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영 (스웨덴 공립학교 수학중)

통일뉴스가 <열다섯 살 하영이가 본 스웨덴이야기>를 연재한다. 하영이는 지금 북유럽 스웨덴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하영이는 이 연재를 통해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리고 또 여러 민족 사람들과 겪는 삶과 문화를 ‘편하게’ 쓰고 싶어 한다. 독자들은 열다섯 살 난 발랄하고 깜직한 이 여학생이 세계화의 물결과 이국땅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고 지켜나가는가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연재는 매주 수요일에 실린다. (편집자 주)

스톡홀름 테마 두 번째 날

▲스톡홀름 시내를 활보하는 말을 탄 근위병들 .[사진-이하영]
스톡홀름 테마 두 번째 날 수업은 지난번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세 명에서 다섯 명 정도의 작은 그룹으로 나뉜 학생들이 직접 일정을 짜고, 동선을 정해서 목적지 네 곳을 방문하는 방식의 수업이었다. 이런 수업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법을 숙지하는 것과 스톡홀름의 지리를 익히는 것이 주목적이다.

스톡홀름 시내로 가는 것은 솔렌투나 역에서 만나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지만, 이다(Ida) 선생님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우리 그룹은 일단 학교로 와서 같이 출발하기로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지시한 방법은 우리가 첫 번째 버스를 놓치면서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다.

걸어서 통학하는 일바와 다른 두 남자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가야만 학교에 갈 수가 있다. 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했음에도 버스는 학교에 늦게 도착했고, 우리가 탔어야 할 버스가 떠나는 것을 발을 동동 구르며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 버스의 정차 간격은 20분이 넘었다. 스웨덴은 버스의 정차 시각이 정확하게 정해져있지만, 간격이 넓은 경우가 많아 짜 놓은 일정에서 한 버스만 놓쳐도 그 다음 탈 것들을 줄줄이 놓치게 된다. 우리가 바로 그 경우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자아이 두 명 중 한 명이 아프다며 오지 않았다. 그것이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었으나, 홀로 남은 남자아이가 나와 일바에게서 50미터 정도 떨어져 걷느라 우리는 버스를 두 번 갈아타는 동안 1시간 이상을 소비하고 말았다. 일바는 솔렌투나에서 만나서 오는 것이 훨씬 나았을 거라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교통 카드를 잃어버려 따로 버스표를 사야했던 나로서는 아까운 버스비까지 물어야 했으니 오죽 속이 쓰렸을까?(스웨덴 대중교통 요금은 상당히 비싸다. 여섯 번에서 일곱 번 정도 탈 수 있는 교통카드 가격이 27,000원 정도 한다) 학교수업에 필요한 것은 학교카드를 빌려서 갈 수 있지만, 학교까지 가는 버스요금은 내 돈으로 내야했다.

비실거리며 따라 오던 남자아이는, 스톡홀름에 도착하자마자 감기 때문에 목이 아프다는 이유를 대며 반대방향 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정의의 여신이 있는 법원

▲법원문에 새겨져 있는 얼굴 .[사진-이하영]
이런 저런 고난과 역경(?)을 거쳐 스톡홀름 Rådhuset(법원)에 도착했다. 우리는 바로 옆에 서 있는 커다란 건물을 보고 그곳이 법원이라 생각했었는데, 그 곳은 재판이 끝나면 구속될 사람들을 연행하는 경찰서라고 했다. 우리가 찾는 법원은 그 맞은편,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곳이었다.

한참을 헤맨 끝에 정문에 도착하니, 이미 다른 반의 몇 팀이 난간에 앉아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우리들은 기다리는 동안 문에 새겨져있는 괴상한 얼굴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며 낄낄거렸다.

아주 오래 전, 지금의 노벨 박물관 자리에 있었던 스웨덴의 법원에는 일하는 사람이 두 명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판결을 받은 사람들의 처벌은 바로 앞의 광장 Stortorget에서 이루어졌는데, 지금과는 달리 아주 엄했다고 한다. 바로 전 테마 수업 때 방문했던 감옥에서 본 사진 등으로 그 ‘처벌’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쉽게 상상 할 수 있었다.

▲법원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학생들 .[사진-이하영]
그런 이유 때문인지 설명을 한 선생님은 옛날의 백배가 넘는 숫자의 직원들이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법원에는 정의의 여신(Fru Justitia, Lady Justice)의 상징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로마 신화에 나온 정의의 여신은 한 손에는 저울을, 한 손에는 검을 들고 눈을 가린 여성으로 표현된다. 저울은 양 쪽의 의견을 모두 듣고 공정하게 판단하는 것을, 검은 심판을, 눈은 겉모습을 보지 않고 법에 따른 공정한 판결을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정의의 여신 동상은 스웨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의 법원에 세워져있다고 한다.

왕의 정원

▲왕의 정원 .[사진-이하영]
원래는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두 곳, 점심시간이 끝난 후에 두 곳을 방문했어야하는데 버스를 놓친 바람에 Stadshuset(스톡홀름 시청)은 갈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다음 날 모든 그룹이 준비하게 된 발표 주제는 시청으로 정해져 있었으니 일이 된통 꼬인 셈이었다.

거기다가 점심을 개인이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그냥 간 덕분에,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대충 산 음식으로 때웠으니 운수가 나쁜 날이라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내 사랑 MAX(스웨덴 토종 패스트푸드점으로 광우병 걱정이 절대 없는 스웨덴산 쇠고기만 사용하고 맛도 괜찮지만 스웨덴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느라 너무 짠 것이 흠이다)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도중, 말을 탄 근위병들이 군악대와 함께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그 짐승들은 폼이 나기는 하지만 남기고 가는 굉장한 말똥들을 보면 저걸 어쩌나 싶다). 스톡홀름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것을 보는 데 익숙해서 그냥 무심히 지나칠 줄 알았는데, 웬걸? 다들 카메라를 꺼내들고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나도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스웨덴 직원들의 느릿느릿한 손놀림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스웨덴의 패스트푸드(fast food)는 사실상 슬로우푸드(slow food)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 일정한 시간 이내에 음식이 나오지 않으면 돈을 받지 않겠다는 한국의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을 스웨덴 사람들이 본다면 아마 이런 세상도 있겠나 싶을 거다. 스웨덴인들의 기다림의 미학과 한국의 신속, 정확, 고객에 대한 봉사정신(속마음이 어떻든)이 절묘하게 섞이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야외 탁자에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으니 비둘기며 참새가 날아들었다. 일바가 심심풀이 삼아 내가 먹고 있던 감자를 쪼개 던져줬는데, 그 낌새를 챈 ‘온갖 잡새’들까지 몰려들어 난리가 아니었다. 스웨덴의 비둘기는 서울의 ‘닭둘기’와 달리 홰는 칠 수 있는 것 같았다. 스웨덴에도 비둘기가 굉장히 많아서, 야외 지하철 정거장이나 높은 건물 같은 곳에는 으레 새까만 비둘기 떼가 달라붙어있다. 옛날 학교의 바네사는 스웨덴에 온 뒤 비둘기 똥을 두 번이나 뒤집어썼다고 불평을 하곤 했지만, 다행히도 나는 그런 봉변을 당한 적이 한 번도 없다.

▲ 근위병 교대식 군악대.[사진-이하영]
점심을 먹은 곳은 다음에 방문해야 할 동상이 있는 곳과 인접한 Kungsträdgården(왕의 정원)이었는데, 원래는 이름 그대로 왕의 정원이었던 것을 공원처럼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이곳의 나무를 싹 베어내고 지하철 입구를 만들려던 스톡홀름시의 계획은 사람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나무 위에 기어 올라가서 계획이 철회될 때까지 내려오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일바는 그런 사람들과는 다른 이유였지만, 그 때 나무를 베어내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일본 문화라면 일단 눈을 반짝이고 보는 일바는 ‘Sakura(벚꽃)’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길이 좋았던 것뿐이었다. 하여간 일본 사람들이 자기 문화를 퍼트리는데 가장 먼저 쓴다는 벚꽃은 우리가 갔을 때는 이미 져버리고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일바에게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앙금을 하나하나 설명해줄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저렇게 일본이 좋아서 난리인 친구에게 정신적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아 당분간만 참기로 했다.

사실 스웨덴의 역사는 우리나라와는 판이하게 다르고, 왕실 역시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의 피가 흐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복잡하다. 현재 국왕 칼 16세의 성씨는 ‘Bernadotte’ 인데, 이것은 프랑스식 성씨이다. 나폴레옹이 프랑스와 기타 유럽 국가들의 황제로 군림하던 시절, 그 비위를 맞춰야 했던 스웨덴이 뽑은 국왕이 칼 14세 요한이고, 이 사람이 바로 프랑스의 원수(元首) Jean-Baptiste Jules Bernadotte인 것이다.

▲ 스톡홀름에는 곳곳에 이런 벽화를 그려 놓는다.[사진-이하영]
한 마디로 강대국의 눈치를 보느라 다른 나라 사람을 왕으로 뽑았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북유럽 3국(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은 몇 번이나 같은 왕이 통치하다가 분열하는 것이 반복되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나이를 불문하고 시집 왔던 수많은 왕비들의 이야기는 책으로 모아 나올 만큼 독특하다. 6세나 42세에 결혼한 왕비들의 이야기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덴마크의 Märta는 2세 때 약혼을 했다고 한다).

민족의 단합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에 비해서 스웨덴은 그런 쪽으로 다소 느슨한 것 같다. 일바가 늘 입에 달고 사는 ‘스웨덴은 지루해! 아시아 국가로 가고 싶어!’ 같은 말을 한국 사회에서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다. 좋게 말하자면 일찍 글로벌화가 된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국가와 민족에 대한 정체성이 없다는 것인데 어떤 평가를 내려야 옳은 것인지는 아직 정확히 판단할 수 없지만, 외국인의 비율이 높은 것을 그런 것과 연관해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스웨덴 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칼 12세

▲ 러시아 방향으로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는 칼 12세 동상.[사진-이하영]
Kungsträdgården에는 볼 것이 정말 많았다. 특히 분수대 근처에 몰려 있다가 내가 다가가자 한 번에 날아오르는 하얀 새들(갈매기 같은데 확실히는 모르겠다)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조그만 꼬마아이들이 하얀 새들에게 모이를 던져주는 모습 역시 한 폭의 그림처럼 보기가 좋았다.

전쟁광이었지만 전쟁에는 재주가 없는 불행한 왕이었던 칼 12세의 동상 앞에서 우리들은 멈춰 섰다. 칼 12세의 동상은 말하자면 Kungsträdgården의 명물인데, 동상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러시아 방향이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지만, 칼 12세는 러시아를 정복하지 못했고, 노르웨이에서 전쟁 중 사망했다. 국민들에게는 미움 받은 왕(전쟁을 좋아해서 허구한 날 전쟁을 치르고 다녔지만, 나가는 족족 지고 오고 배상금 물어주고 하니 국민들이 좋아할 리 만무했다)이었지만, 새들에게는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것이 재미있었다.

동상에 관한 설명을 들은 뒤에는 버스를 타고 Katarina Kyrkan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교회로 향하는 케이블카를 발견했을 때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빈곤한 학생인 우리들은 럭셔리한(?) 케이블카 대신 끝도 없이 이어진 계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본 스톡홀름 시내 .[사진-이하영]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니 스톡홀름 시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Mälaren의 강줄기와 세련된 빌딩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의 고풍스러운 건물들……. 나는 넋을 놓고 구경했지만 일바는 수풀 속에 기어들어가서는 땅굴을 찾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사실 일바는 스톡홀름에 대한 애정이 거의 전무하다. 자신의 아빠가 살고 있는 지역의 숲과 집, 호수와 고양이를 너무 사랑해서 이런 도시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도시를 제외한 곳에서는 살아 본 적도 없는 나는, 개미집을 파헤치고 햇볕을 쬐고 숲을 뛰어다니는 것이 뭐가 즐겁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일바는 여름방학 때 자신의 집으로 놀러오라며 나를 초대했다. 그러면 진짜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을 거라나? 사진을 보니 집이라기보다는 저택이나 커다란 별장에 가까운 것 같았다. 조랑말을 탈 수 있다는 일바의 말에 구미가 상당히 당겨서 방학 때 한 번 가 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스톡홀름의 숭례문?

계단을 한참이나 올라 왔으니 당연히 교회가 산 위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착각이었다. 위쪽에는 아기자기한 집들과 가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놀랍게도 그 곳에는 태권도 도장까지 있었다.
스톡홀름에 태권도를 가르치는 곳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지나가면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반가웠다.
교회는 다른 유명한 스웨덴 교회들처럼 건물 주변을 묘지가 둘러싸고 있었다.
스웨덴이나 미국은 왜 으스스하게 묘지 바로 옆에 집을 짓고 사는지 모르겠다.

▲ 교회 앞 전경.[사진-이하영]
교회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제 2 외국어로서의 스웨덴어를 가르치는 마르가레타(Margaretha) 선생님이었다. 날이 궂고 추워서인지 마르가레타는 마치 스키장에라도 온 것 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다.
우리도 추운 날씨 때문에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감라스탄에 있는 유명한 교회 Storkyrkan보다는 소박하지만 중앙의 샹들리에가 멋진 교회였다. 교회 안에는 우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가장 많이 거론된 것이 바로 화재로 교회가 무너진 이야기였다. 두 번이나 무너지고도 두 번 다 복구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바로 얼마 전 화재로 무너진 숭례문이 떠올랐다. 이 교회의 벽에는 몇 백 년이나 된 십자가가 있는데, 화재가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은 가장 먼저 그 십자가를 떼어서 나왔다고 한다. 완전히 타버린 숭례문에서 단 하나 건져낸 양녕대군의 현판처럼 말이다.

비록 Stadshuset은 가지 못했지만, 어쨌든 우리가 오늘 할 일은 모두 끝낸 셈이었다. 하지만 일바는 이대로 가기가 섭섭하다며 나를 이끌고 스톡홀름 중앙역으로 나갔다. 그 곳에서 우리들은 한참동안 옷이며 신발 따위를 구경했다. 사실 스웨덴에는 한국처럼 가게의 물건이 다양하지 못하고, 화려하지도 않아 생각보다 볼 것이 별로 없다. 그래도 일바가 좋아하니 아무래도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일바는 마지막으로 내가 다니는 교회 근처의 일본 가게(가끔은 일본 이야기가 지긋지긋하다)를 구경하자고 했지만, 하루 종일 걸어 다니느라 다리도 아픈 데다 음료수를 쏟은 바지가 끈적거려 서운해 하는 일바에게 다음을 기약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른 나라의 역사를 직접 보고 듣는 것은 정말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수업이었다. 책에 나와 있는 사진 따위나 보면서 역사책을 달달 외우는 것은 정말 따분하고 의미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학교는 도대체 언제부터 공부를 시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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