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5일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을 위원장, 정종욱 전 주중 대사와 류길재 통일부 장관을 각각 민간.정부 측 부위원장으로 하는 통일준비위원회(통준위)를 발족했다. 지난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직속으로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밝힌 지 5개월 만이다. 당초 4월 출범을 목표로 했던 통준위는 세월호 참사와 뒤이은 ‘인사파동’의 영향으로 3개월 뒤에야 지각 출범하게 된 것이다.

올해 초 ‘통일대박론’을 화두로 국정의 추동력을 얻었던 박 대통령으로서는 2기 내각 출범과 맞물려 통준위를 본격 발족하며 정부의 통일 구상을 재점화하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통준위 발족을 통일인프라 건설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보수 일색의 통준위 인선

그러나 불명확한 위상과 역할, 남북관계 악화로 통준위가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선 처음 통준위 발족이 발표됐을 때와는 남북관계 상황이 많이 변화되었다. 통준위가 발표된 지난 2월은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려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성사되면서 남북관계가 진전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3월의 한미일 헤이그정상회담과 ‘드레스덴 선언’을 분수령으로 남북관계는 오히려 악화됐다. 북한이 ‘드레스덴 선언’에 강하게 반발하며 5.24 조치 해제 등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통준위가 할 수 있는 역할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통준위가 아무리 좋은 통일 청사진과 협력방안을 내놓는다고 해도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통일준비위원회 기구도>

▲ 청와대가 발표한 통일준비위원회 기구도. [자료사진 - 민족21]

통준위의 인적 구성도 문제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민간 부위원장엔 돌고 돌아 김영삼 정부 시절 주중대사를 지낸 외교관 출신인 정종욱 인천대 석좌교수가 임명됐다. 청와대는 정 교수에 대해 학계와 공직 현장에서 남북관계와 통일 문제를 오랫동안 고심해온 적합자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가 ‘북한과 통일문제’의 특수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라고 보기는 어렵다.

청와대는 통준위 위원 명단을 발표하면서 통일준비위에 조언을 해줄 대학 총장 30명과 고교 교장 20명으로 구성된 ‘통일 교육 자문단’, 전.현직 언론인 18명으로 구성된 ‘언론 자문단’도 공개했다. 통일준비위 자체가 일종의 대통령 자문 기구인데, 여기에 자문 역할로 또 68명이 추가된 것이다. 젊은 세대에게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목적이긴 하지만 전공이 제각각인 대학 총장과 통일과 직접 연관이 없는 고교 교장까지 포함된 데 대해서는 ‘너무 잡탕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통일준비위 민간위원에 위촉된 인사 중에는 김영삼 정부에서부터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에서 활동했던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포함돼 있지만 전반적으로 보수적 성향이 강한 인물들로 채워졌다. 그래서 ‘정권은 뛰어넘었지만 성향은 뛰어넘지 못한’ 보수편중 인선이란 평가가 나온다. 더구나 노골적으로 흡수통일론을 주장하는 인사도 다수 포함돼 있다.

정세현, 임동원, 이종석 등 전 통일부장관이 모두 배제된 것도 통준위 인선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통합형 통일준비위원회’와는 거리가 멀다.

또한 통준위 민간위원 중에는 통일 준비보다는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 준비 병행’ 또는 남북관계 개선 우선을 주장하는 인사들도 있어 내부 회의과정에서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운영 방향도 미궁

통준위의 큰 문제점은 구체적인 운영 방향이 제시돼 있지 않고, 일부 제시된 내용조차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아직 각 위원과 전문위원들에게 위원회의 구체적 운영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다.

지난 2월 박 대통령은 “(통일준비위원회가) 국민적 통일 논의를 수렴하고, 구체적인 통일 한반도의 청사진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은 다분히 표면적인 명분이고, 실제로는 2월에 ‘남북 신뢰의 첫 단추’라고 규정한 이산가족상봉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만큼 통준위를 통해 남남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본격적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중이 깔려 있었다.

대통령 취임 1년 동안 통일 관련 주무 부서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신’도 내포돼 있었다. 단순한 의견 수렴 기구가 아닌 실질적인 실행 기구로 통준위를 운영하려는 구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애초에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을 중심으로 밑그림이 그려진 통일준비위는 통일부, 국가정보원의 개입을 축소하고 청와대 주도로 남북관계를 추진해나가는 것을 뒷받침하고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실질적인 역할이 맞춰져 있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통일문제 만큼은 청와대가 단단히 고삐를 쥐고 임기 내 반드시 성과를 거두겠다는 게 박 대통령의 의중이었던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2월 남북고위급회담 때 청와대는 통일부와 국정원의 반대에도 실무회담에 청와대 국가안보실 김규현 차장을 수석대표로 내보냈다.

‘옥상옥 기구’란 비판 피하기 어려워

그런데 5개월만에 정식 출범한 통준위는 명분으로 제시된 ‘통일의 청사진’ 마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통해 통일한국의 미래상과 통일 추진의 구체적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준비위의 역할을 통일정책에 대한 방향성 제시, 사회 여론 수렴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기존 통일부 및 청와대 기능과 중복되며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민주평통과 역할이 중첩돼 ‘옥상옥’기구로 전락할 것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통준위가 제대로 운영된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체적인 운영 방향이 제시돼 있지 않은 점보다 통준위의 더 큰 문제는 제시한 목표를 실질적으로 달성하지 못 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통일준비위는 앞으로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모아 ‘통일 한국의 청사진’을 만들고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통일준비위원회의 역할이라고 한다.

<통일준비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통준위 설치의 목적은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하고, 통일 추진의 구체적 방향을 제시하며, 민.관 협력을 통하여 한반도 통일을 체계적으로 준비”하는데 있다.

대통령 소속 통일준비위원회 민간 부위원장에 임명된 정종욱 인천대 중국학술원장도 “무엇보다도 통일준비위가 평화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넓히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며 “앞으로 긴밀한 민관 협력과 사회적 의견 수렴을 통해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청사진을 마련하는 데 힘이 닿는 데까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과거 통준위가 없어서 평화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하고, 한반도 통일을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민.관협력체제가 없었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통일부의 일상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통일대비 또는 준비에 관한 연구 및 대비계획은 더 이상 민간에서 할 수 없을 정도로 정부 차원에서 준비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삼 ‘통일 준비 관련 제반 분야의 과제 발굴.연구’, ‘통일 준비를 위한 정부기관.민간단체.연구기관 간 협력’등을 통준위가 맡을 뚜렷한 이유가 없다. 통일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등 기존 통일정책 조직과 통준위가 서로 역할과 기능이 중복될 수밖에 없다.

사회적 의견 수렴도 마찬가지다. 통준위가 없어서 남남갈등이 발생한 것이 아니고, 통준위가 활동한다고 해서 ‘통일에 대한 세대 간 인식 통합 등 사회적 합의’가 촉진될 가능성도 크지 않다.

▲ 모노리서치가 실시한 통일준비위원회 관련 여론조사 결과. [자료사진 - 민족21]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가 통일준비위원회 발족 직후 향후 과제를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41.2%가 ‘남북 교류 확장 등 대화 및 협력 확대’이라고 대답했다. ‘경제적 군사적 우위를 통한 흡수 통일’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17.8%에 그쳤다. 그러나 통준위가 이러한 여론을 기초로 대통령에게 남북의 교류와 협력 확대를 건의할 지는 불투명하다. 당장 인천아시아게임에 대규모 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하겠다는 북한의 제안에 대해서조차 정부는 소극적이다.

단지 ‘드레스덴 구상’에 따라 북한에 일부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이마저도 북한은 ‘정치적 의도’를 거론하며 거부하고 있다. 최근 북한 산림 복구 사업 논의가 민간단체 ‘겨레의 숲’의 방북으로 재개됐지만, 북한은 “인도적 지원을 드레스덴 구상과 연계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로 거부했다.

통일부가 5.24 조치 이후 처음으로 농업.축산.보건의료 분야 등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에 남북협력기금 3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북한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없다.

북한, 통일준비위원회 발족에 회의적 반응 보일 것

오히려 북한은 ‘드레스덴 선언’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듯이 통준위 발족에 대해서도 흡수통일 기도라며 ‘비난 공세’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통준위가 그리는 ‘통일의 청사진’이 남과 북의 공존공영에 기초한 연합제 또는 ‘연합연방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10~20년 내의 흡수통일에 대비하는 것이라면 북한의 비판은 더욱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통준위 자체가 적절한 용어가 아니다.

또한 10~20년 내에 북한 체제가 붕괴될 것을 상정한 통일준비라면 정세인식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통일대박’ 발언이나 통준위 구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통일에 대한 무관심’ 내지 ‘통일 불필요론’을 줄이고, 통일의 당위성과 편익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면 나름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알게 모르게 통일이 임박했다거나 임박할 징조가 있다는 정세 인식에서 나왔다면 ‘통일 쪽박’, ‘껍데기 위원회’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이나 일부 북한전문가들의 분석에서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과 북한 경제난의 심화가 거론되고 있지만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취임이후 북한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징후는 뚜렷하지 않다. 오히려 북한의 식량사정은 꾸준히 개선되고 있으며 대외무역도 크게 늘고 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핵심은 신뢰 형성인데, 통준위는 자칫 신뢰가 아닌 ‘흡수통일’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북한에 보내 남북관계 개선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통일준비위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개념이라는 지적은 타당하다.

통준위는 처음 구상 때부터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구는 아니었다. 애초부터 통준위의 활동에 기대할 것이 없었다. 출발 자체가 ‘통일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전시성 기구였기 때문이다. 통준위를 통해 다양한 이념.사상적 균열을 치유, 통합하고, 꽉 막힌 남북관계의 개선방향을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다만 박 대통령이 남북대화와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경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남남갈등을 약화시키고, 회담의 명분을 강화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그나마 제한적인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통준위가 1차적인 사업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5.24조치 해제를 건의해 정부가 5.24조치를 해제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통준위의 역할이 ‘평화통일 청사진’ 마련으로 고착되고, 통일대비 연구나 통일교육홍보에나 주력할 경우 국민의 세금만 축내는 유명무실한 위원회로 전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정부에서 설립했던 숱한 위원회처럼 보고서나 만들어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사라지는 ‘껍데기 위원회’의 운명을 재현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통준위 발족이 통합이 아닌 분열, 남북대화가 아닌 갈등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기우(杞憂)로 그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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