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으로 온 나라의 시선이 축구 경기장으로 쏠려있던 2002년 어느 날.
“패트리어트는 공격용이 아니라 방어 및 보호용이라 김정일 서울 답방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패트리어트 철학’을 다소 길게 설명하면서 “패트리어트를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략 결정권자들의 선택 폭을 넓게 해 준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레이시온사의 패트리어트 판매 총괄책임자인 도널드 인환테 씨. 미국의 미사일방어망(MD) 강행으로 민감한 시점인 2002년 7월 16일 내한했다. 레이시온사는 미국 3대 군산복합체에 속하며, MD를 주도하는 업체 가운데 하나다. 물론 패트리어트 미사일도 전역미사일방어(TMD)체계의 구성요소로 각광을 받아온 터라 그의 방한 목적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군산복합체의 충실한 영업팀장의 입에서 무기 파는 데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떠올린 점. 이북의 눈치를 보면서 무기를 팔다니... 세상이 참 많이 변한 것일까. 북미, 남북간의 힘의 역학관계가 어디로 기울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김칫국물은 금물. 정확하게 그해 한 달 전 6월 7일자 <조선일보>에는 국방부가 주요 무기체계 도입에서 국제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뒤집어 보면 미국 군수산업체에 무한정의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겠다는 정책을 적극 검토 중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었다. 그 뒤 공군 차기 전투기(F-X) 사업과 소위 ‘이지스함’ 도입사업인 해군 차기 구축함(KDX-Ⅲ) 사업에서 나타났듯 공개경쟁입찰 과정에서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리스 패트리어트 판매가격보다 25% 비싼 미제 패트리어트는 그대로 한국에 도입되었다. 6개인 최신예 패트리어트 미사일 포대가 광주 비행장에 2개 더 추가 배치돼 패트리어트 1개 여단이 2004년 가을 창설되었다. 육군의 다연장로켓(MLRS)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현재 10년간 9억불 어치의 탄약을 한국에 팔아먹을 수 있다.
미제무기의 충실한 소비시장인 한국의 무기 도입 행진과 미국의 무기구매압력은 앞으로 몇 년간 이어질 전망이다. 강력한 남북공조가 구축이 되지 않는 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이 이북과 한국의 눈치를 덜 보는 한 말이다. 앞으로 4년간 99조원, 오는 2020년까지 15년간 총 289조원의 전력투자비가 필요한 가운데, 경상유지비를 포함할 경우 필요한 국방비는 289조원보다 크게 늘어나 500조~600조원 이상이 될 전망이어서 더더욱 염려된다.
최근 관심을 끄는 것은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가 지난 2005년 11월 23일, 윤광웅(尹光雄) 국방장관을 만나 현재 미국산이 불리한 것으로 알려진 공중조기경보통제기(E-X) 사업 기종 선정과 관련,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평가해 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화 한 통화면 될 것을 현대판 조선총독의 지위에 있는 주한 미대사가 직접 방문해 무기구매를 요청한 것은 3년전 패트리어트 영업맨 도널드 인환테의 발언만큼이나 이례적이다. 그만큼 똥줄이 탄다.
E-X사업은 총 1조8000억 원의 예산으로 2008년 뒤 공중조기경보통제기 4대를 구입하는 것으로 미 보잉사의 E-737과 이스라엘 엘타사의 G-550이 치열한 경합을 벌여왔다. 보잉사는 15억 달러, 엘타사는 11억 달러 수준. 이스라엘제가 최근 공군의 시험평가를 통과한 것으로 확인됐고, E-X사업은 군 요구조건만 충족하면 가격이 싼 기종을 선정토록 돼있어 이스라엘 제가 유리할 것 같지만 이스라엘 부품에는 미국이 수출을 통제하는 품목이 있어 역시나 미국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패트리어트의 재판이 될지 아니면 미국이 남북의 눈치를 볼지는 두고 볼일이다.
국방부는 2004~2008년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하면서 공중조기경보통제기도입 사업을 2005년 본격 추진하기로 했던 바다. 이는 2003년 5월31일 주한미군 라포트 사령관이 향후 3년간에 걸쳐 추진될 한미 전력증강 계획을 설명하면서 한반도 안보 및 지역안정을 위한 미국쪽 투자(110억불 이상)를 의미한다고 밝힌 그 연장선상이지 않을까. 또 미국의 해외미군기지 재배치와 함께 주일미군을 중심으로 해?공군력이 강화되고 있는 차원에서 말이다.
3년 전 패트리어트 판매당시 그리스의 패트리어트가 들러리(?)섰듯이 이번에도 이스라엘제가 들러리 설 가능성을 제기해본다. 하지만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일찌기 '뉴욕 타임즈'도 이북이 고립된 것이 아니라 미국이 고립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다급한 것은 미국이다.
2000년 6월 6.15공동선언 이후, 미 군산복합체의 도널드 인환테와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의 영업 전략의 공통점은 한국시장에서 갈수록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6.15공동선언과 2005년 남북해외 6.15공동위의 풀뿌리 작업, 민족대표자회의 논의 시작, 통일운동에 조직적으로 진출하는 노동자 농민 대오. 6자회담에 힘없이 끌려가는 미국. 북일 국교정성화를 손꼽아 기다리는 일본. 50년만의 작전지휘권 환수논의 시작. 머지않은 남북 최고위급 회담.
이런 움직임 가운데 미국의 무기 강매는 먼저 미군의 단계적 감축으로 시작된 전략적 후퇴를 만회하기 위한 술책으로서 앞으로 2~3년 밖에 남지 않은 미 군수업체의 무기 팔아먹기라고 본다. 시점은 주한 미군의 무력증강은 2~3년 동안 진행될 북미관계의 사활이 걸린 대결전 시점의 무력증강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 민족과 미국의 대결전에서 미국의 패배가 드러나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주한미군 단계적 감축을 메우는 ‘전력증강’으로 포장되어 있다.
이북은 미국을 향해 이북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 철거와 한반도 통일을 받아 들여야 한다고 줄곧 힘있게 주장해왔다. 3~4년 앞으로 다가 온 주한미군의 철거와 한미동맹 해체는 동전의 양면인 바, 미국의 처지에서는 충격적이고 갑작스러운 주한미군의 철거를 누그러뜨려야 하는 것. 이와 함께 무력증강으로 미군의 철거에 호들갑을 떨고 있는 한국의 미국 추종세력들을 달래야 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에게는 눈물을 머금고 미군의 한반도 철거 대가로 세계1등 국가를 유지할 수 있는 도구인 NPT, MTCR, IAEA체제를 그나마 유지하는 게 더 큰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의 무력증강이 아니라 우리 가슴속의 ‘공포심’이다. 미국의 최첨단무기에 대한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더 큰 문제다. 핵추진 항공모함이나 이지스함만 떠올리면 괜히 주눅든다. 또 패트리어트 미사일, 공중조기경보통제기, 스텔스 폭격기, 벙커 버스터라는 지하 폭탄, 작전계획 5027-04도, 을지-포커스렌즈 연습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뒤집어 보자. 작전계획 5027-04는 이미 작전계획이 아니다. 사전에 언론에 보도되는 작전계획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한반도에서 얼씬거리고 있는 을지-포커스렌즈 연습도 마찬가지다. 훈련 중에 포화가 우리 민족을 향해 단 한 방이라도 향하는 날. 오산.평택의 주한미군은 물론 주일미군, 동경, 하와이 태평양사령부, 워싱턴주 Bangor 해군 잠수함기지, 버지니아주 요크타운 해군 무기기지는 민족공조의 사정권 안에 들어온다. 패트리어트와 공중조기경보통제기도 이런 식으로 뒤집어 보자. 그래야 두발 뻗고 잘 수 있고, 장차 통일이 된다.
미국의 무기강매는 언젠가 부메랑이 될 것이다.
(이번주에는 '미국의 무기강매' 글이 먼저 나갑니다. 지난주에 예고했던 '선군정치' 시리즈는 다음 주부터 나갑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