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에 입성하다
1월 19일 금요일, 새벽 6시에 호텔을 나섰다. 호텔에 부탁해 아침식사 도시락을 쌌다. 공항으로 가기 위해 우버택시를 불렀다. 그런데 이 우버택시 기사의 운전이 완전히 우리네 총알택시 저리가라 수준이다. 멕시코시티 출퇴근 시간의 교통지옥은 유명하다. 이 기사는 아마도 빨리 한건 하고 또 다른 일거리를 처리하기 위해서 이렇게 서두르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승객의 안전이 우선인데 이건 너무하다.
이 기사가 좋은 후기 평을 듣기는 어려울 듯하다. 좀 빨리 달리기 위해 속도를 내는 것이나 끼어들기 정도는 그렇다고 해도 위험한 곡예운전에 아찔했다. 결정적으로 공항 바로 앞에서 피턴(P턴)을 해야 할 곳에서 그걸 무시하고 중앙선을 넘어서 반대편 차선으로 진입해서 끼어들어가는 데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이러다가 충돌 사고가 나면 어떡하려고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쨌든 폭주운전 덕분에 우리는 빨리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항공사 창구에서 티켓을 받아서 체크인하고, 검사대를 통과해 탑승장 앞에 도착했다.
우리를 실은 AM402(AeroMexico) 편은 오전 9시 멕시코시티 베니토 후아레스 국제공항을 이륙해 오후 2시 50분경 뉴욕 JFK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비행시간은 4시간 50분. 멕시코시티와 뉴욕의 시차는 1시간(뉴욕이 1시간 빠르다)이다. 뉴욕 공항에 도착하니 날씨가 달라져 있다. 비행기 차창으로 보니 눈발이 흩날리고 바람이 많이 불고 있다. 겨울 날씨를 실감하게 된다. 뉴욕의 1월달 기온은 영상 3도에서 영하 4도 사이에서 오간다고 하는데, 우리가 뉴욕을 방문했을 때는 영하 8-9도까지 내려가는 강추위가 몰아쳤다.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서 체감 기온은 훨씬 더 내려갔다.
공항에 도착해 입국 수속을 밟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2시간 정도 걸리지 않았을까? 미국에 입국할 때는 기본적으로 기분 나쁜 경험을 하게 된다. 미국 공항 직원들은 모든 입국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 입국 심사를 받기 위해 서 있는 여러 줄 가운데 한 곳에서 공항직원이 여성노인을 마구잡이로 대하는 장면이 포착된다. 저런... 저 인간들... 그냥 화가 치민다.
그래도 우리는 입국 심사를 쉽게 끝냈다. 미국의 ‘동맹국’ 한국 출신이어서 그랬을까? 전세계적으로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는 K-문화에 대한 호의 덕분일까? 직원이 묻는다. “무엇하러 왔나?” “직업이 뭐냐?” “숙소가 어디냐?” “언제 갈 거냐?” 이런 내용으로 문답을 주고받고 우리는 바로 통과했다. 대기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입국 심사는 금방 끝난 것이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와서 공항트레일을 타고 지하철이 시작되는 자메이카(Jamaica) 역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아처애비뉴 너머로 퀸스 자메이카의 눈 덮인 집들이 보였다. 눈이 많이 온 모양이다. 집들이 예술적이고 고풍스런 느낌이다.
자메이카 역에서 뉴욕 지하철로 갈아탔다. 신용카드(비자)로 지하철 요금 정산이 되는 줄 몰라 한참을 헤매며 지하철 티켓을 끊었다. 지하철 57번가(Street) 역에서 내렸다.
뉴욕은 계획도시로 애비뉴(Ave)와 스트릿(St)이 정교하게 얽혀 있다. 뉴욕 맨해튼 중앙에 직각사각형으로 센트럴 파크가 자리잡고 있고, 그 왼쪽이 웨스트(west), 오른쪽이 이스트(east). 맨 남쪽부터 시작해서 북쪽으로 가는 도로를 스트릿(street)이라고 하는데 1번가(1St)에서부터 웨스트 2638번가(St), 이스트 242번가(St)까지 이어지고 있다. 동에서 서로 가는 도로를 애비뉴(길)라고 하는데 우리로 치면 몇 길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1번길(1th Ave)부터 11번길(11th Ave)까지 있는데 중간에 4번(4th)은 없다. 5번길(5th Ave)을 기준으로 서쪽이면 앞에 West의 W를, 동족이면 East의 E를 붙인다고.
우리 숙소는 57번가(57th St), 6번길(6th Ave) 지점으로 맨해튼 중심가였다. 바로 근처에 카네기 홀도 있다. 호텔에 들러 체크인을 하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걸어서 타임스 스퀘어 광장으로 갔다. 타임스 스퀘어는 웨스트 42번가와 7번가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원래 이 지역의 명칭은 롱에이커 스퀘어였으나 뉴욕 타임스 본사가 이 근처로 이전하면서 타임스 스퀘어로 불리게 되었다. 뉴욕 타임스는 2007년 이전했지만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서 여전히 그 이름값을 한다고.
타임스 스퀘어는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의 화장한 얼굴이 아닐까? 뉴욕에 왔으니 화려한 광고판으로 빛나는 타임스 스퀘어에서 사진 한 장은 찍어야 하지 않겠는가. 브로드웨이도 한번 들러봐야 할 것이고. 밤늦은 시간이지만 화려한 광고판 아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놀고 있다. 광장 중앙에서 청년들이 신나게 춤을 추고 있고, 관광객들은 저마다 자기 볼일을 보고 있다. 춤이야 K팝과 함께 추어야 최고지. 타임스 스퀘어, 브로드웨이 주변을 대충 돌아보고 사진 몇 장 찍고 숙소로 돌아왔다. 계속 밖에서 구경하고 다니기에는 늦은 시간인데다가 날씨도 추웠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돌아보기
1월 20일 토요일. 일찍 아침을 먹고 메트로폴리탄 박물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을 찾았다. 박물관은 센트럴 마크 동쪽 5길(5th Avenue)과 82번가(St)-83번가(St) 사이의 센트럴 파크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다. 숙소에서 박물관까지는 북쪽 방향으로 걸어서 30분 조금 더 걸리는 거리였다. 영하 8도의 낮은 기온이어서 추웠다. 최근 눈도 많이 오고 최근에 보기 드문 혹한이 닥쳤다고 했다. 센트럴 파크를 따라서 걸어가는 동안 사진도 찍고 거리 구경했다. 21세기 IT혁명의 진원지 애플 사옥이 보인다. 일본의 승천을 막고 미국 자본주의의 재도약의 발판이 됐던 1985년 역사적인 플라자 합의가 있었던 플라자 호텔도 보인다.
센트럴파크 공원에는 추운 날씨에다가 이른 아침이어서 사람이 별로 없었다. 더구나 토요일 아닌가. 그래도 간간이 조깅을 하는 사람이 보인다. 이 추운 날씨에도 대단하다. 공원 옆길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관광마차가 서 있다. 이 추운 날씨에도 돈을 벌기 위해 저렇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새삼 머리를 스친다.
박물관에 도착해 보니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이집트 유물 특별전을 하고 있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로비에 들어서니 티켓을 사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과 로비에서 몸을 녹이는 사람들로 붐빈다. 로비에는 이집트 왕의 석상과 마야 유적이 전시돼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석상은 이집트 중왕국의 파라오 아메넴헤트 2세로 추정되는 인물의 좌상이다. 마야 유물은 과테말라 피에드라스네그라브의 통치자 키니치 요날 아크 2세(Kʼinich Yoʼnal Ahk II)의 좌상이 새겨진 조각상으로 과테말라 정부에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대여한 것이라고 한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는 그 이름에 걸맞게 세계 각국의 유물과 예술품이 소장, 전시되고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많지는 않지만 한국 문화재와 예술작품도 일부 소장돼 있다. 메트로폴리탄에 한국관이 처음 개장한 것은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으로 26년밖에 안 됐으니 작품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메트로폴리탄에는 <아미타불과 지장보살도>, <아미타삼존도>, <지앙보살도>, <수월관음도> 같은 국내에서도 보기 힘든 고려 불화가 여러 점 소장돼 있다. 미국에 모두 16점의 고려불화가 소장돼 있는데, 프리어‧새클러미술관 3점, 메트로폴리탄박물관 5점, 보스턴미술관 3점, 샌프란시스코아시아미술관 1점, 브루클린미술관 1점, 하버드대학교 아서‧새클러박물관 1점), 클리브랜드미술관 1점,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 박물관 1점 등이다. 고려불화는 현재 전세계에 160점밖에 남아 있지 않는데 한국에는 고작 19점만 소장돼 있다고 한다. 국공립박물관에는 한 점도 소장돼 있지 않고 이룸박물관, 호림박물관, 디아모레뮤지움, 용인대학교박물관에 네 곳밖에 소장한 곳이 없다. 한국에서도 귀하고 귀한 몸이다. 고려불화의 대부분은 일본에 가 있다. 120여점 이상이 일본의 사찰, 박물관과 개인 소장자에게 보관 중이다. 일본의 문화재 약탈의 결과다. 임진왜란 시기와 일제강점기 약탈되거나 반출된 것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미국이 세계의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던 1870년 소규모로 개관해 점차 규모를 확대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지금은 300여만 점의 회화, 조각, 사진, 공예품을 소장해 세계 최대의 미술관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중 대부분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취득했겠지만 일부는 불법적인 유통 과정에서 확보된 것도 있을 것이다. 돈을 주고 구매라는 형식으로 확보했다고 해도 도굴품 등 애초 불법적으로 유통되고 있던 것들이라면 합법적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근현대사는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제국주의 국가의 팽창과 세계에 대한 식민지 침략으로 점철돼 있다. 그 과정에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와 저개발국가의 문화재를 광범위하게 탈취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휘황찬란한 세계적 예술품들은 대부분 이와는 무관한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보이지만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비교하면 차원이 다르지만.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돌아보려면 한나절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다음날로 일정을 미뤘다. 오후 2시 이 대표가 약속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타깝게도 일정이 맞지 않아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관람하지 못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 돌아보기
메트로폴리탄 대신 오늘은 오전에 뉴욕 현대미술관(MoMA: Museum of Modern Art)을 돌아보기로 했다. 현대미술관도 한나절 만에 관람을 끝낼 수 있는 작은 규모가 아니지만 매트로 박물관보다는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그렇게 결정했다.
현대미술관(MoMA)은 숙소에서 가까운 54번가에 위치해 있다. 다시 40분 정도 남쪽으로 걸어서 현대미술관으로 갔다. 현대미술관은 인상주의 이후 현대 미술 작품 20만점 이상을 확보, 전시하고 있는 세계 최대 미술관 중 하나다. 록펠러 가문의 며느리(존 D. 록펠러 주니어의 부인)였던 애비게일 그린 올드리치 록펠러의 주도로 1929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1929년 세계 대공황으로 경제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존 D. 록펠러 주니어는 미술관 설립을 반대했으나 11월 7일 MoMA를 개관했다. 개관전은 폴 세잔, 폴 고갱, 조르주 쇠라, 빈센트 반 고흐 등 네 작가를 ‘근대미술의 아버지’로 소개하며 기념전을 열었고, 5주 동안 5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애비게일은 미술사가 알프레드 바 주니어(Alfred H. Barr, Jr.)를 초대 관장으로 영입해 오늘날의 세계적인 MoMA의 초석을 다졌다. 알프레드는 미술사가로서 미술사를 대중이 알기 쉽게 계보를 단순화해 설명하고 그에 맟춰 전시함으로써 대중의 그림 접근에 크게 기여했다. 이 같은 알프레드의 활약을 바탕으로 현대미술관은 그때까지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반 고흐의 작품과 고흐의 동생 태오와 주고받은 편지를 수집해 스토리텔링을 덧붙인 전시를 통해 고흐를 세계 최고 수준의 화가 반열에 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MoMA는 지하 2층과 지상 6층으로 돼 있다. 1층과 6층은 특별전시를 하고, 주요 전시는 2층부터 5층까지 하고 있다. 2층은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동시대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3층은 건축이나 가구 등과 관련한 디자인 자료들, 케테 콜미츠 등의 드로잉 작품들, 포토그라피, 그밖에 특별 전시가 되고 있다.
4층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주요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재스퍼 존스, 쿠사마 야요이, 로이 리히텐슈타인, 잭슨 폴락, 로버트 라우쉔베르그, 마크 로스드코, 앤디 워홀, 트리사 브라운, 앨스어스 캘리, 루이스 롤러, 조안 미첼, 페이스 링골드, 제임스 로젠퀴스트 등. 5층은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의 주요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폴 세잔, 프리다 칼로, 구스타프 클림트, 헨리 마티스, 피에트 몬드리안, 클라우드 모네, 파블로 피카소, 빈센트 반 고흐, 마르셀 뒤샹, 살바도르 달리,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 타르실라 두아마라우, 찰리 채플린, 리지아 클락 등.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와 그림들은 대부분 4층과 5층에 있다. 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없는 일반 관객들은 이 두 층만 보아도 될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층을 빼먹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시간이 부족하거나 주마간산 격으로 빠르게 돌아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브루클린 브릿지, 월가, 9.11기념관
1월 21일 일요일이다. 하루 종일 걸어서 뉴욕 시가를 돌아보았다. 만보기 앱에 3만보 이상이 찍혔다. 대략 20km 이상 걸은 셈이다. 하루 종일 걷다시피 했다는 이야기다. 57번가에서 출발해, 록펠러 센터, 탑 오브 더 락, NBC 유니버설, 8번가 명품점 거리를 지났다. 탑 오브 더 락 건물 전망대에 올라가기 위해 사람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모였다.
국제연합(UN) 센터,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등을 구경하면서 이스트 강변을 따라서 차이나타운까지 걸었다. 이스트 강변을 걷는 동안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서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중간에 병원이 있어서 잠시 들어가 몸도 녹이고 화장실도 들르려 했으나 들어갈 수가 없었다. 공기는 한국의 겨울 날씨보다 매섭지 않았으나 바람 때문에 체감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차이나타운에 도착해 뉴욕에 살고 있는 김 원장님 지인을 만나 점심 식사를 함께했다. 음식을 잘 하는 집이 일요일이어서 쉬는 바람에 옆집에서 식사를 했는데 그 맛이 안 난다고 했다.
점심 식사 후 우리는 지인과 헤어졌다. 우리는 브루클린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브루클린 브릿지는 1869년 착공해 1883년 완공한 세계 최초의 현수교이자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라고 한다. 총 길이 1.8km의 이 다리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토목공학 기술을 보여준 놀라운 건축물이었다. 이 다리 공사에 중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동원됐는데, 공사가 끝난 뒤 뉴욕시장의 배려로 차이나타운을 만들 부지를 보상으로 받았다고 한다. 중국인 노동자들은 저축한 돈으로 건물을 짓고 음식점을 운영하며 차이나타운을 형성했다.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면서 고개를 돌리면 오른편으로 멀리 자유의 여신상이 보인다.
브루클린은 원래는 별도의 시였으나 1898년 퀸스 등과 함께 뉴욕시로 편입돼 뉴욕시 자치구의 하나가 되었다. 뉴욕시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자치구로 250만명이 살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가장 많은 인종이 모여 사는 카운티로 알려져 있다. 유럽계 이민자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히스패닉, 미국 흑인, 중국인, 인도 등 남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자리를 채운 결과다. 과거 뉴욕 중심에서 밀려난 소수 인종들의 외곽 거주지였으나 지금은 뉴욕에서 가장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맨해튼 브릿지 아래에 위치한 포토 포인트 덤보(DUMBO: 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이곳은 과거 공장지대였으나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탈바꿈하면서 카페, 음식점 등이 번창하고 관광객들이 찾으면서 가장 유명한 곳이 되었다. 다시 걸어서 브루클린 다운타운을 지나 원장님 지인이 살고 있는 집에 잠시 들러 커피와 차, 고구마 등을 대접받았다. 잠시 휴식하며 몸을 녹인 뒤 지하철을 타고 월스트리트 거리로 갔다.
아메리카 제국의 경제 심장부 뉴욕에 왔으니 그 두뇌에 해당하는 월스트리트에 들러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일요일 오후여서 사무실도 문을 닫았고 사람도 없었다. 다만 관광객들만 가끔씩 눈에 띄었다. 월스트리트를 상징하는 ‘돌진하는 황소상’에 갔더니 그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대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예 포기하고 멀리서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섰다.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9.11기념관을 돌아보았다. 2001년 9.11테리로 무너진 쌍둥이 세계무역센터 건물 자리에 이때 사망한 2,977명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추모기념물, 박물관(Memorial & Museum), 기념공원이 조성돼 있다.
원래 세계무역빌딩은 두 개의 타워건물이 있고 그 주변은 넓은 광장으로 비어 있었다. 테러로 무너진 그곳 주변 자리에 더 높은 원(1) 월드 트레이드 센터와 낮은 투(2), 쓰리(3), 포(4) 월드 트레이드 센터 건물들을 짓고, 가운데 건물이 있던 자리는 비워 공원으로 만들었다. 원래 건물이 서 있던 그 자리에 두 개의 추모 기념물(메모리얼)로 인공폭포가 만들어졌다.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은 희생자 유족의 눈물을 상징한다고 한다. 인공폭포 주변에는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희생자의 생일에는 희생자의 이름 위에 꽃을 꽂아 놓는다고 한다. 메모리얼 공원 지하에는 박물관이 조성되었다. 박물관에는 무너진 건물에서 나온 철골과 테러 당시 광경과 구조 상황, 희생자 사진, 구조 소방차 등이 전시돼 있다. 중앙 홀에는 깨지지 않은 유리창, 마지막에 철거된 기둥 철골 구조물 등 기념물이 있다.
새로 지은 원 트레이드 타워는 104층 540m의 높이로 미국 최고층 빌딩이다. 첫 번째 세계무역센터(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 건물 꼭대기에는 전망대가 있지만 올라가 보지는 못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반드시 전망대에 올라서 뉴욕 야경을 한번 구경해야 되겠다.
무역센터와 연결되는 지하철역 건물이 매우 인상적이다. 오큘러스Oculus)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생선뼈 모양을 형상화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한 것으로 건축 전문가들에게 높이 평가받는다고 한다. 나같이 예술적 감각이 떨어진 사람이 보아도 눈에 확 들어왔다. 저녁 9시경 세계무역센터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구겐하임 미술관, 자연사박물관, 그리고 플라자 합의
1월 22일 월요일이다.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고민했다. 시내버스 투어를 할까 했으나 눈요기만 할 뿐이니 별로라는 의견. 브로드웨이 뮤지컬 관람을 할 만한 게 있나 찾아봤지만 마땅치 않다. 보고 싶은 작품이 있으면 미리 예약하는 건 필수. 현장에서 티켓팅을 하기에는 작품도 그렇고 시간도 맞추기 힘들다. 포기했다. 토요일날 보려다 연기했던 메트로폴리탄 미술박물관을 관람하기로 했다. 힘들 게 걸어서 박물관에 갔더니 월요일이어서 휴관이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현대미술관(MoMA)을 대충 돌아봤으나 다시 한 번 더 가기로 했다. 현대미술관을 두어 시간 돌아보고 나왔다. 고민하다가 메트로 박물관 근처 89번가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가기로 했다. 1937년에 개관해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현대 미술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구겐하임은 달팽이 모양을 한 외관으로도 유명하다. 뉴욕 외에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스페인의 빌바오, 독일 베를린에 별관을 두고 서로 작품을 교류 전시하고 있다.
그런데 구겐하임에 들어가서 돌아보는데 작품이 별로이다 싶었다. 그래서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지금 전시실 상당 부분을 폐쇄해 재구성하고 있는 중이라며 3월 이후에나 정상화될 것이라 말한다. 이런, 그렇다면 입장료를 받지 않든지 할인을 해주든지. 공지라도 확실히 하든지. 실망이었다. 그래도 미술관 휴게실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창밖으로 바라보는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겨울이어서 나뭇잎이 다 떨어진 나무들이지만 엉성하다는 느낌은 안 든다. 공원(센트럴 파크) 풍경과 하늘의 구름이 잘 어울린다. 마음이 평온하다. 아무 걱정이 없다. 비로소 여행을 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낀다. 내일이면 집으로 갈 텐데 이제야 여행하는 기분이라니...
영화 <박물관은 살아 있다>의 배경인 자연사박물관을 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너무 늦었다. 돌아오는 길에 센트럴 파크를 가로질러서 반대편에 있는 자연사박물관 건물만 구경하고 돌아섰다.
1985년 역사적인 플라자 호텔(5번가, 1985년 9월 22일 역사적인 플라자 합의를 이룬 플라자 호텔 앞을 지나며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이날 플라자 호텔에서 이른바 미국, 일본, 서독, 영국, 프랑스의 선진 5개국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여 환율 합의를 했다. 미국은 막대한 쌍둥이 적자(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가치 상승을 요구, 결정했다. 1달러=235엔이던 일본엔화는 20엔이나 하락했고, 1년 후에는 1달러=120엔대가 됐다. 플라자 합의 이후 엔고로 인한 불황을 염려한 일본은 저금리 정책을 시행하였고 이는 부동산과 주식 투기를 부추겨 거품 경제를 만들었다. 1980년대 후반에도 잘 나가던 일본 경제는 1990년대 버블이 붕괴하면서 장기침체에 빠지고 말았다.
지금, 플라자 합의 때와 또 다른 방식으로 미국은 자신의 동맹국들인 독일, 일본, 한국 등에 경제외적 압력을 행사해 자신들의 경제적 번영을 추구하고 있다. 반도체, 2차전지 등 첨단 산업에 대한 통제와 미국내 생산기지 구축을 통해 미국의 경제적 주도권을 보다 확고히 하려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독일과 한국이다. 1985년 일본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던 것과 달리 지금 중국은 강하게 저항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추격을 막고 첨단 산업 기술의 유출을 막기 위해 한국, 대만, 일본 등과 연합해 중국의 반도체 첨단기술 접근을 저지하고 있다. 과연 미국의 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미국의 일극 패권이 중국, 러시아 등 브릭스 국가들과 중동 등의 도전으로 위협당하고 있지만 당분간은 미국의 우위가 유지될 것이다.
중국은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첨단기술에서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다만 반도체에서는 아직 따라붙지 못했다. 미국은 설계의 미국, 생산의 대만(TSMC, 파운드리 분야)과 한국(삼성전자, SK 하이닉스, 메모리 분야), 장비의 네덜란드로 이뤄진 첨단 반도체 기술이 중국에 넘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반도체 동맹을 추구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은 향후 발생할 수도 있는 지정학적 불안 요인까지 감안해 생산 공장을 아예 미국에 지으라고 압박해서 삼성이나 SK, TSMC가 울며 겨자 먹기로 미국에 막대한 직접 투자를 하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했다는 콜럼버스 동상도 보고, 트럼프 빌딩도 보았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밤 8시경 체크 아웃하고 전철 타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밤 12시 5분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다. 전철이 중간에 섰다 가다를 반복한다. 충분한 시간 여유를 갖고 나와서 다행이지 빠듯하게 움직였으면 비행기 시간에 늦을까봐 걱정이 됐을 것이다.
전철 타고 공항으로 가는 중 김 원장이 옆에 앉은 할머니와 재미있게 대화를 나눈다. 공항에서 간식으로 먹으려고 가져가던 사과 한 알까지 주면서 서로 친구가 돼 재미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품격이 있어 보이는 그 할머니는 선거를 앞두고 걱정이라고 말한다. 한 명은 크레이지(crazy)이고, 다른 한 명은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한다며 미국 걱정을 태산같이 한다. 공항 면세점에서 만난 여직원 두 사람도 똑같은 이야기 하며 웃었다. 공항 면세점 초코렛 판매대에 바이든과 트럼프 사진이 박힌 상품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나보고 이거 어떠냐고 여점원이 물었다, 내가 ‘노’라고 했더니, 크레이지, 절뚝 흉내를 내면서 깔깔깔...
정신이 제대로 박힌 미국 사람은 모두 이런 걱정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에서 돌아오고 5개월이 좀 넘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미국과 관련해서는 바이든이 건강상 이유로 후보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의 우세가 점쳐지고 있는 상황. 미국 대선은 어떻게 결정이 날 것인가? 미국의 대선 결과는 특히 한국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상황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국민들이 정치지도자를 걱정해야 하니 이게 웬일인가. 우리는 더 심각하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개판이 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국가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다. 국정농단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다. 이렇게 가면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빠질지도 모른다. 또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서 해결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법이 찾아질 것인가.
1월 23일 화요일 밤 12시 50분 뉴욕 JFK 국제공항을 이륙한 대한항공 KE086편은 1월 24일(수) 아침 5시 15분에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비행시간 15시간이다. 나로서는 한 번에 하는 가장 긴 비행시간이다. 15시간은 너무 긴 비행시간이다. 5시간 정도는 껌이고, 11시간 정도도 거뜬히 지낼 만한데 15시간은 정말 지루하다. 비행기에서 날짜가 바뀌었다.
2023년 12월 27일 인천공항을 출국해 2014년 1월 24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29일 만에 돌아왔다.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서 여행기를 쓰긴 했지만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자료를 찾거나 공부해야 할 내용도 많은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시간도 많이 지나 기억이 많이 사라진 상태여서 생생하지가 않다. 메모를 해두긴 했지만 부분적이어서 빈 곳을 메울 수가 없었다. 시간에 쫓기며 쓰다 보니 문장도 엉망이고 오탈자로 너무 많아서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동안 읽어 주신 분들께는 미안하고 감사하다. 멀리 영국에서 글을 읽고 오탈자를 잡아서 보내준 김성수 박사에게 특별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출판기획자, 저술가. 청년시절 민주화․사회운동에 관계했으며, 한국 근현대사와 세계사, 인문․사회 관련 대중서의 기획․집필에 힘쓰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공식 보고서 발간을 총괄했으며, 지금은 평화박물관의 ‘반헌법행위자 열전편찬위원회’ 조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한국에서의 학살-한국현대사, 기억과의 투쟁』, 『새로 쓴 한국현대사-해방부터 촛불항쟁까지 35장면』(공저), 『솔직하고 발칙한 한국 현대사』(공저), 『스토리 세계사 1~10』, 『두 개의 한국 현대사』, 『산골대통령, 한국을 지배하다』, 『국민을 위한 권력은 없다』, 『대한민국사 1945~2008』, 『대한민국50년사』, 『북한50년사』, 『거꾸로 읽는 한국사』(공저), 『거꾸로 읽는 통일이야기』 등이 있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