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에 휩쓸려 살아도 일 년에 한 번쯤은 차분히 자신을 가다듬을 계기가 필요하다. 개인이야 생일이나 휴가 등 특별한 날일 수 있겠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8.15광복절이 적격이 아닌가 싶다. 이날만은 민족적·국가적 차원에서 지난 1년을 성찰하고 다음 1년을 계획해 보는 것 말이다.
79년 전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한반도는 외세에 의해 38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나누어졌다. 해방과 동시에 분단된 것이다. 이렇듯 8.15광복절은 우리에게 ‘해방’과 ‘분단’이라는 두 개의 얼굴로 다가왔다. 그래서 한때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진정한 광복은 통일이라는 말이 회자되었다.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 해방도 온전한 해방이 아닌 미완의 해방이었다. 일제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여전히 친일이 득세했고, 시대 변화를 예측한 친일은 약삭빠르게 친미로 말을 갈아타기도 했다. 외세 추종 세력이 정권을 잡을 때면 영락없이 친일과 친미가 고개를 들고 활개를 쳤다. 이렇듯 예속의 그림자는 질기고 짙었다. 따라서 미완의 해방에서 완전한 해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대(事大)가 아닌 자주(自主)가 필요했다.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광복이란 친일과 친미라는 예속으로부터 벗어나고 분단된 남과 북을 하나로 만드는 것, 즉 ‘자주 더하기 통일’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친미·친일이라는 외세로부터 자주를 찾고 분단된 나라를 하나로 잇는 통일 말이다. 그러나 광복 79주년을 맞는 지금 정부 당국은 ‘자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민간은 ‘통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마침 8.15 79주년을 맞아 당국과 민간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그런데 광복절의 진정한 의미와 부딪히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정부 당국은 8.15에 즈음해 친일 논쟁에 휩싸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독립기념관장에 뉴라이트 인사를 앉혔기 때문이다. 오늘날 뉴라이트는 친일파의 현현(顯現)일 뿐이다. 신임 독립기념관장은 과거에 ‘대한민국은 1919년 임시정부로 건국된 게 아니라 1948년에 건국됐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8.15건국절을 부르짖는 뉴라이트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민족적으로 가장 신성해야 할 독립기념관장에 친일파를 등용한 셈이다.
광복회를 비롯한 독립운동 단체들과 민주당 등 야당이 오는 15일 정부가 주관하는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 입장을 밝히고, 나아가 독립운동 단체들이 별도의 광복절 기념행사를 열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국민들도 고개를 젓고 있다. 일파만파의 파장을 낳고 있는 뉴라이트 인사의 독립기념관장 임명은 철부지 대통령의 역사관 부재라는 자기 토로일 뿐이다.
민간은 올해 8.15행사를 ‘8.15범국민대회’라는 명칭으로 10일 숭례문 앞에서 진행했다. 전통적으로 8.15행사에서 민족통일의 장을 펼치는 것은 민간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올해 8.15행사에서 ‘통일’은 큰 울림이 아니었다. 참가단체들이 내건 피켓에도 ‘통일’과 연관된 내용은 찾기 힘들었다. 다만 이홍정 8.15범국민대회 추진위 상임대표의 대회사에서 ‘평화주권과 자주통일’이 두 차례 그리고 8.15범국민대회 호소문에서 ‘자주와 평화, 통일’이 각각 나오지만 의례적 차원이지 주요 키워드는 아니었다.
물론 현 국내상황을 반영한 ‘윤석열 정권 퇴진’이 가장 큰 이슈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올해 초 북측의 ‘남북관계는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라는 언명이 영향을 미쳤음직하다. 남북이 같은 민족이 아니고 서로 다른 국가라면 굳이 통일을 해야 할 이유도 필요도 명분도 없을 테니까, 이에 남측 민간의 통일운동이 위축된 것이다.
이렇듯 8.15광복 79주년을 맞는 오늘 남측의 당국과 민간이 흔들리고 있다. 당국은 자처해서 친일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민간은 떠밀리듯 미래의 통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 민족이 이뤄야 할 진정한 광복인 ‘자주’와 ‘통일’에는 이토록 멀고도 힘든 여정이 필요한 것일까?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