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패권을 놓고 흉노족과의 전쟁에서 참패하여 오환산 등 산악지대에 거주하였던 선비족을 단결시켜 2세기에 한나라와 연합하여 흉노족을 초원에서 몰아내고 초원의 주인이 되었던 선비족장 단석괴가 죽은 이후 분열된 이후 선비족에서 갈라져 나온 모용선비족은 4세기 이후 지나국의 5호십육국 시대(五胡十六國)에 지나 동북부지역에 전연(前燕), 후연(後燕), 서연(西燕), 남연(南燕) 등의 나라를 세웠다.3국 시대에 하북성(河北省)의 우북평(右北平) 서쪽 상곡(上谷)에 이르는 지역에 모용(慕容)이라는 이름의 대인(大人 혹은 大酋長)이 인솔한 선비계 부족이 출현하였는데, 선비족은 대인의 이름을 부족명으로 하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에 2세기 경은 모용부가 활약한 시기라 추측된다.
3세기에는 주거 영역을 대릉하(大凌河) 하류 지방으로 옮겨 유목 생활 외에 농경도 하였다. 추장 모용부의 모용외(慕容廆)는 스스로 선비대도독(鮮卑大都督)이라 일컫고, 영가의 난(永嘉之亂)을 피하여 투항해온 한인(漢人)을 임용하여 정무(政務)를 맡게 하였고, 지나풍의 예제(禮制)를 채용하였으며, 동진(東晉)으로부터 평주목(平州牧), 요동군공(遼東郡公) 등의 관작을 받았다.이어 그의 아들 모용황(慕容皝)은 스스로를 연왕(燕王)이라 칭하고, 수도를 용성(龍城)으로 정한 뒤 전연(前燕=춘추전국시절의 연나라 이름을 따서 정한 국호)을 개국하였다. 모용황은 이후에도 세력을 확장하여 황제로 즉위하였고, 고구려를 선제공격하여 역공을 대비하였고,지나의 동북부지역를 지배하였다. 전연이 멸망한 뒤 후연(後燕)과 남연(南燕)이 개국되었다. 5세기 초 고구려를 상국으로 삼고 있던 북위(北魏)의 화북(華北) 통일로 전연은 고구려와 북위의 동맹으로 북위에 병합되었다.
모용부의 일부는 티베트계의 현지인들을 제압하고 토욕혼을 건설했으며,토욕혼은 지나국의 북조(北朝)와 남조(南朝)와도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나 635년 당(唐)나라에 항복하여 예속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663년 티베트계의 토번(吐蕃)에게 멸망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와의 전쟁과정에서 이탈한 소수의 선비기마군대가 동해안을 타고 경주지역으로 들어와 조선.유민의 나라 사로국을 무너뜨리고 개국한 신라는 당나라의 제후국이 되겠다는 사대외교노선에 공을 들여 마침내 당나라와의 군사동맹을 맺고,단군조선과 부여의 황통을 계승한 고리(코리아)족 고구려.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백제의 해외 영토를 모두 당나라에게 넘기고 한반도 남부지역에 머둔 패권의식에 함몰되었으니 소아적이고 우물안개구리식의 정치의식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천안함침몰사고원인을 추정해 보자면 미 잠수정이 심청이 빠져 죽었다는 용틀임바위 밑 해저를 통하여 북한NLL선으로 접근하자, 이에 북한이 미 잠수함을 폭격했고 폭격을 당한 잠수함이 빠져 나오면서 근처에서 훈련에 참가중이던 20년이 넘어 평소에 물이 샐 정도로 피로한 천안함 밑을 받아 버렸고,물이 펑펑 샌 천안함이 백령도쪽으로 황급히 항해하던 중에 함수로 인하여 무게중심을 이기지 못하고 두 동강이 나서 침몰해 버린 사고가 아닐까 추정됩니다. 마치 상대차를 들이 박은 교통사고처럼 말이죠.
미국이 천안함침몰사고에 대해서 굳이 함구하려는 이유는 방귀뀐 넘이 성낸다고 자신들과는 무관한 양 시치미를 떼며 글로벌 호구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아키히로를 앞세워 북한공격설로 몰아서 결국 대북제재를 가하려는 수작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북한이 정말 하지 않았는데(사고정황상 외부공격설은 살득력이 부족), 미국과 아키히로정부가 우기면서 압박을 가한다면 북한은 그에 상응한 더한 공격을 가하여 더 큰 피해와 인명손실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 것입니다
[키-졸리브 한미군사훈련 중에 발생한 사고로 추정]키-졸리브(의문이나 문제를 해소하다.해결하다)의 의미가 무엇일까요?미국은 무슨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것일까요?그것은 미국과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북한의 군사대응능력을 테스트해 본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남한이 한국전쟁후 미국 마음대로 설정해 버린 NLL선을 고수한다고 선언하자 북한에서도 NLL를 자의적으로 정하겠다면서 접근하면 자위권 수호차원에서 단호한 군사적 조치를 취한다고 선언을 했기 때문입니다.핵을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치열한 기싸움이라 할 것입니다. 지나국을 겨냥한 미국의 동북아 핵우위 확보와 이에 맞서 미국의 한반도비핵화을 내세우며 미국공격에 대비하여 자위권 수단으로 핵을 보유하려는 북한의 팽팽한 보이지 않는 전쟁입니다.
미국과 일본과 지나국과 러시아의 국익을 대변하는 사대매국매족세력이 권력을 잡고 국정을 운영하는 한 국민은 계속해서 죽을 수 밖에 없고 탄압받을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약속을 지키는 것이 기본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서는 그런 기본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오히려 바보취급당합니다.어른들의 타락입니다. 정치판의 분열과 혼란입니다. 기본과 상식이 허물어진 나라와 사회인 것입니다.
하물며 나라와 나라의 합의, 특히 동족간의 합의를 위반한 자라면 갈등과 대립의 원흉입니다. 북한을 거지취급해 버리는 비핵개방3000만 고집하면서 남북합의를 위반해 버린 댓가가 북한의 금강산관광동결이며, 엎친격 덮친격으로 천안함침몰사고로 46명의 젊은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언제든지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서해바다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자면서 남북한이 합의한 10.4남북공동선언5항만 이행했어도 '키-졸리브(뜻:문제나 의문을 해결하다)' 라는 이름의 한.미훈련중에 발생한 천안함침몰사고는 없었을 것이며, 군작전지휘권도 미국이 가지고 있어서 전쟁나면 미국의 작전지휘에 따라야만 하는 용병들에 불과한 젊은 우리의 아들들과 남편들이 죽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3세기에는 주거 영역을 대릉하(大凌河) 하류 지방으로 옮겨 유목 생활 외에 농경도 하였다. 추장 모용부의 모용외(慕容廆)는 스스로 선비대도독(鮮卑大都督)이라 일컫고, 영가의 난(永嘉之亂)을 피하여 투항해온 한인(漢人)을 임용하여 정무(政務)를 맡게 하였고, 지나풍의 예제(禮制)를 채용하였으며, 동진(東晉)으로부터 평주목(平州牧), 요동군공(遼東郡公) 등의 관작을 받았다.이어 그의 아들 모용황(慕容皝)은 스스로를 연왕(燕王)이라 칭하고, 수도를 용성(龍城)으로 정한 뒤 전연(前燕=춘추전국시절의 연나라 이름을 따서 정한 국호)을 개국하였다. 모용황은 이후에도 세력을 확장하여 황제로 즉위하였고, 고구려를 선제공격하여 역공을 대비하였고,지나의 동북부지역를 지배하였다. 전연이 멸망한 뒤 후연(後燕)과 남연(南燕)이 개국되었다. 5세기 초 고구려를 상국으로 삼고 있던 북위(北魏)의 화북(華北) 통일로 전연은 고구려와 북위의 동맹으로 북위에 병합되었다.
모용부의 일부는 티베트계의 현지인들을 제압하고 토욕혼을 건설했으며,토욕혼은 지나국의 북조(北朝)와 남조(南朝)와도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나 635년 당(唐)나라에 항복하여 예속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663년 티베트계의 토번(吐蕃)에게 멸망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와의 전쟁과정에서 이탈한 소수의 선비기마군대가 동해안을 타고 경주지역으로 들어와 조선.유민의 나라 사로국을 무너뜨리고 개국한 신라는 당나라의 제후국이 되겠다는 사대외교노선에 공을 들여 마침내 당나라와의 군사동맹을 맺고,단군조선과 부여의 황통을 계승한 고리(코리아)족 고구려.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백제의 해외 영토를 모두 당나라에게 넘기고 한반도 남부지역에 머둔 패권의식에 함몰되었으니 소아적이고 우물안개구리식의 정치의식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