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1일은 북.중 우호조약 53주년 되는 날이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가 발생한 직후 베이징에서 상대 국가가 군사적 공격을 받으면 자동 개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조.중우호협력원조조약’을 체결한 후 북한은 조약 체결일을 전후로 중국과의 친선을 강조하곤 했다.

북한, 중국에 불편한 심기 표출

지난해에는 우호조약 체결 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평양 옥류관에서 류훙차이(劉洪才) 북한 주재 중국대사가 참석한 축하 연회가 개최됐고, <로동신문>도 “반제자주와 민족적 번영을 위한 길에”라는 제목의 52주년 기념 논설을 통해 “형제적인 중국 인민에게 따뜻한 인사를 보낸다”며 북.중 관계 강화에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북한의 모든 언론매체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기념 논설 하나 실리지 않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평양보다 서울을 먼저 방문한 것에 대해 북한이 불편한 심기를 우회적으로 표출한 것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다만 시진핑 주석의 방한 기간 중 류훙차이 북한 주재 중국대사가 북.중 경제협력을 상징하는 라선경제특구를 방문해 양국 간 친선.협력 강화를 역설했다. 류 대사는 라선특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올해는 북.중수교 65주년으로, 중국은 북한과 함께 양국 친선 교류가 한층 심화하고 국경지역 성(省).도(道) 사이에 실질적인 경제무역 협력이 추진돼 공동 발전하고 양 국민이 더 행복해 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류 대사가 ‘조.중우호협력원조조약’이 아닌 ‘북.중수교 65주년’을 언급한 것이다. 이것은 “중국과 북한이 군사동맹 관계에 있다는 것은 맞지 않다”는 중국 외교당국자의 발언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지난 6월 17일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는 한국 기자들과 만나 “군사동맹 방식으로 안보를 유지하는 것은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중국과 북한이 1961년 맺은 ‘조.중우호협력상호조약’ 제2조에는 “양국은 모든 조치를 공동으로 맡으면서 체결국에 대한 특정 국가의 침략을 방지한다. 체결국 가운데 한 쪽이 몇몇 동맹국의 침략을 받을 경우 전쟁 상태로 바뀌는 즉시 군사적 원조를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중국, 북한문제와 북핵문제 분리 대응

곧바로 중국이 북한과 ‘거리 두기’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중국이 한반도 유사시 군사개입 내용을 담고 있는 해당 조약의 내용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군사동맹’과 관련된 발언은 한.미 군사동맹에 대한 평가와 동시에 고려돼야 한다. 중국은 2008년 5월 친강 외교부 대변인의 성명에서 “한.미 군사동맹은 지나간 역사의 산물”이라며 “지금은 냉전 시대의 이른바 군사동맹으로 각 지역의 안전문제를 처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즉 중국은 북.중 군사동맹이나 한.미 군사동맹이 과거 냉전시대의 산물이고, 현재 동북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이것이 모두 청산돼야 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입장은 지난 5월 21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에서 한 연설에서 잘 드러나 있다. 이 연설에서 시 주석은 “명자인시이변 지자수시이제'(明者因時而變 知者隨時而制: 현명한 사람은 시대에 맞춰 변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때에 따라 제도를 바꾼다)란 중국 고전 문구를 인용한 뒤 “시대의 전진하는 발걸음을 따라가야 한다”면서 “몸은 21세기에 있으면서 머리는 냉전적 사고와 제로섬 게임의 구시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 일본, 필리핀 등 동맹국과의 군사동맹을 중심으로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미국을 겨냥한 셈이다.

이러한 기조에 따라 중국은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이후 북한문제와 북핵문제를 분리 대응하기 시작했다. 북핵 개발에는 반대하는 입장을 표시하면서 전통적인 북.중교류는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북한의 안정’과 ‘비핵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북한 핵문제 해결과 관련해 ‘중국 역할론’이 강조되는 상황을 부담스러워 하는 중국 당국이 의도적으로 북.중관계를 ‘특수관계’가 아닌 ‘일반 양자관계’를 강조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중국의 대북정책의 변화 내지 조정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무엇일까? 김정은시대 북한의 대외노선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2년 4월 15일 첫 공개연설에서 잘 드러난다.
“강성국가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총적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에 있어서 평화는 더없이 귀중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민족의 존엄과 나라의 자주권이 더 귀중합니다.”
경제건설을 위해 평화적인 대외환경 조성에 적극 나설 의향이 있지만 ‘자주권’ 훼손에는 강력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북한이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계속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하고, 중국을 ‘대국주의’라고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로동신문> 6월 28일자는 편집국 논설을 통해 “제국주의자들의 그 어떤 강권 책동도, 대국주의자들의 압력도 우리 인민을 굴복시킬 수 없었다”며 미국이든, 중국이든 자신들의 ‘자주권’을 제약하는 정책에는 단호하게 맞서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북한, 대중 협력과 견제로 분리 대응

이러한 북한의 기조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구체적 대응으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 전통적인 북.중 친선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다방면의 교류를 확대하는 동시에 러시와의 협력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중국 편중’에서 벗어나 ‘균형외교’에 힘을 쏟고 있다. 이 지점에서는 북핵문제와 북한문제를 분리한 중국의 대북정책과도 크게 갈등이 나타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12년 12월 17일 중국 공산당 류윈산 정치국 상무위원도 “시진핑 총서기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새 지도부가 전통적인 북.중 친선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며 “노세대 혁명가들이 만들어 온 전통적 친선은 확고부동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중국은 최근까지 “북핵 문제의 핵심은 북한과 미국 관계”라고 발언해 북한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달 훙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핵문제와 관련한 북한의 핵심 희망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라며 북핵문제 해결과 관련된 ‘중국 역할론’을 부인하고 ‘미국 역할론’을 강조했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과 중국은 차이가 없다. 북한은 ‘북한의 안정과 대화를 통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중국의 정책에 대해서는 이를 지지하고 활용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둘째, 북한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제고함으로써 독자적인 안보력을 높이고, 이에 기초해 한.미.일과의 관계개선에 나서고 있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펴는 미국과 ‘신형대국관계’를 강조하는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자칫 훼손될 수 있는 자주권를 확보하고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 일정한 ‘갈등’이 조성돼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통한 ‘신형 대국관계’ 형성에 핵과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고 있는 북한이 걸림돌 내지 부담이 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실현과 평화안정이 6자회담 참가국들의 공동이익에 부합하며 참가국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이런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중국의 입장은 미국과 북한의 입장을 절충한 측면이 강하다. 또한 중국은 ‘신형 대국관계’에 기초한 자국 중심의 ‘아시아의 안보 협력기구’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Asia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AIIB) 설립이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도록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은 ‘신형 대국관계’에 기초한 동북아의 새로운 판짜기가 ‘양날의 칼날’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중국이 아시아의 ‘맹주’로 부상하는 것이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중국이 한반도문제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측면에서 ‘현상 유지’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내부적으로 1991년 유엔 가입시기에 보여준 중국의 태도, 위성 발사에 대한 유엔의 대북제재 동참 등으로 상당한 ‘배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경제 건설과 핵 건설 병진노선’ 고수를 내세우고 있는 북한과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하는 중국 사이에는 일정한 갈등이 내재돼 있다.

즉 ‘신형 대국관계’가 형성될 때까지 북한의 독자행동을 제지하려는 중국의 입장과 ‘아시아 재균형’과 ‘신형 대국관계’가 동북아에서 안착되기 전 ‘독자 공간’을 마련하려는 북한의 입장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단기적으로 6자회담이 다시 열리고, 남북.북미대화가 재개될 시점까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과거 북.중관계가 갈등과 밀착관계를 반복해왔던 것처럼 현재의 북.중 간 갈등은 북.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 순간에 해소될 수 있는 측면이 강하다.

많은 전문가들은 7월 3일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 정부의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는데 동의한다. 시진핑 정부의 ‘신형대국관계’론은 앞으로 미.중 관계뿐만 아니라 동북아와 한반도에도 서서히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것이 한반도에 드리울 부정적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선제적이고 창의적인 외교적 발상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특히 남북관계부터 정상으로 만들면서 이를 지렛대로 삼아 주변국으로부터 외교적 이득을 얻어내는 정책을 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같은 고민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시진핑 주석의 방한과 미국의 핵항공모함 부산항 입항에 대응해 탄도미사일과 방사포를 연이어 발사하며 ‘무력시위’를 하는 한편 대남 대화공세를 이어가고 있는 이유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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