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영 (스웨덴 공립학교 수학중)

통일뉴스가 <열다섯 살 하영이가 본 스웨덴이야기>를 연재한다. 하영이는 지금 북유럽 스웨덴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하영이는 이 연재를 통해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리고 또 여러 민족 사람들과 겪는 삶과 문화를 ‘편하게’ 쓰고 싶어 한다. 독자들은 열다섯 살 난 발랄하고 깜직한 이 여학생이 세계화의 물결과 이국땅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고 지켜나가는가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연재는 매주 수요일에 실린다. (편집자 주)

드디어 학교를 옮겼다

‘EdsbergSkolan’으로의 전학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전학서류를 접수한 후 가슴을 졸이며 몇 달을 기다렸는데, 정작 절차는 단 하루 만에 끝이 나버려 싱거운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전학 수속 담당 선생님인 잉겔라와 나는 체육 수업을 일찍 마치고 EdsbergSkolan(이하 에즈베리)으로 향했다.
한국은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가 따로 나뉘어져 있지만, 스웨덴은 유아반(F)부터 9학년까지 한꺼번에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1학년에서 9학년까지를 ‘Grundskola'라고 칭하며, 모든 청소년들은 의무적으로 이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내가 다녔던 SofielundsSkolan(이하 소피에룬드)의 경우에도 F학년부터 9학년까지 모두 있는 학교였다.
하지만 에즈베리는 한국의 중학교처럼 7학년에서 9학년까지만 있었고, 학생 수가 작은데 불구하고 학교의 규모는 훨씬 크고 건물도 많았다.

▲ 에즈베리의 같은 반 아이들. [사진-이하영]
몇 명의 선생님들과 함께 교무실에 앉아서 간단한 상담을 받는 것으로 에즈베리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내가 들어가게 될 7B 반의 담임선생님인 이다(Ida)와 마르가리타(Margareta)는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과정 등을 설명하고, 소피에룬드에서 나와 일대일 수업을 했던 엘리자베스 선생님에게 에즈베리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씩 도움을 받고 싶은지 물었다.
나로서는 엘리자베스가 올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사전이 있어도 절대 해석이 되지 않는 문장이 있기 마련이고, 그럴 때마다 엘리자베스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마르가리타가 잉겔라와 대화를 하는 사이, 이다가 시간표와 선생님들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다는 싱글거리는 표정으로 7B 반의 한 여자아이가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어와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알고,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아시아 출신인 나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내가 공부할 반에는 남자아이들이 15명에 여자아이들이 겨우 8명뿐이어서 모두가 여자 전학생을 반길 것이라는 말은 막연한 불안함을 조금 가시게 해 주었다.
가장 문제가 될 것 같았던 스웨덴어는 ‘보통 스웨덴어반’에서 3시간, ‘제 2외국어로서의 스웨덴어 반’에서 3시간, 일주일에 모두 여섯 시간을 할애하기로 했다.

외국에서 온 학생들을 위해서 따로 수업을 준비해 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성적 역시 똑같이 계산되니 공평하고 괜찮은 제도라는 생각도 들었다.
선생님들은 당장 내일부터 수업을 시작하자고 했지만 친구들에게 인사를 할 시간도 필요하고, 휴일에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으로 여행을 떠나기 때문에 다음 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환송 파티

▲ 환송파티를 해주려고 나오는 아이들. [사진-이하영]
소피에룬드의 친구들은 나를 따뜻하게 격려해 주었다.
가을 학기부터 에즈베리로 전학을 갈 야사만과 바네사, 그리고 시나는 나와 같은 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바깥으로 나가서 아이스크림과 케이크를 먹었다.
보통 학교를 떠나는 친구가 있으면 이렇게 조촐한 파티를 준비한다.
모든 것이 결정되기 전에는 소피에룬드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막상 마지막 수업을 끝내고나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음악 수업

에즈베리에서의 첫 번째 수업은 음악이었다.
나는 교무실 앞에서 기다리다가 이다가 아닌 다른 선생님에게 안내를 받아서 음악실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는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웃어야 할까, 아니면 평범하게 손을 흔드는 것이 좋을까? 말을 걸면 잘 알아들을 수는 있을까? 음악실에는 열 명 정도의 학생들이 각자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음악실에 악기 대신 웬 컴퓨터인지 의아했지만, 잘 살펴보니 컴퓨터 앞에 작은 키보드(음악 수업용)가 한 개씩 놓여 있었다.

내가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음악 선생님은 나와 악수를 하고 가장 뒷줄에 혼자 앉아 있는 여자아이 옆에 가서 앉으라고 했다.
자기소개를 시키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있던 나는 그 여자아이가 웃으며 손짓을 하자 깜짝 놀랐다.
교실에 오기 전, 이다가 이름을 기억해 두는 것이 좋겠다고 주었던 단체 사진에 찍혀 있었던 여자아이였다.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Ylva(일바)는 금발에 빼빼 마른 스웨덴 소녀였다.
일바는 내가 자리에 가까이 다가가자 당황스러울 만큼 생글거리며 말했다.
“원래어제왔어야하는데오지않아많이기다렸어.”
나는 잠시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머뭇거렸다.
발음이 불분명한 데다, 말은 가차 없이 줄여져 있었고, 속도는 무지하게 빨랐다.
결국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고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 앉아서 본 컴퓨터의 바탕화면에는 남자아이 두 명이 마주보고 있는 그림이 깔려있었는데, 한국에서도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던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이었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싶어 말했다.
“나루토네? 나루토 좋아해?”
일바는 내가 그 만화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듯 고개를 열성적으로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 만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손을 모으는 동작을 취해 보이고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조금은 특이한 여자아이였다.

음악 수업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선생님은 다장조의 계이름 보는 법과 박자에 맞추어 치는 법을 설명하셨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악보나 건반에 익숙했지만, 일바는 건반을 치는 대신 컴퓨터에 디스켓을 하나 넣었다.
저장되어 있는 파일을 불러오자 여러 가지 악기의 이름과 각각 다른 색의 막대가 나타났다.
일바가 키보드를 몇 번 만지작거리는 순간 화면에는 음표들이 뜨기 시작했고, 나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에서 일바가 가르쳐 주는 대로 키보드를 쳤다.

한참을 연주하고 난 후 선생님은 디스켓을 모두 걷어 교실 앞에 있는 컴퓨터에 하나씩 넣고 녹음한 음악을 들려줬다.
간단하게 베이스와 드럼만으로 연주한 아이들도 있었고, 여러 가지 악기를 다 사용해서 화려하게 연주한 아이들도 있었다.
이런 음악 수업을 해 본적이 없었기에 다시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수업은 곧 끝이 났다.

첫 등교에 치른 영어 시험

나를 데리고 7B의 지정 교실로 가면서 일바는 열쇠가 달린 복도의 사물함을 열고 필통을 꺼냈다.
어수선한 사물함 안에는 용이나 만화 캐릭터 같은 그림들이 잔뜩 붙어 있었고, 용 그림 옆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내 이름이 써져 있었다.
일바는 부끄럽다는 듯 사물함을 닫았지만, 나는 그것을 도로 열고 “일바, 내 이름은 하영(Ha-Young)이지 하용(Ha-Yong)이 아니야. 그건 진짜 ‘용(en drake)이라구…….”
일바는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교실에 들어가자 곧 영어 수업이 시작되었고, 그 날의 수업은 시험이었다.
나는 이번 시험은 치르고 싶지 않다는 말씀을 선생님께 드리고 싶었다.
선생님은 내 기분을 아는지 상냥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괜찮으니까 한 번 보기만 해 봐. 처음 온 거니까…….”

영어시험에 있어서는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터라, 결국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시험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듣기 시험은 난이도가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영국식 발음을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영국 영화를 볼 때는 자막을 틀어놓아야 할 정도로 발음에 익숙하지가 않았기에 당연히 시험을 엉망으로 볼 수밖에 없었고, 첫날부터 망친 시험으로 인해 정말 속이 많이 상했다.

독해 시험은 영어가 아니라 스웨덴어가 문제였다.
대화를 읽고 질문에 답하는 방식의 시험인데, 답은 반드시 스웨덴어로 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양해를 구하고 영어로 답을 쓸 수밖에 없었다(나는 ‘크리스마스에 칠면조 샌드위치를 먹다가 목에 걸려 죽은 불쌍한 삼촌’을 스웨덴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새 학교에서의 첫 점심식사

시험을 먼저 끝낸 아이들은 밖으로 나가버렸지만, 일바는 교실 밖에서 내가 시험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 먹으러 가자.”
식당까지 가려면 몇 개의 문을 지나치고 몇 십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했다.
지긋지긋하도록 넓은 학교였다.
일바와 내가 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나 저 애들 알아. 같이 앉자고 하자.”
일바는 여자아이들이 모여서 밥을 먹고 있는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있을 법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무언가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바의 가공할 정도로 빠른 말투 때문에 망설여졌다.
못 알아들으면 다시 되물어야 할 텐데, 나는 그런 것이 몹시 창피하다.
내가 접시에 놓인 베이컨과 당근만 깨작이는 사이, 여자아이들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소피에룬드의 여자아이들이 늘 하는 수다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내용이었다.
여자아이의 모임이란 어느 나라에 가도 똑같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동물 좋아해?”
동물이라면 좋아서 죽고 못 사는 스웨덴 사람이 아니랄까봐 일바가 물었다.
“응. 큰 개와 말……. 키우지는 못하지만.”
“나는 토끼 세 마리와 금붕어 몇 마리 키우고 있어.”
일바의 사물함 안에 붙어있던 금붕어의 사진이 떠올랐다.
일바는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만화, 그림, 옷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는 그 빠른 말투를 전혀 따라잡지 못했지만, 일바는 내게 대답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잠자코 듣기만 했다.

점심시간은 지겹도록 길었다.
평소라면 가지고 온 책을 읽었겠지만 일바가 있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일바는 학교 안내를 해주겠다며 도서관과 과학실 등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에즈베리는 그 이름답게 Edsberg Centrum과 인접해 있었다.
똑똑이 알란이 학교 바로 앞에 Centrum이 있어서 모두를 비만의 길로 유도한다고 투덜거리던 것이 떠올랐다(알란은 이미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서 전설이 되어 있었다).
Sollentuna Centrum보다 크기는 작지만 더 아기자기한 그 곳을 잠깐 둘러본 뒤, 우리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그네를 탔다.
일바는 중국식 그네가 마음에 든다고 했지만, 나는 그것이 대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있잖아, 하용.”
“하영.”
“미안, 하용. 한국에서는 교복을 입어?”
“응, 학교마다 다 달라.”
“부럽다. 나도 교복 입고 싶은데.”
“별로 안 예뻐, 비싸고.”

일바는 내가 한국의 교복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듯 했다.
하지만 나 역시 교복은 입어 본 적도 없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한 벌 사 오려는 생각을 했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서 포기했기 때문이다.

일바에게는 오빠가 한 명 있다고 한다.
나는 외동딸이기 때문에 언제나 오빠나 남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형제가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일바는 기겁을 했다.
“‘그런 게’ 뭐가 갖고 싶어?”
Rudbeck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일바의 오빠는, 일바의 표현에 따르자면 구제할 길이 없는 머저리라고 했다.

우리는 남은 점심시간을 교정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보냈다.
일바는 일반적인 스웨덴 아이들보다 훨씬 그림을 잘 그렸다.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익숙하지 않은 손길로 일바가 그린 것과 비슷한 여자아이를 그렸더니 일바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진짜 잘 그린다! 나도 가르쳐 줘!”

한국의 일반적인 여자아이들이 다른 나라로 가게 된다면, 보잘것없는 그림 실력에도 감탄사를 연발하는 외국인들을 수없이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미국에 있었을 때부터 겪었던 일이었다.
창의력은 어떤지 몰라도 손재주는 한국 사람들이 월등하다는 생각이 든다(선물 가게에서 포장을 하고 있는 스웨덴 사람을 보면 답답해서 내가 대신하고 싶을 정도다).

가장 싫어하는 수학 진단 평가

오후에는 소피에룬드에 처음 갔을 때처럼 수학 진단 평가를 했다.
나는 수학이 약하기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수학 선생님이 건네 준 시험지는 단 한 장뿐이었다.
그리고 시험의 내용도 초등학교 3학년이라면 충분히 풀 수 있을 문제였다.
그런데도 단위가 헷갈리는 나 자신이 참 한심했다.
다른 방에서 시험을 보고 선생님께 건네 드린 뒤 일바 옆에 앉았다.
그런데 우리의 앞에 앉아 있던 남자아이 한 명이 몸을 완전히 뒤로 돌리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쉬웠어?”
“응.”
내 대답을 듣지 못한 것인지 교과서를 읽고 있던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어땠어? 어려웠어, 쉬웠어?”
“나도 그 시험을 본 적 있었던가?”
“쉬웠겠지, 뭐.”

아이들 사이에서 이런 말들이 빠르게 오갔다.
그러자 수학 선생님은 조용히 하라는 동작을 취했지만 교실은 전혀 조용해지지 않았다.
시장바닥만큼이나 시끄러운 상황을 이겨내지 못한 선생님이 끝끝내 소리를 질렀다.
“그만! 여기까지!”
나는 아이들이 당연히 입을 닫고 공부를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여자아이(남자아이?)는 자신의 귀를 막으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아 시끄러워요. 제 귀에다 대고 소리 좀 지르지 마세요.”
나는 그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다.
선생님이 ‘너희들 너무 시끄러워!’라고 말하니 학생이 ‘선생님이 더 시끄럽거든요?’ 라고 대답하는 형국이었다.
일바를 돌아봤더니 일바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원래 이래.”
이 반이 왜 ‘원래 이런’지는 수학 시간이 끝나고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한 여자아이가 오디오에 CD를 넣더니 음악을 켰고, 나머지는 모두 일어나서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도 같이 일어나서 국민체조라도 해야 하나 싶었지만, 일바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는 그냥 풀던 문제를 계속 푸는 쪽을 택했다.
5분 정도가 지나자 한 남자아이가 몸을 날려 음악을 껐다.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자리에 앉는 데는 5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교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 순간 교실 문이 열리며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선생님은 조용한 교실을 둘러보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수업 시작한다.”
이번 수업의 선생님은 아마도 무서운 선생님인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모습을 기가 질려 바라보다가 다시 일바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일바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좀 미친 반이거든.”
어떻게 처신해야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교실이었다.

새로운 시작

마지막 시간에는 스톡홀름의 지리와 역사를 배웠다.
나와 일바는 평범한 지도 하나와 스톡홀름 섬들의 가장자리만 그려져 있는 지도를 받았다.
자리가 비어있는 지명을 지도에서 찾아서 받아 적다보니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우리 앞에 앉아 있던 남자아이가 다시 몸을 돌리고 말했다.
“협동해야 하니까 좀 베껴도 되지?”
일바는 정말 불같이 화를 내며 안 된다고 말했지만 그 남자아이는 귀를 후비적거릴 뿐이었다.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협동하는 것이 맞아.”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
히죽히죽 웃는 것이 얄미운 것으로 따지면 에즈베리의 보그단이었다.
나는 똑같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응, 그런데 너는 안 하니까(arbetar inte) 협동(samarbete)이 아니지.”
남자아이는 그 자세 그대로 날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른 아이들 쪽으로 비척비척 가 버렸다.
일바와 나는 통쾌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하루 밖에 보지 않았지만 일바와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죽이 잘 맞는 사람을 찾기는 정말 힘드니까 말이다.
그랬기에 일바가 스톡홀름 현장학습에 불참한다고 했을 때는 많이 아쉬웠다.
빨리 친해져서 그런 것도 있지만, 내가 모르는 것은 일바가 가르쳐줬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내게 별 관심이 없었다.

일바가 오지 않으면 나는 점심을 혼자 먹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견학을 갔을 때 그런 일이 생긴다는 것은 꽤나 끔찍한 일이다.
일바는 자신의 아빠를 만나러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학교를 빠지면서까지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아빠를 보기 위해 일바가 여행해야 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제 진정한 나의 스웨덴 생활이 시작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온전히 스웨덴 아이들과 부대끼며 2년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공부는 훨씬 더 힘들어질 테고, 한국의 학생들만큼 공부에 매달려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접하면서 여전히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지금의 노력이 내 꿈을 이루는 발판을 마련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떠한 힘든 일도 참아낼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 주먹을 꼭 쥐고, 그 꼭 쥔 주먹 속에 무엇인가를 품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고 아빠가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나 역시 작은 주먹이었지만 뭔가를 꼭 품고 태어났을 것이고, 이제는 그 작은 주먹 속에 품고 있던 것을 제대로 꽃피울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꿈은 세상을 뒤흔들 수 있을 만큼 기개와 강단이 있는 여성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최대한 노력할 것이며, 그 첫 번째 발판이 바로 이 학교이다.
여태까지 에즈베리를 거쳐 간 몇 안 되는 한국 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에즈베리의 모두에게 기억에 남는 학생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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