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민주평통(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에 관해 논란이 많이 일고 있군요. 특히 제가 요즘 머물고 있는 미국에서요. 크게 두 가지 같습니다. 첫째, 오래 전부터 국내외에서 종종 제기돼왔듯, 1981년 전두환 때 만들어져 태생 배경이 불순한 조직이기에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습니다. 둘째, 윤석열 정권에 동조하거나 이재명 반대활동 펼치던 사람들까지 요직에 임명됐다며 이들의 인선과정을 밝히고 내쳐야 한다는 주장이 거셉니다.

민주평통의 설립 배경과 과정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장관을 지낸 정세현 선생이 2020년 펴낸 회고록 『판문점의 협상가』에 잘 나와 있습니다. 제가 집을 멀리 떠나 그 책을 다시 펼칠 수 없어 기억에 의존해 이 글 쓰는데, 그가 1970년대 말 당시 ‘국토통일원’이던 통일부에 보좌관.연구원으로 들어가 이 조직을 설계했답니다. 그 무렵 활발하게 활동하던 북한의 조평통 (조국평화통일위원회)에 맞설 기구로 말입니다.

정세현의 구상으로는 수천 명 조직이었는데, 설계 초안을 받아본 전두환이 자기가 의장을 맡겠다며 사단 규모로 만들라고 지시해 1981년 2만명 안팎의 거대한 헌법기구로 탄생했다는 거죠. 이를 위해 박정희 때부터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던 ‘통일주체 국민회의’가 폐지됐고요. 따라서 1980년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뽑은 통일주체 국민회의 후신으로 민주평통이 들어섰으니, 불순한 조직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오래 전부터 진보적 시민운동 쪽에서 제기되어 왔는데, 이런 의견 표출이 그치지 않는 거죠.

이와 관련해, 정세현 선생은 1982년 남한 최초의 통일정책도 만들었답니다. 흔히 우리가 ‘연방제’라 부르는 북한의 통일방안은 1960년 ‘남북 련방제’를 시작으로 1973년 ‘고려 련방공화국’과 1980년 ‘고려 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으로 이어지는데, 이에 대응해 전두환 정권의 ‘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이 나온 거죠. 남북총선거를 실시해 통일민주공화국을 세운다는 내용이라, 저는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형식적 통일방안이라고 비판하며, 1989년 노태우 때 만들어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남한 최초의 통일방안이라고 주장해왔다는 것도 밝힙니다.

이러한 민주평통에 제가 처음 이름 올린 때가 2003년이었습니다. 노무현 청와대 인사행정관에게서 자문위원이 돼달라는 제안을 받고요. 난 관변단체 기웃거리지 않는다며 거절하다가, 평통 밖에서 비판만 하지 말고 안에 들어와 평화.통일에 관해 얘기 좀 해달라는 부탁에 못 이긴 채 들어간 거죠. 이른바 ‘북핵 문제’가 터질 때라 주로 “북한 핵무기 개발의 배경과 과정”에 관해 여기저기 다니며 강연했습니다. 2008년, 전남의 한 교회에서 강연을 요청하더군요. 저를 어떻게 알고 부르느냐 물었더니, 다른 지역 민주평통에서 제 강연을 듣고 자기 지역 평통에서도 저를 초청하려고 하자 서울 사무처에서 반대하더랍니다. 저를 그만 부르라기에 평통 대신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서 강연회를 갖고 싶다는 것이었죠.

2019년 정세현 선생이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에 임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인사와 함께 한 가지 제안을 드렸습니다. “지역 평통 중엔 평화·통일에 관해 공부·토론하며 자문하기보다 행사·여행에 더 신경쓰는 곳이 많은 것 같다. 특히 연수회나 자매결연 등을 구실로 해외여행 가는 경우도 적지 않은 듯한데, 이런 폐단 바로 잡으시라”는 내용이었지요. 저는 민주평통 재정후원을 받아 원광대학교에 학기마다 8-12주 통일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훌륭한 강사들을 많이 초청할 수 있었습니다.

2023년 미국 애틀랜타 민주평통의 강연 요청을 받고 거절했습니다. 윤석열 측근 석동현이 사무처장 되어 임원들을 내치는 횡포를 일삼던 무렵이었거든요. “나는 무슨 강연에서든 윤석열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러면 당신도 쫓겨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자문위원 임기 말이라 어차피 좀 이따 그만둘 거라며 강연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만두더라도 나 때문에 험한 꼴 당하지 말라며 응하지 않았습니다.

2025년 8월 방용승 선생의 민주평통 사무처장 임명 소식에 축하인사를 건네며 제안을 곁들였습니다. 이른바 지역 유지 등 점잖은 사람들 명함용으로 자문위원 만들지 말고, 통일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반대하는 젊은이들을 많이 평통으로 끌어들이라는 거였죠. 그는 전북 지역에서 오랫동안 다양한 민주·평화·통일운동을 조직하고 이끌며 청소년 통일교육에도 앞장서왔거든요.

가까이 지내온 통일운동 관계자들에게도 제안했습니다. 민주평통에 들어가 평통의 지원을 받아 시민단체와 평화·통일교육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등 통일운동 활성화와 시민단체 확장에 평통을 적극 활용해보라고요. 그런데 제가 누구를 평통 임원으로 추천해달라는 청탁도 받아보고, 꽤 높은 자리를 제안 받기도 했지만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나이 70이면 시민단체 감투도 내놓는데 관직을 맡겠느냐며 젊은 사람 쓰는 게 바람직하다면서요.

그리고 이번달에 출범한 민주평통의 임원선정 및 운영에 관한 여러 부정적 의견·주장을 다양한 경로로 접하며, 제 의견 전혀 덧붙이지 않고 그대로 사무처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평통 운영에 참고하라면서요. 참고로 민주평통을 포함한 이재명 정부는 이재명에 반대한 사람들도 껴안고 이재명 편으로 만들며 나아가겠다는 생각을 가진 듯합니다. 통일 지지자들끼리 단합·결속하는 것보다 반대자들 한 명이라도 통일을 지지하도록 이끄는 게 바람직하다는 제 운동방침과 비슷해 좋습니다. 민주평통에 부정적 인식을 지닌 분들은 이게 헌법에 따른 조직이기에 헌법 개정 없이 해체하기 쉽지 않다는 현실 감안하면서,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이를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방안을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요?


 

이재봉 교수 약력

약력:
하와이대학교 정치학 박사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남이랑북이랑 더불어 살기 위한 통일운동 대표
한국중립화 추진시민연대 공동대표

대표 저.편.역서: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Korea: The Twisting Roads to Unification
『이재봉의 법정증언』
『문학과 예술 속의 반미』
『평화의 길, 통일의 꿈』
『통일대담: 역사.문학.예술 전문가에게 듣는 평화와 통일』
『한반도 중립화: 평화와 통일의 지름길』

수상:
2019년 한겨레통일문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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