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주권자전국회의 상임대표,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붉은 말은 어디로 달려야 하나

붉은 말의 해라고 하는 병오년이 밝아 왔습니다. 누구나 올해는 붉은 말이 힘차게 달려야 할 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디로 달려야 하는 걸까요? 가는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망하기 일쑤입니다. 가야 할 방향을 올바르게 알려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야 하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재작년 갑진년은 그야말로 ‘값진’ 년이었습니다. 정세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꾼 ‘위대한 반전’의 시기였습니다. 작년 을사년은 을사늑약 120주년이고, 굴욕적인 한일협정 6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런데 이 해에 우리는 친일 반민족 내란수괴 윤석열을 파면하고 감옥에 넣었습니다.

올해 병오년은 시작부터 윤석열의 사형 구형과 한덕수 23년형 선고로 내란 청산이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건희에 대한 1심에서 대부분 무죄가 선고되고, 1년 8월이라는 어이없는 형량이 결과로 나왔습니다. 이 선고는 김건희 개인은 물론이지만 내란세력, 구체적으로는 내란정당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뒤를 돌아보고 지금 달리고 있는 땅을 살펴보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시작부터 벌어지는 일들을 볼 때 무엇보다도 우리는 내란의 완전 종식, 내란 세력의 청산을 위해 달려야 합니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은 온갖 궤변과 추태를 남발하며 발악을 할 것이고, 그를 추종하는 자들은 악다구니를 쓰며 이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자들만이 아니라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내란옹호세력이 사회 곳곳에 암약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확실하게 청산하기 위해 달리는 해가 되어야 합니다.

좀더 멀리 과거를 돌아 볼 때 붉은 말이 힘차게 달려야 할 방향은 이미 80년 전부터 근본적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미완의 해방과 분단, 그로 인한 민중의 고통, 이것을 극복하고 해결하는 것이 우리가 달려가야 할 방향이었습니다. 친외세세력, 분단세력, 반민중세력은 독재로 국민을 억압하면서 기득권을 유지 강화하려고 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바로 이들이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자들이라는 것은 너무 자명합니다. 그것은 상황에 따른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일제강점기, 그 이전의 동학혁명시기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달려가야 할 방향일 것입니다. 동학혁명은 우리에게 반외세 반봉건 민중에 의한 직접민주주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무수한 독립투쟁, 특히 3.1대혁명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민주공화제임을 밝혀 주었습니다.

내란의 완전 종식과 내란 세력의 청산은 민주주의운동의 확고한 진전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오랜 질곡이었던 외세, 특히 미국에 대해 자주화를 확실하게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 문제가 대두되는 것은, 국제정세의 변화나 미국의 변화도 있지만, 이제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정면에서 거론할 시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나아가서 분단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붉은 말은 달려야 하고, 거기에 올라탄 신돌석씨도 힘껏 달릴 것입니다.

‘노동자 신돌석씨의 하루’가 어느덧 병오년을 맞이하면서 100화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온째 이야기라고 표현했습니다.’ ‘온’은 100의 순우리말입니다. 통일뉴스와 신돌석씨를 애독하시는 여러분! 2026년 병오년에는 모두 건강하시고, 댁내 평안하시고, 붉은 말을 타고 힘차게 달려 봅시다. 민주주의가 확고하게 정착되는 세상, 대미 자주화가 이루어지는 세상, 통일의 그날을 향해 달려봅시다!!!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혹시 페미니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기자가 마지막이라고 하면서 질문을 던졌다. 그것도 노동자의 생각을 듣고 싶은 거냐고 되물었다. 꼭 그런 건 아니고 기성세대로서 또 노동운동을 하는 분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알고 싶은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우경화가 특히 남자에게 심해서 이대남이라는 말까지 나왔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네요. 세대 갈등 문제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기자의 부연 설명이었다.

얼마 전에 한 후배와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 젊은이의 우경화는 페미니즘을 둘러싼 대립이 가장 핵심적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었다. 젊은 남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민주당 정권을 자신들에게서 무엇을 빼앗아가는 정권으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을 너무 일반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그것은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것 아닐까?

힘찬이가 중학교 다닐 때 일이었다. 1990년대 말쯤 되었을 것 같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씩씩거리고 왔다. 말을 안 해서 그냥 모른 척했는데 엄마가 들어보니 선생들이 남자와 여자를 심하게 차별한다는 것이었다. 여자한테는 아무리 잘못 해도 웃으면서 그러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남학생이 잘못하는 날에는 마구 야단을 치고 심지어 몽둥이를 들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남자로 태어난 것이 무슨 잘못이냐면서 투덜댔다고 한다.

신돌석씨 세대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만 남학생들이 전혀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남자가 받는 혜택이 여자보다 눈에 띄게 많았기 때문이다. 집에서부터 그랬다. 신돌석씨 집이야 그런 남녀 차별이 있을 게 없어서 별로 모르고 살았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 다른 집에서는 심했다고 한다. 당장 장가를 가고 나서 느꼈다. 신혼 초에 처가인 가평에 갔는데 남자는 그냥 앉아서 놀고먹는 것이 일이었다. 이불도 안 갰고 심지어 반찬 그릇 뚜껑도 못 열게 했다.

가사노동은 물론이고 상급 학교 진학 등 보통 차별이 심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남자가 참아야 한다든지 남자니까 잘해야 한다는 것이 별로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세대가 바뀌면서 집안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체로 형제는 하나 내지 둘이었다. 여자들의 진학률도 놀랄 정도로 바뀌었다. 그런 가운데 여성들의 지위 향상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제도적인 차별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있고, 그것 역시 사실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전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달라진 것을 아니라고 하면 그건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여자들을 위한 여러 가지 제도적 혜택도 생겼다. 남자는 상대적 박탈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시험을 보면 남자들이 뒤처지는 경우도 많이 나왔다. 이러다 보니 젊은 남자들은 그런 정책을 펴는 민주당 정권이 싫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묘하게 부추기는 이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국힘당 대표였던 상대적으로 젊은 정치인이 그것을 이용했다.

신돌석씨는 젠더 문제에 대해 진보적인 관점을 견지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신돌석씨는 아버지가 경상도이지만, 그 지역의 가부장제 정서는 별로 이어받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런 모습을 별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고, 다른 친척들과 크게 교류 없이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가는 이북인데 상대적으로 가부장제가 덜하고 그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그것 때문에 여성 조합원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젠더 문제도 노동문제로 생각한 것이 신돌석씨의 관점이었다. 사실 그 생각도 신돌석씨의 삶에서는 커다란 진전이었다.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한 준비모임을 시작하면서 여자들도 집단적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남자들이 주로 있는 공장이었기 때문에 여자들을 만날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도장반, 조립반 등에는 여자가 많았지만 신돌석씨가 있는 프레스반에는 프레스로 찍어 나온 물건들에 대한 뒤처리를 하는 아줌마 한 명만 있었다.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그러다가 노동조합 준비모임을 하니까 여자들이 더 많았다. 조립반 등에서 많이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같이 모여서 회의를 하다 헤어질 때 보면 음식이나 차 등을 먹었던 그릇을 항상 여자들이 치웠다. 그러다 어쩌다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여자가 있었고, 그러면 남자들이 농담 식으로 그 여자에게 면박을 주었다. 신돌석씨는 처음에는 왜 그런 문제제기를 하는지 그다지 심각하게 느끼지 않았는데 좀더 진행되다 보니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 뒤 해고가 되고 ‘함께 하는 집’에서 같이 밥을 해 먹고 치우는 일이 많았다. 설거지 문제가 계속 제기되었다. 아무 말 없이 열심히 치우는 여자들이 있었다. 남자들은 그런 여자를 칭찬하고 조금이라도 문제제기를 하는 여자들에게는 갖가지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예쁘니까 용서가 된다’라든가 ‘못 생긴 것들이 말이 많더라’ ‘그래 가지고 누구한테 시집 가겠냐’ 식으로 지금은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말들도 함부로 하곤 하였다.

신돌석씨의 아내도 그때 함께 생활하는 일이 많았다. 그이는 별말 없이 일을 순순히 하는 편이었지만, 그런 말들에 대해서는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것 때문에 남자들과 싸우는 일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신돌석씨한테 퍼부어댔다. 신돌석씨는 남자들의 사고와 태도가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노동의 분배가 불평등한 것이 바로 남녀 차별의 근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뒤 아내와 결혼하고 나서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다.

그런데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면서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성은 남성의 노동 착취만이 아니라 항상적으로 추행과 폭력에 위협당하면서 산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마치 최근에 있었던 일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생각해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일은 지속되어 왔다. 아니 어쩌면 인류 사회에 계급이 생긴 이후 지속되었을 것이다. 도시가 형성되고 익명의 사람들이 만나게 되면서 더욱 심해졌다.

언젠가 모든 여자는 성폭력 혹은 적어도 성추행의 피해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반대로 이야기해 보면 모든 남자는 성폭력 혹은 성추행의 가해자라는 말이 된다. 이 말을 들을 때 신돌석씨는 멈칫해졌다. 누이동생 선옥이가 성폭력을 당할 뻔했던 일이 있었다. 그리고 소모임에서 자신이 당한 성폭력을 돌려서 이야기한 어린 여성 노동자도 있었다. 그런데 성폭력을 한 적은 없지만 성추행을 한 적이 없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까?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젠더 문제를 그렇게 이해해 가다가 몇 년 전부터는 성소수자 문제도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지난 내란 사태 때 집회에서 상당히 많은 성소수자들을 만나고, 외국 사례 등을 접하게 되면서 이 문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코 진보적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렇듯 젠더 문제가 지평이 넓어지고 점점 더 심화되어 가는 가운데 그에 대한 반동도 극심해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그 점에 있어서 결코 진보적인 사회라고 볼 수 없다.

기자들은 신돌석씨에게 갑자기 나이를 물었다. 상대방 나이를 묻는 것은 실례 아니냐고 농담으로 말하자, 1977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렇단다. 맞다고 하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58년 개띠라고 했다. 그랬더니 기자는 자기 어머니가 1977년 생이란다. 일찍 결혼하고 애를 낳기는 했지만 선생님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 어머니가 태어났으니 선생님과 제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실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도 들을 수 없는 젠더 문제를 이야기하시니 놀랍다고 하였다. 신돌석씨는 약간 기분이 좋아지면서 들뜬 상태로 말을 하였다. 언제든지 자신이 보수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성찰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가져야 진정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하였다. 신돌석씨가 평소 생각하는 바이다. 항상 과거와 비교하면서 자신을 성찰해 보아야 한다. 사회도 나 자신도 얼마나 많이 변해 왔는가? 앞으로도 얼마나 많이 변해 가야 할 것인가?

기자는 마지막으로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물었다. 신돌석씨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세대 차이는 어느 시대에나 있는 것이고, 그것이 차별이나 분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통합과 연대의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러려면 다른 세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신돌석씨 세대는 앞선 세대를 그저 무지몽매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그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대를 건너와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물려주었는지 알아야 한다.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마찬가지이다. 그 세대도 끼인 세대라고 흔히 말하는 신돌석씨 세대를 이해해야 한다. 신돌석씨 세대는 지금 노인이 노인을 모셔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 아직도 자식들을 돌보아야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사회의 부를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세대라고 말들 하지만 사람 따라 계층 따라 차이가 있고, 그 부가 누리기 위한 부가 되지 못하고 있다. 항상 의무에 시달리면서 살아야 하는 세대이다.

그렇지만 신돌석씨 세대가 지금의 젊은 세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가르치려고만 해서도 안 된다. 왜 풍요로운 듯 보이는 지금 사회가 예전과 달리 오히려 살기 어려운 점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 자신들이 살아왔을 때처럼 허리띠 졸라매지 못한다고 나무라서는 안 된다. 젊은 세대의 장점을 최대한 인정하고, 어려움을 이해하면서 함께 이 사회를 건강하게 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생각해 달라. 채상병 사망 사건 때 정직하게 수사를 하려고 하다가 고난을 당한 박정훈 대령 사건을 두고 해병대 출신 원로들이 기자회견을 했던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한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박정훈 대령 같은 사람은 앞으로도 또 나올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 수천 수만의 사람이 앞날이 보장되지도 않는 고난의 길을 오직 민주주의와 진리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던 나라이다.

신돌석씨는 잠시 흥분 상태를 진정해 가느라 커피를 들이켰다. 쿠팡에서 과로사한 사람을 본인 탓으로 만들려고 최고경영자가 직접 지시를 내리면서 조작을 하였다. 그러나 피해자의 어머니가 돈보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몇 년을 싸웠다. 우리 사회에서는 눈앞의 이익을 버리고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앞에서 말한 해병대 출신 교수의 말처럼 결코 꺾이지 않는, 진실을 향한 정열이 살아 숨 쉬는 나라이다.

그것이 지금 기성세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화운동 기간에 축적되고 분출되었음을 젊은 세대는 이해하고 기쁘게 이어받아야 한다. 물론 그 중 변절한 이들도 있고, 위선적인 행태를 보여주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 세대 전체에 녹아 있고, 면면히 이어져 오는 우리의 전통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것만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그것을 제대로 이어받는다면, 신돌석씨로서는 여한이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두 기자는 심각하게 들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커피점을 나오면서 신돌석씨는 기자에게 농담식으로 잘못하면 손녀가 될 수도 있는 사이라고 하면서 악수를 청했다. 기자도 함께 웃으며 손을 잡았다. 조카 같은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이제 손녀가 될 수도 있는 나이 차이의 사람과 인터뷰를 하다니 정말 세월이 많이 흐르고 늙기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이 먼저 가고 신돌석씨는 천천히 시민단체가 있는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재작년 계엄이 일어나기 몇 달 전이었다. 지역의 원로들이 모인 자리에 갔었다. 그 분들은 윤석열의 횡포가 점점 심각해지는데 투쟁은 불붙지 않아서 걱정이라고들 했다. 그러다가 어떤 분이 대학생들은 뭐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였다. 하루라도 빨리 대학에 가서 학생들이 투쟁에 나서도록 독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젊은 5-60대 사람들은 잠자코 듣기만 했다. 평소에도 왜 젊은 사람들이 없냐는 질책을 들어왔었다.

젊은 사람들이 운동에 나서지 않으니 젊은 사람을 대상으로 조직을 해야 한다는 말에 청년 단체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술자리를 만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 자리가 파한 뒤 신돌석씨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내린 결론은 청년의 조직은 청년이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필요하다면 돈도 장소도 지원해 줄 수 있지만, 중장년 혹은 노년들이 청년을 조직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그런 일에 나서면 아마 청년들은 ‘너나 잘하세요’ 라고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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