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석(군사평론가,‘반갑다 군대야’지은이, hiarmy3@hanmail.net)


● 병영일기

8월 20일 (흐림)
휴가만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무절제…
계획은 있었으나 지켜지지 못했다. 휴가 군인이라는 보상심리, 낭만감에 도취되어 항상 때려 먹자는 방탕을 즐긴 꼴이다. 이책 저책 마구 넘기다가 결국 한 권도 정독하지 못했다. 그러나 친구가 모아준 한겨레신문 스크랩을 본 것은 큰 도움이었다. 친구들에게서 계속 뭔가 위안받고, 얻어내려는 자세는 정말 옳지 못한 모습이다. 친구들에게 내 자신이 힘이 되고 용기가 되도록 했어야 했다. 친구들에 비하면 나야말로 휴양하는 정도밖에 안되는데 난 거꾸로 행동했다. 고생하고 돌아온 사람이라는 자만이 은연중에 군데군데 나타난 점은 정확히 반성돼야 한다. 휴가, 나의 잘못된 모습을 친구들이 다 가려준 기간인 셈이다. 친구들, 정말 고맙다. 여러 가지 자료를 모아주고, 세상 얘기도 해주고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이제 휴가기간의 잘못 때문에 자신 없어 하고 풀죽어 있는 모습을 버리자. 그것이 도와 준 친구들에 대한 보답이다. 툭툭 털고 삶에게서. 군대에게서 배우자. 사람이 되자.

8월 22일 (흐림)
시멘트 수령차 연대 다녀온 날. 화장실 찾으러 헤매다가 우연히 살벌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는 내무반을 봤다. 반함에 상병 하나가 맨발로 올라가서 양손을 앞으로. 땀을 줄줄 흘리고 그 뒤쪽으로도 몇 명이 끙끙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야삽·철모 등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거기가 군기교육대란다. 군기교육대 교육생은 취사장이나 화장실 갈 때 포복으로 이동한다는 말도 들었다. 뭐 같은 군대.

8월 27일 (맑다가 흐림)
쉬지 못한 휴일이다. 오전에 작업. 오후에 근무. 겨우 쉬려는데 군장 뺑뺑이 한 시간. ‘처벌이 아니라 체력단련을 위해’ 일직사관이 마련한 뺑뺑이는 참 재미(?)좋았다. 사우나가 따로 없다. 덕분에 묵은 때 쫙 빼고 홀가분한 몸과 마음으로 잠을 자게 되었다. 내일은 꼭 집에 답장.

8월 30일 (비)
비가 잦다. 물이 하루종일 안 나와서 식기고참 고생이 많고, 아래 군번들도 민가로 물 뜨러 다니느라 힘들었던 하루, 먹을 물도 모자라니 닦을 생각은 아예 못하고, 땀나고 몸은 끈적거리고 고참들의 괜한 신경질쯤이야 이해해야 할 정도.

9월 1일 (맑음)
진급자들이 많다. 동기들과 돈을 모아 일병·상병 진급자들과 매점행. 마침 연초비 1,700원씩 받은 것이 있어서 계획이 맞아 떨어졌다. 진급자들은 마냥 즐거워 했고 자리가 참 좋았다. 김 상병이 “앞으로 집합 걸고 싶으면 P.X로 걸겠다. 대신 고참들한테 안 깨지고 빠졌다는 소리만 나오지 않게 하자.”에서부터 “청소평가회를 매일 하겠다.” “이등병들 좀 잘 챙겨라 목욕·속옷 교체 여부, 건강 등에 대해 신경 좀 써라.” 등등의 얘기가 오갔다. 성공이다.

9월 5일 (비)
화장실에서 희미한 백열등 아래 편지를 읽고 있는 ○○중대 이등병을 봤다. 인기척을 느끼고 놀라며 편지를 꾸겨넣는 모습이 나 이등병 때하고 같다. 편지 한 장을 거의 너덜거릴 때까지 보고 또 보고 하던 그때 이등병 시절. 감회가 새롭다. 그때로 돌아가라면 자살하고 말겠지만 그 때 생각하면 힘이 솟는다. 화장실 한구석에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편지지를 백열등에 비추는 이등병. 확실히 편지는 군바리의 낙이며 힘이다. 특히 신병 때는!

9월 8일 (비)
내무반은 장기 두는 고참, 바둑 두는 고참, TV보는 사람, 총기 수입하는 사람, 신문 뒤적이는 고참, 세면장엔 박박 소리내며 씻는 사람, 오 일병 김 상병은 근무 나갈 준비하느라 바쁘고, 주번하사는 빨리들 씻고 들어와 TV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신병은 혼자 구석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외우고 전화벨이 따르릉거리고, 쓰레기장에 갔다 온 한 일병이 리어카를 막 세우고 들어온다. 지금은 20:10, 사람들은 매일처럼 오늘도 분주하다. 중대 살림에 더욱 신경쓰자. 사람들과 자주 대화하고 대화의 요점을 항상 기억하자. 내 머리 안에 매일 무엇인가, 누구에겐가 필요한 것이 있지 않나 생각하자.

9월 12일 (맑음)
추석연휴 전날이라 간부들이 들떠있는 게 눈에 보인다. 월급수령. 14.000원에서 태권도복 4,000 + 기념품대 2,000 제하니까 8,000원 실수령. 추석연휴에 바둑대회, 장기대회, 윷놀이대회 등이 잡혔다. 분대원 소대원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도록 노력하자. 조금씩 거둔 돈으로 막걸리 회식이라도 할 수 있도록…

9월 18일 (흐림)
연대단위 훈련준비가 시작되었다. 개인군장, 분대 지참물 등을 점검하고, 개인훈련 기록카드 점검까지 하루종일 바빴다. 텐트팩이 모자라서 걱정이었는데 ○○소대 남는 거 얻어서 다행. 우리가 판초우의 한 개 채워준 것에 대한 보답이지만 얼마나 고마운지. 큰일날 뻔 했다.

(다음주에 9월 26일부터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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