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혜정은 북이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이 여성들만의 몫으로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현실이 특히 사회주의 위기 이후 민족적 형식의 구현이라는 이념과 함께 더욱 강화되는 모습으로 영화 속에서 노출된다고 주장한다.
“사회주의 가족유지를 위해 가정내의 확실한 성별분업구조가 유지되며 재봉, 다림질, 설거지, 육아 등의 가사노동은 여성의 몫으로 재현된다. 여성이 사회적인 일을 하는 것은 틀림없으나 ‘집안일’은 그대로 여자 몫으로 재생산된다. 이러한 전통적인 여성에 대한 재현은 사회주의 침체기 이후(밑줄 필자) 무사안일, 요령주의, 형식적 실적위주의 노동행정, 당 지침의 위반, 전통적인 사회윤리(결혼식의 간소화, 여성의 나태함 등) 등과 함께 비판되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 형식의 구현으로서 체제가 표방하는 사회주의적 이념과 함께 더욱 강화된다(밑줄 필자).”(변혜정, 「북한영화에서 재현되는 '여자다움'과 그 의미에 대한 연구」, 『여성학논집』제16권,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 1999)
먼저 위의 글은 그 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영화에서 재현되는’ 여러 내용 가운데 여성들의 가사노동 전담에 대한 현실을 분석한 부분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필자의 비판 역시 그 자료는 모두 영화 속의 이야기에서 찾아낸 것들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북쪽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변혜정의 논문 목차 속에서 4쪽에 걸쳐 그것을 설명하면서도 구체적으로 그러한 모습이 어떻게 영화 속에서 재현되고 있는지는 언급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보며 필자는 위의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북한영화를 전혀 안보고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필자의 경험상 북한영화 몇 편만이라도 주의 깊게 보았다면 위와 같은 주장은 성립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필자는 여기서 위의 글을 비판하면서 나름대로 필자가 본 예술영화 가운데 이러한 위의 주장과 반대되는 장면들을 보여주고자 한다.
위에서 사례로 든 것들은 북한영화 속에서 남자가 가사 및 육아노동에 여자들과 함께하는 모습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위의 영화 속 화면을 이곳에 옮기면서도 필자는 어렵지 않게 이러한 장면들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위에 예시한 영화화면들은 위의 인용 글에서 ‘사회주의 침체기 이후’ 여성들의 가사노동 전담이 더욱 강화되었다는 주장을 좀 더 정교하게 반박하기 위하여 모두가 동구 사회주의권이 완전히 해체된 이후이고, 특히 김주석 사망과 자연재해로 북이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던 1995년부터 가장 최근의 작품들 가운데서만 선택된 것이다. 물론 그 이전의 영화 속에서도 이러한 장면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북한영화 속에서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이 완전한 여성의 몫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더욱이 그러한 것들이 사회주의 위기 이후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주장은 1차 자료에 의한 연구 속에서 나온 논리가 아니라 저자의 선험적 기대 속에서 도출된 근거 없는 왜곡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또 다시 언급하지만 남쪽의 북한영화 연구자들이 제발 1차 자료를 풍부히 관찰하고 위와 같은 글을 썼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