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 이양재 (식민역사문화청산회의 공동대표)
나의 지난번 연재 ‘고성이씨의 과괄과 옛 족보’에 관하여, 그 논지를 숙지도 못한 상태에서 누군가가 1월 6일 자 [한문화 타임스]에 “역사 왜곡의 칼날을 멈춰라: 이양재의 ‘행촌 이암’ 폄훼와 식민사관적 편견을 비판한다”1)라는 비판을 위한 비판을 기고하였다.
그 이상한 글을 본 나는 조만간에 ‘고성이씨의 과괄과 옛 족보’를 더 명확히 수정하여 달라는 어느 민족사학회지의 요구에 부응할 것이다. 그에 앞서 아래의 사실을 간략히 지적하고자 한다.
1. [한문화 타임스]에서는 마치 내가 “1. ‘유학자=사대주의자’라는 조잡한 이분법적 망상”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행촌 이암을 사대주의자로 낙인을 찍고, 고성이씨 가문의 역사를 허구로 몰아세웠다.”라고 누군가를 선동질하고 있다.
우습다. 나의 글 어디에 그런 부분이 있는가? 우리나라 유학의 종주는 설총(薛聰, 655~?)이며, 사대주의에 찌들기 시작한 것은 성리학과 주자학이 번성하던 16세기부터라는 것은 유학자들의 상식이 아닌가? 행촌 이암(李嵒, 1297~1364)은 성리학자도, 주자학자도, 도학자도 아닌, 고려말의 보통 유학자이다.
2. [한문화 타임스]에서는 “2. 가문의 보존 의지를 부정하는 오만함”이 나에게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 조선후기에 만든 1753년 [고성이씨족보] 계유보에 있는 시조 이황(李璜)의 항목에서 “한나라의 ‘한문제시 휘반 시문경후 이십사세손 휘황운이 현일불가고(漢文帝時 諱槃 諡文景后 二十四世孫 諱璜云而 玄遠不可攷)’라고 하였는데, 그 기록은 어떻게 된 일인가? 여러 종의 [고성이씨족보]에 그런 기록이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 않은가?
나는 그것을 행촌 이암의 주장이라고는 하지 않고, 조선중기의 사대주의자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시대를 내려 잡았다. 이것은 고성이씨를 배려한 것이다. 이러한 사대성을 비판한 것이 “명백한 논리적 오류이자, 우리 민족의 주체적 역사를 거부하는 식민사관의 잔재일 뿐”인가?
3. [한문화 타임스]에서는 “‘왜독(倭毒)’ 프레임, 누가 진짜 독에 중독되었는가?”를 묻고 있다.
답변한다. 이유립과 일본 극우 ‘카시마 노보루’와의 긴밀한 관계를 좀 검토해 보길 바란다. 이에 관해서는 2022년 8월 2일 자 인터넷 ‘통일뉴스’에 연재한 나의 글 “이유립과 『환단고기』, 『다물 구음』 - [연재] 애서운동가 이양재의 ‘국혼의 재발견’ (26)”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776)
그리고 나는 1970년대 중-후반에 이미 이유립을 수차 만난 바 있다. 그의 [환단고기]가 쓰인 배경을 잘 안다. 지적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4. [한문화 타임스]에서는 “대종교 표절설의 허구와 독립운동사의 부정”을 들먹이고 있다.
대종교에서는 단 한번도 [환단고기]를 인정한 바 없다. 나의 증조부가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그의 두 아우가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며 독립운동으로 삶을 불사르던 그 혹독한 시기에, 이유립은 친일의 언저리(조선유교회)를 맴돈 인물이다.
해방후에 항일 독립운동을 했다고 주장하며 나타나는 많은 인물들의 투쟁 조작을 나는 아주 쉽게 간파한다. [한문화 타임스]의 논자가 처절한 독립전쟁을 하여 5대가 망한 집안의 자손인 나를 매도하며 비판하는 것은,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비판 근거를 왜곡하고는 있지만, 비판이 고맙다. 이렇게 왜곡 대응하는 것은 누군가가 내 글을 심각하게 읽고 있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비판의 번지수를 잘 못 찾았기에 흥미롭게도, 어쩌면 그는 나의 가장 큰 동지가 될 수도 있는 사람같다.
5. [한문화 타임스]에서는 결론으로 “역사 광복의 길을 가로막지 마라”고 쓰고 있다.
내 글 어디가 “인신공격과 가문 모독으로 점철되어” 있는가? 귀하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 식민주의자라고 몰아세우는 참 편한 ‘전가의 보도’를 내게 마저 꺼내 들었다.
나는 독립전쟁을 하는 심정으로 일본 신도의 침입과 우리 역사의 새로운 왜곡에 대항하여, 오직 백암 박은식(朴殷植, 1859~1925), 단재 신채호(申采浩, 1880~1936), 무원 김교헌(金敎獻, 1868~1923), 애류 권덕규(權悳奎, 1890~1950), 민세 안재홍(安在鴻, 1891~1965), 위당 정인보(鄭寅普, 1892~1950) 등등이 추구했던 독립운동가들의 민족사관만을 지지한다.
골수 친일파 최동(崔棟, 1896~1973)이나, 총독부 군수 출신 문정창(文定昌, 1899~1980), 친일 조선유교회의 간부 이유립(李裕岦, 1907~1986)과 친 대만파 황상기 등등의 자칭 민족사학은 우리 민족사학의 본질을 흐리는 반민족적 왜곡 및 침탈 행위임을 다시금 지적한다.
민족사학의 왜곡된 꿈을 꾸는 자들이여, 꿈에서 깨어 민족사학의 원점으로 돌아오라.
추신
“기-승-전-식민사관 이외에는 할 말이 없는 듯한 글이다. 고성이씨의 역사적 정체성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명쾌하게 설파한 글에 대한 반론으로는 수준 미달이다. 이양재 선생이 잘 지적하였듯이 <환단고기>에는 신도(神道)의 역사관이 심어져 있다. 이미 여러 역사학자들이 지적한 바와 상통한다. 전재우, 임채우와 같은 실사구시의 마음으로 사안을 냉철하게 보기 바란다”
[한문화 타임스]의 독자 ‘이형우’씨가 그 칼럼에 위와 같은 댓글을 달았다. 그 댓글을 무단 삭제할 가능성이 있어 위에 전재한다. 생면부지의 ‘이형우’씨의 양해를 바란다.
주(註)
1) [한문화 타임스], “역사 왜곡의 칼날을 멈춰라: 이양재의 ‘행촌 이암’ 폄훼와 식민사관적 편견을 비판한다”(http://www.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909)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