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와 거지

내가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예술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원래 감성이 풍부한 민족은 아닌 것 같은데, 아마 그런 이유로 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발버둥 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프랑스 여행 중에 내가 관심 있게 본 것은 미술관과 거지였다. 프랑스 거지는 우리와 조금 다르다. 거지 행세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바이올린 정도는 연주 할 수 있어야 한다. 색소폰이며, 아코디언 따위의 악기를 연주하는 거지를 파리 시내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는 더럽고 지저분한 연미복과 나비넥타이를 매고 멋있게 노래를 부르는 거지도 봤는데, 박수를 치며 동전을 던져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듣기로는 결코 노래를 잘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거지의 표정에는 당당함이 서려 있었다. 한마디로 `예술적인 거지`였다.

우리 주변에도 거지가 많다. 특히 연말이나 명절이 되면 없던 거지가 떼거지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거지는 여러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포복형, 즉 자세를 최대한 낮추고 손을 벌리고 있거나, 시각이나 손발이 없는 신체장애를 무기로 하모니카를 불거나 노래반주기를 가지고 다닌다. 협박형도 있는데, 깍두기 머리에 험상궂은 얼굴로 물건을 강매하거나 돈을 요구한다. 주로 `감옥에서 막 출소한...`라는 식의 위협적인 말투도 빼먹지 않는다. 하지만 어쩐지 불쾌한 기분은 없어지지 않았다. 깡패와 결탁한 앵벌이 조직이거나 사람에게 면죄부를 파는 직업거지, 정부의 방치 따위에 대한 의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거지의 행태를 보면 왠지 그 나라 분위기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인격을 최대한 낮추어야만 동정을 얻을 수가 있고, 혹은 군사독재처럼 협박과 폭력을 휘둘려야 돈을 얻을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하모니카나 노래를 하는 거지 대신에 녹음기를 트는 거지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하이테크화된 거지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본 정말 감동적인 거지는 지하철에서 절규하듯 노래를 부르던 40대 여성이었다. 노래 제목은 정확히 모르지만 `나는 속았네...나는 속았네`라는 노랫말을 반복해서 부르던 기억이 난다. 마치 자신이 이렇게 거지 행세를 하는 이유가 세상이 혹은 사람이 자신을 속였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오랜만에 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아낌없이 주었다.

물론 거지의 인격을 무시하거나 장애인을 경멸할 의도는 없다. 나는 지금 물질적인 거지가 아니라 정신적인 거지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쪽박만 없지 거지인 사람은 우리 주변에 많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정신이 거지처럼 황폐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비록 가진 것은 없어도 황제 못지 않게 고상하고 당당한 사람도 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왕이나 공주처럼 살라고 말한다. 물질이야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많이 가질 순 없지만 왕의 기품과 공주의 고고함을 가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왕의 당당함과 공주의 기품은 예술을 통해 만들어지고 드러난다. 이른바 공주병, 왕자병에 걸린 사람들은 왕이 먹는 음식보다는 아르바이트생이 10분만에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고, 공주처럼 고귀한 사람이 즐겨듣는 음악보다는 싸구려 음악을 선호하고, 고고한 정신세계를 표현한 미술보다는 말초적인 그림을 더 좋아하며, 편리하고 아름다운 우리 옷보다는 불편하고 보기 싫은 옷을 많이 입는다. 왕자와 공주는 그 수준에 맞는 문화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라를 걱정하고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 왕자와 공주는 거지에 가깝다.

나는 팍팍한 세상을 위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거지,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꺼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왕자, 공주를 사랑한다.


닮지 않은 임수경

▶통일의 새날을 그리며/조선화/142.7*92.3/박대연, 최창호, 김동환/1992

이번 그림은 우리 민족의 아름다움을 위해 기쁘게 거지가 된 공주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통일의 꽃 임수경`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제목은 `통일의 새날을 그리며`라고 되어있고, 박대연, 최창호, 김동환 세 사람의 공동작이다. 1989년 평양축전에 전대협의 대표로 참가한 임수경의 행적 중에서 백두산을 방문한 모습을 그렸다. 왼쪽 상단에는 북한에서 만들어 주었다는 전대협이란 깃발이 나부끼고, 백두산에 오를 때 날씨가 나빴다는 기록처럼 비옷을 입고 있다. 배경에는 구름이 잔뜩 낀 백두산 천지연이 흐릿하게 보이고, 바닥에는 백두산을 상징하는 듯한 꽃이 화사하게 피어있다.

그림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구름이 많이 끼어있는 배경과 비옷을 입고 바람에 머리가 흩날리며 어딘가를 아릿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주인공의 모습이 보인다. 이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통일을 갈망하는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손에 꽃을 들고 있는 장치는 통일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사실 북한에서는 임수경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이 창작되었다. 많고 많은 모습 중에서 백두산을 방문한 장면을 소재로 삼은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민족미술계열 작가나 학생들에 의해 임수경의 모습을 많이 그렸는데, 북한의 그림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우리의 그림이 임수경의 모습과 진달래, 백두산이라는 등식을 벗어나지 못한 반면, 북한의 임수경 작품은 실제 상황이 맞게 표현된 장점이 있다. 다시 말해 현실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남한에서의 임수경과 북한에서의 임수경의 활동이 다르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북한미술에서는 사상과 소재와 주제, 화면구성, 기법 따위의 제반 요소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개념으로 `종자론`을 내세운다. `종자론`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 작품과 연결시켜 보자.

임수경이 백두산을 올랐고, 또한 기후가 나빴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 작품은 여기에 착안하여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백두산은 보통 산이 아니라 민족의 정기가 어려있는 곳이기에 통일의 상징으로 이해된다. 백두산의 기후가 나쁜 것은 흔한 일이지만 임수경과 결합하면 통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백두산에 꽃이야 여름이니 흔하게 피겠지만 임수경이 들면 통일의 꽃으로 형상화시킬 수 있다. 백두산, 꽃, 나쁜 기후 같은 소재가 임수경과 만나 통일을 갈망하는 주제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또 하나의 숨겨진 북한미술의 특징이 있다. 바로 임수경의 얼굴이다. 상황으로 보면 주인공은 임수경이 확실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임수경 같기도 하고 아니 것 같기도 하다. 북한 작가들이 임수경의 모습을 정확히 사생하지 못해서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의도가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작가들은 임수경을 소재로 삼았지만 임수경 개인을 그린 것이 아니라 통일 지향하는 일반적인 남한의 청년학생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북한 사회와 우리 사회의 다른 점이기도 하다. 북한은 사회주의 나라이고 영웅적인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우리 식의 `스타`는 존재할 수 없다. 미술작품에서도 이런 현상은 다반사이다. 작품에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집단이름으로 서명한다든지, 이번 작품처럼 공동작업을 하는 경우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우승을 해도 집단에게 공을 돌리며, 뭔가를 발명하고, 개발하고, 히트를 쳐도 집단 즉 노동당과 수령에게 헌납한다. `스타 시스템`에 익숙한 우리에게 낯선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 작품은 개인의 행위가 개인에 머무르지 않고 민족 공통의 가치로 승화시키려는 의지를 잘 반영했다고 평가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전태일의 죽음이 그렇고, 문익환 목사님, 김남주 시인, 강경대 열사처럼 수많은 열사의 모습이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인 상징과 가치로 남기를 바란다.

닮지 않은 임수경의 얼굴에서 그 당시 통일운동을 하며 눈물을 흘렸던 수많은 청년학생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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