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영 (스웨덴 공립학교 수학중)

통일뉴스가 <열다섯 살 하영이가 본 스웨덴이야기>를 연재한다. 하영이는 지금 북유럽 스웨덴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하영이는 이 연재를 통해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리고 또 여러 민족 사람들과 겪는 삶과 문화를 ‘편하게’ 쓰고 싶어 한다. 독자들은 열다섯 살 난 발랄하고 깜직한 이 여학생이 세계화의 물결과 이국땅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고 지켜나가는가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연재는 매주 수요일에 실린다. (편집자 주)

한국의 영어 학원에서 경험했던 인상적인 수업 장면!

내가 한국에서 잠시 다녔던 영어 학원에는 원어민 강사 선생님이 있었다.
Cooperation(협동), competition(경쟁), conflict(대립).
선생님은 그것을 '3C'라고 부르면서, 다수의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해낼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똑같은 과제를 나눠 주었고, 그 과제는 각각 다른 규칙을 적용해서 세 가지의 방법에 의해 해결하도록 되어 있었다.
Cooperation, 모든 사람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을 하며 문제를 해결한다.
Competition, 자신의 문제에만 집중해서 가장 빨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Conflict,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방해하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내 문제를 해결한다.

선생님은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쟀다.
첫 번째는 무난했다.
우리는 서로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여 문제를 풀었다.
두 번째 역시 나쁘지 않았다.
모두들 자신의 답을 손으로 가리며 일등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세 번째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누군가가 내 머리를 잡아 당겼고, 나는 복수를 하기 위해 그 아이가 풀고 있던 문제가 쓰인 종이를 찢어버렸다.
다른 아이들이 합세해서 교과서를 빼앗아 가거나, 지우개를 던지며 문제 푸는 것을 방해했다.
우리들은 문제를 해결하기도 전에 지쳐버렸다.
결과는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두 번째 방법, 즉 경쟁을 택했을 때 우리는 가장 빠른 결과를 냈다.

원어민 선생님의 실패한 수업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은 경쟁을 의미한다.
학교생활의 경우에는 그 경쟁이 너무 심해서 가끔 대립으로 악화되기까지 한다.
일등이 모두의 목표이고,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성적표에 쓰인 점수를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끙끙댄다.

주변 사람들 역시 경쟁을 부추긴다.
'내 친구 아들(딸)은 말이야…….'
한국 학생들 중에서 이 말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우리는 그런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미국에서 살다 온 나조차도 그랬다.

한국에서 초등학교조차 마치지 못한 경험만으로도, 내가 일등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돕지 않고 나 혼자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 부족하면, 때로는 교활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이 열심히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법도 터득할 수 있었다.

그러니 모두에게 익숙한 방법인 두 번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짧은 시간이 소요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결과가 칠판에 적혔을 때, 그 원어민 선생님은 허허 웃기만 하셨다.
그 선생님은 아마도 ‘협동’이 가장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방법임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스웨덴 학교의 협동 수업

지금 내가 다니는 Sofielunds Skolan에서는 늘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과제를 내주곤 한다.
똑같은 도형 위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린다거나, 점자판에 선을 이어 여러 가지 특이한 모양을 만드는 등의 과제이다.
우리는 자주 그룹을 만들어서 함께 그 과제를 해결한다.
그것은 스웨덴어나 수학 같은 과목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각각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진 나라에서 오다 보니 처음에는 자주 다툼이 있었다.
특히나 자신의 의사표현을 명확하게 할 수 없는 친구들의 경우에는 혼자 답답해서 난리를 치다가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는 일도 있었다.
스웨덴어를 그럭저럭 할 수 있는 내 경우에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나는 세련되고 신속한 방법으로 그룹을 이끌어나가려고 했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아예 그 일에 관심이 없거나 아주 느리고 비효율적인 방법을 택했다.

결국 내가 모든 일을 단숨에 해치우면 다른 아이들이 답을 알려달라고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래도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시도한 수많은 방법들 중에서 가장 빠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떤 계기를 통하여 내 행동에 의문이 생겼다.
어째서 나는 그 모든 친구들을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려고 했을까?

나는 경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일등이 되어야 하고, 가장 훌륭한 학생이 되어야 하고, 그룹 활동에서도 다른 아이들의 우위에 서고 싶었다.
모든 것에서 일등이 되어야 하는 '일등병'이 도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다른 아이들은 나와 경쟁을 할 생각이 없었다.
나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를 떨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일등이 됨으로써 얻어지는 여러 가지를 포기하고 나니 일은 훨씬 쉽게 풀렸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리고, 스웨덴어 때문에 여의치 않다면 다른 친구를 불러와 통역을 부탁했다.
그리고 서로 의논하여 어떻게 하는 편이 좋겠다는 결론을 냈다.
내 의견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개성 있는 의견을 모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찾아냈다.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승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똑같이 잘 하자

‘우리 모두 똑같이 잘하자’는 스웨덴 학교의 교육 방침은 나뿐만 아니라, 아마도 대부분의 한국학생이나 부모님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상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일등이 될 생각이 없으니, 나는 쉽게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하지만 협동에 익숙하지 않은 내게, 시도 때도 없이 그와 관련된 과제를 내 주는 것은 일등을 하는 것보다 훨씬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다.

자유로운 공부 환경과 내 진정한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스웨덴에 오기로 결정한 것인데, 정작 나는 한국의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서로를 마주보도록 책상 배치를 한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토론이나 협동 시간이 되면, 내가 해야 할 몫을 후다닥 끝내고 구석에서 책을 읽거나 단어를 외우곤 했던 공부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면서, 나도 조금씩 스웨덴 학교에 적응이 되어 간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칠판에 시험 결과를 써 붙이는, 결코 흔하지 않은 날이 오면 오히려 내가 더 당황할 지경이다.

부활절의 특별한 수업

부활절에 린다 선생님은 특별한 수업을 준비했다.
린다는 부활절(스웨덴에서는 부활절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도 달걀, 병아리, 토끼 등의 장식을 하고 구디스를 잔뜩 먹는다. 부활절 방학은 일주일이 넘기도 한다)이 되면 화분에 물감을 발라 병아리 모양의 구디스통을 만들게 하기도 하고, 크리스마스나 밸런타인데이, 할로윈에도 특이한 과제 같은 것을 만들어서 가지고 오고는 했다.

남자아이들은 귀찮다며 운동장에서 농구를 했지만, 여자아이들은 그런 것을 몹시 좋아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린다가 가지고 온 것은 종이였다.
다 펼치면 교실 끝에서 끝까지 닿을 것만 같은 길고 큰 종이였다.
돌돌 말아서 가지고 오는 데도 두 명이 필요했다.

우리는 책상 위를 대충 치우고 세 개를 이어 붙여 종이를 펼쳤다.
린다는 검정색 펜으로 그 중앙에 ‘Välkommen(환영합니다)'이라고 크게 써 넣었다.
“이 주변에 자신의 언어로 ‘환영합니다’라고 쓰고, 원하는 대로 꾸며 보세요. 다들 그림을 잘 그리니까 그림도 그려 넣으면 좋겠죠?”

이런 초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음으로써 내 가치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원대한 꿈을 안고 당장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도화지의 넓이를 자로 정확히 잰 다음, 똑같은 길이의 눈금을 그려 넣고 눈금에는 번호를 붙이고, 컨셉을 잡고 색감을 정하고 들어갈 언어의 개수와 크기를 결정하고…….
나는 공책에다가 열심히 그런 것을 메모했다.
그러나 나의 완벽한 계획을 발표하기 직전, 바네사와 야사만이 펜을 들고 종이에 끄적이기 시작했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 마! 거기는 프랑스어와 태국어를 쓰기로 했단 말이야! 그리고 처음부터 펜으로 쓰면 안 돼! 연필로 살살 밑그림을 그리고……."

펜을 들고 끄적이던 아이들의 표정이 한참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마치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을 보는 눈빛과 같았다.
결국 나의 완벽한 계획은 오 분도 되지 않아 폐기처분 됐다.
그 대신 우리는 광활하기까지 한 도화지에 달라붙어 원하는 대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우리들’의 작품 탄생

나도 완전히 포기한 채 그냥 마음 가는 대로 그렸다.
한국어로 '환영합니다.'라고 쓴 뒤에는 무궁화를 그리려고 했지만, 꽃술을 그리기가 까다로워서 결국 꽃잎 다섯 장짜리 이름 모를 꽃이 되어버렸다.
어릴 때 입었던 개량한복과 태극무늬도 그렸다.

그 아래에는 영어로 'Welcome'이라고 쓰고, 커다란 사과(big apple:뉴욕 시)와 그 옆에 있는 이상한 표정의 자유의 여신상, 라스베이거스의 주사위와 맥도날드 세트를 그려서 보그단의 폭소를 자아냈다.
마리아가 모로코로 돌아 간 탓에 쓸 사람이 없었던 프랑스어 Bien Vennus와 달팽이․와인․치즈를 그렸고, 에펠탑은 그리다 포기했으나 타냐(Tania)가 끈기를 갖고 한 시간 동안 끙끙댄 끝에 완성했다.
알란의 전학으로 비어 있던 핀란드어 역시 내가 사전에서 찾아 대신 썼다.

사흘 가량 쉬는 시간과 협동수업시간마다 그리고 쓰는 일을 반복하자 꽤나 그럴듯한 작품이 나왔다.
멋진 그림도, 간신히 형상을 알아 볼 수 있는 미숙한 그림도 있었지만 다들 뿌듯한 얼굴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우리들의 '작품'이니 당연한 일이다.

의외였던 것은 이 작업을 하면서 다툼이나 언쟁이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너나 구분 없이 공동 작업을 하면 늘 벌어지는 영역다툼(?)이 생각 외로 적었다.
내 것 네 것 갈라놓고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스케치는 내가 하는데 색칠은 다른 친구가 한다거나, 글자를 내가 쓰고 그림을 다른 친구가 그리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글도 그림도 누군가 다른 사람이 건드리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나는 조금 떨떠름했다.

하지만 몇 시간 후에는 그림의 소유권을 따지는 것이 바보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그림이라고 눈을 부라리지 않아도 이 작품은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머지 친구들의 것이기도 했다.
끝까지 그림 하나하나에 깨알 같은 글자로 이름을 써 넣던 내가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힘을 합쳐 이 공동의 작품을 복도 벽에 걸었다.
스웨덴에서 짧지 않은 학교생활을 하면서 그만큼 뿌듯했던 적이 없었다.
수없이 그룹 활동을 했지만, 이런 것이 정말 ‘cooperation'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잘 하겠다며 경쟁을 벌이거나(competition) 머리를 쥐어뜯으며 싸웠다면(conflict) 이런 작품은 절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승자 되는 것도 몹시 기쁜 일

스웨덴은 인간관계와 협동, 협상, 협력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그런 과제를 끊임없이 내 주기도 하고,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일에도 꼭 짝을 지어준다.
혼자서 해결하는데 익숙해진 나는 오히려 그런 것에 적응하기가 더 힘들었다.
내 자신에게는 의사를 물어 볼 필요가 없지만, 누군가와 협동을 한다면 그것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조그만 일에도 협조를 구하고, 의견이 부딪힐 때는 설득을 하거나 내 주장을 굽혀야 했다.
이런 경험이 쌓여서인지 스웨덴에서는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좀처럼 보기 어렵다. 일등이 되기 위해 달달 외우는 영어 단어 몇 개나 수학 공식 몇 줄 보다, 그런 공부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훨씬 더 가치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스웨덴에 와서야 그런 사실을 알게 됐다.
나 혼자 일등이 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지만, 모든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것도 몹시 기쁘고 성취감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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