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가 밝아지면서 벽에 ‘일본 항복, 미군의 한반도 점령군 진출 80년 기념’, ‘광복 80년 경축’이라고 쓴 현수막이 걸린 것이 보인다. 장소는 경복궁 옛 총독관저 응접실이다. 절반은 일제강점기의 가구와 장식, 절반은 현대 군사지도와 모니터로 채워져 있다. 테이블 위에 한반도와 주변국 지도, 미사일 사거리 도표, 미·중·러 전략 보고서가 펼쳐져 있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테이블에 앉아있다. 그때 목소리가 들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목소리 ; 오늘의 등장인물 두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대일본제국주의가 한국을 지배할 당시 일본 총독이었던 사이토 마코토입니다. 그는 1919년부터 1927년까지 제3대 조선총독으로, 이어 1929년부터 1931년까지 제5대 조선총독을 지냈습니다. 그는 무단 통치에서 문화 통치로의 전환을 이끌며 경제 수탈을 강화했습니다. 그는 1936년 2월 사망했습니다만 오늘 특별 손님으로 초대되어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카스라 장군으로 그는 2023년 12월부터 주한미군 및 유엔군사령부, 한미연합군사령부 사령관을 맡고 있습니다.
이어 오늘 중요 뉴스를 보도하겠습니다. 카스라 장군은 최근 경기도 평택 소재 캠프 험프리스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주한미군 감축 전략적 유연성, 전시작전권 전환 등에 대해 발언했습니다. 한국 대통령의 방미, 한미정상회담에서 거론될 가능성이 있는 민감한 주제를 두루 언급했습니다. 미군은 군통수권자인 미대통령의 지휘를 받는다는 점에서 백악관의 주문에 따라 카스라 장군의 발언은 미국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란 추정이 가능합니다.
그는 전작권 전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는 박근혜 정부가 미국 정부와 합의한 내용으로, 전작권을 당분간 미국이 계속 행사하겠다는 트럼프의 의지를 설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주한미군이 미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단독으로 실시하는 몇 가지 훈련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는데 이는 주한미군의 치외법권적 지위를 활용한 독자적인 작전 수행 방침을 밝힌 것입니다. 이상 뉴스를 마치겠습니다.
목소리가 말을 마치자 무대가 환해지면서 사이토 총독, 카스라 사령관이 대화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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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총독 ; 안녕하시오? 사령관. 당신이 지금 뉴스에서 나온, 남한을 지키는 미국의 사령관이오? 우리 시대엔 내가 한반도의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는데, 당신은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소?
카스라 사령관 ; (냉정하게) 저는 주한미군, 유엔군, 한미연합사령부에 대해 미군의 통수권자인 미 대통령의 지휘와 결정 사항을 이행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배자가 아닌 동맹국 지휘관이죠. 한국 정부와의 협정에 따라 주둔 중입니다.
사이토 총독: 하하! 말만 번지르르하지. 내가 들었소. 당신네들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이 조약의 하위협정 SOFA로 한국에서 특권을 누리면서 한국 국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치외법권적 권리를 누리고 있다고, 거기다 전시작전권까지 장악했다면서? 나랑 다를 게 뭐요?
카스라 사령관 : (차갑게) 차이점이라면, 우리는 한국이 원해서 여기 있는 겁니다.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부터 오늘날까지, 한국 정부는 자발적으로 우리를 요청했어요. 당신들은 침략이었지만, 우리는 동맹입니다.
사이토 총독 : (조소하며) 동맹? 그런데 왜 당신은 한국에서 주한미군사령과, 연합사령관, 유엔사령관 모자 3개를 쓰고 있소? 내가 세계 점령사를 좀 아는데 미국처럼 장군 한 사람이 세 가지 역할을 하면서 주둔국에서 군림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소. 당신들 한국을 믿지 못해서 그렇게 하는 것 아닌가? 미국은 외국 대통령이 맘에 안 들면 쿠데타나 암살로 제거하는 나라니 누가 감히 맞서겠소? 한국인들도 무서워서 당신들을 슈퍼갑이라 부르는 것 아니오? 나도 총독으로 한반도를 지배할 때 일본 제국의 은혜 운운했지만, 결국 총칼로 통제했소. 당신들도 조약과 협정, 달러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잖소!
카스라 사령관 : (당황하며) 그건... 복잡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북한의 재침을 막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사이토 총독 : (말을 끊으며) 한국 수호? 내가 듣기엔 미국은 중국 견제와 태평양 전략을 위해 한국을 전진기지로 쓰고 있다더군. 나도 조선을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삼았는데, 참 닮았구려.
카스라 사령관 : 적어도 우리는 한국에 경제적 지원과 안보를 제공합니다. 당신들은 한반도에서 수탈만을 일삼는 정책을 앞세웠고 민족성까지 말살시키려 했죠.
사이토 총독 : (비꼬며) 그래서 한국에게 방위비 더 내라, 국방비 증액해라. 미국 무기 더 사가라, 전작권은 못 내주겠다라고 하는 거요?
카스라 사령관 : (짜증내며) 대일본제국과 미국을 비교하는 걸 용납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합법적 조약에 기반한 동맹관계입니다.
사이토 총독 : 합법적? 을사늑약도 일본 제국 법률상 합법이었소! 역사는 반복된다더니... 당신들도 결국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을 도구로 쓰는 거 아니오?
카스라 사령관 : 당신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한국은 이제 주권 국가입니다.
사이토 총독: 그럼 왜 당신이 한반도 전쟁 시 모든 한국군을 지휘할 수 있단 말이오? 식민지 총독과 동맹군 사령관... 겉모습만 다를 뿐, 속은 똑같소.
카스라 사령관 : 자꾸 그런 식이면 난 더 이상 대화할 수 없습니다. 난 가겠소.
사이토 총독 ; 성질 가라앉히고 앉아요. 차분히 대화합시다. 내가 농담 좀 한 것 가지고 왜 그리 성을 내시요. 진정하세요.
카스라 사령관 :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생산적인 대화를 하기로 합시다.
사이토 총독 ; 알았어요. 내가 말이 좀 거칠었던 것은 이 방에 오니 과거가 생각나고 감정이 울컥해서 그랬던 거요. 이 방은 내가 과거 대일본제국 시절 오랜 시간 지내던 공간입니다. 이 유서 깊은 곳에 당신과 함께 앉아있다는 것이 감개무량합니다. 36년간 조선을 통치한 대일본제국의 그림자와 21세기의 미국의 군사 패권이 한 공간에 모인 셈이니까요. 역사는 직선이 아니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오늘날 한국의 같은 자리에 다른 깃발이 꽂히고, 주인의 언어만 바뀐 것입니다. 조선총독부가 지배하던 땅은 이제 주한미군의 특권이 보장되는 땅이 된 것입니다
카스라 사령관 ; 저는 미국 대통령의 군통수권을 한국에서 집행하는 군 지휘관입니다만 일부는 저를 보고 미국의 총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3개 사령관의 모자를 쓰고 미국의 군사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중책을 수행하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사이토 총독 ; 사령관이나 저나 사실 엇비슷한 입장인 것은 사실입니다. 한반도가 예로부터 대륙과 해양 세력의 충돌지라는 중대한 지정학적 위치라서 대일본제국에 이어 미국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령관이나 나나 모두 중차대한 역사적 소임을 맡은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일본 제국은 대륙을 향해 전진하려고 조선을 군사기지로 만들었지요. 철도, 항만, 병영… 모든 것을 천황폐하를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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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라 사령관 ; 말씀하신 취지에 동감입니다. 큰 나라 입장에서 한반도를 살필 경우 결론은 비슷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혀 낯설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한국을 베이징과 블라디보스토크를 겨냥한 최전방 기지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드 포대, 저기에 정찰기 활주로, 그리고 동해엔 잠수함 탐지망 이런 식으로 우리는 조치를 취했고 이 시스템은 중국의 미사일 궤적을 계산하고, 러시아 항모 전단의 항로를 추적합니다. 한국은 미군의 플랫폼이자 방패입니다. 그 방패가 없다면 미국 서부 해안이 노출됩니다. 다만 우리는 점령이 아니라 동맹이라는 이름을 쓸 뿐이죠.
사이토 총독 ; (비웃으며) 이름이 무슨 소용이오? 권력이 누구의 손에 있느냐, 어떤 관계냐 하는 것이 중요하단 말입니다. 일본이 조선을 완전 병합하기 전에도 대일본제국의 군대가 주둔해 있었소. 지금 한국군은 누구의 명령을 따르오?”
카스라 사령관 ;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은 미국 쪽에 있습니다. 한국군은 종이호랑이라 할까요? 한국 대통령이 한국군의 통수권자이지만, 그것은 허울뿐입니다. 한국군도 제 지휘를 받아야 하니 미 대통령이 한국군의 통수권자라는 표현도 가능합니다.
사이토 총독 ; 백여 년 전, 우리 제국은 이 땅을 전진기지로 삼아 대륙으로 진출했지요. 만주, 중국, 러시아를 향해 말입니다. 당시 우리는 무력으로 조선을 강점했었는데 미국은 지금 한국에서 주한미군의 주둔이 국제법상 권리로 인정받으면서 치외법권적 특권을 보장받고 있다지요. … 하지만 본질은 같아 보이는군요.
카스라 사령관 ; (긴장한 표정으로) 미국은 점령자가 아니라 한국의 동맹, 혈맹입니다, 총독님. 그러나 주한미군은 미국에게 태평양의 방파제이자, 베이징과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한 레이더 기지입니다. 동맹이라도, 평등 관계는 아니고 미국이 전략을 주도하니까 한국 군사적 주권이 인정되지는 않고 있기는 합니다. 동맹이라 해도 힘의 비대칭은 피할 수 없습니다.
사이토 총독 ; (피식 웃으며) 저도 그런 말을 했었죠. ‘조선은 대일본제국의 방패이자 창이다.’라고 말이죠. 방패는 주인 손에 들려 있어야 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일본과 조선의 주종관계를 압축한 표현이기도 합니다만.
카스라 사령관 ; 사실 1945년 9월 미군이 점령군으로 서울에 도착했을 때 당시 총독부 행정 조직을 활용하는 등 일본의 도움이 컸지요. 하지 사령관은 일본 총독 아베 노부유키를 해임했지만, 그의 휘하에 있던 여러 일본인 관료들을 행정 고문으로 임명해 미군정에 모셨죠. 그때 미국은 일본에 많이 배웠습니다.
사이토 총독 ; 나도 그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남한 통치에 필요한 핵심 사항을 일본에게 전수받았다고 말입니다. 일본은 한반도를 방패 삼아 대륙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려 했는데 미국도 그런 점을 많이 파악했을 것입니다.
카스라 사령관 ; 미국도 한국을 방패로 삼고 있기는 한데 대일본제국의 방식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미간에 조약과 협정 등을 통해 방패 위에 미국의 요새를 세웠다고 해야 할까, 그런 식입니다. 한미관계는 미국이 갑, 한국은 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을은 갑 없이는 살아남기 힘든 구조를 미국은 치밀하게 만들어놓았죠. 을이 싫어도, 슈퍼갑의 전략은 계속 돌아갑니다.
사이토 총독 ; (의미심장하게) 말씀을 듣고 보니 깃발은 바뀌었으나, 주종관계는 바뀌지 않았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한반도는 여전히 누군가의 방패이자 창이다. 그리고 을의 선택은, 갑의 손바닥 안에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대일본제국도 조선 식민지에서 그런 설계를 했습니다. 교육, 언어는 일본식으로 통일시키고 정치, 군사는 도쿄로 통하게 말이죠. 지금 사령관의 말을 듣고 보니 미국이 과거 일본보다 훨씬 세련됐군요. 총 대신 조약, 점령 대신 협정이라는 방식이 그럴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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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라 사령관 ; (미소) 우린 역사를 통해 배웁니다, 과거 대일본제국은 미국에 많은 가르침을 주었죠. 카스라-테프트 밀약도 그런 사례의 하나입니다. 일본이 조선을 먹고 미국은 필리핀을 차지하면서 평화롭게, 서로 도와가면서 식민지 지배를 통해 후진국을 교육시키면서 이익을 취한 것입니다. 총독님. 역사는 힘이 있는 자가 주인공입니다. 오늘날 한국은 일본이 아닌 미국의 전진기지입니다. 다만 깃발만 바뀌었을 뿐이기는 합니다만.
사이토 총독 ; 그 말투… 백 년 전 나와 같구려. 조선은 일본의 ‘방패’라 했는데 지금은 미국의 방패가 되었군. 방패는 늘 주인 손에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쓸모가 없습니다.
카스라 사령관 ; 우린 한국에 미사일 방어체계와 정찰자산을 배치합니다. 중국 동부 해안을 감시하고, 러시아 태평양 함대를 견제하죠. 거듭 말씀드리지만 한국은 그 플랫폼이자 방패, 거대한 항공모함입니다. 21세기의 군사 네트워크는 한 번 얽히면 빠져나오기 어렵죠.
사이토 총독 ; 일본 제국은 한반도를 36년간 보살폈는데 미국은 80년이 넘도록 슈퍼 갑질을 하고 있다니 대단합니다. 그 비결이 뭡니까?
카스라 사령관 ; 몇 가지가 있지요. 하지만 저는 군인의 입장이니까 군에 대해서만 말씀드리죠. 먼저 일석이조, 일석삼조의 국가이익을 취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뱀처럼 차갑고 비둘기처럼 부드럽게 대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가급적 진실은 감추고 실리를 취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사이토 총독 ; 들어봅시다.
카스라 사령관 ; 슈퍼갑의 위치를 영구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조약과 협정을 만들어 한국의 정치, 외교, 입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입니다. 한미혈맹이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제가 사령관 모자 3개를 쓰고 있는 것은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한국이 을의 입장에서 벗어나려 하거나 미국의 기득권에 도발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집단이 주한미군기지를 침범한다 할 때 무력으로 격퇴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미국익 수호와 한미동맹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동맹의 유지를 위해 한국 정부가 하는 일에 끊임없이 개입하는 것입니다.
사이토 총독 ; 대단하군, 더 말할 것 있으면 해보슈.
카스라 사령관 ; 미국의 국가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안보의 이름으로 한국정부에게 주한미군에 대해 중요한 것은 비밀에 부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국민은 주한미군의 정의의 기사와 같은 모습만을 알도록 하고 말이죠. 그래서 주한미군이 냉전시대부터 중국, 러시아를 상대로 미국 본토를 수호하기 위한 핵전략을 수행하는 최전선 기지라는 것은 절대 공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신 주한미군은 북한의 재침을 막기 위해 주둔한다는 점만 강조하죠.
사이토 총독 ; 대일본제국과는 방식이 다르군요. 하지만 주한미군이 소련과 러시아, 중국에 대한 전략 기지 역할을 하는 동안 중국, 소련, 러시아도 대응 조치를 취했고 그것은 한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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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라 사령관 ; 그런 측면이 있지요. 주한 미군이 북경과 블라디보스토크를 공격할 태세를 24시간 유지하니까 중국, 러시아도 다량의 미사일을 주한미군이 주둔한 오산, 군산, 평택을 향해 언제든 발사할 채비를 갖추고 있지요.
사이토 총독 ; 만약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한 판 붙게 된다면 한국민은 전혀 원치 않는 상황에서 강대국의 싸움으로 피해자가 되는 셈인데, 그에 대한 반발은 없소?
카스라 사령관 ; 지금까지 전무 합니다. 미국의 노력 덕이죠. 한국의 정치, 언론, 학계, 심지어 시민통일운동단체도 그런 점에 침묵합니다. 강대국 간의 대결과 피해를 볼 위험이 반세기 넘도록 지속되는 데도 한국은 태평성세처럼 지내고 있죠. 경제발전에만 몰두하면서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주한미군이 북한을 방어하고 있다는 식으로만 인식하고 있어 미국은 한국에 대해 주한미군 주둔비를 더 내라고 큰소리 칠 수 있는 것이죠.
사이토 총독 ; 주한미군은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는 역할이 더 큰 것이라 미국이 한국에 주한미군 주둔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반대군요. 미국은 참 대단한 나라입니다. 뻔뻔하다는 측면에서 말입니다. 한국이 정보강국이라 하지만 강대국 싸움으로 순식간에 훅 사라질 수도 있는데도 까맣게 모르고 살고 있다니, 바보 아닙니까? 미국이 그렇게 만든 것인가요?
카스라 사령관 ; 그렇다고 보아야죠. 물론 한국 정치, 언론, 학계가 전폭적으로 협조한 덕분이기는 합니다만. 한국 국방, 외교 고위공직자 다수는 머리 검은 미국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미국을 위해, 한국 국민의 세금으로 열심히 복무하고 있지요. 정치는 5년마다 대통령이 바뀌니까 거대한 관료사회의 손바닥 위에서 잠시 놀다 간다고 볼 수 있지요. 어느 정권도 자주를 회복한다는 시도를 한 적이 없습니다.
사이토 총독 ; 제국의 도구가 된 땅은, 언젠가 대가를 치르게 되지요. 우리가 패전하면서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되었는데, 당신네가 지배하는 남한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요.
카스라 사령관 ; 별 일 없는 한 현재와 같은 상태가 상당 기간 유지될 것입니다. 더욱이 북한이 핵보유국의 지위에 오른 만큼 주한미군의 존재에 대한 평가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 러시아도 내심 북한의 핵보유는 싫어하니까요. 중국, 러시아가 유엔에서 대북 제재조치에 합의하고 이행해온 것에서 두 나라의 본심이 드러납니다. 남한도 핵무기를 자체 보유하지 않는 한 주한미군에 대한 의존도는 더 심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이토 총독 ; 그렇게만 볼 수 없는 면도 있잖아요? 한국이, 만약 미국이 슈퍼 갑인 한미동맹을 청산하고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면서 남북관계를 새롭게 가져가고자 하는 움직임이 대두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카스라 사령관 ; 미국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남북한을 관리해서 분단 상태가 잘 유지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주한미군이 대북 저지역할을 하는 것으로만 인식하고 있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으로 북한을 자극해 도발하도록 만들려 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처럼 분단 상태를 남한이 깨려고 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주한미군은 그런 것을 저지해 분단상태가 탄탄히 유지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동북아 지역 국익은 한반도 분단에서 보장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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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총독 ; 그건 그렇고. 한민족은 일본 제국의 치하에 있을 때 적잖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이다 뭐다 해서 귀찮게 굴었는데 요즘 한국 대중들은 미국에 대해 어떻게 합니까?
카스라 사령관 ; 한미혈맹은 영원하다면서 정치, 군. 언론, 학계, 문화계 다수가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습니다. 같은 민족인 북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적대적인 것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남쪽에서는 북쪽 주민이 식량 부족으로 굶어 죽는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음식 쓰레기기 넘쳐 나도 북에 식량원조 하자고 누구도 나서지 않습니다. 일천만 이산가족도 그렇지요. TV에 보면 중동,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지원하자는 자선단체들이 넘쳐나는데 북한 지원하자는 단체는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사이토 총독 ; 대단합니다. 우리가 지배하던 때와 크게 다르네요.
카스라 사령관 ;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그건 미국이 대일본제국주의의 한반도 지배에서 써먹은 방식을 학습하고 개선한 덕분입니다. 노력의 대가라고 할까요. 미국은 2차 대전 종전 뒤 남한에 미군을 점령군으로 보낸 뒤 대일본제국에 기여했던 친일인사들을 경찰, 군에 대거 복귀시키고 돈과 무기를 공급하면서 미국식으로 훈련시켰습니다. 그때 광복군 출신들은 가급적 군과 경찰에 기용치 않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사이토 총독 ; 대단하네. 그랬군요.
카스라 사령관 ;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철저하게 협조한 것이 큰 덕이 됐습니다. 이승만은 국가보안법을 만들어 남북 분단에 국민들이 전혀 개입치 못하도록 차단했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통해 미국이 슈퍼 갑으로 군사적 주권을 남한에 대해 행사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국보법은 한미동맹을 비판하면 이적행위로 몰아 처벌했으니 미국에게는 정말 고마운 법이라 하겠습니다. 미국은 남한의 목소리 큰 자들 가운데 친미세력은 물심양면으로 철저히 챙겨줘 머리털 검은 미국인으로 만들었지요. 그러면서 남한의 정치는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자율을 지킬 한계 속에서 가동되도록 한 것입니다. 언론. 학계 등도 다 동일한 방식으로 관리를 한 결과 한미동맹이 심각한 불평등 관계라는 것은 한국의 공식 문건이나 언론 보도에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미국에 의해 친미 쪽으로 의식화시킨 것이지요.
사이토 총독 ; 대단합니다. 우리도 과거 식민지를 거느려봐서 아는데 을이 갑을 향해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은 몇 가지가 있지요. 하나는 갑의 전략에 완전히 몸을 맡기고 생존을 도모하는 것, 두 번째는 갑이 허용하는 범위 속에서 이익을 챙기는 것이지요. 세 번째, 주인의 필요를 역이용해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거나 네 번째, 기회를 보아 주인 없는 방패가 되는 것이지요.
카스라 사령관 ; 제가 보기에 두 번째가 오래 버티더군요. 하지만 그건 을이 냉정하고 영리해야 하는데 한국 관리나 학자, 언론인들이 머리를 안 쓰는 경향이 있어서 미국은 안심하고 있죠. 그런데 한국 민중이 박근혜, 윤석열을 탄핵시키도록 만든 것은 일단 경계의 대상입니다.
사이토 총독 ; 그건 왜 그렇죠?
카스라 사령관 ; 박근혜, 윤석열 사태는 한국 사회의 여러 모순이 극대화된 것인데 한미동맹도 그 원인의 하나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미동맹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 강조되면서 남한의 대북 정책, 즉 평화공존, 평화통일 정책이 실종되는 일이 벌어지는 상황까지 된 것은 심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3번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실질적인 국가연합체 추진이 가능할 정도로 많은 것에 합의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그것을 짓이겨 버렸잖아요. 그러면서 북한이 발끈해서 2국가론이 나오고 한반도 전쟁위기가 고조되었지요. 한국 민중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미국이 화살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사이토 총독 ;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밖에서 보기에 한국의 정치인은 여야 가릴 것 없이 한미동맹이 최우선이기 때문이죠. 그들의 머릿속에는 국가와 민족의 장래, 번영, 평화통일보다 자기 자신, 가족이나 자기 진영의 이해관계에 철저하니까요. 일본 제국 때에도 그랬어요. 독립운동하다가도 꼬드기면 변절해서 제 동포를 팔아먹는 일이 많았다니까요. 그 기질 어디 가겠어요? 과거에는 일본을 섬겼지만 지금은 미국을 섬기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한참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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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라 사령관 ; 한국 정치권의 체질이 본질적인 개혁보다 현상유지에 집착하는 면이 강해서 미국에게는 정말 다행입니다. 한미동맹의 경우 어느 누구도 문제 삼아서는 안 될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기는 것은 한국 정부가 제 국민을 개돼지로 보고 하는 짓이지만 미국에게는 최상의 조건입니다.
사이토 총독 ; 한미동맹은 외세가 국민을 강대국 전쟁에 휘말리게 하는 성격인데도 국민에게는 비밀로 되어 있잖아요. 한국 정치권이 쉬쉬하면서 미국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자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태도라 하겠지요. 한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것은 그뿐 아닌 것 같은데요? 국가보안법도 그렇잖아요? 국보법은 국민이 분단, 통일 문제에 접근하는 것을 완벽히 차단하는 법이죠.
카스라 사령관 ; 미국은 국보법과 한미동맹이 영원히 같이 가야 할 사활적 동반요건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이 정당법, 선거관련법을 박정희 시대의 비민주적인 것으로 묶어두는 것도 미국은 대단히 만족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사이토 총독 ; 미국이 만족한다고요. 왜 그렇죠?
카스라 사령관 ; 한국에서 만약 정당법, 선거법이 민주적인 것으로 바뀐다면 현재의 두 개의 거대 정당 말고 제3, 제4의 정당이 출현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국보법, 한미동맹도 정치권과 국민의 관심사로 부각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이 그걸 두려워하고 있군요. 하지만 한국이 당분간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아 다행인데 한국 정치권의 기이한 체질도 미국의 노력 덕분이기는 합니다.
사이토 총독 ; 그 체질이 뭐요?
카스라 사령관 ; 좀 길게 말씀드릴까요? 한국은 4.19와 87년 6월 혁명 등과 같은 정치적 격변을 겪으면서 정권 교체가 되고 있는데 그 모습이 거대 정당이 교대로 정권을 담당하는 이른바 회전문식 정권 교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정당법, 선거법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두 거대 정당만이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한국 정치를 말아먹게 할 뿐 신생 정당이 성장하거나 시민사회가 정당을 만들어 정치를 담당할 수 없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이토 총독 ; 그래요?
카스라 사령관 ; 한국 시민사회는 박근혜, 윤석열 두 대통령을 7년 만에 연이어 탄핵시키는 추동력을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찬밥 신세입니다. 거대 여야 정당들만이 정권을 잡는 것이죠. 이러니 정권을 잡는 정당은 국민의 정치 참여를 활성화시키는 것과 같은 근본적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습니다. 정치권이 국민을 개돼지로 보고 있는 것이지요. 남한의 정권은 두 거대 정당이 차지하게 되는 구조라서 두 정당은 전면전은 피하고 제한전쟁 식의 정쟁만을 할 뿐입니다.
사이토 총독 ; 어떻게요?
카스라 사령관 ; 한국의 두 거대 정당은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세 가지 요건, 즉 국가보안법과 한미동맹, 그리고 정당법과 선거법은 손보지 않고 내버려 두는 식입니다. 그 외의 것에 대해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다툴 뿐이죠. 얼마 전 윤석열이 내란 우두머리로 탄핵 당한 뒤 그의 소속 정당이 크게 반성하지 않고 박박 대들고 악을 쓰면서 버티는 것은 나름대로 계산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이토 총독 ; 그게 뭡니까?
카스라 사령관 ; 새 정권이 출범했지만 근본적 개혁은 뒤로 미루고 말초신경을 주로 자극하는 정책에 몰두하거나 표밭 관리하는 식에 열중하다 보면 실수할 것이고 민심이 멀어지면 그 다음 정권을 차지할 차례는 자기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사회가 또 다른 대통령을 탄핵시킨다고 할 경우 언론, 학계 등이 앞장서 합법적 방식으로 정치를 정상화시키자 할 터인데 그것은 현재의 정당과 선거법, 국보법, 한미동맹 구조 속에서 이뤄질 것입니다. 즉 거대 정당끼리의 회전문 정권 교체가 반복되는 것이지요.
사이트 총독 ; 너무 낙관하지 마세요. 대일본제국도 세계 지배를 낙관만 하다가 굴욕적으로 항복해야 했잖아요. 미국도 큰소리 치다가 어느 날 대일본제국과 같은 꼴을 당하지 않는다고 장담키 어렵습니다. 세계사를 보면 영원히 지속되는 강대국은 존재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카스라 사령관 ; 총독님의 말씀을 새겨듣겠습니다. 하여튼 대일본제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이 한국에서 향후 더욱 미국익을 강화할 가능성은 큰 것 같습니다. 총독님 이 정도로 대담을 끝내시고 지하에 가셔서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카스라 사령관의 말이 끝나자 무대가 어두워지면서 둘은 테이블의 잔을 들어 쨍그랑 부딪히며 마신다. 무대의 불이 꺼지면서 막이 내린다.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나온다.
목소리 ; 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끝>
전 한겨레신문 부국장
전 한성대 겸임교수
민주언론시민연합 고문
제2회 조용수언론상 수상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