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주 조선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가 지난 9월 7일부터 16일까지 유럽의 독일.벨기에.스위스.이탈리아를 순방했다. 강 비서는 주로 방문 국가의 정부.정당.경제계 고위 인사와 유럽의회 관계자를 만났다.

그의 유럽 순방에 대해 <조선중앙통신>은 “회담과 대화들에서는 조선과 유럽의 정치.경제 정세가 통보되고 공동 관심사에 대해 깊이 있고 솔직한 의견 교환이 진행됐다”며 많은 문제에 대해 상호 이해를 표명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관계 발전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강석주 비서의 유럽과 몽골 순방

강 비서는 유럽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최근 정치, 경제적 교류가 활발해진 몽골을 방문해 엘베그도르지 대통령과도 만났다.

그는 이번 순방 기간에 주로 방문국의 정당과 유럽의회와 유럽연합 관계자들을 만나 상호 친선관계 강화와 투자유치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연합에서 제기하는 북한의 인권문제도 논의됐을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서 제기됐던 북.미, 북.일간 비밀접촉은 없었다.

강 비서의 행보에서 두 가지 측면이 주목된다. 첫째는 강 비서가 간략하지만 북.미관계,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는 점이다. 그는 9월 6일 밤(현지시간) 첫 방문국인 독일에서 기자들을 만나 6자회담 재개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남북관계 개선 문제에 관해서는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강화하자는 것”이 북한 당국의 입장이라고 설명하고 “우리 위대한 김정일 동지와 김대중 대통령, 이후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합의한 합의서가 있지 않느냐. 그것을 이행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다 풀린다”며 기존 합의의 이행을 강조했다.

6자 회담을 재개하려면 무엇이 필요하겠느냐는 말에는 “미국이 조건부를 거니까... 조건 없이 하자는 것”이라며 ‘전제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라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러한 강 비서의 발언은 그가 정당, 사회단체와의 대외외교를 맡고 있지만 대미, 대남분야에도 일정하게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것은 북한의 대외정책에서 강 비서의 위상이 그만큼 강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석주 비서는 2010년 9월, 24년 만에 외무성 제1부상에서 물러나 내각 부총리로 자리를 옮겼다.

잘 알려진 것처럼 강석주 비서는 클린턴 행정부와 협상을 통해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를 이끌어낸 실무 주역으로 북미협상 역사에서 ‘북측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북 외교의 제갈공명’이란 별명까지 붙은 강 비서는 1986년 북 관료로는 젊은 나이인 47세에 당시 외교부 제1부상에 임명돼 김일성 주석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엔 외무상을 대신해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직접보고 체계를 갖고 대미외교와 6자회담을 막후에서 지휘해온 ‘실세’로 통했다.

‘강석주 인맥’의 재부상

그런 강 비서가 외무성 제1부상에서 내각 부총리로 승진하자 대미외교 뿐만 아니라 대중외교까지 총괄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것이라는 분석이 주류를 이뤘다. 필자도 당시 강 비서가 부총리로 승진하면서 대미외교에서 손을 떼고 2선으로 물러난 것이 아니라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 외교를 모두 총괄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라고 분석했었다.

그러나 최근 전혀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 북한 외무성은 강석주 라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2009년 장성택 부장이 국방위원에 임명된 뒤부터 장성택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장성택 부장이 2010년과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차례 방중에 동행하게 되면서 외무성 내부에 ‘장성택 인맥’이 형성됐다고 한다. 강 비서가 외무성에서 나와 내각 부총리로 간 것이 ‘승진’이 아니라 장성택 부장의 견제로 사실상 핵심외교라인에서 배제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총리 시절 강석주 비서는 주로 대중외교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점에서 2013년 장성택 부장이 숙청된 후 강석주가 부총리에서 당 비서로 자리를 옮긴 것은 ‘강석주 인맥’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는 지난 4월 내각 부총리에서 당 비서로 자리를 옮긴 후 첫 해외방문지가 유럽이라는 점이다. 강 비서는 “이번 방문을 계기로 북한이 활발하게 대외관계 개선에 나서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대해 “대외관계야 계속 개선하는 길에 있다. 뭐 새로운 것을 하는 것도 아니다”면서 “우리가 뭐 대외관계가 없었느냐. 정상적 사업이다”라고 답변했다.

정상적인 회교활동의 일환으로 유럽 국가를 방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강 비서의 유럽 순방은 최근 북한의 외교방향이 중국 일변도에서 벗어나 ‘외교 다변화(다각화)’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외교 다각화로 미국 압박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북한은 ‘외교의 다각화와 다방면의 적극 외교’라는 기본방향을 설정했다. 지난 4월 강석주의 국제담당비서 기용과 리수용 외무상 발탁은 북한 내부의 논란이 정리되고 김정은 시대 2기 외교 라인이 새롭게 구축된 것을 의미한다.

‘장성택 인맥’의 퇴진과 함께 ‘중국 편향’에서 실질적인 ‘외교의 다각화’를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반적으로 중국 일변도 외교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외교 라인이 재정비된 셈이다.

일각에서는 강 비서의 유럽 순방에 대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냉각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북.중관계도 원활치 않은 조건에서 유럽을 새로운 돌파구로 삼은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최근 외교행보는 단순하게 국면 돌파라는 측면보다는 김정은 시대 북한외교의 기본방향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해야 할 것 같다.

‘강석주 인맥’의 재부상과 북한의 ‘외교 다각화’ 노선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궁극적으로 북.미,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이 ‘경제 건설과 핵 무력 건설 병진노선’에 기초해 대외정책 방향이 설정되면서 대미, 대남정책에서도 과거와 다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즉 국면 타개보다는 ‘근본적 해법’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일부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북한의 대남라인의 변화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2009년 이후 장성택 부장이 활동영역을 넓히면서 대남정책은 김양건 비서와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두 축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장성택 부장의 숙청과 지난 2월 남북고위급합의가 사실상 결렬되면서 이 두 축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은 5.24조치 해체와 금강산관광 재개 외에 한미 합동군사연습 중단, ‘대북 삐라살포 무조건 중단’을 강한 어조로 요구하고 있다. 지난 9월 20일 북한은 남북고위급접촉 북측대표단 대변인을 내세워 “북남 사이에 신뢰를 조성하자는 청와대 공언이 진중에서 나온 것이라면 삐라살포를 무조건 중단하는 실천적인 용단을 내리게 될 것”이라며 “북남관계 개선의 출로는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의 남북고위급접촉 이전으로 다시 돌아간 셈이다.

이러한 상황이 북한의 대남라인의 교체로 이어질 지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2월 남북고위급접촉을 주도했던 정책담당자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우리 정부가 제안한 제2차 고위급접촉을 북한이 쉽게 수용하기 어렵게 만든 대목이다.

특히 북한이 “북남교류와 민족적 화해를 위한 중요한 공간”이라고 한 인천 아시안게임 기간에 대북 전단살포를 정부가 ‘방치’한 것은 남북대화 재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북한, 한.미.일의 정책 변화를 기다리겠다는 입장

북.미대화 재개도 미궁에 빠졌다. 억류된 미국인 석방을 위해 미국은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나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을 타진했으나 북한은 이를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자체 인권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인권문제에 대해 적극 공세로 나선 북한은 대북 인권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킹 특사에 대해 부적절한 인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더 근본적인 요인이 북한과 미국의 입장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미국은 억류된 미국인 석방을 6자회담 재개문제와 분리해 해결한다는 입장이지만 북한은 이 문제를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 폐기와 연관시켜 사고하고 있다. 북.미간 논란의 본질은 미국이 누구를 ‘고위급 특사’로 보내느냐 하는 것이 아닌 셈이다.

최근 킹 특사는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이 (북미) 접촉을 방해하는 근본적인 문제”이나 “(북한이) 억류된 미국인들을 석방한다면 다른 분야에서 더 폭넓은 논의와 접촉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단계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 억류된 미국인의 석방을 계기로 북미간 폭넓은 논의와 접촉이 개시될 수 있다는 확신을 북한 측에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듯하다.

북.미관계의 난기류는 북.일대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최근 일본인 납치피해자 재조사 등에 관해 “전체적으로 1년 정도를 목표로 삼고 있으며 현재는 초기 단계에 해당한다”는 내용을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 9월 중 재조사 결과를 통고하기로 한 것을 유보한 것이다. 대북제재의 추가 해제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장기적인 포석을 세우고 있는 듯하다. 서두르지 않고 경제 건설에 주력하며 한.미.일의 정책변화 여부를 지켜보겠다는 속내다. 대화의 문을 열어 놓고 중간선거를 앞둔 오바마 행정부, 임기 내 납치자문제 해결을 공약한 아베 정부, 한반도신뢰프로세스의 첫 단추도 제대로 꿰지 못한 박근혜 정부의 선택을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김정은 시대 제2기 외교라인의 구축과 정책 방향, 강석주 비서의 유럽 순방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반도 정세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내다봤던 9월도 거의 다 지나갔다. 어느 시점에, 어디서부터 물꼬가 트일지 예상하기 쉽지 않은 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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