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는 일체 만나지 않을 것이고 미국과는 조건부로 만날 수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 연설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밝혔습니다. 김 위원장의 이번 연설에는 2023년 12월 말 노동당 중앙위 8기 9차 전원회의와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 14기 10차 회의를 통해 언명한 ‘두 개 국가’와 관련된 북한의 주요 입장이 총망라됐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우선 시급한 것은 현안인 북한의 대남 및 대미 입장입니다. 위에서 나온 대로 한마디로 한국과는 안 만나고 미국과는 조건부로 만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올해 들어 미국에서 트럼프 정부, 한국에서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자 북한이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을 통해 일관하게 밝힌 입장의 연장선이기도 합니다.
김 위원장은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하여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나는 아직도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고 ‘김정은-트럼프 브로맨스’를 상기시켰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우리는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으며 그 무엇도 함께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일체 상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와 대한민국은 지난 몇십 년 동안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두 개 국가로 존재해왔다”면서 “조선반도에 지구상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이 첨예하게 대치되어온 것은 엄연한 현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연원으로 “단독정부를 조작한” 이승만 초대대통령까지 소환했습니다.
한편으로 1953년 정전협정으로 볼 때 남과 북이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이란 표현은 틀리지 않지만 그래서 “적대적인 두 국가”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에 명시된 ‘남북 간 특수관계’는 도외시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통일문제와 관련 김 위원장은 “정치, 국방을 외세에 맡긴 나라와 통일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이유는 “대한민국은 모든 분야가 미국화된 반신불수의 기형체, 식민지 속국이며 철저히 이질화된 타국”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철저히 이질화되었을 뿐 아니라 완전히 상극인 두 실체의 통일이란 결국 하나가 없어지지 않고서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라면서 “결단코 통일은 불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기 ‘하나가 없어지지 않으면 안 될 통일’이란 언명 속에서는, 김일성 주석이 1991년 신년사에서 밝힌 그리하여 오랜 기간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구에게 먹히우지 않는 원칙”에 기초한 ‘연방제 통일방안’이 애써 배제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비핵화 및 핵보유국 문제와 관련 김 위원장은 “‘비핵화’라는 개념은 이미 그 의미를 상실”하였으며“핵보유를 공화국의 최고법에 명기”했기에 “‘비핵화’를 하라는 것은 우리더러 위헌행위를 하라는 것”이라고 반발했습니다. 그러면서 “제재풀기에 집착하여 적수국들과 그 무엇을 맞바꾸는 것과 같은 협상 따위는 없을 것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라며, 2019년 북미 정상회담에서 ‘하노이 노딜’로 실패한 ‘영변 핵시설 해체 대 대북제재 완화’를 상기시켰습니다.
특히, 김 위원장은 북한 헌법에 영토 조항을 새로 규정하는 문제와 관련 통일문제를 다시 언급하면서 “우리와 한국이 어떻게 통일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숙적인 두 개 국가가 통일된 사례가 세계사에 있었습니까. 어느 하나가 없어지지 않으면 안 될 통일을 우리가 왜 하겠습니까” 하고 몇 번이고 되묻고는 “우리는 명백히 우리와 한국이 국경을 사이에 둔 이질적이며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두 개 국가임을 국법으로 고착시킬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아직 국경선 문제가 북한 헌법에 명문화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지만 지금 기세로 보아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김 위원장이 전에 ‘북남관계는 동족관계가 아니다’고 언명했지만 이번 연설에서는 민족문제를 꺼내지 않은 점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김 위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은 아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는 조건부로 만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언뜻 ‘불구대천의 원수’이었던 미국과는 만나고 ‘하나의 민족’이었던 남측과는 만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남북이 ‘적대적 두 개 국가’라 해도 만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적대적 관계’는 서로가 피곤하고 위험합니다. 적대적 관계를 평화공존의 관계로 바꾸기 위해서라도 남과 북이 만날 이유는 충분합니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