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국립고궁박물관을 찾았다.
‘창덕궁의 근사한 벽화’라는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함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이해 창덕궁(서울 종로구)에 있는 건물인 희정당, 대조전, 경훈각에 있는 6점의 벽화 등 총 7점의 그림을 한자리에 모아 관람객들에게 선보이는 특별전이다.
개관 20주년 기념 특별전인만큼 잘 기획한 전시였다.

전시 제목이 ‘창덕궁의 근사한 벽화’인데, 근사는 작품 서명 부분에 있는 글을 따왔다. 최선을 다해 그려 바친다는 뜻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전시 제목이 ‘창덕궁의 근사한 벽화’인데, 근사는 작품 서명 부분에 있는 글을 따왔다. 최선을 다해 그려 바친다는 뜻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오래전부터 창덕궁 [백학도]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바로 [백학도]의 학이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김은호인데 대표적인 친일 반민족 화가이다.
창작시기인 1920년은 일제강점기였다. 벽화 제작을 주도하고 자금을 댄 이왕가(李王家)와 순종은 조선총독부의 관리를 받고 있었다.
이 점은 아주 중요하다.

[백학도]에는 총 16마리의 학이 등장한다.
학의 머리에는 붉은 점이 있고 목과 날개 일부, 꼬리 날개는 검정이다.
얼핏 같은 학처럼 보이지만, 특이하게 생긴 2마리의 학이 있다.
눈 주위에 붉은 반점이 있으며 꼬리는 흰색이다.

이 새의 정체를 몰랐다.
어떤 종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인지, 상상해서 그린 것인지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시베리아흰두루미’이다.

시베리아흰두루미. 시베리아 북서부와 중동부에서 번식하고 이란, 인도 북서부와 중국에서 월동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철새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시베리아흰두루미. 시베리아 북서부와 중동부에서 번식하고 이란, 인도 북서부와 중국에서 월동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철새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러시아에서 번식하고 중국의 포양호, 양쯔강 등지에서 월동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미조(迷鳥)로 분류되며, 불규칙적으로 도래하는 매우 희귀한 겨울 철새이다.
미조(迷鳥)는 길 잃은 새라는 뜻으로, 태풍 같은 기상변화 혹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 그 종이 찾아오지 않는 곳에 돌연히 나타나는 새를 말한다.
예를 들자면, 대서양을 왕래하는 여객선이 침몰하고 생존자가 태풍에 휩쓸려 태평양의 이름 모를 무인도에 도착한 것과 같다.
참고로, 모래시계라는 드라마의 주제곡으로 사용해 큰 인기를 얻었던 러시아 노래 [백학]이 있다. 노래 가사에 나오는 백학이 시베리아흰두루미이다.

그림에는 16마리의 두루미가 있는데, 하늘을 나는 두루미 중에 한 마리, 땅에 앉은 두루미 속에 한 마리는 시베리아흰두루미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그림에는 16마리의 두루미가 있는데, 하늘을 나는 두루미 중에 한 마리, 땅에 앉은 두루미 속에 한 마리는 시베리아흰두루미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의문은 여기서 발생한다.
시베리아흰두루미는 우리 전통 그림에서 한 번도 그려진 적이 없다. 당연히 어떠한 상징도 붙어있지 않다.

우리나라에 서식하거나 찾지 않는 시베리아흰두루미를 그린 이유가 뭘까?
그것도 16마리 중 2마리나 넣었다.

[백학도]의 초본이 공개되어 있다.
초본은 구상 계획이다.
날고 있는 시베리아흰두루미 초본에는 머리에 붉은색을 칠하기 위한 선묘가 보인다.
앉아있는 시베리아흰두루미 초본에는 검정 꼬리가 칠해져 있다.
초본 단계에서는 시베리아흰두루미를 그릴 계획이 없었다는 말이다.

백학도 초본이 공개되어 있다. 앉아있는 새의 꼬리에 검은색을 칠했다. 아래, 날고 있는 새의 머리 부분에는 붉은색을 칠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렸다. 백학도 초본 새를 시베리아흰두루미라고 특정할 수 없다. 애초, 시베리아흰두루미를 그릴지 말지를 고민한 흔적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백학도 초본이 공개되어 있다. 앉아있는 새의 꼬리에 검은색을 칠했다. 아래, 날고 있는 새의 머리 부분에는 붉은색을 칠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렸다. 백학도 초본 새를 시베리아흰두루미라고 특정할 수 없다. 애초, 시베리아흰두루미를 그릴지 말지를 고민한 흔적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어떤 이유로 시베리아흰두루미가 들어간 것일까?
여기서부터는 추정이다.
일단 시베리아흰두루미의 모습이 특이하다.
얼굴 눈 주위에 둥근 붉은색 반점이 있다. 꼬리 깃털이 검정인 두루미와 달리 흰색이다.
그러니까 흰색 바탕에 붉은색인 모습이다.
이와 가장 비슷한 것은 일장기이다.

괜한 추정이 아니다.
<무궁화는 일본 극우보수단체인 일본회의 상징-https://www.breaknews.com/749026>

무궁화는 일본 민족의 꽃이자 일장기를 의미하는 꽃이다.
일반적으로 무궁화는 분홍색이지만 일본에서 가장 좋은 품종으로 평가하는 무궁화가 있다.
하얀 꽃잎 속 빨간 색조가 퍼져나오는 모습인데, 흰색 바탕에 붉은색이 퍼지는 욱일기와 가장 닮았기 때문이다.

재건한 창덕궁 내부는 일본식 서양 건축으로 지었다.
왕이 있는 자리에는 [오봉도] 대신 일본 신하를 상징하는 [봉황도]를 놓았다.

이왕가(李王家)의 순종은 조선총독부 관리 아래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총독부가 일본 귀빈이 드나드는 창덕궁에 조선의 정신 가치가 담겨있는 [백학도]를 용납할 리가 없다.

따라서 일본 상징을 넣을 것을 요구했고, 친일파였던 김은호가 이에 호응한 것이다.
특히, 3.1만세 운동에서 독립신문을 배포하다 체포되어 6개월의 옥살이를 한 김은호는 최대 인생 위기를 맞는다.
협박이 통할 조건이었다.
[백학도]를 그린 후 일본 유학까지 가는 전성기를 누린다.

김은호는 시베리아흰두루미를 존재를 몰랐을 것이다.
조선총독부에서 시베리아흰두루미의 존재와 관련 자료를 김은호에게 제공했을 것이다.
일본은 두루미를 좋아했다.

특히 단정학(丹頂鶴)을 좋아했는데, 흰 몸통에 머리의 붉은 반점이 일장기와 닮았기 때문이다. 이후 단정학은 일본 항공모함의 이름으로도 사용되었다.
일본은 러시아와 전쟁을 치른 경험도 있으니, 러시아에 대해 많은 자료를 축적했고, 단정학과 비슷한 시베리아흰두루미의 존재를 알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

목이나 꼬리가 검정인 단정학과 달리 시베리아흰두루미는 흰색과 붉은색만 있어서 일장기와 더욱 가깝다.

결론,
창덕궁 [백학도]는 식민지 조선은 일본에 의해 신선세계(태평성대)가 된다는 내용이다.
[백학도]가 없어도 우리 그림의 전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창덕궁 부착벽화인 백학도(百鶴圖. 달밤은 어려운 조선의 상황을, 왼쪽 개울은 일본땅의 상징이다. 소나무에는 일본식 태점으로 장식했으며, 파도의 표현도 전통 형식과 다르다. 16마리의 학은 일본 황실을 상징한다. 어려운 조선을 돕기 위해 일본이 섬에서 날아와 태평성대를 이룬다는 전형적인 식민 통치용 그림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창덕궁 부착벽화인 백학도(百鶴圖. 달밤은 어려운 조선의 상황을, 왼쪽 개울은 일본땅의 상징이다. 소나무에는 일본식 태점으로 장식했으며, 파도의 표현도 전통 형식과 다르다. 16마리의 학은 일본 황실을 상징한다. 어려운 조선을 돕기 위해 일본이 섬에서 날아와 태평성대를 이룬다는 전형적인 식민 통치용 그림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실력 있는 화가들은 여전히 창덕궁 [백학도]를 모사해 그린다.
전시관에는 어린아이들이 단체로 관람하고 있었고 외국인도 많았다.
우리를 비하하고 식민 침략을 미화한 내용의 그림을 좋아하고 따라가는 현실과 미래가 가장 두렵다. (*)

[참고] 백학도의 16마리의 학

일본 황실 문장인 국화문장은 16개의 잎으로 만들어져있다.

국화문장(일본어:菊花紋章기쿠카몬쇼) 또는 십육엽팔중표국(일본어:十六葉八重表菊)은 일본 황실의 문장, 국화문(菊花紋기쿠카몬)이나 국문(菊紋기쿠몬)이라 줄여 부르기도 한다.
가마쿠라 시대의 고토바 천황이 국화를 좋아해 자신을 나타내는 징표로 사용했다. 이후 고후카쿠사 천황, 가메야마 천황, 고우다 천황이 이를 자신들의 징표로 계속 사용해 황실의 문장으로 정착되었다.
공식적으로 일본 황실의 문장이 된 것은 1869년(메이지 2년) 천황의 문장으로서 [십육변팔중표국문]이 정해졌다.
야마토 전함(戰艦大和) 등 일본 제국 해군 군함의 뱃머리에 붙여져 있었으며, 현재도 일본 여권의 표지에 이 문장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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