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양목 지사 등 미국과 브라질, 캐나다에 안장되어 있던 독립유공자 6명의 유해가 광복 80년 만에 그립던 고국으로 돌아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문양목(1869~1940) 지사는 충남 태안 출신으로 1905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의 전신이었던 대동보국회를 설립하였고, 장인환․전명운 의사 재판후원회를 결성하여 지원에 앞장섰으며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을 역임하는 등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그러다가 대한인국민회의 중견 간부로 활동하던 중 1940년에 서거해 미국 캘리포니아 파크뷰 묘지에 안장되어 있었다. 문양목 지사는 조국을 떠난 지 120년 만에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잉글우드 묘지에 안장되었던 임창모(1894~1967) 지사는 미국 내에서 3․1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이후 흥사단 단원으로서 활동하고 대한인국민회 임원으로 독립자금 모집에 앞장섰다.
김재은(1923~2019) 지사는 1944년 5월 20세 때, 일본군 징병 제1기로 일본군대에 입대해 중국전선으로 배속되었는데, 그해 10월 석하에서 탈출했다. 1945년 5월 철기 이범석 장군이 이끄는 한국광복군 서안 제2지대에 입대해 한·미 합동군사훈련인 OSS 훈련을 받던 중 해방을 맞이했다. 2019년 세상을 떠난 김재은 지사는 미국 애틀란타 노스애틀란타 추모공원에 안장되어 있다가 이번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한응규․김기주 지사도 광복군에 입대하여 활약하다 광복을 맞았다. 두 지사는 모두 1970년대 초에 브라질로 이주했는데, 2003년에 서거한 한응규(1920~2003) 지사는 브라질 쿠리치바 이과수 공원묘지에, 2013년에 서거한 김기주(1924~2013) 지사는 상파울루 콩고나스 묘지에 안장되어 있었다. 캐나다에 안장되어 있던 김덕윤 지사는 일본 유학 중에 비밀결사 ‘열혈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독립유공자 유해 6위는 국가보훈부가 파견한 유해 봉환반이 유족들과 함께 1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들어왔다. 유해는 서울현충원으로 봉송되어 하루 동안 현충관에 모셔진 뒤, 다음 날인 13일 오전 10시에 유해 봉환식을 거쳐 안장식이 거행되는 대전현충원으로 다시 봉송됐다.
국방부 의장병에 의해 운구된 김덕윤 지사 등 독립유공자 5명의 유해는 이날 오후 3시 안장식을 갖고 영면에 들어갔다. 문양목 지사의 유해는 유해 봉환식을 끝내고 출생지인 충남 태안 생가터 내의 추모 사당에서 기념사업회 회원, 태안군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제를 거행한 후 대전현충원으로 봉송되다 보니 오후 5시 40분에 별도로 안장식을 거행했다. 이날 안장식은 대전현충원장 주관으로 진행됐다.
광복 80년 만에 그립던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이들이 안장된 곳은 대전현충원 의사상자 묘역 인근이다.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이장 전용묘역이었던 독립유공자 제7묘역이 지난 2월 3일에 김정환 지사(1927년 자결 순국)가 288호에 안장되면서 만장이 되어 더 이상 안장할 묘역이 없는 상태였다. 독립유공자 제6묘역에는 5기를 안장할 공간이 남아 있으나 이곳은 생존 독립유공자가 사망했을 경우 안장하기 위해 특별히 조성된 묘역이다(현재 생존 애국지사는 5명이다).
국외에서 독립유공자 유해를 모셔오더라도 안장할 곳이 없는 상황이다 보니 고육지책으로 안장 여유가 남아 있는 의사상자 묘역 일부를 할애해 특별묘역을 조성했다. 대전현충원 안장자 검색에서도 묘역 구분을 ‘특별묘역’으로 명명하고 있었다.
묘지번호는 문양목 지사가 1호, 이어서 김덕윤, 김기주, 한응규, 임창모, 김재은 지사 순으로 6호까지 부여됐다. 대전현충원 관계자는 국외에서 모셔오는 독립유공자 유해를 이후에도 ‘특별묘역’에 안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외 안장 독립유공자의 유해봉환은 1946년 백범 김구 선생이 모셔온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 등을 시작으로, 이번에 모셔 온 여섯 분까지 총 155위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됐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