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희 (인천청소년기본소득포럼 대표, 現인천송현초등학교 교사)

저자의 말

현직 초등학교 교사로 교육 현장에서 오랜 시간 아동, 청소년을 만나며 교육을 개인의 노력이나 학교 안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는 관점을 고민해 왔습니다. 청소년기본소득, 청소년 주치의 제도, 지역 기반 교육 생태계 등 현실적인 정책과 구조 설계를 중심으로 ‘아이를 혼자 두지 않는 사회’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 연재는 한 달에 한 번씩 게재하고자 합니다. 

흔히 ‘교육’이라고 하면 우리는 엄숙한 풍경을 떠올린다. 칠판 앞에 선 선생님,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 그리고 가끔은 졸음과 치열하게 싸우는 아이들의 뒷모습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교육을 논하는 자리에서 ‘돈(기본소득)’을 주고, ‘의사(주치의)’를 붙여주고, ‘교통비(무상교통)’를 내주자고 하니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건 교육 정책이 아니라 복지 정책이잖아요?" 

필자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배가 고파 집중력이 흐트러진 아이에게 함수를 가르치는 것과, 아이가 당당하게 친구와 밥 한 끼 사 먹을 자원을 쥐여주는 것 중 무엇이 더 본질적인 교육적 행위일까?

‘기본 교육’의 핵심은 아이들을 단순히 교실 의자에 앉혀두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관계 맺고 성장할 수 있는 ‘삶의 토대’를 공공의 이름으로 제공하는데 있다.

지난 칼럼에서 남쪽의 귤을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남귤북지(南橘北枳)를 이야기했다. 아무리 좋은 교육과정(씨앗)을 도입해도 아이들이 살아가는 환경(토양)이 척박하면 교육은 결실을 볼 수 없다. 그래서 기본 교육의 세 가지 기둥은 각각의 정책이 아니라, 아이들의 일상을 지키는 하나의 유기적인 ‘교육적 설계’이다.

관계의 문을 여는 열쇠와 마음을 지키는 안전 기지

기본 교육의 첫 번째 기둥인 ‘청소년기본소득’은 아이들에게 사회로 나갈 수 있는 ‘입장권’을 쥐여주는 일이다. 관계는 자원을 타고 흐른다. 친구가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할 때 주머니 사정을 고민하며 "나 학원 가야 해"라고 거짓말을 해야 하는 아이에게, 교실에서 배우는 '평등'과 '우정'은 그저 시험지 위의 정답일 뿐이다.

월 3만 원의 기본소득은 아이가 친구에게 "오늘 내가 살게"라고 말할 수 있게 한다. 이 사소한 한마디가 아이의 사회적 관계망을 만들고 자존감을 세운다. 스스로 자원을 운용해 보며 타인과 교류하는 법을 익히는 것, 이것보다 더 생생하고 실질적인 사회성 학습이 어디 있겠는가? 돈은 아이들의 주머니에 머물지 않고, 타인에게 다가가는 '용기'로 치환된다.

두 번째 기둥인 ‘청소년 주치의 제도’는 아이들에게 ‘안전한 기지’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공부도 몸과 마음이 튼튼해야 할 수 있다는 뻔한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 아이들은 아파도 어디로 가야 할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모른 채 방치되곤 한다. 특히 마음의 병은 더 그렇다. 여학생들의 경우 생리의 관리 문제도 있다.

청소년 주치의 제도는 아이가 위기에 빠져 무너지기 전, 평소에도 자신을 지켜봐 주는 어른 전문가가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선생님, 저 요즘 잠이 안 와요"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신뢰 관계가 형성될 때, 아이는 비로소 배움에 몰입할 수 있는 정서적 토양을 갖게 된다. 자신의 몸과 마음의 주권을 찾는 과정, 즉 '자기 돌봄'의 역량을 기르는 것 역시 기본 교육이 지향하는 중요한 교육적 목표다.

담장을 넘는 배움, 도시 전체를 교실로 만드는 이동권

마지막 기둥인 ‘청소년 무상대중교통’은 아이들의 배움터를 교실 너머 도시 전체로 확장하는 ‘이동권의 보장’이자 ‘공간의 주권’이다. 가난한 아이들의 동선은 대개 학교와 집, 그리고 저렴한 편의점이나 PC방으로 한정되기 마련이다.

버스비 몇 천 원이 아까워, 또는 부모가 여러 이유로 자녀의 이동을 보장하지 못해 가보고 싶은 도서관이나 전시회를 포기하는 아이들에게 "세상을 넓게 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방기이다. 교통비 걱정 없이 우리 고장의 산과 바다, 박물관과 광장을 누빌 수 있게 될 때 도시 자체가 거대한 교과서가 된다.

이동권의 보장은 아이들에게 ‘나도 이 도시의 시민’이라는 감각을 심어준다. 길 위에서 만나는 수많은 풍경과 사람,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의 경험은 그 어떤 교재보다 풍부한 배움을 선사한다. 경제적 여건에 상관없이 누구나 도시의 문화적 자본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교육 불평등의 출발선을 맞추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아이들이 버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자신의 세계가 한 뼘씩 넓어지는 경험을 한다면, 그것을 교육이라 부르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결국 이 세 가지 제도가 결합할 때 비로소 ‘기본 교육’은 완성된다. 돈이 없어 관계에서 소외되지 않고(기본소득), 몸과 마음이 아플 때 기댈 곳이 있으며(주치의), 어디든 원할 때 갈 수 있는(무상교통) 환경. 이것이 ‘아이를 혼자 두지 않겠다’는 사회적 약속의 실천이다.

그동안 ‘머리에 지식을 집어넣는 과정’으로만 좁게 해석해 온 교육의 정의는 아이가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당당하게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삶의 조건’을 재배치하는 작업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일구어 갈 내면의 힘은, 사회가 마련해 준 단단하고 안온한 삶의 토대 위에서 비로소 온전하게 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준희 필자 프로필

現 인천청소년기본소득대표
現 인천송현초등학교 교사
現 동구마을교육협의회 사무처장
現 동구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 이사
現 서흥꿈세움교육사회적협동조합 이사
前 전교조인천지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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