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선이 걷힐 날에 ④

지상 남북서신 교환

- 내 뛰 놀던 고향이 그리워 내 다정한 동무들의 정이 아쉬워 나는 검은 어둠에 말리어 가만히 얼마나 흐느꼈는지 모른다. 검푸른 동해 고향 바닷가에서 나는 슬픔에 잠겨 여린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봉식이 잘 있나?

 

한하운

 

통일돼야 고향엘 가지

어찌되든 「학생회담」이야 좋지 않겠나

눈보라 속에도 못 잊을 북녘

 

젖은 소나무 가지를 꺾어 모닥불을 피운 그 붉은 불빛을 덮고 나는 낮선 어느 산비탈을 벼게삼아 말없이 잠들어야만 했다.

찌익찍 열을 뿜던 젖은 소나무의 불빛도 이제 아득히 꺼져갔다.

피난길에 지친 노인도 청년도 추위와 피로에 사지를 오구리곤 달달 떨면서 잠들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젊은 여인의 품에 꼬옥 안기운 아가의 숨결도 가냘프게 들려왔다.

그때 나는 꼬옥 얼어붙은 입술을 빠금이 벌리고는 무엇인지 소근대고 있었다.

(봉식아 내 어린 시절의 싸리 말동무 - 너는 지금 그곳 어디에 있느냐? 지금 이렇게 너는 북쪽으로 나는 남쪽으로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이별이라면 인간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

이렇게 울부짖는 나의 주위에는 엄마도 아버지도 형제도 피로에 지쳐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무슨 일에든 의논을 해가며 공부하고 뛰놀던 너의 다정한 숨결만은 이제 영영들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슬픔에 나는 사뭇 흐느껴 울었다.

 
이 고난은 몇 개월간의 피난살이겠지 - 라고 믿으려고 애써도 믿어지지 않는 심정 -

봉식아 너와 나를 힘차게 다정하게 길러 주던 고향의 흙을 이젠 영영 밟아 볼 것 같지 않은 아득함에 나는 쭈욱 울었다.

정말은 육⋅이오라는 무시무시한 전쟁은 나에게 고향을 아주 잊어버리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정한 친구와의 작별을 갖다 주고야 말았다.

그러나 하늘이 유난히 맑았어도 비가 왔어도 눈보라가 쳐도 결코 나는 고향을 잊지는 안았다.

가슴이 뭉클하도록 네가 그립고 고향이 그리워질 때마다

(어찌하여 무서운 전쟁을 피하고 통일이 될 수 있을까 -)

그때마다 나는 김일성은 누구고 삼팔선은? 또 육⋅이오는 왜 일어났으며 또한 대한민국은 장차 어찌될 것인가? - 하며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불평을 가득이 입에 담곤 길을 헤매어 다녀야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정말인가?)

나는 신문을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신문의 활자는 나의 눈을 속일 수 없이 뚜렷했다.

<민통전학련> - 남북한학생대표가, 평양이든 서울이든 한데 모여서 통일문제에 대하여 담화를 가질 것이라는 해설에 나는 결과야 어찌되든 기뻣다. 가슴이 뛰었다.

(아! 고향의 하늘)

마치 철부지 어린 아이 모양 나는 북쪽 하늘을 향해 부르짖었다.

그리운 부모 형제에게, 사랑하는 애인에게, 다정한 친구에게 서로의 쌓였던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기쁨 - 기쁨에 뛰노는 가슴에 움켜쥔 신문을 부벼대며 나는 마냥 미소를 머금었다.

봉식아! 나는 지금 이렇게만 너에게 말하고 싶다. 나에게는 오직 통일된 조국과 고향이라는 땅만이 갖고 싶다고 -

38線이 걷힐 날에 ④

38線이 걷힐 날에 ④ [민족일보 이미지]

38線이 걷힐 날에 ④

紙上 南北書信 交換

- 내 뛰 놀던 고향이 그리워 내 다정한 동무들의 정이 아쉬워 나는 검은 어둠에 말리어 가만히 얼마나 흐느꼈는지 모른다. 검푸른 동해 고향 바닷가에서 나는 슬픔에 잠겨 여린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봉식이 잘 있나?

 

韓何雲

 

統一돼야 故鄕엘 가지

어찌되든 「學生會談」이야 좋지 않겠나

눈보라 속에도 못 잊을 북녘

 

젖은 소나무 가지를 꺾어 모닥불을 피운 그 붉은 불빛을 덮고 나는 낮선 어느 산비탈을 벼게삼아 말없이 잠들어야만 했다.

찌익찍 열을 뿜던 젖은 소나무의 불빛도 이제 아득히 꺼져갔다.

피난길에 지친 노인도 청년도 추위와 피로에 사지를 오구리곤 달달 떨면서 잠들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젊은 여인의 품에 꼬옥 안기운 아가의 숨결도 가냘프게 들려왔다.

그때 나는 꼬옥 얼어붙은 입술을 빠금이 벌리고는 무엇인지 소근대고 있었다.

(봉식아 내 어린 시절의 싸리 말동무 - 너는 지금 그곳 어디에 있느냐? 지금 이렇게 너는 북쪽으로 나는 남쪽으로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이별이라면 인간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

이렇게 울부짖는 나의 주위에는 엄마도 아버지도 형제도 피로에 지쳐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무슨 일에든 의논을 해가며 공부하고 뛰놀던 너의 다정한 숨결만은 이제 영영들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슬픔에 나는 사뭇 흐느껴 울었다.

이 고난은 몇 개월간의 피난살이겠지 - 라고 믿으려고 애써도 믿어지지 않는 심정 -

봉식아 너와 나를 힘차게 다정하게 길러 주던 고향의 흙을 이젠 영영 밟아 볼 것 같지 않은 아득함에 나는 쭈욱 울었다.

정말은 六⋅二五라는 무시무시한 전쟁은 나에게 고향을 아주 잊어버리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정한 친구와의 작별을 갖다 주고야 말았다.

그러나 하늘이 유난히 맑았어도 비가 왔어도 눈보라가 쳐도 결코 나는 고향을 잊지는 안았다.

가슴이 뭉클하도록 네가 그립고 고향이 그리워질 때마다

(어찌하여 무서운 전쟁을 피하고 통일이 될 수 있을까 -)

그때마다 나는 김일성은 누구고 三八선은? 또 六⋅二五는 왜 일어났으며 또한 대한민국은 장차 어찌될 것인가? - 하며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불평을 가득이 입에 담곤 길을 헤매어 다녀야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정말인가?)

 
나는 신문을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신문의 활자는 나의 눈을 속일 수 없이 뚜렷했다.

<民統全學聯> - 南北韓학생대표가, 평양이든 서울이든 한데 모여서 통일문제에 대하여 담화를 가질 것이라는 해설에 나는 결과야 어찌되든 기뻣다. 가슴이 뛰었다.

(아! 고향의 하늘)

마치 철부지 어린 아이 모양 나는 북쪽 하늘을 향해 부르짖었다.

그리운 부모 형제에게, 사랑하는 애인에게, 다정한 친구에게 서로의 쌓였던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기쁨 - 기쁨에 뛰노는 가슴에 움켜쥔 신문을 부벼대며 나는 마냥 미소를 머금었다.

봉식아! 나는 지금 이렇게만 너에게 말하고 싶다. 나에게는 오직 통일된 조국과 고향이라는 땅만이 갖고 싶다고 -

[민족일보] 1961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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