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최척호기자= 북한의 역사학계에서는 고구려벽화고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황해남도 안악의 제3호 벽화고분을 고구려 제21대 왕인 고국원왕의 무덤으로 보고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남한의 학계에서는 이 벽화고분의 피장자(被葬者)를 중국의 연(燕)나라에서 서기 336년 고구려로 망명해온 `동수`(冬壽)로 파악하고 있다.
6일 조선중앙방송에 따르면 북한의 학계에서는 이 고분에 그려진 벽화를 근거로 고국원왕의 무덤으로 보고 있는데 `고분안에 들어가 보면 매방들로 벽화를 그렸으며 문칸에는 왕을 호위하는 위병들이 그림이 있고 , 서쪽 벽화칸에는 정사를 보는 왕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이곳의 왕의 초상은 `눈썹과 눈은 다 옆으로 길게, 코도 아래로 길게 그리고 수염은 팔자수염을 한 상태로 그려져 있다`고 방송은 밝혔다.
이 고분의 벽화에 나오는 고국원왕의 옷과 왕비가 입은 일곱가지 색상의 치마저고리는 모두 비단옷으로 `이것은 고구려시기 우리나라 방직 공업이 얼마나 발전했는가 하는것을 잘알수있게 해준다`고 방송은 소개했다.
또 벽면에는 무관(武官)들과 함께 세사람은 악기를 타고 한사람은 춤을 추는 장면을 그린`무악도`(舞樂圖)가 있는데 `그 춤을 추는 장면에서 코가 아주 크게 그려진 사람은 로마숫자 십자형으로 발을 꼬고 손은 박수를 치는 자세로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이 무악도 옆에는 왕이 행차하는 장면을 그린 대행렬도가 있는데 `여기에는 250명이 그려져 있지만 옛날 고구려에서 왕의 한번 행차할 때에는 500여명이 출두했다`고 방송은 덧붙였다.
이밖에도 고분내에는 우물 부엌 외양간 등과함께 태권도 그림(수박희) 등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덤내부 천정에는 해와 달 연꽃들을 그렸는데 `이것은 왕이 죽어서도 영생하라는 의미에서 그린 것`이라고 방송은 해석했다.
한편 이 안악제3고분은 연도,연실,전실,좌측실 후측실 후실등 총 6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칸들은 벽체 하나하나가 하나의 큰 판돌로 세웠고 제일 큰 판돌은 그 길이가 5m미터 정도에 이른다`고 방송은 소개했다.
또 `각 돌들의 높이를 보면 1m부터 2m60㎝, 두께를 보면 10㎝부터 20㎝정도 이지만 한손가락으로 문을 열고 닫을수 있을만큼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안악제3호고분은 1949년 10월 발굴됐으며 북한에서는 `민족의 우수성과 역사를 빛내이는 유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