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김홍도의 풍속화 몇 점을 두고 풍자(諷刺), 비판(批判)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풍자나 비난의 대상은 당시 지배계층이었던 양반이다.
사람들은 그냥 습관적으로 말한다.
근거나 논리를 대라고 하면 우물쭈물하고 화를 낸다.
김홍도의 풍속화 타작도(打作圖)는 풍자와 비판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과연 이 그림은 노비와 양반의 싸움 현장이며, 게으른 양반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그림일까?
“간략하게 그림을 살펴보겠네.
가을날, 벼를 타작하는 백성의 모습을 그렸네.
총 6명의 일꾼과 곰방대를 물고 비스듬히 누운 1명의 양반이 이 그림의 등장인물일세.
3명의 일꾼은 볏단을 나무에 쳐서 털고 있고, 1명은 벼를 묶고 있으며, 흩어진 나락을 빗자루로 쓸어 모으는 사람도 있네. 수확한 벼를 지게로 나르는 일꾼도 있지.
일꾼의 머리모양이 특이하네.
지게를 맨 남자는 망건을 하고 있고, 3명의 남자는 맨상투이며, 1명은 상투를 틀지 않은 총각, 이상한 고깔모자를 쓴 남자도 있네.
가려서 알 수 없는 2명의 일꾼을 빼고, 나머지 이들의 발 모양도 특이하네.
2명은 맨발이고 2명은 짚신인데, 1명은 버선 위에 짚신을 신었네. 이게 어떤 용도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네.”
“그림 속 일꾼들은 모두 반 팔 웃옷에 반바지를 입고 있네.
이런 옷이 있었던가?”
“짧은 겉옷은 등거리이며 무릎 반바지는 잠방이(잠뱅이)라고 하지. 여름 작업복일세.”
“솔직히 김홍도의 그림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못 그렸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초본 그림, 연습용 그림, 모작일 것이네. 김홍도가 그렸다고 특정하기도 어렵지.
하지만 상관없네.
풍속화에서 진본, 모작보다는 그림의 내용을 알고 공감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네.”
“어떤 사람은 볏단을 내리치는 총각이 비스듬히 누워있는 양반에게 화를 내고 있다고 하네.
이를 근거로 피지배자인 노비(혹은 머슴, 소작농)가 지배자인 양반과 대립하고 있다고 하는군. 결국 김홍도는 게으른 양반을 비판하기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일꾼들의 모습을 잘 보시게. 표정이 밝네.
비록, 벼를 수확하는 일일지라도 노동은 늘 힘들지. 그런데도
김홍도는 현실을 무시하고 웃는 모습을 그렸네.
육체노동이 아니라 내면의 기쁨을 표현하기 위함이지.
따라서 생뚱맞게 화를 내는 인물은 분위기에 맞지 않네.
화를 내는 게 아니라 그냥 힘껏 내리치는 순간의 표정을 그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네.”
“그럼, 곰방대를 물고 비스듬히 누워있는 양반은 뭔가?”
“감시자가 아닐세.
술 한잔을 걸쳤고 졸리고 무료하게 그렸네. 이런 자세로 어떻게 감시를 한단 말인가.
이는 농민을 천하대본(天下大本)으로 여겼던 조선시대 문화와 연관이 있지.
세종 때, 상소문에는 대략 이런 내용이 적혀 있네.”
“농자천하대본이라고 하면서 정작 양반들은 농민이나 농사일의 현장을 전혀 모르고 있다. 이게 말이 되나. 이래서 무슨 민본정치를 한단 말이냐. 관료나 양반들이 현장에 나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이런 연유로 모심기나 타작과 같은 중요한 농사일에는 으레 양반들이 현장에 나가보는 것이 관례가 되었지.
실제 김홍도의 ‘행려풍속도’나 김득신의 ‘타작’ 그림에는 의관을 갖추고 정자세로 앉아 근엄하게 감독하는 양반의 모습이 그려져 있네.”
“병풍으로 제작한 그림에서 양반은 정장에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는데 감시자로 보이지 않는군. 농민들도 이런 양반을 전혀 의식하지 않네.
그런데 작은 화첩 그림에만 게으른 양반을 그린 이유는 뭔가?”
“풍속화 제작은 민본정치에 따른 국가사업일세.
양반은 국가행정과 민본정치의 핵심 계층이네. 따라서 풍속화로 양반을 비판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네.
이 그림 속의 양반은 관례에 따라 억지로 나와 있는 모습일세.
이것은 계급성에 따른 풍자가 아니라 그냥 해학일세.
나오긴 해야 하는데, 재미도 없고 졸리기도 하고...
저 늘어진 자세 좀 보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얼마나 웃기는 상황인가. 껄껄껄...
엄숙하고 경직된 그림은 금방 지루해지지.
이런 긴장감을 풀어버리면 웃음과 관심을 증폭시킨다네.
이렇게 과감한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김홍도밖에 없지.
확실히 김홍도 그림을 모작했네.” (*)


물론 풍자나 비난의 대상은 당시 지배계층이었던 양반이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