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체험 농장에 갔다가 주차했던 남의 창고 앞에서 돌담이 무너지면서 무릎을 크게 다쳤다. 겨우 일어서서 통증을 참고서 귤을 따왔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마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욕심나는 대로 귤을 따왔다.

이후로 따온 귤값보다 병원비가 더 나갔지만, 붕대로 감은 다리를 뻗치고 앉아서 까먹는 귤도 꿀맛이다. 이렇게 하나 남고, 하나 손해나는 것이 요즘의 내 생활이다.

송악산 지키기 투쟁 백서. [사진 - 문영임]
송악산 지키기 투쟁 백서. [사진 - 문영임]

덕분에 남는 것도 하나 생겼다. 집안에 앉아서 『송악산 지키기 6년간의 투쟁백서』를 받아볼 수 있었다. 송악산개발반대대책위원회 대표인 김정임 님이 아침 일찍 제주시로 회의를 가는 바쁜 시간 중에도 들러서 전해주었다.

이 백서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제주도 행정과 개발업자들 사이에서 지역주민들과 도민이 함께 송악산지역을 자연 그대로 역사의 현장으로서 평화공원으로 지키고자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투쟁한 기록이 시간대별로 정리되어 있었다.

작년에 제주로 온 나에게는 이곳 제주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삶터를 지켜왔는지 생생한 기록을 볼 수있는 너무 좋은 자료가 되었다. 물론 작년 8월부터 있었던 ‘송악산 개발을 어떻게 할것인가?’를 두고 도민회관에서 매달 있었던 토론회를 통해서 현 송악산 개발에 대한 도민들의 희망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은 지난 과거의 사건들을 통해서 송악산을 둘러싼 알뜨르는 물론이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주 제2 공항 백지화 운동까지 시민운동의 과정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알뜨르비행장 일제 전적지. [사진 제공 - 김정임]
알뜨르비행장 일제 전적지. [사진 제공 - 김정임]

제주도에 대한 개발 계획은 항일투쟁시기 때에 일본군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이후 일본군이 물러나니 미군이 점령군으로 들어와 미군의 군사시설로 쓰였고, 6.25전쟁 땐 육군 제1 훈련소로 사용되면서 중공군과 북한군 포로 수용소로도 쓰였다.

문제는 박정희 정권부터 시작된 제주도 관광개발 계획이 수십년동안 점점 더 세부화되고 법제화되었다는 것이다. 1988년 정부가 송악산 일대에 군사기지와 비행장을 건설하려는 계획이 추진되었으나 이 때부터 대정읍 주민대책위가 구성되고 시민사회가 참여하면서 반대운동이 확산되었다.

이후에 반복되는 정부의 개발 계획은 서서히 제주도정의 일방적인 개발로 진행해 왔다. 현재 모습의 송악산과 알뜨르 비행장은 도민과 시민사회의 투쟁으로 지켜낼 수 있었다.

제주도의 지역 개발을 위해서 제일 먼저 실시되는 것이 환경영향평가다. 그러나 제주도는 전문기관의 검토의견을 누락하고, 사업입지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심의에 반영하지 않는 방법으로 개발사업이 인허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제주도의 환경영향평가 절차와 이를 포괄하는 제주도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도민의 신뢰를 잃을만큼 심각한 수준으로 전락했다. 또한 환경영향평가 검토의견 작성과정에 사업자의 대행업체가 관여하는 사실도 있었다.

지난 수십년간 송악산을 늘 돈벌이를 위한 개발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관광투기자본의 시선’이 기본적이었다. 더하여 개발 계획은 도정과 결탁하고, 대정주민 일부의 개발 욕망을 부추기며 추진됐다. 송악산의 지질학적 가치나, 자연 경과의 훼손, 역사 유산의 훼손, 하수로 인한 해양생태계의 파괴는 정부도 도정도 매번 관심 밖이었다.

윤석열 탄핵집회에서 송악산 지키기 서명운동. [사진 제공 - 김정임]
윤석열 탄핵집회에서 송악산 지키기 서명운동. [사진 제공 - 김정임]

이런 무분별한 개발 사업을 막고 나선 것은 조상부터 살아온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며 이 땅을 후손에게 건강하게 물려주고 싶은 도민과 시민사회의 끈질긴 투쟁의 결과다.

1985년, 제주도정의 종합휴양관광지구 개발 계획과 87년 군사기지 계획 발표의 백지화를 시작으로
1994년, 관광지구 지정에 따른 대명레저산업의 사업시행 예정자 지정과 취소,
1999년, 남제주군과 남제주리조트 개발 등의 1차 분화구 내 호텔 개발 추진과 개발 반대운동의 격화와 뒤이은 개발 사업자 측의 자격상실과 2003년 관광지구 백지화가 되면서 일단락되었다.
2013년, 중국의 신혜원 자본에 의한 ‘송악산 뉴오션타운’ 호텔 개발 사업의 추진 반대를 시작하여 2019년 초 조건부 환경영향평가 심의 통과 후 송악산개발반대대책위와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개발 반대 투쟁,
2020년, 도의회의 환경영향평가 부동의와 원희룡 도정의 송악선언을 거쳐 마침내
2022년 12월 송악산을 보존(도립공원 확대 방안)을 위한 송악산 주변의 신혜원 땅을 제주도가 매입하기로 합의함으로써 한 매듭을 지었다고 한다.

거대자본을 끼고 관공서라는 권위와 권력을 가지고 꾸준하면서도 도발적인 도정과 도정과 뜻이 맞는 지역 유지들을 상대로 송악산 개발을 두고 끊임없이 토론을 벌이며 투쟁하여 온‘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일반 주민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야했다.

그들은 시장과 관공서 등에서는 개발의 허구성과 불합리성을 알리고, 지역민들의 뜻이 무엇인지 알리기 위한 거리와 온라인 서명전을 하고, 수년 동안 꾸준한 집회로 거리 투쟁과 손팻말 운동을 하고, 사회 각계 계층의 전문가들을 불러 부당한 개발과 지역민들의 갈등과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서 꾸준히 토론회와 마을 교육을 해왔다.

도민과 시민단체는 무엇보다 송악산 일대를 역사문화유적으로 지정하고,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과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길 원했다. 하지만 제주도정은 송악산 일대가 유원지로 지정되어 있다는 이유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지구추가 등재를 하지 않았다. 송악산 일대가 세계자연유산 급의 지질학적 가치를 충분히 갖고 있음에도 제주도정은 적극적으로 보전해야 할 행정적 책임을 방기하고 오히려 환경영향평가의 결과를 은폐, 누락시켜 가며 개발사업을 추진해 왔다.

송악산 투쟁 시간순 기록. [사진 제공 - 김정임]
송악산 투쟁 시간순 기록. [사진 제공 - 김정임]

백서에 따르면 2021년 난개발로부터 송악산을 보호하겠다며 ‘송악선언’을 발표한 전 원희룡 제주도청은 국가 차원의 체계적 관리가 가능한 국립공원 지정 대상을 약속했으나, 지역 유지들과 도의원의 요청에 의해 송악산을 빼 달라고 환경부에 요청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고 한다. 이로써 송악산 국립공원 지정은 무산됐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송악산 위상이 한층 더 강화되고 국가 재원도 지원받아 관리할 수 있는데 왜 제외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전 원희룡 제주도행정부의 ‘송악선언’은 송악산 일대를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을 토대로 한 송악산 보전방안이였다. 도는 발표를 토대로 송악산 일대 관리방안 마련을 위한 용역에 돌입했다.

하지만 용역 과정을 거치면서 사실상 송악산 일대에서의 기존 유원지 사업은 그 효력을 잃었다. 유원지 효력이 사라짐에 따라 각종 개별 개발사업이 무분별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송악산 일대에서 다양한 개발행위가 가능해질 수 있는 위험도 겪었다.

제주 송악산 난개발을 막겠다는 목표로 수행된 용역이 ‘문화재 보호구역 지정’ 공약을 되물리고 체육센터-전망대 설치를 대안으로 내놨다. 더 큰 문제는 함께 제시된 ‘송악산 지역상생계획’이다. 용역진은 지역 자생단체와 주민등과의 면담 및 설명회를 거쳐 지역주민의 필요사업을 확보하고, 관련 의견수렴 및 실태조사를 거친 결과 6개의 사업을 발굴했다고 설명했다.

제시된 사업은 ‘송악산 세계지질공원센터 건립, 문화체육복합센터, 산이수동항 기반시설 확충 및 사계절 활용 방안, 관광객 확대 유입을 위한 야간관광 활성화, 해돋이․해넘이 전망대 건설, 어른신 문화관광해설사 양성’들이다.

난개발 방지를 목적으로 수행된 용역의 최종 결론이 센터 건립과 관광객 유치를 위한 시설 조성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그동안 활동해 왔던 송악산개발반대대책위의 큰 반발을 받았다. 제주 환경운동연합은 “제시된 지역주민 상생방안은 사실상 송악산을 훼손할 우려가 큰 계획”이라고 비판하며 “이 계획을 즉각 폐기하고 어떻게 하면 송악산의 환경가치를 미래세대에 돌려줄 수 있을지 고민하여 정책에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3년 1월 10일 대정여성농민사무실에서 열린 송악산개발반대대책위는 ‘송악산 용역 최종보고서’와 ‘환경영향 평가 정책 토론회’와 ‘알뜨르 평화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토론회를 도민회관에서 열기로 의논했다.

이 토론으로 송악산은 최대한 온전히 보존하자, 사계-송악산까지의 해안도로가 일출장소로 충분하다는 것, 송악산 주변을 생태관광과 역사관광으로 하자, 지질센터를 유치하여 송악산의 지질학적 가치를 높여 천연 기념물로 지정하자. 2020년에 이어 2030년 종합계획이 수립될 때에 송악산과 알뜨르가 들어가도록 노력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2020년 송악산개발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관련 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를 상대로한 시위. [사진 제공 - 엄문희]
2020년 송악산개발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관련 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를 상대로한 시위. [사진 제공 - 엄문희]

마침내 태평양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비행장에 조성하는 ‘제주평화대공원’ 사업이 속도를 내게 됐다. 행정안전부는 국방부 소유의 국유재산인 알뜨르 비행장의 무상사용을 골자로 한 제주특별법 개정안이 2024년 1월 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었다.

이 법안에는 7단계 제도 개선과 국유재산 특례를 포함하는데 그 중에 알뜨르 비행장 국유지 가운데 활주로를 제외한 군사유적지 69만m²를 ‘10년 무상사용, 10년마다 계약 갱신’을 조건으로 제주도가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알뜨르 비행장 무상사용이 가능해지면서 송악산 난개발을 막아낸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김정임 대표는 “송악산과 연계된 알뜨르가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다. 송악산의 지질과 경관은 자연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고, 더불어 일제 강점기 당시 건설된 동굴진지와 알뜨르비행장, 격납고 등은 역사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러한 역사적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여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켜야한다. 이것이 진정한 평화의 섬, 제주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 백서는 ‘송악산-알뜨르 평화대공원’을 위한 대안 만들기 투쟁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송악산개발반대대책위원회를 해산하면서 발간된 것이다.

송악산 -알뜨르 개발 반대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구체적인 형상’과 ‘구체적인 대안’을 둘러싼 개발 반대투쟁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군사적 시선’과 ‘자본 주도의 개발적 시선’을 거두고 , ‘평화’, ‘생태’, ‘공유’ 시선으로 송악산을 제대로 보전하고 알뜨르 평화대공원을 아래로부터 함께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은 이제 ‘개발 반대’에서 ‘구체적인 대안’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다른제주연구소 박성인 운영위원장은 주장했다.

이들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제 제주를 넘어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대되어 활동하면서 현재까지 꾸준히 ‘송악산과 알뜨르를 어떻게 제대로 보전할 것인지?’ ‘어떤 평화대공원으로 만들어갈 것인가?’를 두고 더욱 치열한 운동을 시작하자는 현지인들의 몸부림 속에서 출간된 것이 이 백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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