 의한 수많은 조직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들은 영리적이든 비영리적이든 필요한 인력과 인재를 위해 각자의 장학사업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초 중 고 교육은 의무교육제도 차원에서 국가에 의해 무료로 전체 어린이를 상대로 그 혜택이 주어지겠지만 대학교육부터는 지금과 같은 선발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국가 전체의 인력수급계획에 의거 이뤄져야 하며 여기서 탈락한 어린이들은 사회진출이 원활해지도록 직업교육이 대학교육지원제도의 연장선상에서 마찬가지로 관리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로부터 종자재산을 부여받고 독립된 경제생활을 출발한 성인은 그 생활이 현행처럼 자본주의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나친 방임은 제도적으로 철저하게 견제되어야 한다.
안정된 노후생활을 위해서는 복지제도가 최대한 확충되어야 한다. 노인 각자의 희망에 따라 복지시설에 들어가든가 자식과 함께 살 수 있어야 한다. 부모를 모시다가 분가한 자식은 종자재산의 규모 면에서 어느 정도 가산액이 주어져야 한다. 또한 노부모의 공양비 명목으로 일정한 규모의 국가지원도 제공되어야 한다. 이때 부모의 자식에 대한 불법적인 재산의 이전은 봉쇄되어야 한다.
상속은 불허하되 부자간의 원활한 공동주거생활은 장려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노인의 경제생활을 위해 정년은 연장되고 본인의 건강이 허락하고 원하는 한 직업활동은 보장되어야 한다. 노인에 대한 의료혜택의 질은 차별화 되지 않아야 한다. 주거시설이나 다른 복지혜택은 차별화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노인의 복지혜택의 수준은 그 노인의 성인기의 경제생활의 결과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보화 사회와 신경제체제의 관리
상속이 금지 또는 제한되는 새로운 체제의 관리는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사회에서는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제2의 산업혁명이라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컴퓨터산업시대를 말한다. 우리 경제생활의 내용이 기계에 의해 신속하게 수록, 저장, 계산 및 통제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경제적 작은 거래도 켬퓨터에 의해 정확히 관찰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의 사유재산의 소유상태, 거래 및 상속 등의 움직임도 정확히 기록, 보관, 통제될 수 있다. 심지어는 전자화폐라는 수단에 의해 어린애들의 용돈의 씀씀이까지도 관찰될 수 있지 않겠는가?
과학의 발전은 새로운 체제의 발전을 가능케 하고 있다. 새로운 과학적 수단에 의해 우리의 이상사회의 관리가 가능한데 이를 모른 체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인류의 현대과학 수준은 새로운 체제를 부르고 있다.
세계에서 어느 나라 못지않게 교육수준이 높고 정보산업이 가장 확충된 우리나라로서 현대 인류문명의 수준에 걸 맞는 새로운 체제를 창안해 내는데는 우리가 최적의 위치에 있음에 틀림없다. 보다 유연해지고 자유분방해지고 각 개인의 삶의 질이 더욱 중시되어야 할 현대사회에서 우리 인간의 정신적 물질적 생활을 경직된 과거의 체제로 계속 다스리려는 것은 무리이다. 이런 이유에서 체제경쟁에서 보다 경직된 공산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 패했는지도 모른다.
신체제의 출현과 한반도의 역할
이제 우리의 분단 반세기를 슬퍼하고 탄식할 때만은 아니다. 연륜으로 보아 이를 이성적으로 고찰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볼 수 있는 성숙된 태도를 가질 때가 되었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보다 어른스러워지고 나이가 들면서 인생철학이 깊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분단을 바라보는 태도도 철이 들 때가 되었다. 마냥 슬퍼하고 서로를 탓하고 나만 잘났다고 고집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발전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지혜와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대치상태를 종식시키고 뭔가 통일을 위한 돌파구를 찾을 때가 되었다. 분단도 적대도 신물이 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각자 반성하고 서로를 용서하고 불행한 과거를 묻어 버리자.
1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화해의 무드가 조성되고 우리 모두 통일을 열망하고 있는 단일민족임을 새삼 확인했다. 적어도 감정적으로는 금방이라도 통일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이성적으로는 서로 따지는 게 많아 그렇지가 못하다. 한 핏줄을 갖고 타고난 배달민족으로 언어와 문자가 같고 같은 풍습을 가진 단일 민족인 우리가 감정적으로나마 통일을 못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6.25에 의한 동족상잔의 응어리가 아직도 크게 남아있을 지라도 이미 반세기 이상이 지난 지금에도 그러한 감정에 얽매여 정서적 통일을 못한다면 이는 우리 민족 본래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비록 현 이명박정권 하에서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이며 이제는 통일을 향한 남북화해의 대세를 절대로 거역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성적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큰 걸림돌은 체제문제이다. 남북 양측은 서로 다른 체제하에 살면서 서로 자기체제의 우위를 신봉하면서 자신의 체제를 기초로 한 통일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거나 아전인수식으로 은근히 흡수통일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체제 면에서 우군이라 할 수 있는 주변 강대국을 배후에 포진시켜 놓고 자신의 체제유지를 위한 안전핀 역할을 하게 하면서 단체전 power game 마저 일삼는 것이다. 이는 매우 근시안적인 우물 안 개구리식 소아적 아집이다. 이러한 통일방식으로는 불행한 과거를 되풀이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우리는 지극히 냉철한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시야를 확대해서 볼 때 공산사회주의는 거의 소멸되었거나 크게 변질되어 불과 몇 개 국에서만 잔존해 있는 상태이다. 오직 북한과 쿠바에서만 본래의 공산사회주의 체제유지에 열중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또한 자본주의는 본래의 자본주의의 성격을 보완한 수정자본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지 오래이다. 오로지 세계적 초강대국인 미국만이 본래 의미의 무한 경쟁의 자본주의가 가장 활발하게 숨쉬고 있는 국가이며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미국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할 수 있다. 미국과 긴밀한 국제관계를 맺고 있는 남한에 자본주의가 미국식으로 깊이 뿌리내려 있다는 것은 불가피했을지도 모른다. 더욱 불행한 것은 자본주의 수용여건, 제도 및 적용 등 여러 면에서 우리의 자본주의 체제가 미국의 것에 비해 훨씬 더 후진적이요 야만적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미국식 자본주의가 유지되고 있는 배경을 냉철히 분석해 보면 매우 어둡고 실망스러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소수민족, 신규이민자들 및 불법체류자들이 대부분의 빈곤층을 형성해 주면서 사회저변에서 자본주의의 기능을 유지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벌써 최소한 서구식 자본주의로라도 변질되었을 것이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미대륙의 개척시대에나 주효한 것이지 이제는 아니다. 또한 북한은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구 소련의 보호를 받고 일본과는 바다를 국경으로 하고 남한과는 극한적 대립의 상징인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있어서 공산사회주의 체제의 폐쇄적 유지가 그만큼 용이했을 수도 있다. 동구 공산제국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체제가 온존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무관하지않을 것이다.
현재 한반도는 구시대적 체제대립의 최후의 격전지가 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은근과 끈기 그리고 명석한 지혜가 이런 식으로 악용되고 발전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어쨌든 슬픈 일이다. 남들이 오랫동안 쓰다 이제 골동품이 되어 버린 구시대적 체제의 탈을 각기 다르게 쓰고 무엇 때문에 우리는이렇게 처절하게 대립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체제를 구실로 한 반목과 투쟁을 계속하면서 세계인의 광대로서 구시대적 냉소거리가 되어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체제를 빌미로 대부분의 경제적 약자들에게 경제적 고통을 감내하게 하고 이를 대물림하게 하는가? 무엇 때문에 빈 껍질만 남은 현체제의 유지를 위해 개인의 생육과정과 경제적 가치를 왜곡하고 경제적 자유를 억압하는가?
남북한이 애지중지하는 각자의 체제가 그토록 소중한 것이라면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깡그리 무시할 것이 아니라 이를 인정하여 상대방 체제의 장점을 찾아보고 자기 체제의 단점을 분석해 보자. 그것이 진실한 인간의 태도이리라. 우리가 감정적으로 서로를 그토록 사랑하고 통일을 갈망한다면상대방 체제를 부정만 할 것이 아니라 내 것처럼 긍정적인 면을 수용할 수 있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목숨 바쳐 유지해온 체제라면 뭔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지 않는가? 무조건 100% 배척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진정 정이 남아있어 재결합할 수 있는 부부(남북한)라면 서로를 용서하고 자녀(백성)들을 위해서라도 조금씩 양보하여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지금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초등학교 시절에 배운 탁아소 문제가 생각난다. 북한에서는 부모가 자식을 탁아소에 맡겨 놓고 부자지간에 서로 만나지도 못하고 산다는 것이다. 이 어찌 비인간적 사회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의 생각이 짧았지 않았을까? 이제 우리 남한 사회에서도 맞벌이 부부를 위한 탁아소 확충이 주요 사회문제가 되었고 정부의 주요 정책으로서 다루어지고 있으니 지난날의 우리의 생각이 부끄럽게 여겨진다. 북한에서는 벌써 그 때부터 전 국민이 일자리에 나서서 애들을 공동으로 보살펴 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했을 것이며 이것이 탁아소로서 제도화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예는 남한을 바라보는 북한의 입장에서도 무수히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인류세계의 체제 면에서 그간 양 체제가 경쟁간이라고 무조건 하나하나 상대 체제를 비판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좋은 점은 칭찬하고 수용하는 방법을 고심해 봐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체제반성이요 신체제를 위한 출발점이다. 인간의 존재와 인생 자체/본질에 대한 가장 양심적이고 냉철한 시각을 통해서 우리의 현 체제가 잘못되어 있음을 우리 모두 자각해야 한다.
마치 각기 다른 장점을 가진 두 가지 종자에서 각각의 장점을 겸비한 새로운 종자를 얻는 것처럼 우리는 남북한의 두 체제를 어떻게 적절히 교배하여 새로운 체제로 승화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문제는 가장 지리하게 체제경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 한민족에게 주어진 커다란 숙제임에 틀림없다. 세계 어느 누구도 풀지 못한 이 숙제를 우리가 풀어야 한다. 이를 해낼 수만 있다면 이는 정말 어느 시인이 얘기한 “동방의 등불” 아니 세계의 등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또한 우리 민족의 고진감래의 자랑스러운 수확이리라.
단일 경제체제하의 완전통일과 이를 위한 준비
통일을 너무 서둘러서도 안 된다. 서로 이질적인 체제하에서 체제경쟁의식을 가지고 통일을 해봐야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가 계속되는 한 연방제 해봐야 자기 주장만 난무하고 외세를 이용한 자기 식 통일에만 여념이 없을 것이다. 또 다시 한반도가 과거처럼 주변 열강의 각축장이 될 수도 있다.
우선 체제 면에서 양측이 동의할 수 있는 동질적인 체제를 설정한 후 완전통일을 위한 대장정에 돌입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동질적인 체제에 합의한 후 각자 그 체제를 향해 체제의 변신을 꾀해야 하며 쌍방에서 신체제가 어느 정도 확립된 후 자연스럽게 통일에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만 통일의 비용 및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는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흡수통일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상호 통일하는 것이다. 서로 네 집을 버리고 내 집에 들어와 살자고 하는 흡수통일이 아니라 새로 신축한 집에 동시에 입주하여 같이 살게 되는 것이다. 주변 열강이 남북한 어느 한 쪽을 이용하여 자기 식 체제를 한반도 전역에 주입시킬 필요도 없거니와 이를 위한 열강끼리의 대립이 한반도에서 전개되는 것은 더욱 경계되어야 한다.
새로운 체제하에 통일을 이루었을 때 우리는 어느 강대국가에나 체제 면에서 우위에 설 수 있으며 정신적으로도 그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체제를 빌미로 한 열강의 족쇄로부터 해방되어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체제 면에서 오히려 당당해질 수 있다. 우리의 신체제가 성공한다면 오히려 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들의 체제보다 일보 전진한 체제, 보다 진화된 체제, 보다 공평한 체제, 현대 과학문명과 보다 잘조화된 체제, 보다 민주화된 체제에 대해 그들이 왈가왈부할 명분이 없다.
이렇게 되었을 때를 상상해보자.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선 정보산업과 이를 이용한 새롭고도 공평한 경제체제, 자본주의의 강점과 사회주의의 이상을 접목시킨 이상적인 체제 하에서 우리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도 될 것이다. 우리의 체제가 성공하게 되면 세계 여러 선진국들마저 배우려 들 것이다. 바야흐로 한반도는 동방의 등불이 아니라 세계의 등불이 될 것이다.
통일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질적 민주주의의 향상을 통해 통일 후 우리 전 민족의 삶의 질이 보다 근본적으로 향상되었을 때 통일은 더욱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통일이 어느 특정 정권 내지 특정 정치인의 독점적 치적보다 남북한 국민대중의 생활환경이 통일 전보다 통일 후에 그만큼 향상되고 국가의 품격이 고양되어야 한다는 점에 우선권이 부여 되어야 한다. 체제에 대한 사전합의 없이 통일을 해봐야 위험스럽고 또 다른 남북갈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 현재의 자기체제를 위한 무의미한 자존심 대결을 버려야 하고 이미 흉물이 되어 버린 구 체제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단일 체제하의 완전 통일을 위해 우리는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새로운 체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제도화하기 위한 연구가 우선적으로 남북학자들 및 정부기구간에 공동으로 실시되고 합의되어야 한다.
남한은 자체의 IT산업의 확충에도 힘써야겠지만 북한의 IT산업의 확충 및 가속화를 지원해야 한다. 신체제의 정착을 위해서는 IT산업의 확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합의된 신체제는 남북 양측에서 각기 독자적으로 단계적으로 실천에 옮겨져야 한다. 동시에 남북간에 자연스럽게 경제적 교류가 이뤄지게 하여 남북간 경제적 수준의 차이를 좁혀야 한다. 신체제가 어느 정도 정착되고 경제적 수준의 격차가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 때 정치적 통합을 시도해야 한다. 신체제가 합의되면 신체제를 추구하는 정당들이 남북한 양측에 결성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통합을 근간으로 정치적 하드웨어가 구축되었을때 완전 통일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실제의 통일과정은 DJ(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의 예와 같이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이뤄지는 동시에 우리(남북한) 사회의 전반에 걸쳐 신 체제의 정신이 접목되게 제도적 변화가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국민에 대한 계몽과 교육이 필요하다.
현 체제하에서 남북한 어느 한 쪽에 의해서 통일이 주도되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설사 어느 한 편에 의해 통일이 주도된다 해도 경제사회가 보다 민주적인 체제를 가진 편에 의해 주도되어야 한다. 경제적 부의 규모의 우위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상적인 것은 양 체제가 발전적으로 수렴된 보다 민주화된 체제하에서 공동노력으로 통일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러한 체제는 한반도통일 이전에 우리 인류의 보다 보편적 민주주의 체제로서도 가치가 있다. 우리 인간은 경제의 주체로서 군림하는 만큼 경제의 객체로서도 그만큼 철저하게 통제 받아야 한다. 그것이 보다 양심적 민주적 경제철학정신이다.
우리 인류의 경제체제는 한반도를 시발점으로 반드시 보다 민주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의 행복한 삶이 보다 공평하게 추구되고 보장되는 공명정대한 인류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참다운 민주주의사회이다. 그러한 참민주주의 사회에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생명은 더욱 소중하게 보살핌을 받을 것이다.
진정한 경제적 민주주의체제가 전제되지 않고는 다른 어떤 부문에도 진정한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없다. 현 남북한의 경제체제하에서는 위선적 불완전한 민주주의만이 난무할 것이다.
부언
한 인간의 신체가 건강하려면 단위세포 하나하나가 건강해야되는 것처럼 한 국가가 부강하려면 그 구성원인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몸의 세포 하나가 암에 걸리면 온 몸이 결단날 수 있는 것처럼 어느 국민 한 사람이라도 불공정하게 불행해지는 것은 매우 가슴아픈 비민주적 국가의 일면이라 여겨집니다. 진정한 미래지향적 경제민주주의를 위한 섬세한 미시적 접근이 요구됩니다.
미국은 자신의 비민주적 자본주의를 한반도 전체에 주입하려는 과대망상을 버려야 합니다. 경제적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렇게 할만한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읍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천칭이라는 저울처럼 자유와 평등이 좌우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중국식 자본주의 도입은 실패작입니다. 자본주의의 단점을 근원적 제도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처방이 엿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중국식 체제변신을 답습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필자자 주창하는 체제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끔 자신의 재산의 일부 또는 전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뜻있는 양심적 가진 자들을 보곤 합니다.
상기의 체제를 남한에 당장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많고 오히려 북한에 적용하기가 더 용이하리라 판단됩니다. 대신 남한에는 우선 북구라파식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하는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사실 북구라파식 체제와 상기의 체제는 실질적으로 국민이 누리는 혜택 면에서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남북한이 두 개의 각기 다른 체제하에서 20-30년의 연방제적 통일의 실험기간을 거친후 그 결과를 평가해보고 국민투표를 통해 어느 하나 또는 혼합된 형태의 단일체제에 합의하면 단일체제 하의 완전통일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아 상기의 체제가 인류사회를 위해 궁극적으로 보다 완벽한 미래지향적 민주주의체제일 것임에 틀림없기에 한반도통일 후의 체제로서도 이 체제가 보다 바람직할 것이라 사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