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의 [삼추가연]이란 작품을 초야권을 매매하는 그림이라고 해석한다.
이것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주류의 판단이고 여기에 반론을 펴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이 때문에 그림을 선정해 놓고도 한참이나 뜸을 들였다.

초야권(初夜權)?

결혼 첫날밤에 신랑 이외의 남자가 신랑보다 먼저 신부와 동침하는 권리.
세계 각지의 미개 종족에서 볼 수 있는 습속이지만 중세 유럽에서도 영주(領主)가 농민의 결혼을 승인하는 조건으로 행사했다고 한다.(두산백과)

조선 후기, 세계 최고의 정신 가치(철학)를 가졌다고 자부하는 ‘소중화 사상’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청나라를 방문했던 연암 박지원은 조선 여인의 정절을 자랑했다.
당시 여성의 정절은 높은 인격과 기품으로 문란하지 않으며 가정을 잘 꾸리고 자녀를 올바르게 키운다는 의미였다.
이런 나라에서 미개 종족에서나 볼 수 있다는 초야권이 있었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중세에 있었다는 초야권은 거짓이다.
중세 유럽에서 영주가 농노의 신부와 먼저 동침하는 문화가 실제로 있었다면 반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남녀의 종족 번식은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르크 블로크, 조르주 뒤비, 자크 르 고프와 같은 저명한 중세 역사가들은 초야권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초야권은 중세 왕이나 가톨릭교회에서 단 한 번도 승인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볼테르를 비롯한 근대 계몽 사상가들이나 반 교권주의자들이 무지몽매한 중세와 당시 부패한 가톨릭 교회를 비난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창조해낸 허구의 전통이라고 단정했다.

최근 김응종의 ‘서양의 역사에는 초야권이 없다’(푸른역사)가 출판되었다.이 책에 의하면 초야권은 날조된 역사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최근 김응종의 ‘서양의 역사에는 초야권이 없다’(푸른역사)가 출판되었다.이 책에 의하면 초야권은 날조된 역사이다. [사진 제공 – 심규섭]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 누구에 의해 이런 신화는 만들어졌을까?
이는 중세를 바라보는 서양인, 특히 스스로가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는 사람들로 자부한 소위 인문주의자들이 중세를 암흑으로 몰아세우고, 그런 사회의 정점을 차지한 봉건영주들을 비판하기 위해, 나아가 그와 한패가 되었던 가톨릭교회를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낸 결과물일 뿐이다.

조금 다른 얘기가 있다.

‘요나라 멸망의 핵심원인 중 하나는 거란족 관리가 여진인 부인과 딸을 강간하는 풍습이 여진족의 원한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여진족 집거촌의 중하층 여진족 처녀들은 거란족 관리에게 처녀성을 바쳐야만 하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거란족 관리들은 여진족의 상류층 나아가 촌장과 추장에게도 아내와 딸을 동침하도록 강요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게 되었다.
여진족 추장의 아내와 딸은 거란족의 아이를 출산하면 아이의 성을 거란식으로 쓰게 했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여진족의 거의 모든 부족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거란족 타도의 반기를 들었다.
1090년 금태조 아골타의 조부도 여진족 족장으로서 반란에 합세했다. 거란족들에게 비슷한 치욕을 당하고 있던 부모 민족 고려제국과 거란에 의해 멸망 당한 발해 유민들과의 반거란족 동이족 3자 연합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강효백 페이스북)

여진인 부인과 딸을 강간하고 처녀성을 빼앗는 풍속을 가진 요나라가 멸망한 후 거란족 30%가 일본으로 건너가 사무라이 집단을 형성했다고 한다.

일본의 게이샤(기생) 문화는 사무라이에 의해 유지되었다.
농노였던 일본 백성은 게이샤와 놀아날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게이샤를 소재로 한 영화가 있다.
아서 골든의 소설 <게이샤의 추억>을 원작으로 한 2005년 영화이며 시카고로 유명한 롭 마샬이 연출하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했으며 장쯔이, 공리, 양자경이 주인공이다.
아서 골든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일본사 석사 학위를 받을 만큼 일본 전문가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1970년대 최고의 게이샤로 일컬어졌던 이와사키 미네코의 삶을 참고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미네코는 1949년생으로, 영국인 소설가인 아서 골든의 장편소설 <게이샤의 추억>의 실제 모델이다.

이 영화 내용 중에 주인공의 초야권(처녀권)을 입찰 붙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초야권을 산 사람을 후견인이라고 부른다. 후견인은 게이샤의 경제적 재부를 책임지고 든든한 뒷배가 된다.

조선 기생은 국가에 소속된 천민이자 공무원이며 국가 공식 행사에 참가하는 공인 연예인이다.
이들이 술자리에 불려가 남자를 상대할 일은 없었다.
평균 15세 전후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기생은 집단을 이루어 움직였고 상급 공무원의 엄격한 관리를 받았다.
관리가 기생과 사랑에 빠지거나 겁탈하면 인생이 멸망했다.
파직, 유배당하고 심할 경우 교수형을 당했다.

조선 기생은 조선이 망하면서 함께 사라졌다.
대신 일본 게이샤를 흉내 낸 짝퉁 기생들이 일본인이나 매국노 부자들에게 유흥을 제공했다.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과 몸을 파는 기생을 1패, 2패, 3패 따위로 나누거나, 남자들 사이에 앉아 술을 따르는 문화는 모두 게이샤 문화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생 이야기는 대부분 일본 게이샤의 변형일 뿐이다.

신윤복의 [삼추가연]은 일본 게이샤의 초야권 문화에 따라 해석한 것이다.
중세 유럽의 초야권이 근대 계몽주의자들의 농간이었듯이,
존재한 적이 없었던 초야권을 신윤복 그림에 적용하여 해석한 것도 조선 시대를 부정하려는 농간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신윤복의 [삼추가연]이 보여주는 진실은 뭘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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