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 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


최근 발표된 한미 정상 합의 공동 설명자료는 동맹국 간의 경제·안보 협력이 아니라 한국의 산업·기술·경제·군사 주권을 더욱 옥죄는 ‘총체적 대미 종속 패키지’ 성격을 보여준다. 자국 중심의 공급망·기술·안보 체제를 구축하려는 미국의 전략 구상에 한국이 깊이 편입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바뀌지 않는다면, 한국의 선택지를 좁히고 자율적 경제·안보 전략을 사실상 봉쇄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것이 명확하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질문은 분명하다. ‘그만하면 선방했다’ ‘다른 대안 있나’가 아니라 이 합의의 본질은 무엇이며, 한국은 어떤 대안을 가질 것인가이다. 단기적으로는 국민의 주권 의지를 바탕으로 미국 안팎의 정세 변화를 주시하고 한국경제 사정과 ‘상업적 합리성’ ‘협의’ ‘사업진척도에 따른 분할 출자(Capital Call) 따위를 근거로 시간을 끌어야 한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는 근본적 대안을 과감하게 준비, 결행해야 한다. 

한미정상 합의의 본질 : 패키지 종속 구조의 심화

한미 정상 합의 내용은 전략산업을 안보 의제로 끌어들인 ‘총체적 패키지’ 구조이다. 그 핵심은 자동차, 반도체, 조선, 배터리, 인공지능, 원전, 우주기술, 군사기술 등 한국의 주력 산업 전반을 미국의 경제·안보 프레임 속으로 묶어 넣었다는 점이다. 

미국은 그 ‘경제·안보 프레임’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공급망, 데이터, 핵심기술, 핵연료 등 국가 전략상품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고자 한다. 이에 따라 한국은 산업·기술·데이터 주권을 실질적으로 제약받는 구조 속으로 편입될 위험이 매우 커졌다.

한국 산업은 지난 30여 년간 글로벌 시장 확장, 기술·설비 투자, 수출 기반 확대를 통해 비교적 여유를 가졌다.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미국 일극 패권 시대에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중국으로의 진출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이제 중미 전략경쟁이 본격화되어 한국은 자주성 회복을 결단하지 않으면 스스로 운신의 폭을 더욱 좁히는 형국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번 합의는 미국의 전략적 필요를 우선시하면서 한국의 정책 주권을 보조적 위치로 밀어내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이로 인해 단기적 부담이 가중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한국 산업의 경쟁력과 자율적 전략 수립 능력 자체가 위협받게 되었다. 그 구조적 위험은 기술·산업·자본·안보의 ‘4중 종속’이 확대된다는 점이다. 

먼저 기술 자립 약화이다. 반도체 장비·소재·부품은 여전히 미국·일본 중심 구조이다. 미국은 장비·설비·AI 핵심 알고리즘의 통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대중국 규제와 연계해 한국 기업의 ‘자율적 경영 판단’을 사실상 제한하고 있다. 원전 기술과 핵연료 추적 관리 등에서도 데이터와 IP(지식재산권)의 핵심 권한은 미국에 집중되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의 기술 독립성을 더욱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둘째, 경제정책의 안보 종속이다. 미국은 경제·산업 분야를 군사·안보와 결합해 일괄 패키지로 협력 요구를 강화하고 있다. 예컨대 반도체 보조금이나 AI 협력 조건을 군사동맹 또는 대중국 견제와 연계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경제정책 결정의 공간을 구조적으로 좁혀 버리는 요인이다. 경제정책이 ‘자주적 선택’이 아니라 ‘안보상 필요’에 종속되는 상황이다.

셋째, 단기 출혈과 장기 종속의 결합이다. 미국의 관세 폭탄과 대미 투자 강요는 한국경제-산업-일자리 약탈이고 대중 견제-대북 압박 전략에의 동원은 중대한 안보 위협이다. 자동차, 반도체 15%, 철강·알루미늄 50%의 관세 적용, 대미 투자 약7,000억 달러 이상, GDP 3.5%의 국방비 폭등과 250억 달러의 미제 무기 강매, 350억 달러의 주한미군 포괄적 지원은 단기적으로는 민생복지의 후퇴이고 장기적으로는 대미 예속 심화로 이어질 것이다.

통계로 본 한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라지만, 주요 경제 지표는 대외 의존도가 높고 변동성 충격에 매우 취약한 구조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수출시장의 중국·미국 의존도가 과도하다. 2024년 총수출 약 6,830억 달러 가운데 대중국 수출이 약 1,330억 달러(19.5%), 대미국 수출이 약 1,278억 달러(18.7%), 대아세안 수출이 약 1,140억 달러(16%)을 차지한다. 한국 GDP의 약 44%가 수출로 구성된 상황에서 미국의 통상 압박은 한국경제 전체를 직접적으로 흔드는 요인이 된다. 특히 미국의 ‘관세·보조금·안보 연계형 산업 정책’은 한국 기업의 사업 구조를 강제로 조정시키는 성격을 지닌다.

또 에너지·원자재 수급이 세계 최고 수준의 외부 의존 구조 위에 놓여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0% 이상이다. 산업용 에너지 비중이 61.7%로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인 반면, 재생에너지 비중은 3.6%로 OECD 최하위권에 머물러있다. 한국의 제조업 구조는 에너지 가격 변동에 크게 흔들린다. 원유·LNG 가격이 인상할 경우 생산원가, 물류비, 전력 요금, 소비자물가까지 연쇄적으로 충격이 전이되는 구조이다. 이는 아시아 금융위기(1998), 국제유가 급등기(2008),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2022) 등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외환·금융이 취약하여 글로벌 충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외환보유액(2024년 말)은 4,156억 달러, GDP 대비 약 22~23%인데, 이 수준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 기준에는 부합하지만,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서는 금융 변동성에 대한 안전판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초기, 2022년 환율 급등기에서도 대규모 자본유출이 발생해 환율이 급등한 적이 있었다. 

경제·외교·안보를 아우르는 대안 절실

한국이 선택해야 할 대안은 경제 다변화와 평화·협력 전략이다. 이 두 가지는 상호 보완적이며, 어느 하나만으로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과 외교·안보 위험을 극복할 수 없다.

우선 경제 다변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특히 수출·시장 다변화 전략이 시급하다. ASEAN, 인도, 중동 등 신흥시장의 비중을 확대하고, RCEP, CPTPP 등 지역무역협정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중소·중견기업의 시장 개척 역량 강화를 위해 국가 차원의 공동 펀드를 조성하고, 해외 진출 지원과 금융 지원 체계를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기술·산업 자립도 긴급한 과제다. 반도체 장비·소재·부품의 국산화를 강화하고, 공급망의 이중·삼중화를 추진해 특정 국가 의존도를 최소화해야 한다. 국가와 민간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중장기 R&D 기금을 조성하여 기술 주권을 확보하고, 데이터와 지식재산(IP) 통제권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관리할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에너지·원자재 조달 다변화가 중요하다. 호주, 아프리카 등 새로운 공급선을 개척하고, 해상풍력·태양광·수소 등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를 높여 에너지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 희토류, 마그네사이트 등 전략 광물의 국가 비축 규모 확대도 절실하다.

외환·금융 안정망도 강화해야 한다. 통화스와프 라인 확대, 외환보유액 구성 다변화(금·유로·위안화 비중 확대), 원·루피·바트 등 지역통화 기반의 비달러 결제 시스템 활성화는 외부 충격 대응력을 높이는 핵심 과제다.

경제의 구조적 다변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견국 외교와 다자협력 강화가 필수적이다. 브릭스 국가, 글로벌 사우스와의 연대, EU·인도·ASEAN·중동과의 협력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전략적 선택권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WTO, APEC 등 국제무대에서 규범 형성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하고, 경제와 안보를 동시에 보호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외국 사례: 미국 압박 대응 다변화 전략

외국 사례를 보면 미국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다변화 전략은 국가별 상황과 역량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러시아는 서방 제재 이후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외교·경제 축을 재편해 에너지 수출을 유지했고, 인도는 전략적 자율성을 기반으로 미·중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구사함으로써 외교적 선택권과 경제적 자율성을 확대했다. 브라질은 남미 국가와 신흥시장과의 교역·투자 다변화를 강화해 농산물과 자원 수출 구조를 안정화했다.

이란은 중국 중심의 비달러 결제와 교역 확대를 통해 제재 충격을 완화했고, 터키는 러시아·중국·중동 국가들과의 연계를 강화하며 무역과 에너지 공급의 최소 안정선을 유지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수출 의존도를 유지하되 중국·인도·일본 등 주요 수입국으로 거래선을 넓히고, 외교·안보·에너지 전략을 결합해 지정학적 위험을 관리하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도 유사한 대응을 보이고 있다. 베트남은 미국·중국·아세안 국가와의 다자적 경제·외교 관계를 활용해 수출과 외국인직접투자를 확대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중국·일본·아세안과의 협력을 기반으로 핵심 자원 수출과 투자 유치를 안정화하고 지역 내 전략적 협력체를 활용해 외부 압력에 대응한다.

이와 더불어 남아프리카공화국은 BRICS 체계를 활용해 금융·무역 파트너를 다변화하고 있으며, 서방 금융 의존을 점차 줄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터키·중국·걸프 국가의 투자를 유치해 제조업과 인프라를 확장하면서 미국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멕시코는 미국과의 경제적 밀착도가 높지만, 최근 남미·유럽 시장과의 무역·공급망 협력을 확대해 제조업 기반의 위험을 분산시키고 있다. UAE는 중국·인도·유럽과의 다자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에너지·물류·금융에서 독자적 플레이어로 성장해 외교적 자율성을 확대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들 사례는 공통적으로 대외 의존도를 줄이고 경제·외교적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해 다변화 전략이 필수적이며, 각국이 단기적 안정성과 장기적 구조 위험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실행 전략을 설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변화 전략은 단순히 ‘미국 대신 다른 파트너를 선택한다’는 수준이 아니라, 무역·금융·외교·안보의 구조를 재편하는 국가 전략 차원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가장 현실적 경제·안보 대안 : 평화협력과 북방경제 개척 

한국은 미국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는 나라이며, 남북 대치 상태의 분단국가이다. 그러므로 경제와 안보를 분리하여 대안을 모색하기 어렵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동맹국 궁핍화와 대중국 견제 군사전략에의 종속을 돌파하는 길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경협, 북방경제로의 진출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북미-남북 관계 개선이 화급하다. 

첫째, 남북경협의 경제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인프라·SOC·건설·생활재 공급 등 10~20년 지속 가능한 시장이 창출된다. 경의선·동해선 철도가 연결되면 유럽행 물류비가 30~40% 절감된다. 북한 광물자원 예비량은 약 6,000조 원으로 평가되며 희토류 등 전략 광물 다수가 포함돼 있다. 남북 긴장이 완화되면 국가 CDS 프리미엄이 하락하고 기업 금융비용도 감소한다.

둘째, 북방경제의 전략적 가치를 살려야 한다. 남·북·러 삼각 물류 루트인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동참하면, 가스관·송전망 등 에너지 연계 사업을 통해 에너지 안보 수준이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북·중·러 접경지역 산업벨트는 제조·물류·관광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북방 개발은행과 협력 펀드를 통한 다국적 개발 프로젝트 추진이 가능하다.

셋째, 이를 위해 종전 선언·평화 체제 구축의 안보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종전 선언은 갈등 위험을 낮추고 투자 환경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낸다. 평화협정 체결은 지정학 리스크를 근본적으로 낮춘다. 군비 통제는 막대한 국방비 중 일부를 민간 투자로 전환할 수 있는 재정적 여력을 제공한다.

넷째, 이를 실현할 자주·균형 외교를 펼쳐야 한다. 미국 중심 일변도 외교에서 벗어나, 중국·러시아·아세안·인도·중동·중남미·아프리카 등과의 다변화를 병행하는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역할을 복원하기 위해 ‘한미-남북’의 이중구조 대신 남북 직결 구조를 강화해야 한다. 반도체·원전·AI 등 핵심기술 협력에서 IP·데이터·공급망의 통제권을 확보하는 협상 원칙을 세워야 한다. 

단기·중기·장기 정책 로드맵 설계해야 

정책 로드맵은 단기·중기·장기로 나뉘어 체계적으로 구성되는 구조이다. 

단기 0~2년에는 스와프 체결과 유동성 확충을 통해 외환 안정 기반을 다지고, 에너지와 원자재 비축을 강화해 공급망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동시에 북미대화를 지원하고 남북대화를 재개하며 보건·환경·철도와 같은 제재 예외 분야를 우선 추진해 남북협력의 실질적 출구를 마련하는 단계가 된다.

중기 2~5년에는 ASEAN·인도·EU를 중심으로 시장을 다변화해 수출 구조의 위험을 분산하고, 남북경제공동위원회를 복원해 제도적 협력 기반을 재정비하는 것이 목표이다. 아울러 북방경제의 핵심축인 물류·가스·전력망 프로젝트를 재가동해 유라시아 협력 공간을 다시 열어가는 시기이다.

장기 5년 이후에는 기술·방위·데이터 영역에서 주권을 확립해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며 남북 공동 경제권을 완성하는 것이 최종 비전이다. 이러한 구조 위에서 한국은 북방경제의 핵심국가로 도약할 토대를 만들 수 있다.

당연히 정치적 리스크를 줄이는 대응 전략도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보수층의 반발에는 협상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종전 절차를 단계적·점진적으로 추진하는 방식이 유효하다. 재정 부담 문제는 재정 재배치와 민관 합작투자(PPP)를 활용해 완화할 수 있다. 

미국의 압박에는 탈미 열풍과 자주의 광장을 바탕으로 다자외교와 중립적 접근, 단계적 실행 전략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종미극우세력의 정치적 공세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범국민적 압력을 기반으로 초당적 전략위원회를 구성, 운영하여 핵심 정책을 법제화하고 장기적으로 보호하는 장치가 필수적이다.

대안을 실현할 정치가 중요하다

경제 다변화, 평화협력과 북방경제를 추진할 힘의 관건은 정치 역량이다. 세 가지 특성을 동시에 갖춘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첫째, 전략적 자율성을 수용하는 정치적 정체성이다. 외교·경제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외교 철학을 가진 세력이다. 대미·대중 관계를 ‘의존’이 아니라 ‘선택적 협력’으로 규정하고, 필요시 독자적 결정을 감수할 정치적 의지를 가져야 한다. 

둘째, 국가 재편(산업·안보·외교 통합) 실행 역량이다. 복합 정책(산업정책·에너지·외환·안보)을 동시에 설계·조정할 수 있는 관료·전문가 네트워크와 실행 능력이 있는 세력이다. 재원 배분, 공공 R&D, 수출금융·에너지 계약 등 대규모 행정·예산 집행 경험이 필수이다.

셋째, 사회적 연합을 만들 수 있는 포괄성과 통합력이다. 노동·중소기업·산업계·학계·지방정부·시민사회의 지지를 확보해 정책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세력이다. 북방경제·남북협력과 같은 민감한 이슈는 보수층의 반발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포괄적 사회적 합의와 보상 장치(전환비용 보조·일자리 재교육)가 동반되어야 한다.

한국의 현행 정치 지형을 전제로 몇 가지 모델의 장단점과 실현 가능성을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가장 현실적 모델은 ‘중도·개혁·진보 연합형’이다. 중도·개혁·진보 세력이 함께 구성하는 연합 구조로, 현실적 실행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정치 운영 방식이다. 이 구도는 폭넓은 사회적 지지를 확보하기 쉬우며, 국회 입법과 예산 처리에도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또한 기업과 노동계의 협력 기반을 마련하기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조건을 갖추는 형태이다.

그러나 이념적 균열이 존재할 경우 대북·대미 정책에서 일관성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한계도 있다. 이를 보완하려면 목표와 시한, 보상안을 포함한 명확한 정책 플랫폼을 마련하고, 예산 편성과 법안 처리 규정을 명시한 연정 협약서를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반면 ‘진보·개혁 연합형’은 남북협력·복지·공공 R&D·산업전환을 신속히 추진할 수 있는 강한 개혁 동력을 가진다. 위기 상황에서 구조 전환을 빠르게 실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보수층 반발, 안보 갈등, 한미관계 논란, 국회 난항으로 인해 정치적 비용이 크며, 무엇보다 여러 진보 개혁 정당들의 상태로 볼 때, 단기간에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보수–중도 연합형은 보수 주도의 정부가 산업·투자 정책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형태로, 한미 한일 관계의 안정과 기업 협력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남북경협·북방경제·평화정책은 속도가 제한되기 쉽고 전략적 자율성이 약해지는 위험이 있다. 성공하려면 보수 진영 내부 설득, 일부 전략 분야의 합의, 산업·안보를 결합한 중장기 로드맵이 필요하다.

권력 구조와 제도 장악 : 정책 성공의 변수

대안을 현실화하려면 어떤 정치세력의 집권 여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행정·입법·지방정부가 어떤 구조적 협력체계를 구축하느냐가 정책 성공의 관건이 된다.

우선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 협력 또는 장악이 필수적이다. 예산과 법률, 즉 특별법·조세제도·규제완화·R&D 설치 등 주요 정책 수단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국회의 실질적 협력이 필요하다. 단독 과반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교섭단체와의 합의 또는 초당적 위원회 구성으로 대체할 수 있다. 

외교·통일·국방·기재·산자 등 핵심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확보할 경우 정책 추진의 안정성이 크게 높아진다. 이에 더해 외교부·통일부·국방부·기재부·산업부·에너지 관련 기관 등 핵심 부처의 실무진을 효과적으로 통합·관리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부처 간 칸막이를 제거하기 위해 국무총리 또는 대통령 직속의 전략 경제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고, 여기에 관료·전문가·지방정부 대표 등 전문적 역량을 갖춘 인사를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방정부와의 협력도 필수적이다. 남북협력과 북방경제는 지역 인프라와 지방재정에 직결되므로 광역지자체와의 조율, 지방 계약·투자분담 메커니즘 마련이 필요하다. 중앙정부 단독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사업일수록 지방정부의 참여와 재정 분담 구조가 정책의 실효성을 좌우하게 된다.

또한 국가적 합의 기구의 제도화가 요구된다. 안보와 경제의 중대한 전환은 최소 4~8년 이상의 장기적 기간을 필요로 하므로 정권교체에도 흔들리지 않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초당적 전략위원회 구성과 핵심 정책의 법제화를 통해 장기적 추진력을 확보하는 것이 안정적이다.

정치세력이 실제로 정책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적 축과의 연대가 필수적이다. 기재부·산자부·외교부·통일부·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핵심 기관의 관료 엘리트와 협업체계를 구축해 현장 실행력을 확보해야 한다. 기업과 산업계의 역할도 중요하며,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중소기업이 공급망 다변화, 남북 인프라 투자, 산업 R&D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조·융자 프로그램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노동과 지역사회와의 연대는 전환 과정의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 중요하며, 이를 위해 일자리 전환과 재교육, 사회안전망 강화가 필수적이다. 에너지·외환·무역·안보 등 분야의 지식인·전문가 네트워크를 확보해 독립적 자문체계를 갖추는 것도 정책의 품질을 높이는 기반이 된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중국·유럽·인도·중동 등 국제 파트너와의 협력은 북방경제, 에너지 계약, 다자무역을 뒷받침하는 필수 조건이다.

대안은 있으나 관건은 결단과 실행

한미정상 합의는 한국의 산업·기술·안보 전반을 장기적 종속 구조로 몰아갈 위험이 크지만, 이를 극복할 현실적 대안은 분명히 존재한다. 시장·기술·에너지의 다변화, 남북협력과 북방경제 개발,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전략적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균형외교는 이미 여러 분석에서 실효성이 검증된 경로이다. 문제는 이러한 대안을 나열하는 데 있지 않고, 이를 실제 정책으로 전환할 수 있는 구조와 역량을 갖추느냐에 달려 있다.

이 대안을 실질적으로 추진하려면 국회의 실질적 협력, 전략경제 TF의 강력한 조정력, 그리고 기업·노동·지방정부·전문가·국제 파트너를 포괄하는 다층적 네트워크가 동시에 가동돼야 한다. 특히 산업·금융·외교·안보 분야가 서로 다른 속도와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부처 간 칸막이를 제거하고 정책을 통합적으로 설계·집행할 수 있는 실행 구조가 핵심이다. 이러한 구조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대안은 존재하더라도 실행 가능성은 크게 낮아진다.

결국 문제는 대안의 부재가 아니라, 그 대안을 추진할 정치적 결단과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의지가 있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국민주권 정부’의 선언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고 장기적 실행 체계를 구축하려는 실질적 전환이다. 이러한 전환이 뒷받침될 때만이 한국은 외부 요인에 좌우되지 않는 자율적 발전의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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