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맞는 2026년 새해다.
벌써 한국에 온지 6개월, 제주에서 새해 일출을 보러 나갔다. 집에서 가까운 송악산 일출을 보기 위해서 아직 어두운 새벽에 일어나보니 날씨가 보통 추운 게 아니다. 기상온도 1도이나 바람 때문에 체감온도는 영하 9도라고 하지만 하늘이 맑으니 일출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송악산 입구에서부터 일출을 보러 온 사람들과 상모리 마을주민회에서 준비한 일출제와 불꽃놀이 준비가 한창이다. 가만히 서 있으면 온 몸이 덜덜 떨리니 사람들이 모두 차에 시동을 걸어놓고 차 안에 있는지 주차장에 매연 냄새가 심했다. 우리도 차에 들어가니 바람만 막아져도 살 것 같았다.
새벽 6시 아직 여명도 보이지 않는 바다 위에서 불꽃이 터지니 장관이다. 떨어지는 불꽃을 넘실대는 검은 파도가 받아 안으니 마치 장엄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보는 것 같다. 화려한 불꽃 색깔이 바다도 색색으로 물들이다 사라지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난다.
안타깝게도 기다리는 해는 구름에 가려져 내가 원하는 여명과 일출은 아쉽게도 보지 못했지만, 올 해는 넘실대는 파도에 부서지는 불꽃의 장관을 본것으로 만족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요망진 밥상’ 식당엘 들렸다. 지난 12월 13일 난징 추모식을 끝내고 뒷풀이로 갔던 식당인데 당시에 주인장께서 새해 떡국 공양을 한다고 초대를 했기 때문이다.
송악산 일출을 보러 나온 자동차로 송악산 일대가 주차장이 된 것 처럼 양 방향 차선 주변에 빽빽하게 차들이 주차되어 있어서 식당을 코앞에 두고도 주차가 어려웠지만 다행히 주인장이 자신의 주차자리를 내어주었다.
벌써 10여년 동안 일출 떡국 공양을 해오셨다며 설명해 주는 옆자리 손님은 자신의 빈그릇을 들고 설겆이 봉사를 시작한다. 잘 익은 깍두기와 맛있는 떡국으로 찾아온 손님들을 대접하는 주인장의 얼굴이 싱글벙글 웃음이 가득하다. 물가도 오르고 경기가 안좋다는 뉴스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새해를 떡국 공양으로 시작하는 주인장 부부의 마음에 찾아오는 손님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하고 ‘요망진 식당’엔 사람의 온기로 후끈하다.
새해부터 텃밭 농사를 본격적으로 잘 해보자는 마음으로 김정임 님이 농가영농일지를 선물로 주었다. 일반 일지와 달리 이것은 3년이 한 페이지에 나눠져 있다. 올해의 1일과 내년, 후년의 1일이 한 페이지에 기록할 수 있는 형식이다. 보통의 개인 일정을 날이나 달로 기록해도 작년과 재작년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기는 쉽지가 않은데 이 일지는 3년을 기억하고 계획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다.
형식의 기발함은 물론이고, 농삿일이라는 게 이렇게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말이 실감난다.
단순히 식품점에 가서 필요한 채소며, 육류며 먹거리를 사던 도시 소비자에서 놀고 있는 빈터에 내가 먹을 먹거리를 위해서 텃밭을 꾸며보려던 생각에 한 대 맞은 기분이다. 몇 천원이든 몇 백원이라도 더 싸고 좋은것을 사려던 소비자와 달리 생산자인 농민들은 얼마나 자기 관리가 철저해야 하는가를 실감케 한다.
물론 모든 농가에서 이런 일지를 쓰진 않겠지만, 농업을 생업으로 시작하려면 이런 일지 작성이 차후에 농사 짓는 일에 얼마나 큰 자산이 되는지 모른다며 일지를 소개하는 김정임 님은 처음 농사를 시작하면서 기록한 일지가 책꽂이에 가득하다고 했다.
몇 년동안 꾸준히 일지를 쓰다보니 이젠 계절의 변화며 농작물의 생태가 한 눈에 보이지만 기후 온난화로 농사짓는 일이 예전과 같지 않아서 다시 일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에 우리것도 챙겨왔다고 했다.
새해 첫 송악산 달마실이 바로 1월 2일에 있었다. 새해 첫날부터 추워지기 시작한 날씨는 2일은 아침부터 눈발이 날리고 온종일 세찬바람과 눈이 멈추지 않았다. 5.16도로나 평화로등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넘어오는 길과 시내 길들에 대한 위험 안내와 온종일 계속되는 경보 때문인지 달마실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전화들이 쉬지않고 왔다.
하지만 달마실을 시작한 지난 6년동안 단 한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는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대표인 김정임 님의 단호한 대답에 우리도 단단히 차려입고 나갔다.
깜깜한 주차장에 전날 일출을 보려고 모이던 수많은 차량들에 비해 10여 대의 차들만 썰렁하게 주차되어 있어서 예상한 대로 참여한 사람들이 너무 없나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나쁜 일기에도 제주시는 물론이고 서귀포시에서도 온 참여자들이 20여 명이 넘는다.
송악산의 자연경관을 자연 그대로 지키겠다는 사람들의 의지가 모이는 간절한 바램이 성사되는 행사다. 천천히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겨서 송악산 둘레길로 들어가니 산이 바람을 막아주어 차라리 아늑함을 느꼈고, 구름 사이사이 비추는 달빛에 바다도 잔잔한 것이 낮에 받았던 일기 경보가 무색했다.
달마실 둘레길이 끝나가는 지점에 도착하니 촉촉하니 이마에 땀도 나고 등도 후덥지근하다. 달마실을 끝내고 모자를 벗으니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기까지 했다.
참여한 사람들이 뒷풀이로 ‘또또분식’에 모였다. 깔끔하게 말아주는 멸치국수를 비우면서 김현우 총무님의 제주 농사 이야기는 현실적인 제주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고발해주었다. 모슬포 토박이로 제주를 떠나본 적이 없다는 총무님은 자신의 어린시절은 물론이고 성인이 된 이후와 현재까지 제주도의 환경변화를 직접 목도하고 체험한 장본인이다.
집을 나와서 바닷가에 나가면 언제든지 따먹을 수 있는 해초들은 발에 걸릴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20여년 전부터 제주 농산물의 생산이 다양해지면서 비료와 제초제의 사용이 육지에 비교해 3배 정도 늘었다고 농협의 보고서에 나온다 한다.
제주는 오랫동안 보리와 콩농사를 지어왔고 보리와 콩은 그 뿌리들이 흙을 붙잡고 있어서 태풍이나 호우에 밭흙이 바다로 쓸려가지 않았다. 하지만 식생활이 바뀌고 다양해지면서 생산하는 채소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출하하는 농산물도 많아지면서 화학비료와 제초제의 과다 사용이 제주도 화산토질 성격 때문에 그대로 바다로 유입된다.
또한 브로컬리나 양배추, 무우 등은 뿌리가 약해서 밭흙이 호우나 태풍 때엔 그대로 바다로 떠내려가니 이전에 바닷가에 흔하던 미역이며 톳이며 해초들이 사라진이 오래란다. 거의 일년 내내 3모작으로 농산물을 생산해내고 특히 육지에서 소비되는 가을부터 봄까지 생산되는 농산물은 거의 제주에서 생산되니 혹독한 토양사용에 비해서 바다 오염이 심각해지는 걸 실감한다고 설명해준다.
자신 스스로가 바다를 오염시키는 가해자라고 고백하는 총무님의 눈 빛이 너무나 슬퍼보여서 안쓰러웠다.
우리의 자연은 어쩔 수 없는 생활의 발달과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과 앞다투어 밀어붙이는 국가발전 정책들, 해마다 달라지는 기후변화로 더욱 빠르게 사람들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관차처럼 밀려오는 자연의 변화는 분명한 인재이나 이 인재를 멈추게 할 방법도 책임자도 없는 게 현재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