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부터 쓰기 시작한 연재에 대한 인사로 『통일뉴스 백서(2000-2025)』와 함께 보내준 작은 책자의 이름은 『헌법을 우리말로 다듬었다고?』다. 우리나라 헌법을 작은 책자로 출판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처음엔 이게 그 책인가 보다 했다.
하지만 첫 장을 넘겨 읽다보면 생소한 단어들이 많다. 먼저 ‘으뜸버리’부터 뭐지 했는데 이게 법 그것도 최고 높은 ‘헌법’을 의미했다. ‘임자(주인)’ ‘아람(백성, 국민)’ ‘새뜸(신문)’ ‘널냄(방송)’ ‘멀봄(텔레비전)'... 우리에게 익숙했던 주인, 국민, 신문, 방송 같은 말들은 모두 종살이말들이라고 했다.
이 글을 쓴 한실 님은 『푸른배달말집』을 2024년 올해의 책으로 출간하고 같은 해 우리말 으뜸지킴이로 뽑혔다. 그에 따르면 엉클어진 우리말에 눈을 떠, 죽어가는 우리말을 살려내고 어려운 한자말과 하늬말을 쉬운 우리말(겨레말)로 다듬고 풀어서 일상으로 헌법이라고 불렀던 왜종말을 순 우리말로 쓴 ‘으뜸버리’를 낸 것이다.
그의 글을 따라 읽다보면 우리말을 제대로 쓰지않는 새뜸은 물론이고 멀봄에서 다스림이들이 종살이말들을 마치 유식하고 더 고급 이미지를 준다는 둥 국제화라는 이유들을 들어 함부로 쓰는 세태를 보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한 일인지 알았으면 좋겠다.
우스개 소리라고 하기엔 주변에 흔했던 힐스테이트, 더샵, 아이파크 같은 수많은 아파트 이름들은 이젠 아주 옛말이 되었다. 이젠 아예 Helio City, The PRAU FORENA, 힐스테이크 리버뷰, 오션뷰... 같은 시어머니가 찾아오지 못하게 지었다는 아파트 이름들이 무색한 이런 이름들을 이젠 공식적인 국가 행사나 기관명으로 지방 단체의 행사는 물론이고 동네 깊숙한 작은 가게 이름에서부터 동아리 모임을 알려주는 전갈이나 기별에서도 문장을 넘어가기 어렵게 많다.
차라리 영작문을 보내던지 군데군데 꼬부랑말 뒷받침을 섞어쓴 문장은 해독도 어렵고 전달하는 이의 뜻도 헤아리기 어렵다. 그저 ‘그래 너 잘났다. 우리 말도 제대로 못 쓰면서 무슨 좋은 일을 해..’라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이번에 불법 계엄으로 사형 구형를 받은 윤석열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위치에서 “영어가 좀 더 멋있지 않나”라는 말을 버젓이 멀봄의 새뜸에서 내뱉고 있으니 가히 이 나라의 언어가, 우리 겨레의 말들이 바로 우리 자신들에 의해서 멸시받고, 천대받고 능멸당하고 있는 것이 가는 곳마다, 보는 것마다 눈에 밟힌다.
가끔 가까운 좁은 골목에서 반짝이는 우리말 간판들을 보면 그렇게 정다워 보일 수가 없다. 더하여 정말 창의적이고 착상이 뛰어난 이름들을 볼 수도 있다. 고 신영복 교수 님의 시 ‘처음처럼’을 소주의 이름으로 만들어 획기적인 발상으로 인정된 손혜원 님의 솜씨가 아니여도 주변을 둘러보면 새벽별을 보듯이 반짝이는 간판들과 마주칠 때는 주인장을 만나보고 싶은 호기심까지 든다.
아마 우리가 외래어를 더 유식한 사람들,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쓰는 말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게 된 것은 오랜 한자 사용의 역사 때문일 것이다. 한문이란 것이 조선 사회의 입신양명의 도구로 쓰이던 중국의 학문을 답습하는 과거시험에서 시작되어 학식과 출세를 드러내는 문자가 되었던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전자가 되었을까? 이젠 중국의 학문을 표시하던 한자를 대신해서 영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인지,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이름들이 난무하는 게 참 많이 불편하다.
언젠가 온라인 모임으로 이런 저런 일을 많이 할 때였다. 모임을 시작하고 참여한 사람들이 몇 사람씩 나누어 주제 토론을 하자는데 ‘퍼실리에이터’라고 소개가 되었다. “퍼실리에이터가 뭐예요?” 라고 물으니 주제 토론을 이끄는 사회자를 부르는 말이라고 했다.
그 모임과 주제에 관심이 많았었지만 느닷없는 ‘퍼실리에이터’의 등장에 완전히 흥미를 잃은 적이 있다. 그 모임 자체가 평등과 자유를 주장하는 모임인데 한실 님의 뜻을 빌리자면 그 모임이 종살이모임이 된 것이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우리 속담도 있고,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는 한문도 있고, ‘The tongue has the power of life and death 혀에는 생명과 죽음의 힘이 있다’는 서양의 격언도 있다. 말과 언어에 대한 속담과 격언들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쓰는 말의 힘을 드러내는 것이다.
한동안 K-pop이라고 부르는 한국의 대중음악이 여러 나라에서 유행을 하는 것이 이제 겨우 15년이 되어 간다. 2000년 초반부터 한국 가수들이 일본과 동남아시아에서 ‘한류’로 시작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세계 사람들이 누구나 아는 비틀즈니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서양 가수들에 의해서 서양 대중음악이 세계적인 유행을 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1940년 후반부터 시작했으니 약 7,80년이 되어간다. 하지만 영국의 대중음악을 E-컬쳐, 미국의 대중음악을 A-문화라고 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이 안하는 거지 우리가 K 컬쳐라고 할 수는 있다. 대중음악이든 일반인들이 즐기는 정말 대중문화이니깐...
하지만 K-pop를 넘어서 이젠 K-Food, K-Beauty, K-Defense, K-Culture로 난무하는 이름들이 버젓이 멀봄의 사회자들에 의해 스스럼 없이 쓰인다. 정말 우리나라의 문화를 세계화시키는 방법이 이런 방법 밖에 없었을까? 내 이름을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첫자만 따서 부르면 그게 정말 나를 잘 표현한 유일한 말일까?
우리 헌법을 읽으려고 『헌법을 우리말로 다듬었다고?』 책을 읽게 된 것은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우리말, 계레의 말 낱말 낱말 하나하나에 고개가 끄떡여지고, 그 뜻이 너무나 소중하고 중요하게 생각됐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에서나 비로소 한자도 아니고, 영어가 아니여도 충분히 헌법의 뜻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고, 선명하게 체감되는 우리말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집회의 자유, 시위의 자유 같은 낱말이 왜말일 뿐만 아니라 말씨가 꼬부랑말 뒤침말씨(서양말 번역투)이면서 왜말씨를 그대로 가져온 보기라서 마음껏 말하기, 마음껏 책내기, 마음껏 모이기, 마음껏 무리지어 함께 뜻 펼치기처럼 우리말씨로 바꾸었다”라는 그의 머리말에 드러난 그의 뜻이 요즘 세태에 비하면 너무나 중요하고 소중한 작업이였기 때문이다.
으뜸버리 아홉째가지(헌법 제 9조)
나라는 내리삶꽃(전통문화)을 이어 꽃피우고 겨레삶꽃(민족문화)이 뻗어 자라나도록 힘써야 한다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 막혔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 다방면으로 노력을 하고 있고, 그 중에 통일부는 「남북교류협력법 시행령」의 고시를 앞두고 있다. 이 시행령이 발효되면 여러 가지 통일 사업 중에서도 2026년 남북협력기금의 총 운용규모 1조 4,2778억원의 사업비 중에서 26억 700만원의 예산으로 북한과 최종 합의를 통해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을 위해서 종이사전 형태의 『겨레말큰사전』 발간을 추진한다고 한다.
북한은 평양말을 기초로 한 문화어를 표준으로 삼고 있으며 외래어 사용을 억제하고 남한처럼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으며, 고유어 중심으로 일상 용어가 발달되어 있다. 예를 들면 주차장→차마당, 노크→손기척, 아파트→살림집 등에서 알 수 있는듯이 남한에서는 외래어(꼬부랑말 뒷받침)가 그대로 남한 말이 되어버렸으니 언어의 이질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남북한공동편찬사업으로 발간될 『겨레말큰사전』에는 어떤 말들이 들어갈지 무척 궁금하다.
한쪽은 외래어를 억제하고, 한쪽은 외래어를 숭상하는 수준이니 그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 만큼 날텐데도, 순수 우리말 큰사전을 공동작업한다는 것으로만도 서로의 다름을 함께 맞춰보겠다는 노력 아닌가!
『겨레말큰사전』 발간을 계기로 최소한 남한에서 꼬부랑말 뒷받침을 마치 유식하고 교양있으며 권위있는 말로 남발하는 매국적 행태라도 수그러들고 그 사용자들이 부끄러운 줄 아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