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의 풍속화 [소년전홍, 少年剪紅]이 있다.
간송미술관에서 지었는데 그림 제목이 어렵다.
소년은 어린 남자를 뜻하고, 전홍은 붉은 꽃을 꺾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어린 남자가 붉은 꽃을 꺾다’인데 부정적인 느낌이다.
‘꽃을 꺾다’는 일방적이다.
그림 속 남녀의 자세나 표정은 능동적이고 밝다. 이건 일방이 아니라 상호라는 말이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젊은 남자가 젊은 여자를 유혹하고 여자는 살짝 앙탈을 부린다’가 되겠다.
이렇게 어렵고 애매한 제목은 그림 속의 화제에서 따왔다는 썰(?)이 있다.
密葉濃堆綠 빼곡한 잎엔 농염하게 푸른빛 쌓였는데
繁枝碎剪紅 수북한 가지엔 잘게 붉은 꽃을 오려 붙였네.
이런 시구절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본뜻을 알기 어렵다.
시대의 흐름이나 당시 사람들의 정서를 따라야 한다. 특히 신윤복은 그림에 걸맞은 은어(隱語)를 사용해 감흥을 높였을 가능성이 있다.
간략한 그림 설명이다.
꽃이 만발한 여름날 한껏 빼입은 남녀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젊은 남자는 여성의 팔목을 잡아당기고 있고, 여성은 엉덩이를 뒤로 빼면서 남자를 살짝 흘겨보고 있다.
남녀가 하는 육체적 밀당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날도 좋고 꽃도 피었는데 우리 저기 가서 뽀뽀나 할까?”
“아잉, 왜 이래요? 남들이 보면 어쩔려구...”
일단 그림 속의 배경을 살펴보자.
계절은 여름이고 인적이 드문 후원이다.
거대한 괴석과 인공 돌담이 있기 때문이다.
이 괴석은 값비싼 태호석으로 추정한다. 사람 키보다도 훌쩍 큰 태호석의 가격은 억대가 넘었다.
우측 앞과 좌측에 있는 활짝 핀 꽃나무는 배롱나무, 백일홍이다.
배롱나무도 태호석 못지않게 비싼 나무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고관대작이나 부잣집 후원이라고 추정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냥 멋진 장소를 연출한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강남의 명소(hot place)이다.
인물을 살펴보자.
젊은 남자는 사방관(四方冠)을 쓰고 심의(深衣)를 입었다. 한 손에는 긴 곰방대를 들고 있다.
사방관은 선비가 실내에서 쓰는 모자이고, 심의는 학문이 깊은 선비가 입는 옷이다.
수염도 나지 않은 젊은이가 중년의 선비 의복을 입고 있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고관대작, 부잣집 자식일 거라는 추정을 할 수 있지만 어색하다.
이런 의복은 연출한 것이다.
사방관, 심의 따위는 그 당시 가장 멋있는 복장이자 명품 옷이다.
요즘으로 치면, 고급 외제 차에 명품 시계를 차고 최신 유행 옷을 입은 것과 다르지 않다.
통통하고 수염이 없는 젊은 남자는 아이돌급 미소년인 셈이다.
젊은 여성은 자태를 살펴보자.
가체(트레머리)를 올리고 짧은 저고리에 청색 치마를 입었다. 신발은 값비싼 미투리이다.
당시 유행하던 복장이었다.
치마를 입은 방법이 조금 특이하다.
치마를 끌어 올려 묶었다.
치마를 묶는 것은 긴 치마가 걷거나 일하는데 걸리적거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치마를 이상하게 묶었다. 묶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짧은 치마를 입었다.
요즘 여학생들이 교복 치마를 짧게 수선해 입듯이, 아예 짧은 치마를 입고 그 위에 매듭을 지어 장식처럼 만들었다.
추정컨대, 최신 유행이었을 것이다.
짧은 저고리와 짧은 치마로 인해 허리 부분은 과도하게 노출되어 있다. 이 때문에 가슴이 슬쩍 보일 정도이다.
요즘으로 치면, 배꼽티를 입은 것이다.
젊은 여성도 남자를 유혹할만한 온갖 장치의 옷을 연출한 것이다.
풍성한 가체(트레머리)는 아름다움과 부유함의 상징이었다.
어린 며느리가 큰 가체를 하고 시부모님께 절을 하다가 목이 부러졌다는 야사가 있을 정도이다.
여성은 남자가 팔목을 끌어당기는 와중에도 머리가 흐트러질까 매만지고 있다.
여성이 머리를 만지는 것은 싫지 않다는 신호이다.
어떤 사람은 부잣집 자제가 어린 여종을 유혹하고 겁탈하려는 장면이라고 해석한다.
신윤복은 이 그림을 통해 어린놈이 일찍이 주색잡기에 빠져 풍기문란을 일삼는 행태를 비판한 것이라고 한다.
정말일까?
여종이면 노비이자 천민이다. 이런 노비가 고급 옷과 신발, 값비싼 가체를 하고 다닐 정도면 조선은 세계에서 가장 부자나라였을 것이다.
또한, 고작 종년을 유혹하기 위해 억대의 물건이 가득한 후원에서 상식을 초월한 명품 의복을 갖춰 입었겠나?
홍대거리 클럽에서 젊은 남녀가 서로 수작을 부리면서 만나듯이, 멋있게 치장하고 서로를 유혹하고 밀당하는 장면일 뿐이다.
진짜 궁금한 건, 이 만남으로 어디까지 진도(?)가 나갔을까 하는 것이다.
활짝 핀 분홍색 꽃은 여성의 몸이고, 거대하게 솟은 태호석은 남자의 몸이다.
신윤복은 이 정도까지 친절하게 보여줬다.
그렇다면 그림 속 남녀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끝까지 간 것이다. (계속)


여종이면 노비이자 천민이다. 이런 노비가 고급 옷과 신발, 값비싼 가체를 하고 다닐 정도면 조선은 세계에서 가장 부자나라였을 것이다.
또한, 고작 종년을 유혹하기 위해 억대의 물건이 가득한 후원에서 상식을 초월한 명품 의복을 갖춰 입었겠나?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