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영 (스웨덴 공립학교 수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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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수업1, 총기 규제 문제

학교 앞 지하철역에서는 아침마다 무료신문(메트로 신문을 만든 나라가 스웨덴이고, 스웨덴 지하철도 한국처럼 온통 무료신문이 널려 있어 지저분하다)을 배포하는데, 누군가 신문을 선생님께 가져다 주면 그것을 가지고 한 시간 삼십 분 가량 토론 수업을 하는 것이다.
토론 주제들 중 하나가 얼마 전 발생한 ‘핀란드 총기 난사 사건’이었다.
토론수업이라고는 하지만 보통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는 아이들은 소수이고, 선생님이 나서서 그 내용에 관해 대략적인 설명을 할 때가 많다.
학생들 대부분이 외국에서 왔기 때문에, 스웨덴어를 잘 하지 못해서인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핀란드 총기 난사 사건’처럼 북유럽에서 큰 이슈가 된 사건은 친구들도 흥미를 가지고 토론에 참여했다.
7개월의 공부가 끝난 뒤 스웨덴어 수업을 하는 학교로 가 버린 탓에, 문제가 된 핀란드에서 온 알란(똑똑이)은 그 자리에 없었다.
토론 수업을 진행하는 잉겔라(선생님)는 오히려 그것이 다행인 눈치였고, 알란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피했다.
희생자 수, 날짜, 사람들의 반응 같은 일반적인 이야기가 오간 뒤에는 핀란드의 총기 취급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잉겔라의 말에 의하면 핀란드는 일반인이 총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핀란드를 두 번 가 본 나로서는, 덴마크에서 총을 살 수 있다면 모를까 도무지 핀란드에서 총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다들 자기 나라에서의 총기 규제에 관한 말들을 한마디씩 했다.
하지만 나는 한국의 총기 규제가 매우 엄격하다는 것 이외에 특별이 아는 것이 없어서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핀란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기 몇 개월 전에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조승희 사건이 언급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난감했다는 것이 더 솔직한 말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사건을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나를 배려해 주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한국인 조승희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미국의 ‘컬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이 비슷하다는 의견은 나왔다.
그 사건 이후로 미국 공립학교에서는 등교시 총기를 소지하였는지 몸수색을 하는 학교가 많다.
엄마 아빠가 내가 다녔던 미국의 학교를 방문했을 때도, 안전유리로 만든 문밖에서 선생님을 호출하여 신분 확인 후 학교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총기 사건이 한두 번도 아닌데, 왜 총기구입을 허용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분위기는 시종일관 가볍게 흘러갔다.
다들 농담조였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 했다.
심지어 에디는 '나도 그렇게 해볼까?'라고 말해서 선생님을 포함한 모두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하지만 몇몇 남자아이들은 그 말에 낄낄대면서 에디의 현상수배 포스터를 그리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항상 분쟁이 많은 나라들에 살던 아이들이 많아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건을 진지하게 여기는 것이 나와 한두 명밖에 없다는 것은 정말 납득하기 어렵다.
토론수업2, ‘미합중국을 어떻게 봐야 하나?’

당시 나는 스웨덴어를 잘 하지 못했지만, 잉겔라가 간간히 영어로 설명을 해 줬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토론 주제는 ‘미합중국을 어떻게 봐야 하나?’ 정도라고 기억하는데, 실제 수업은 ‘미합중국이 싸움을 조장’하는 것을 성토하는 장이 되어버렸다.
미국이 다른 나라들을 싸움에 휘말리게 만든다는 내용이 나오자, 중동 출신 학생들이 많아서 그런지 수업의 열기는 묘하게 고조되었다.
우리 반에 미국에서 온 학생이 없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할 정도였으니, 어떤 분위기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만약 내가 미국인이었다면, 잘잘못을 떠나 분명히 화가 났을 것이다.
우리 반의 절반 정도는 꽤나 할 말이 많은 눈치였다.
특히 누군가가 '평화의 나라였지?'라고 빈정댈 때는 교실이 웃음바다가 됐다.
그 말을 시작으로 많은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싸우려면 자기들끼리 싸우지 왜 다른 나라까지 말려들게 하느냐, 기름이 그렇게 좋으냐, 무기 팔아먹으려고 그러는 거지 뭐, 등등의 이야기가 대세였다.
전쟁과 싸움의 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자신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혹은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꺼내놓았다.
“우리 정말 많이 싸워요.”
레바논에서 온 놀(Nour)의 말에 내가 반문했다.
“‘우리’가 누군데?”
“레바논 말이야.”
놀은 특별히 심각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무관심하지도 않은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놀의 표현에 의하면 ‘허구한 날’ 싸운다고 한다.


실제로 구글 어스(http://earth.google.com)에서 검색해 보니 여기저기 폭탄 맞은 건물 사진 투성이다.
그런 나라에서 살 수가 없어서 스웨덴으로 망명을 온 것일까?
여기는 망명자들이 많지만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사실 놀이 자신의 나라에 관해 특별히 설명한 적이 없어서, 단순히 레바논에서 왔다는 사실 이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집 앞에 나가면 폭탄 맞은 건물들이 쉽게 눈에 띄고, 허구한 날 싸워댄다면 매일매일이 지옥 같아서 나라도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중동 지역에서는 아직도 곳곳이 전쟁 중이라는데, 본인의 의사와 아무런 상관없이 전쟁으로 끌려 들어간 민간인들이 희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쟁이 나면 희생자의 대부분은 어린이나 부녀자들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특히 놀을 포함한 중동에서 온 친구들 가족들은, 전부이건 일부이건 아직 그 곳에 남아 있을 텐데……, 나라면 걱정이 돼서 한 잠도 자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놀이 늘 웃으면서 지내는 것을 보면 내심 신기하기도 하다.
종교 분쟁

나도 중동의 언어는 무조건 Arabiska(아랍어)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굉장히 다양한 언어가 있었다.
야사만(Yasaman)과 시나(Sina)는 Persiska(페르시아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야사만은 시나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가끔씩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난 가끔 시나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어쩌면 야사만이나 시나 중 하나가 페르시아어의 방언을 사용해서 그럴 지도 모르겠다.
스웨덴어도 방언이 있어, 최북단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남쪽 사람들은 잘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한다.

유명한 가구 회사 ‘Ikea’는 영어식 발음으로 ‘아이키아’ 라고 읽는 것이 보통이지만, 스웨덴에서는 ‘이케아’라고 읽는다.
달함(Darham)이나 알렉스(Alex), 그리고 대다수의 아랍계 아이들은 아라비아어를 사용한다.
아라비아어와 페르시아어가 비슷해 보여도 알파벳의 차이도 있고 발음의 차이도 크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기를, 아라비아어와 페르시아어가 똑같다는 말은 중국어와 일본어가 똑같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란다.
대부분이 무슬림이지만 히잡을 쓰고 다니는 아이들은 극히 일부다.
사바(Sabah)와 감제(Gamze)가 무슬림이지만, 그나마 감제는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뒤에는 머릿수건도 쓰지 않았다.
사바는 굉장히 신실한 축에 끼는 무슬림이라, 라마단 시기가 되면 정말 금식을 하고 코란도 읽을 줄 안다.
이슬람교를 믿는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라서 라마단 시기가 되면 학교에도 나오지 않는다.
덕분에 라마단 시기가 되면 반이 조용해진다.

사바 역시 자기네 종교가 모독당한 문제로 마리아와 크게 다툰 적이 한 번 있다.
들은 이야기로는 사바가 디스코텍에서 춤을 추지 않겠다고 했고, 마리아와 스페인에서 온 바네사(Vanessa)에게도 춤을 추지 않기를 권유했나 보았다.
그 일로 한참을 다투다가 교실까지 와서 말싸움을 하고, 끝끝내는 서로 머리끄덩이를 쥐어뜯으면서 싸우기까지 했다.
마리아가 ‘망할 무슬림’이라는 말을 한 뒤에는, 사바가 굉장히 화가 나서 연필깎이를 집어 던지려고 한 적도 있었다.
겨우 말렸지만 그 이후로도 사바와 마리아는 철천지 원수다.
이런 흔치 않은 일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서로의 종교를 강요하거나 납득시키려고 하지는 않는다.
학교에서도 테마 시간에 종교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포괄적인 종교 이론에 관해서 배우는 것이지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 계열 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생이, 종교를 강요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일인시위를 하다가 퇴학당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발생한 일이다.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한 종교가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컬하다.
가톨릭인 엘레인도 이슬람교나 다른 종교를 가진 아이들과 잘 어울려 다닌다.
이런 모습을 보면 종교 문제로 다투는 건 어른들뿐이지 싶다.
DNA 검사라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는 이민자들이 유난히 많다.
우리 가족이 이사할 당시, 스톡홀름 지역은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여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호텔 장기 투숙까지 알아봤던 것을 생각하면, 이나마 집을 구한 것은 다행스런 일임에 불구하고 부모님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미국도 그렇지만 스웨덴 역시 이민자들이 많은 동네에 살기를 꺼려한다.
심지어는 자신도 이민자면서 다른 이민자와 같이 사는 것을 꺼리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주인(방글라데시 출신이라 우리 가족들은 편의상 ‘방구라’ 아줌마라고 부른다) 역시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스웨덴에서 작은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 곳이 스웨덴인지 중동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만큼 이민자들이 많다는 의미이다.
스웨덴 정부에서 망명자들을 위해 내어 주는 아파트이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스웨덴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넓지만 인구가 적은(900만 가량) 스웨덴이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외국인의 이민을 허가 한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 정착해 살게 된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 땅에서 가족과 친지들을 초청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이 꼭 가족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사돈의 팔촌까지 불러다가 오는 경우가 많아 말썽이 되고 있다.
며칠 전 엄마랑 스톡홀름 시내에 간 적이 있었는데, 전철 안에서 우연히 한국인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이십 년 넘게 스웨덴에서 살았다는 그 분은, 스웨덴의 이민정책에 관해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가족 수가 많으면 지원금이 많이 나오니까 주변 사람들을 마구 끌어들이는 것이 문제가 되어서, 스웨덴 정부가 진짜 가족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DNA 검사를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사실이라면 이민자와 망명자의 천국이라는 스웨덴의 명성에 먹칠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얼마 전에 뉴스에도 나왔지만, 스웨덴은 세계 각지의 재해 현장 등에 가장 많은 금액을 기부하는 나라로 항상 1등을 할 만큼 인권과 인류애를 중시하는 나라이다.
그렇게 많이 기부할 수 있는 것은 부자나라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정부의 의지에 대한 국민의 확실한 지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스웨덴은 복지 때문에 나라가 흔들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복지혜택에는 이민자나 자국 국민이나 차별이 없다.
심지어는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아닌, 취업 비자를 소지한 사람에게도 같은 혜택을 주고 있다.
아이를 다섯 낳으면 먹고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모두에게 그렇게 해 주려니 나라 살림이 어려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스웨덴 사람들이 이민자들을 반겼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도움을 많이 줬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스웨덴 사람들은 이민자들을 보면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자신들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세금(월급의 33% 가량)으로 내고, 그 세금으로 다른 나라의 이민자들에게 자국 국민과 같은 수준의 혜택을 준다는 것에 화가 난다는 것이다.
아빠가 스웨덴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교육을 무료로 받고 있는 나 역시 이민자이기에 이 부분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맨 처음 DNA 검사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당황스럽고 조금 불쾌하기까지 했다. 스웨덴에서 내가 만날 사람들이 나를 색안경을 끼고 볼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스웨덴인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스웨덴에서 살아가는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한국인 선생님을 구할 수 없었고, 내가 영어로 소통이 된다는 이유로 오게 된 미국 출신 엘리자베스 선생님께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잠깐 설명을 하고 넘어가자면, 학교에서 부모님을 불러 정기적으로 상담을 할 때도 스웨덴은 학교의 비용을 들여 통역을 불러준다.
물론 부모가 스웨덴어에 능통할 경우는 부르지 않아도 되지만, 선생님이 통역을 불러야만 교육에 관하여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을 할 경우에는 반드시 통역을 부르게 되어 있다.
부모님을 위한 통역은 물론이고, 처음 스웨덴에 오는 학생들은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수업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으므로, 그 학생의 모국어를 할 줄 아는 선생님을 따로 초빙한다.

린다나 잉겔라는 친절하고 고민도 잘 들어주지만, 어쨌든 그 두 사람도 스웨덴인이고 나의 이런 고민은 같은 이민자인 엘리자베스가 더 잘 이해해 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는 대학에서 스웨덴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6년을 스웨덴에서 지냈다.
많은 미국인들이 그렇듯이, 엘리자베스도 겉모습만으로는 인종을 종잡을 수 없었다.
멕시코, 프랑스, 이탈리아, 억지를 쓰면 스웨덴인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외국에 오면 누구나 느끼는 거겠지만, 스웨덴은 그게 좀 심해. 유치원 때부터 자라던 애들이 같은 학교에 가서 평생 같은 동네에 살게 되는 게 흔한 일이니까 그 유대감이 아주 강하지. 그들의 입장에서는 ‘외부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 올 틈이 없다는 거야.”
엘리자베스와 함께 읽었던 스웨덴 책 ‘Fröken Europa’ 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그 책의 주인공들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고, 학교가 작아서 학년이 올라가도 늘 같은 반이 돼서 친구들이 마치 가족들처럼 친숙했다.
“미국에서는 아예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잖아? 왜냐하면 미국은 이미 뒤죽박죽 섞여버린 곳이라 누가 ‘미국인’인지 알아보기도 힘드니까. 그래서 난 내가 히스패닉처럼 보인다는 것에 아무런 고민을 해 본 적이 없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엘리자베스의 말처럼, 미국에서 살 때에는 내가 동양인인 것이 싫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집단에 널 우겨 넣고 그 집단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널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난 네가 스웨덴어 학교에 가서 스웨덴 문화를 배우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해. 그런 것을 하나하나 신경 쓰다 보면 머리카락만 빠질테니까.”
엘리자베스의 말은 적지 않게 위안도 되었지만, 나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엘리자베스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국제 학교에 갈 생각은 하지 마. 여기 솔렌투나에도 국제 학교가 하나 있는데, 지옥이었어.”
엘리자베스는 몇 년 전 자신이 솔렌투나 국제 학교에 임시 선생님으로 갔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악몽이었단다.
스웨덴의 보편적인 선생님들보다 엄한 편인 엘리자베스로서는, 도저히 이해해 줄 수 없을 만큼 선생님에 대한 존중도 없고 소란스러운 곳이었다고 한다.
스웨덴 학교에 가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을 수 있다면, 차라리 국제 학교를 가 볼까 고민하고 있던 마음이 싹 사라져버렸다.
우리 반은 내가 여태까지 봤던 모든 교실 중에서 가장 소란스러운 반이고, 엘리자베스는 “국제 학교에 비하면 여기는 천국이지……”라고 표현했으니까.
스웨덴 사람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겉으로 인종차별을 하지는 않지만, 스웨덴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이상 자주 이런 고민을 해야 할 것이고, 인종과 국가에 관련된 유쾌하지 못한 상황에 부딪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 사람들이 차갑고 무뚝뚝해 보여도, 마음은 따뜻하다고 느껴진 적이 짧은 기간 동안 적지 않았다.
스웨덴 사람들은 내가 도움을 청했을 때 항상 흔쾌히 도와줬었다.
조금 더 오랜 시간을 스웨덴에서 보낸다면, 만만치 않은 스웨덴에서도 내가 설 수 있는 자리가 하나쯤은 생기리라 믿는다.
잘 쓰지도 못하는 제 글을 관심 있게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모 친구분과 큰아빠, 그리고 주영이 아줌마 모두 고맙습니다.
저도 주영이 보고 싶었는데 같이 놀러 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리플에 따로 인사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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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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