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15일에 나주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그를 따라 정말 새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부용산' 노래를 부른 안치환 가수는 알아도 안성현 작곡가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나주에서 오신 정찬용 선생은 안성현 작곡가와 함께 양강도 예술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는 ‘이만갑 식당’의 허성원 사장님을 만나러 제주까지 내려오신 것이다.
안성현 선생과 같은 직장에 있었다면 하나라도 더 안성현 선생에 대해서 아는 게 있을 것 같아서 만나보고 싶었다고 한다. 정작 허 사장님은 안성현 작곡가에 대하여 정찬용 선생보다 아는 게 없었다.
정찬용 선생의 명함에는 나주의 지역사회의 이런저런 단체의 이름이 꽉 차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지역사회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 중 나주읍 남평읍 광이1리 이장이기도 한 그는 그의 고향이 낳은 인물들에 애정이 깊었다. 국가나 사회에서 하지 못하는 지역인물들을 찾아내 지역사회를 알리고, 역사로 기록하고 싶어했다. 내가 태어난 고향을 빛낸 인재를 찾아 후세에게 남기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이 잔잔하게 내 가슴에 온기를 준다.
안성현 작곡가는 1920년 전남 나주 남평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은 함경도 함흥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일본 도쿄의 동방음악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고향에 돌아와 후학을 가르치다 한국전쟁 중 무용가 최승희와 우리나라 리얼리즘 문학 비평가 안막의 딸인 안성희와 함께 월북했다.
남쪽의 빨치산들이 산오락회에서 애창했다는 그의 노래 ‘부용산’은 한국에서 50여년간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 ‘부용산’은 안성현이 목포 항도여중 교사로 재직할 때에 동료였던 시인 박기동 씨가 요절한 여동생을 생각하며 쓴 시에 붙인 작곡이였다. 전쟁으로 가족이 흩어지고 어디서 죽을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들의 삶이 박기동 시인의 여동생과 같다고 생각해서 빨치산들이 불렀을지 모르겠다.
지금도 노래의 애절한 가사가 사랑받는 것은 생명에 대한 여한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성현 작곡가의 아버지인 안기옥 선생은 우리나라 가야금 산조의 전설적인 큰 어른으로 양강도에서 오래동안 사셨다고 한다. 이후에 안성현 선생님은 백낙삼 부인을 양강도 예술단에서 만나 안화열 따님을 낳았다. 이후 안화열 따님은 평양대학에서 가야금을 가르쳤다고 한다.
양강도에서의 생활이후 평양대학에서 그의 부친인 안귀옥 선생님과 함께 남한과 북한의 분단사 속에서 조선 음악에 대하여 독특한 궤적을 남겼다. 월북 전에는 남평 드들강의 풍광에서 영감을 받아 민족적 정서를 음악으로 승화시킨 천재적인 작곡가로서 그의 대표작으로는 ‘엄마야 누나야’, ‘부용산’과 함께 ‘진달래’, ‘내 고향’, ‘봄바람’ 등이 있다.
안성현 선생은 항도여중에서 가르치면서 10여 곡의 작곡집을 내셨다. 정찬용 님이 나주문화원 일원으로 활동하시던 2008년 ‘엄마야 누나야 노래비 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2009년 나주시 남평읍 드들강변 소나무 숲안에 건립되었다.
이 노래비는 민족음악의 정서와 고향의 풍광을 담은 문화유산으로 안성현 선생이 어린시절 느꼈던 자연과 음악적 영감을 함께 체험할 수 있도록 사람이 다가가면 노래가 나오도록 센서까지 달았다.
또한 그는 ‘안성현노래연구회’ 회원으로 나주시에 요청하여 안성현 선생이 항도여중에 계실 때에 출판하였던 자필이 있는 작곡집을 현대식으로 편곡하고 CD를 제작하여 나주 지역에 배포하였다.
이후로 2016년 연변대학을 방문하여 안성현 작곡가에 대해서 연구하시는 최옥화 교수님과 김병민 총장님을 만나서 안성현 작곡가님의 집안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그때 김병민 총장님은 본인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에 평양대학에서 안귀옥, 안성현 부자를 만나봤다. 안 부자는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안에서 조선의 민족음악을 채록하고 발굴하고 복원하여 집대성을 하였다. 조선음악의 영웅이다’라고 전해주었다”며 당시에 이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복받쳤다고 한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는 김소월의 시에 작곡을 한 20여 명 중 맨 처음으로 안성현이 곡을 붙인 작품으로 1948년 안성현 제2작곡집에 수록된 4분의 4박자의 노래다. 우리가 배웠던 전 국민적 동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는 1950년 KBS 경음악단 김광수 선생의 4분의 3박자 왈츠곡이다.
나도 어린 시절에 외로움을 느낄 때나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끔 불렸던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되니 내 주위에 어디서도 듣지 못할 신선한 이야기를 갖고 사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왠지 복받은 기분이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