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내가 처음 제주에 왔을 때에 파랗게 자라던 참깨밭이 어느날은 다 수확하여 텅 비어 있고, 며칠 후 지나가면 뭔가 새로운 싹이 나고 있었다. 지금은 어른 머리통만한 양배추가 자라거나 브로콜리들이 시퍼렇게 자라있다. 감자를 수확한 밭에서는 쪽파와 마늘이 촘촘히 채워져 있는 밭들을 본다.

우리 집 앞에 있는 밭만 해도 처음 올 때는 보리 베고 난 후에 어느날 트랙터가 한 번 밀고 가고, 며칠 후엔 드론이 와서 붕붕 떠다녔다. 콩을 심는 거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제주에서는 콩나물 콩을 대체로 많이 경작한다고 했다. 무더웠던 여름 가끔 아주머니 10여 명이 한꺼번에 와서 잡초제거를 한두 번 하고 간 후에 11월 말 쯤에 다시 한 번 수확기 트렉터가 와서 콩을 수확해 갔다. 한 달도 아직 지나지 않았지만 다시 파릇파릇 보리싹이 올라오고 있다.

텃밭에 물주는 지영. [사진 - 문영임]
텃밭에 물주는 지영. [사진 - 문영임]

문제는 내 텃밭이다. 텃밭에 심은 작물들이 잘 자라지 않아서 고민이 많았다. 집 옆에 남은 땅에 고구마, 감자, 팥, 대파, 양파, 마늘, 시금치, 홍당무, 가지, 오이, 아욱이며 달래까지 심었다. 가지와 오이는 여름내 그런대로 자라 열심히 따 먹었다. 가지는 너무 많이 열려서 이웃에 나눠주기도했다.

하지만 마늘은 내가 제일 먼저 심었을 것 같은데 싹도 나지 않았고, 달래와 아욱은 남편이 풀인 줄 알고 싹부터 다 뽑아버렸다. 팥은 싹이 나고 잘 자라는 듯 싶었는데 서울 다녀오니 줄기만 앙상하게 남아서 노랗게 말라 죽었다.

고구마는 내가 이렇게 농사를 잘하나 싶을만큼 싱싱하게 잘 퍼지길래 고구마는 확실하게 건지겠다 싶었었다. 하지만 수확기가 지나도 실눈같은 뿌리만 있지 고구마는 없었다. 내 고구마 어떻게 된거냐고 물어보니 좀 늦게까지 기다리면 몇 개는 달릴거라 했다. 마침내 아들 내외가 있었던 11월 말쯤에 한번 케보자 했는데 의외로 팔뚝만한 고구마 몇 개, 주먹만한 고구마도 몇 개씩 나와서 한 소쿠리는 수확을 했다. 줄기도 거두어 고구마줄기 김치로 이웃에도 나누고 잘 먹었다. 내년에 좀 더 일찍 심어서 고구마 농사는 잘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늦여름에 심은 감자는 심은 감자보다 더 적게 몇 알만 수확하고, 마늘은 200개나 심었는데 싹도 안 나고, 대파와 양파는 모종을 100개씩 심었는데 지금 석 달이 지나도록 모종 그대로다. 이게 뭐가 잘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왜 이러냐고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자꾸 질문을 해댔더니, 자꾸 실패하면서 땅심을 길러주면 후년쯤에는 농사가 잘 될 거라고 위로를 받았다.

땅심! 이게 중요한 것이다. 내 쪽파도 손가락 길이 만큼이나 자라고 난 후엔 노랗게 다시 말라간다. 뽑아보면 쪽파심이 텅 비어 있다. 그나마 쪽파 뿌리의 영양분에서 순을 내고는 땅속에서는 빨아들이 영양소가 하나도 없었구나 싶어서 작물에게 너무 미안했다. 땅심도 하나도 없는 땅에 욕심만 내어 먹고 싶은거 다 심어놓고 자라지 않는다고 불평만 했으니 말이다.

성당 묘지에서 베어놓은 초피 모으기. [사진 - 문영임]
성당 묘지에서 베어놓은 초피 모으기. [사진 - 문영임]

김정임 님 텃밭을 지영이가 관리하기로 하고 지영이가 서귀포시에서 대정으로 이사를 했다. 지영이는 미국에서 제주도로 농부가 되고 싶어서 영구귀국한 청년으로 아직 한국말도 서툴다. 미국에서 심리학 박사과정 중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농사와 노동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보기드문 친구다.

김정임 님의 텃밭은 바다와 한 눈에 보이는 명당자리이지만 땅은 완전 황토밭이다. 발로 차면 먼지가 풀풀 날리는 텃밭이지만 수 년동안 유기농 퍼머컬쳐 농사졌던 밭으로 그동안 한약 부산물, 커피 부산물이며 파쇄목이며 초피로 겹겹이 덮여있는 밭이다. 늦었지만 밭에 골을 만들고 쪽파와 감자며 두메부추를 심고, 딸기를 심기로 했다.

미국에서 살던 지영이가 제초기에 단 쟁기질을 하면서 웃는 모습이 너무 신기하다. 쟁기질이 안될 정도로 흙이 딱딱해서 힘들었다는데 제법 골을 여러 개 만들어 놓았다. 지난 가을 함께 다듬었던 쪽파를 심고 그 위에 초피를 덮어두기 위해서 성당 공동묘지에 초피를 가지러 다녀왔다. 여름내내 묘지 관리를 위해서 잘라 쌓아둔 풀더미 속에서는 수선화가 자라고 썩어가는 풀더미 속에서는 큼큼한 냄새도 난다.

풀더미를 퍼내면 먼지도 펄펄 날리지만 트럭위에 몇 번씩 오르내리며 한 줌이라도 더 가져오려고 애를 써서 한 트럭은 실어와 지영이 텃밭에 내려놓고, 두 번째 가서 실어온 풀더미는 우리 텃밭에 내려놓았다.

정작 지금 자라고 있는 파와 양파, 쪽파를 덮으려고 했던 풀더미를 남편은 내가 핑크뮬리를 옮겨심어 놓은 곳에 펼쳐 놓았다. 빈터에 잡초가 무성할 것을 걱정하던 남편은 겨우내 벌레들이 풀더미에 모여서 초봄엔 태워버리는데 풀더미를 마당에 뿌려두면 어떻게 되는건지 모르겠다고도 한 걱정이다.

이음 텃밭에서의 모임. [사진 - 문영임]
이음 텃밭에서의 모임. [사진 - 문영임]
이음 텃밭에서의 모임. [사진 - 문영임]
이음 텃밭에서의 모임. [사진 - 문영임]

처음에 언급한 싱싱하고 잘 자라는 밭들은 관행농이라고 한다. 비료와 살충제를 번갈아가며 뿌려주고 먼저 재배한 작물을 뒤엎어 새로운 작물을 심는다고 한다. 이렇게 대부분의 농사는 관행농이라고 한다.

지난 10월 열렸던 언니네 텃밭에서 배웠던 유기농 농사에 대해서 알게 된 것처럼 언‘니네 텃밭’ 농부들이 수 십 년동안 지켜온 유기농법은 점점 면적이 축소되고, 관행농법에 반해 작물의 소출이 적고, 판매가가 비싸니 소비자는 외면하지만, 건강한 먹거리 뿐만 아니라 건강한 땅을 지키자는 환경운동도 겸해서 농사를 지으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른 귤과 다르게 특유의 귤맛을 가지고도 달고 부드러운 김정임 님의 귤의 비법은 수 년동안 귤밭에 갖다부은 한약재 부산물 때문이라고 한다. 작물 성장에 가장 큰 방해가 되는 벌레와 잡풀들, 한 겨울을 잠깐 빼면 기승을 부리는 벌레며 잡풀들의 제거를 위해서도 땅심을 기르는게 관건이라고 한다. 풍부한 유기질로 땅심이 좋으면 작물이 잘 자라고, 작물 덕분에 잡초가 자라질 못하고, 병충해 피해도 훨씬 덜 받는다고 한다.

땅심이라고 말로만 듣던 그 일을 위해서 새벽같이 공동묘지로 달려가야 하고, 길가에 버려진 작물들의 부산물을 부지런히 자신의 밭에 싣고와서 작물위에 덮어주고, 한곳에 쌓아두고 부식되어 충분히 숙성될 때까지 관리하며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을 이제야 가까이서 보니 눈물겹다.

원래 농사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는 옛말이 실감나는 이음텃밭이다. 이음텃밭을 이어서 지영이가 청년농부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애쓰는 김정임 님은 다음 세대를 위한 농부 한 사람을 키운다는 욕심에 이런저런 계획도 수 십 개다.

먼저,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 청년농업인으로 등록하여, 농업인에게 지원되는 자원과 교육을 받게한 후에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관심있는 청년들을 초대하여 농사라는 것, 건강한 먹거리 생산과 기후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작물생산 등을 경험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되길 바란다.

토종작물 생산은 물론이고, 퍼머컬쳐라고 부르는 영구작물 생산을 위한 작물 실험과 농사법에 대한 연구와 실험에 지영이도 관심이 많다. 지영이의 연구하고 조사하는 능력은 책과 유튜브에서 배운 농법과 평생을 밭을 가꾸며 작물생산을 해왔던 농부의 결합! 서로 언어소통도 잘 되지 않는 두 사람의 서로다른 농사법의 결합으로 과연 어떤 작물이 어떻게 자랄지 기대만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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