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북한영화 연구자 1세대들의 특징은 주로 정치학이나 사회학자들이 북쪽 사회나 정책들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연구해왔거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반북 선전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객관적인 1차 자료에 대한 철저한 탐구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서술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북한영화에 대한 분석은 북 보다 오히려 더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1990년대 탈냉전을 맞이하고, 또 2000년 6.15 남북공동선 이후 남북의 급격한 화해 분위기에 맞춰 최근에는 과거와 같은 방식의 북한영화 연구는 거의 없는 상태이다. 이렇게 새로운 연구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2세대 북한영화 연구자들의 큰 특징은 과거와 달리 영화학을 전공한 영화 전문가들이 그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1차 자료에 대한 치밀한 접근을 전제로 하고 또 그것을 분석하는데 있어 방법론적으로 영화학적 전문지식이 동원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은 영화전문가들이 북한영화에 관심을 가지는 과정에서 지난 1세대 연구자들과 달리 여성연구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북한영화를 통한 북측 여성들의 삶에 대하여 다양한 각도로 분석되고 있다. 일단 북한영화에 대한 연구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은 바람직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영화전문가도 여성전문가도 아닌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바람직한 현상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분석하는 북한영화에 대한 글들 속에는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한 문제점들은 영화학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나 여성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어도 북한영화를 조금만 많이 보았다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필자가 그 문제점들에 대하여 간단히 논하고자 한다. 지난주의 연재 글에 이어 앞으로 몇 회에 걸쳐 북한영화에서 나타나는 여성문제를 분석한 글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래 글은 북한영화에서 여성성이 재현되는 과정의 변화를 연구한 것의 일부이다. 이에 따르면 북은 해방 이후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봉건제가 붕괴되었기 때문에 여성해방은 더 이상 논의가 필요 없는 것으로 인식되었을 뿐만 아니라, 1970년대에 이르면 여성의 성은 더욱 심각한 위기에 처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증거로 예술영화 속에서 남성의 시선을 사로잡는 여성성은 자기 정체를 숨기고 적구에서 위장복을 입었을 때만 드러나고 있다며 영화 속의 장면들을 그 근거로 든다. 그럼 그의 주장을 원문 속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여성을 봉건제도와 일치시키거나 그런 봉건제 하에서 고통받는 인물로 상징화하면서 그것에서 구원해주는 것으로 여성해방이 완성되었다는 사고가 사회주의권에서 일반적이었던 듯 하다. … (중략) …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여성해방은 봉건제도에서 구원해야 하는 것. 따라서 사회주의가 완성되면 여성해방의 문제는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는 어떤 것으로 인식되었다. 70년대 혁명 전통의 열기가 고조되면서 여성의 성은 더욱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된다. … (중략) … 그리하여 북한여성이 여성성을 과감하게 드러낼 때는 적의 모습을 취했을 때이다. 북한영화에서 <적후의 진달래>는 드물게 여성성이 보여지는 영화이다. 첩보영화인 이 영화에서 주인공 송윤미는 미군 소속 송대령의 여동생으로 가장하여 하와이에서 오는 것으로 설정돼 있는데 그녀는 짧은 원피스, 진주목걸이, 짙은 화장으로 남성들의 시선을 끌고 그러한 매혹을 즐기는 것으로 묘사된다. <사령부를 멀리 떠나서>에서도 김정숙은 남성보다 뛰어난 능력의 친위전사로서 그려지지만 적군이 점령하고 있는 마을에 침투하기 위해 군복을 벗고 붉은 치마저고리로 꾸미고 친정에 다니러 온 새댁으로 가장하면서 그녀의 여성성을 처음으로 드러낸다.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송윤미와 김정숙의 가장은 가지 정체성(인민군)을 숨기는 도구로서만 비로소 드러낼 수 있는 정체성(여성)이다." (이명자, 「북한 주체영화의 여성성 재현에서의 변화 연구」, 『영화연구』제23호, 한국영화학회, 2004.6)

▲ <적후의 진달래>(1970)에서 주인공 선희가 첩보 활동하기 위해 국군장교의 여동생 송윤미로 위장하여 군부대에 들어오는 모습. [자료사진-유영호]

▲ <사령부를 멀리 떠나서>(1978)의 김정숙이 사령부의 명령을 집행하기 위하여 군복 제작에 필요한 천을 구하러 군복을 갈아입고 적구로 들어가서 활동하는 모습. [자료사진-유영호]

꽤 긴 글의 인용이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옮겨보았다. 그리고 영화 속 여주인공들의 위장된 모습을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다.

인용 글에서 제기된 주장 역시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영화의 흐름 속에서 그 변화를 연구한 글이기에 많은 1차 자료에 대한 검증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필자가 간단하게 문제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위와 같은 분석이 너무도 자본주의적 시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먼저, 여성성은 꼭 값비싼 옷차림이거나 다소곳해 보이는 정숙한 복장 속에서만 찾아진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본다. 그냥 적구에 임무수행을 하러 간 것이니 그곳에서의 임무수행에 적합한 옷차림을 한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에 성의 상품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서 위와 같은 이상한 분석이 도출되는 것이다.

만약 김정숙에 대하여 새댁차림으로 적구에 들어간 그곳에서만 여성성을 느낄 수 있다면, ≪조선의 별≫에서 평상복 차림으로 적구에 들어간 김일성은 남성성을 잃어버린 것이 성립된다는 것인가? 이는 전쟁=남성, 평화=여성이라는 단순논리를 적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식민지 조국이 침략자 외세와 전쟁을 하는 판국에 어디 남성이 따로 있고 여성이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또 위와 같은 기준설정의 문제점 외에도 위에서 이명자가 이야기하는 여성성의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전제하에서도 위의 주장은 글쓴이의 주관적 판단에 불과하다. 이명자가 사례로 든 영화들과 같은 시기에 창작된 1970년대 예술영화 몇 편으로도 그것에 대한 반박 자료는 얼마든지 있다.

아래 사진들은 1970년대 창작된 몇 편의 예술영화장면이다. 이 영화들은 그 시대 배경이 항일혁명이나 전쟁시기가 아닌 당시 1970년대이다. 영화 속에서 평상시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이들 여성들의 복장은 위의 이명자가 말하는 기준에 따를 때 여성성이 충분히 재현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여성성의 기준을 위 저자의 기준으로 설정하더라도 같은 1970년대에 충분히 이러한 모습들의 영화를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1970년대 북한영화에서 여성들은 자기의 정체를 숨기는 도구로서 사용될 때만 여성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주관적 판단이라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판단하리라고 믿는다.

▲ 예술영화 <재단자>(1972) : 옷의 품질과 다양성 보다 실적에만 신경 쓰는 피복공장 생산부장과 인민들의 다양한 요구에 맞게 옷을 설계하려는 재단사인 영희가 대립하는 내용으로 영희가 좋은 설계를 위하여 학습하는 장면. [자료사진-유영호]

▲ 예술영화 <금희와 은희의 운명>(1974) : 전쟁으로 남북으로 헤어진 쌍둥이 고아를 통한 이산가족의 슬픔을 다룬 이야기로 북에서 입양되어 자신이 고아인지 몰랐던 금희가 그것을 점차 알아가며 고민하는 장면. [자료사진-유영호]

▲ 예술영화 <유원지의 하루>(1978) : 젊은 남녀의 맞선을 놓고 두 가정이 대성산유원지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로 기옥이가 유원지 냇가에서 손을 씻는 장면. [자료사진-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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