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그 당시에 유족들 만났었어요 제가. 차옥정 씨도 만났거든요. 만났고… 아휴 뭐, 저도 가슴이 아프고. (가족들이랑) 서로가 다 울었거든요. 울고…." KAL858기 사건의 폭파범으로 알려진 김현희 씨가 어느 인터넷언론 대표와 만나서 한 이야기다(2009년 2월 공개). 1997년 말 결혼하기 직전, 실종자 가족들에게 인세를 전해주는 자리였다. 그러나 차옥정 현 가족회 회장에 따르면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아울러 김현희 씨를 만났던 가족들은 이를 포함해 당시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차옥정 씨는 그때 없었어요… 너 맘대로 한 게 아니고 이렇게 해서 한 거니까 니도 부모가 있으니까… 양심껏 말하라 그랬어요… 김현희야 뭐 수그리고 가만히 있지 뭐(논문면접, 2009년 8월)."

오래 전 일이라 김 씨가 착각을 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이유가 있어 달리 말을 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안기부 수사과정에서도 그랬지만, 김현희 씨의 말을 받아들일 때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물론 설명이 부분적으로 어긋난다고 해서 김 씨의 진술 전체가 거짓이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영국, '갑작스러운 김현희 고백' 의문

▲ 영국 외무성이 공개정보청구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공개한 KAL858기 사건 관련 비밀문서 일부. 여전히 일부 내용은 검게 지워져 있다.
[사진제공 - 박강성주]
영국 정부가 공개한 사건 관련 비밀문서에서도 이러한 조심스러움이 군데군데 느껴진다. 영국은 필자가 개인적으로 제기했던 정보공개청구를 2010년에 거부한 바 있다. 그런데 뜻밖에도 같은 해 12월 말 이의신청을 받아들인다는 결정을 내렸고, 2011년 2월 15일자 편지를 통해 비밀문서를 공개한다고 알려왔다(기술적인 문제로 실제 문서 확인은 약간 늦게 이루어졌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모두 9건 65쪽 분량으로, 1987년 11월 29일-1988년 12월 31일 사이에 생산된 자료다. 참고로 영국 외무성은 3건의 문서가 현재 더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비록 시간이 지났지만 이 사건의 문서 공개는 영국의 외교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따라서 관련 부분은 삭제했다고 말했다(특히 한국, 헝가리, 오스트리아와 관련된 부분). 이에 주요문서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88년 1월 15일 안기부의 공식 수사결과가 발표된 직후 작성된 문서에는, 사건의 기본적인 내용은 분명해 보인다고(BASIC STORY SEEMS CLEAR ENOUGH) 하면서도 전체적인 진실과 관련해서는 신중한 입장이 담겨 있다. 당시 로렌스 미들턴 주한 영국대사는 수사결과가 전체적인 진실에 다가가기에는 많은 의문들을 남기고 있다며, 특히 김현희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ENOUGH QUESTIONS TO SUGGEST WE DO NOT HAVE THE WHOLE TRUTH, PARTICULARLY ABOUT HER SUDDEN CONFESSION).

그리고 당시 박수길 외무부 차관보가 각국 대사들에게 수사결과를 미리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김현희의 미래와 관련해 '1968년 청와대 습격사건'의 생존자(김신조)가 현재 성공적인 사업가로 살고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같은 날 작성된 다른 문서는, 당시 오재희 주영 한국대사가 영국 정부 관계자를 찾아가 한국의 수사결과를 설명하고 영국이 북한의 테러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영국 관계자는 북한의 '동기'에 관한 질문을 했는데, 이에 대해 한국대사는 동기를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고(very difficult) 대답한다. 이 관계자는 공식 수사결과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도 한국이 요청한 내용의 성명발표에 서두르지는 않아야 한다고 적고 있다.

1월 18일자 문서에 따르면, 주한 영국대사관은 미국대사관에 미국이 김현희에 대한 독자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문의했다. 영국대사관은 미국이 일정 정도의 증거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모두가 정황적인 증거라고 판단했다(THEY WERE ALL OF A CIRCUMSTANTIAL NATURE). 한편 미들턴 대사는 이 사건을 1983년 KAL007기 사건보다는 버마 랑군 사건과 비교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기록했다.

한국의 영국 정부에 대한 압박

한국은 사건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청했는데, 1월 19일자 문서는 이에 대한 영국 정부의 고민을 담고 있다. 곧, 한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KAL858기 사건을 북의 테러로 규정하고 비난해달라고 요청해왔는데 여기에 어떻게 답하느냐의 문제였다. 문서에 따르면 담당 책임자는, 영국은 국가 주도의 테러를 비난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유럽 국가들이 공동 작성해 발표할 성명을 지지하며, 하지만 안보리에서의 행동 관련해서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We should be more cautious) 건의했다.

▲ 한국 안기부가 KAL858기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한 당일인 1988년 1월 15일자 영국 외무성 비밀문서. [사진제공 - 박강성주]
참고로 실제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영국은 "한국에 의해 진행된 수사결과에 따르면 북한의 개입이 분명해 보인다"는 수준의 발언을 했다(<KAL858, 진실에 대한 예의: 김현희 사건과 '분단권력'>, 149쪽). 1월 15일에 작성된 또 다른 문서에서, 영국 외무성은 한국대사관이 성명 발표와 관련해 영국을 당일 오후 계속 압박해왔다고(The Korean Embassy have been pressing us throughout the afternoon) 시사한다. 관계자는 한국대사관에 "아직 증거를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할 것으로 적고 있다.

2월 1일자 문서에 따르면, 한국은 오재희 대사 이름으로 당시 제프리 휴 영국 외무장관에게 '북의 테러에 대한 강력한 비난'에 감사한다며(사건에 대한 영국과 한국의 온도차이를 느낄 수 있다) 수사결과를 정리한 문서를 보내왔다. 결론 부분에서 한국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강력한 안보태세(a strong security posture against the Communists)를 바탕으로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해달라며 계속되는 지지를 요청하고 있다. KAL기 사건이 냉전시대 정치를 공고히 하는 의미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3월 1일자 문서는 헝가리와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다. 부다페스트에 있는 영국 대사관은, 비행기를 폭파한 두 명의 테러리스트들이 헝가리에 왔었으며 이들이 북한대사관의 2인자(이름 Cso Bong Zun)와 3등 서기관을 만나 폭발물을 전달받았다는, 다른 나라 정보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2월 15일자 문서는, 한국이 국제민간항공기구(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 ICAO) 각국 대표들에게 보냈던 자료를 담고 있다. 김세택 당시 외무부 국제기구조약국장의 이름으로 보내진 자료는 헤이그/몬트리올 협약 양식에 따라 작성된 사건 보고서다. 이에 따르면, 당시 858기는 C-4 콤포지션 350g 및 P.L.X. 700cc로 폭파되었다(이미 알려진대로, 이 양은 안기부가 자체적으로 추정한 것이었다). 한편 기체는 미화 9백 7십만 달러에 구입했었고, 총 2톤 가량의 수화물이 분실된 것으로 되어 있다.

김현희, 재조사 거부와 국정원 특강

영국 정부의 비밀문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리고 다른 나라 자료와 구별되는 점이 있는데, 바로 영국이 사건의 당사국(남한, 북한) 내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국가(일본, 바레인, 미국)가 아니라는 점이다. 동시에 영국은 남한의 우방국으로 간주된다는 점에서 몇몇 군데에서 발견되는 조심스러운 태도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특히 김현희의 고백과 북의 동기에 대한 부분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누구나 한 번쯤 의문스러워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이는 이미 공개된 미국의 CIA/국무부 비밀 문서에서도 일정 정도 확인된다). 물론 전체적인 맥락에서 영국은 한국의 수사결과를 지지했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하겠다.

"KAL기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와 증인으로서 사건을 증언해 드려야죠." 최근 김현희 씨가 <월간 머니>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렇다면, 몇 년 전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진행됐을 때는 왜 모두 거부했었는지 아쉬워진다(국정원발전위원회 2005-2007년, 진실화해위원회 2007-2009년). 그러는 한편 김 씨는 2010년 국정원 신입직원 교육 때 특강을 맡았다고 한다. 영국 정부라면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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