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영 (스웨덴 공립학교 수학중)

통일뉴스가 <열다섯 살 하영이가 본 스웨덴이야기>를 연재한다. 하영이는 지금 북유럽 스웨덴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하영이는 이 연재를 통해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리고 또 여러 민족 사람들과 겪는 삶과 문화를 ‘편하게’ 쓰고 싶어 한다. 독자들은 열다섯 살 난 발랄하고 깜직한 이 여학생이 세계화의 물결과 이국땅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고 지켜나가는가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연재는 매주 수요일에 실린다. (편집자 주)

나는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본명; Vladimir Ilich Ulyanov)이란 러시아의 혁명가를 잘 모른다.
내 또래들이 그렇듯이 정치는 물론이고, ‘주의’ 같은 것도 잘 모른다.
스웨덴이 사회주의(또는 사민주의)라고 해서, 여기처럼 사는 것이 사회주의구나… 라고 느낄 뿐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에 의해 나의 핀란드 여행이 망가졌다는 것뿐이다.

핀란드로 가는 크루저 여객선, ‘바이킹라인’과 ‘실야라인’

▲ 바이킹라인에서 찍은 발틱해. [사진-이하영]
핀란드 여행은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스웨덴을 방문한 아빠의 손님들이 핀란드 여행을 간다기에 얼떨결에 따라 가게 된 것이다.
핀란드는 두 번째 방문이었다.
첫 방문 때는 바이킹라인(Viking Line)을 이용했었지만, 이번에는 실야라인(Silja Line)을 타고 갔다.

핀란드로 가는 크루저 여객선은 ‘바이킹라인’과 ‘실야라인’ 두 가지가 있다.
항로는 똑같지만(항상 바이킹라인이 실야라인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뒤따라온다), 스톡홀름과 헬싱키의 선착장도 다르고 배의 규모와 내부도 조금 다르다.
실야라인에 비해 바이킹라인이 약간 작고 덜 호화스럽다면 어느 정도 설명이 될 것 같다.
당연히 실야라인이 조금 더 비싸다.

선택사양도 다양하다.
선실에서 바다가 보이는지, 해산물 뷔페가 제공되는지 등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많이 난다.
스톡홀름에서 매일 오후 다섯 시에 출발하여, 헬싱키에 다음 날 오전 아홉시에 도착해서 하루 종일 시내관광을 하고, 오후 다섯 시에 다시 헬싱키를 출발하여 스톡홀름에 다음 날 오전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그 외에도 에스토니아 탈린으로 가는 코스와, 그린란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코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고 알고 있다.

크루저 안 디스코텍 광경

▲ 실야라인 선실에서 선장이 마이크를 잡고 있다. [사진-이하영]
처음 핀란드에 갈 때 탔던 바이킹라인의 선실은 바다가 보이지 않고, 바다의 그림만 창문에 붙어 있어 적지 않게 실망했었는데, 실야라인의 선실에서는 바다가 보여 좋았다.
첫 방문 때는 4월임에 불구하고, 발틱해로 나가자 바다가 온통 얼어 있어 경이로웠다.
마치 타이타닉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날씨는 한국의 봄 날씨보다 약간 추울 뿐이었는데, 헬싱키는 항구에도 얼음이 둥둥 떠 있었다.

바이킹라인과 달리 입구부터 호화로운 실야라인은, 내부의 조명을 비롯하여 모든 것이 화려했다.
커다란 메인 홀의 양옆에는 각종 면세점들과 파친코 기계들이 있고, 그 위로는 객실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마치 잠수함에(타 본 적은 없지만)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배 안에는 면세점, 사우나, 수영장, 카지노, 디스코텍, 영화관 등이 갖춰져 있었다.

배가 항구를 벗어나자, 저녁과 밤에 걸쳐 페스티벌을 하니까 꼭 보라는 선장의 안내 방송이 있었다.
메인 홀에서 댄스와 노래, 작은 규모의 서커스 등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캐빈에 있어봐야 할 일도 없을 것 같아서, 페스티벌이 시작되자마자 디스코텍으로 달려갔다.
무대를 중심으로 좌석이 빙 둘러져 있고, 좌석 뒤의 칵테일 바에서는 알코올이 들어 있지 않은 칵테일을 팔고 있었다.

▲ 실야라인 선실에서 서커스 등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진-이하영]
스웨덴 사람들은 술을 잘 마시지 않는데, 크루저를 타면 해방감에 젖어 그런지 배 안의 면세점에서 독주를 카트 한가득 사서 밤새도록 마신다.
술이 취해서 비틀거리는 사람이 적지 않아도, 특별히 불미스러운 일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무용수들의 춤과 팝밴드의 노래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자, 무대의 디스코텍 위로 사람들이 나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설마 사람들이 무대 위로 나가서 춤을 출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극장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것과 비슷하여, 어지간히 자신이 있지 않고서야 춤을 추러 나가는 것은 무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예상을 깨고, 할머니 할아버지 한 쌍이 나와서 서로 손을 잡고 느릿느릿 춤을 추기 시작했다.
화려하지도, 능숙하지도 않았지만 둘은 즐겁게 춤을 췄다.
그러자 조그만 꼬맹이, 임신한 아줌마, 십대 커플 등등이 합류를 해서 각자 맘대로 춤을 춰댔다.
한국에서 말하는 막춤도 있고, 춤이라고 말하기 곤란한 정도의 발악도 있었지만 보기에 흥겨웠다.

멍석 깔아주면 못 하는 한국 사람들에 비해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춤을 못 춘다고 놀리는 사람들도 없었고, 춤을 잘 추지 못하는 본인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보는 건 즐거웠지만, 나는 감히 아래로 내려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는 나도 한국 사람이 분명한가 보다.

핀란드 헬싱키

▲ 크루저에서 본 스톡홀름. [사진-이하영]
이번 여행에서는 스톡홀름 항구를 빠져 나가기도 전에 해가 져서 경치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스톡홀름만을 빠져 나갈 때의 경치는 정말 압권이다.
두 번째 간 헬싱키는 바다가 얼어 있지 않다는 것 이외에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스톡홀름에 비하면 헬싱키 항구는 별로 볼 것이 없다.
항구 주변에 야시장이 있다고 들었지만, 이번에 갔을 때는 그 야시장도 서지 않아 구경할 수 없었다.
헬싱키 시내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그렇게 낭만적이거나 고풍스럽지 않아, 기대를 잔뜩 하고 온 여행객들은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 헬싱키 전차(트램). [사진-이하영]
크루저를 타고 헬싱키에 도착하면, 보통의 경우는 걸어서 시내로 들어간다.
도시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스톡홀름에도 전차(Tram)가 일부 구간에 있지만, 헬싱키는 시내 전체에 전차가 다닌다.
물론 지하철과 버스도 있다.
요금은 2유로로 상당히 비싼 편이다.

▲ 트램에서 만난 핀란드 학생. [사진-이하영]
핀란드는 스웨덴 바로 옆에 붙은 나라지만, 여러 모로 스웨덴과 다른 점이 많다.
스웨덴과 러시아가 번갈아 가면서 식민 지배를 하였고(역사책을 보면 레닌이 러시아로 돌아가기 직전, 헬싱키 중앙역에서 아주 유명한 연설을 하였을 때, 핀란드 헬싱키가 아니라 스웨덴 헬싱키로 표기되어 있다), 그 영향으로 건축물 등은 러시아풍이 적지 않고, 스웨덴어가 공용어로 쓰인다고 한다.

또한 그 유명한 산타클로스 마을과 자일리톨 껌이 있는 나라다.
들은 이야기로는, 한국에서 자일리톨 껌만 씹으면 이 안 닦아도 되는 것처럼 광고를 해서 엄청나게 팔아준 덕분에, 핀란드에서 모 제과회사에 감사패를 준적도 있다고 한다.

요즘 들어서 핀란드에도 관광객들을 위해서 자일리톨 껌을 판매하고 있지만, 정작 핀란드 사람들은 광고에 나오듯이 즐겨 씹는 것 같지는 않았다.
산타클로스 마을 역시 스웨덴과 노르웨이에도 있지만, 정통성에 있어서 핀란드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 핀란드 기차에서 만난 현장실습 가는 선생님과 학생들. [사진-이하영]
'핀란드에 왔으니 레닌 동상은 보고 가야 하지 않겠어?'

▲ 핀란드 시내 풍경. [사진-이하영]
'핀란드에 왔으니 레닌 동상은 보고 가야 하지 않겠어?' 란 아빠의 한 마디가 화근이었다.
핀란드하면 위대한 작곡가 시벨리우스고, 당연히 시벨리우스의 생가나 시벨리우스 박물관에 가야 하는 것 아닌가?
모스크바도 아닌 헬싱키에 레닌의 동상이 있다는 것은 좀 의외였다.

하지만 아빠는 레닌 동상이 분명 헬싱키 중앙역에 세워져 있다고 했다.
아빠와 같이 온 손님들은, 레닌 동상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상당히 흥미로운 것 같았다.
아빠는 레닌이 망명 중이던 핀란드를 떠나며 헬싱키 중앙역에서 그 유명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인터내셔날가를 불렀다는 둥, 레닌이 망명한 덕분에 핀란드가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하였다는 둥, 온갖 이야기를 해서 손님들을 더 자극하는 것 같았다.

아빠가 해외토픽에서 봤다는 기사 이야기는, 동상이 있다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의심할 여지를 없애주었다.
해외토픽의 기사는, 핀란드에서 레닌 동상을 없애자는 것을 국민투표에 붙였더니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아서 그대로 두었다는 내용이었다.

헬싱키 중앙역 아무리 찾아봐도 레닌 동상은 없었다. [사진-이하영]
아침을 간단히 맥도널드에서 때우고 중앙역으로 곧장 걸어갔더니, 아무리 찾아봐도 레닌 동상이 아니라 확인 불가능한 핀란드 사람 동상만 하나 서 있었다.
중앙역 안에 있는 관광안내소에 가서 레닌 동상의 위치를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곳은 러시아가 아니에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내가 혹시 모르니 찾아봐달라고 사정하자, 안내원은 컴퓨터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헬싱키에서 한 시간 삼십분 가량 가면,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는 레닌박물관이 있으니 거기를 가보라고 했다.
박물관이 아닌 레닌 동상이라고 다시 말했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내원이 지도를 펼쳐 놓고 한 장소를 지적해 주었다.

"레닌 동상이 있다면, 이곳에 있을 것 같네요. 기찻길을 따라 걸으면 작은 공원이 있어요, 거기에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동상이 있다면 말이죠!"
‘그러니까 동상이 있다면 말이죠!’란 마지막 말이 찝찝했지만, 우리 일행들은 씩씩하게 걷기 시작했다.

▲ 핀란드 가게 아줌마. [사진-이하영]
레닌 공원은 있지만 레닌 동상은 없었다

▲ 우리가 걸었던 헬싱키 레닌 공원 호숫가 풍경. 호숫가를 따라 가도가도 레닌 동상은 나타나질 않았다. [사진-이하영]
만약 동상이 있다면 여기 밖에 없다고 지도에 표시한 곳은 ‘레닌 공원’이라고 했다.
보기에는 가까워 보였지만, 몇 번씩 물어가면서 호숫가를 따라 걸어가니 엄청난 거리였다.
가뜩이나 인구도 작은 데다, 길거리에 사람도 거의 없어 영어가 가능한 사람을 찾아서 길을 묻는 것은 쉽지 않았다.
참고로, 핀란드 사람들은 스웨덴 사람들만큼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

세 사람에게 물었다고 기억하는데, 그 세 사람 모두 같은 장소를 말해 주어서 거기에 레닌 동상이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람들이 말한 장소에 도착했지만 레닌 동상은커녕, 그런 것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장소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지도에 나와 있는 장소와 사람들이 말한 장소가 분명한데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물어봤던 영어가 능통한 핀란드 남자는 바로 옆의 조그만 언덕을 가리켰다.
거기가 레닌 공원은 확실했지만(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없다), 동상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 없었다.
마침 산책을 하고 있던 사람에게 물어보니, 이곳에 레닌 동상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단다.
공원의 이름은 분명 레닌 공원이 맞지만, 그 이유는 레닌이 망명을 했을 때 이 근처에서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그 역시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대답을 할 뿐이었다.

하루 종일 있지도 않은 레닌 동상을 찾아서 헤매다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걸어오는 길은 정말 허탈했다.
아빠는 엄마와 나, 그리고 손님들의 원망스런 눈빛을 고스란히 받으며 결국은 맛도 지지리 없는 핀란드 전통식당에서 무지 비싼 식사비를 내는 것으로 죄사함을 받았다.

▲ 헬싱키 항구로 들어오는 바이킹라인. [사진-이하영]
여기서 얻은 교훈 두 가지,
여행을 갈 때는 철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는 것과, 잘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하면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동상이 아니라 유리관에 들어 있다는 레닌의 미라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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