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현지시간) ‘한인 러시아 이주 150주년’을 맞아 고려인(옛 소련 지역 거주 한인) 동포가 추진하는 러시아-남북한 종주 자동차 랠리 행사 참가팀이 모스크바를 떠나 약 한 달 반 동안의 대장정에 올랐다. 랠리 팀은 한인들의 러시아 이주 경로를 거슬러 러시아~중아아시아~남북한을 종주하는 약 1만5천km의 노선을 내달릴 예정이다. 주목할 대목은 이 랠리 팀이 8월 초순 북한으로 들어가 8월 15일 군사분계선(MDL)을 넘는 일정을 북한 당국이 승인했다는 점이다.

군사분계선 통과 허용

북한은 지난해 8월에도 남북한을 오토바이로 종단하는 뉴질랜드인 일행의 군사분계선 통과를 허가한 바 있다. 8월 29일 뉴질랜드인 일행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에 도착한 뒤 단장인 오토바이 탐험가 개러스 모건 박사는 “외국인은 DMZ를 통과할 수 있는데 왜 한국인들은 못 하는지 묻고 싶다”라고 취재진에게 말했다.

분단 후 군사분계선은 금단의 영역이었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후 남측 대표단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공식적으로 처음 통과한 후 당국간 회담대표들이 오고가긴 했지만 외국인의 민간행사에 북한이 군사분계선 통과를 허가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세계적 추세를 내세우는 김정은시대에 들어와 가능해진 일이다.

그러나 군사분계선을 넘어 활발하게 오고가던 남북간 민간교류는 6년째 꽉 막혀 있다. 지난 2월 남북고위급회담이 성사되고 3년 4개월만에 이산가족상봉이 이뤄졌지만 한미합동군사연습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남북교류는 다시 중단된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6월 30일 북한이 7월 4일부터 군사적 적대행위를 중단하자는 특별제안을 발표했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과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자고 남측 당국에 제안한 것이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구체적으로 지난 2월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에 따른 상호 비방중상 전면중지와 올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 등 한미합동군사연습 계획의 취소, 그리고 개성공단 협의에서 제기하는 3통(통행, 통관, 통신)질서를 정치적으로 불순하게 이용하려들지 말 것 등을 요구했다.

남북 화해분위기 조성하자는 ‘특별제안’

국방위원회의 ‘남조선당국에 보내는 특별제안’은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북남 사이의 관계개선을 위한 분위기 마련”을 강조하고, 뒤이어 북한 국방위원회 이름으로 나온 ‘중대제안’의 연장선상에 있다.

북한의 ‘특별제안’에 우리 정부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과 진실성이 결여된 제안”이라고 일축했다. 핵.경제 병진노선을 포기하지 않겠다면서 평화적 분위기 조성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북한이 한반도의 평화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비방중상과 도발위협을 중단함을 물론, 한반도 평화에 대한 근본 위협인 핵 문제 해결에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면서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우리의 제안에 적극 호응하고, 남북간 대화와 협력의 장에 성의 있는 자세로 나오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북한의 제안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등 한반도 주변상황을 고려한 생색내기 제안이라고 평가한 셈이다.

이에 대해 북한은 ‘특별제안’이 “비정상적인 북남관계를 바로잡기 위한 좋은 기회”라며 “남조선 당국이 덮어놓고 의심만 할 것이 아니라 대담하게 상대방이 내민 화해의 손을 맞잡고 서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신뢰도 생기고 북남관계 개선도 전진하게 된다”고 거듭 특별제안 수용을 촉구했다.

그리고 북한은 7일 ‘공화국 정부성명’을 통해 오는 9월 열리는 인천 아시안게임에 선수단과 함께 응원단도 파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것도 ‘큰 규모’로. 2005년 인천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북측 응원단이 참가한 후 9년 만에 다시 남측을 찾게 되는 셈이다.

북한은 대규모 응원단을 파견해 인천아시안게임을 남북화해 분위기를 띄우는 중요한 계기로 삼겠다는 의도를 공개적으로 밝히기까지 했다. ‘특별제안’의 진성성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동북아 냉전 해체의 중요한 시점이라고 판단

북한이 이렇게 공세적으로 나오는 데는 몇 가지 상황 변화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북일협상과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가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3월 헤이그 한미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박근혜 정부와 오바마 정부는 한미일 삼각공조를 강화하고, 여기에 중국을 끌어들여 대북압박의 수위를 높여가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7월 3일 한중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두 정상은 북한의 비핵화를 반드시 실현하고 핵실험에 결연히 반대한다는데 뜻을 같이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 주석은 “중국이 한반도의 비핵화 목표와 한반도의 평화 안정,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우리는 마땅히 각 당사국의 관심사가 균형있게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기존의 입장을 확인했을 뿐이다.

한중은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통해서도 “한반도 비핵화의 실현을 위해 양자 및 다자간 소통과 조율을 강화하고 6자회담 참가국들이 공동인식을 모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는데 견해를 같이했다”며 6자회담 수석대표간 다양한 방식의 의미 있는 대화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중국은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했고, ‘당사국의 관심사’를 균형 있게 해결해야 한다고 해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체제 문제가 동시에 고려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정상회담에 동행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아무리 어려워도 민족문제이니 민족끼리 인내심 있게 북한 문제를 풀어 가는 것이 어떻겠냐”며 우리측에 적극적 남북대화 노력을 조언했다.

한중 정상회담에 임하는 중국의 태도에 대해 일본언론들은 중국이 한국을 자국 편으로 만들려고 팔을 걷어붙인 것으로 평가했다. 대표적으로 <아사히(朝日)신문>은 4일 중국이 여러 면에서 한국을 포섭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고 평가하고 북한 대응에서 한국과 공동의 인식을 만드는 것이 6자회담을 통해 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중국의 구상에 비춰볼 때 필수적이라고 한중 정상회담의 배경을 분석했다.

박근혜 정부는 한중 정상회담에 대해 북핵문제에 대해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평가하지만, 드러난 모양새로 보면 중국이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을, 북한이 적극적인 북일교섭을 통해 일본을 견인하는 형국이 조성돼 한미일의 대북공조가 흐트러지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반면 북한과 중국의 전략적 관계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고,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는 냉전 해체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워지고 있다. 또한 북한은 정상회담까지 염두에 두고 일본과의 협상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다.

둘째, 북한은 미국의 대북정책과 6자회담 재개 입장에 일정한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즉 북한은 북일교섭을 매개로 남북대화를 촉진하고 이를 통해 미국의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것이다. 2002년의 ‘북일 평양선언’과 2007년의 ‘10.4선언’의 동시이행을 통해 북미대화의 디딤돌을 놓겠다는 의도다. 미국 내에서도 북한의 태도 변화 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탐색적 대화’가 선행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1기의 대북 제재정책을 주도한 로버트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도 북한과의 예비적 양자 대화를 촉구한 상태다.

미국은 3월 25일 헤이그에서의 한.미.일 3국 정상회담 개최와 4월 25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일 3국간의 군사정보보호 양해각서(MOU) 체결, 한.미.일 3국 국방장관회담의 정례화,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THAAD) 도입, 한국의 미.일 주도 MD(미사일방어)참여 문제에 일정한 성과를 챙겼다. 이러한 성과를 기초로 미국이 북미 양자대화와 6자회담에 나설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지난 10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6차 전략경제대화에서 미국과 중국은 “비핵화되고 안정적이며 번영하는 한반도를 만드는 중요한 긴급성에 동의”했다. 특히 일본이 독자적인 대북제재를 완화한 상황에서 한미합동군사연습이 열리는 8월에 북일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도 변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올 하반기 남북정상회담이 어려워진 조건에서 중국, 러시아, 일본 중에서 어느 나라와 먼저 정상회담에 나설지도 주목된다.

셋째,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드레스덴 선언’에 대해 ‘흡수통일’의 의도가 깔려 있다고 강경하게 비판했지만 남북화해 분위기 조성을 위해 ‘드레스덴 선언’에 포함돼 있는 일부 사안들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거절했던 민간 차원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수용하고, 남북 동질성 회복을 위한 사회문화 교류를 위한 접촉에 나서고 있으며, 라선특구에 대한 국제컨소시엄 형태의 남북 협력 추진에 나서고 있다. 박근혜 정부도 직간접 통로를 통해 이 같은 사업에 대해 북측이 수용할 것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강온 양면 정책 펴는 북한

다만 북한은 대화에는 대화, 압박에는 자주권 차원의 강경 대응이라는 강온 양면 정책을 구사할 것을 예고했다. 한중 정상회담을 전후해 북한이 화해분위기 조성을 위한 ‘특별제안’을 내놓으면서도 여러 차례 미사일 능력을 시위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9일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들의 전술로켓 발사훈련을 현지 지도한 자리에서 “우리는 말과 행동이 다 준비돼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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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북한은 ‘특별제안’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대목을 언급했다.
“미국과의 합동연습과 공동훈련이 그처럼 버릴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것이라면 우리가 이미 천명한대로 조선반도 령역을 벗어난 지역이나 수역에 나가 벌리라는 것이다. 우리에 대해 말한다면 최근 우리와의 합동연습과 공동훈련을 요구하는 주변나라들이 많지만 우리 군대가 그것을 수용하여 공화국북반부의 령공, 령해, 령토에서 다른 나라 군대들과 함께 움직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미합동군사연습이 남측의 말처럼 ‘연례적이고 방어적’인 훈련이라면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하라는 요구는 지난해에도 북한 국방위원회 성명에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다른 나라 군대들과 함께 움직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표현은 거꾸로 만약 자신들을 겨냥한 한미합동군사연습이 계속 될 경우 지금은 수용하지 않고 있지만 북측도 중국, 러시아와 서해나 동해에서 합동군사연습을 할 수도 있다는 소리로 들린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러시아의 소리방송>은 6월 5일 북한과 러시아가 나진항에 드나드는 대형선박의 안전 확보를 위해 러시아 보조함대를 항구에 주둔시키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북한이 중국, 러시아와 합동군사연습을 실시할 지는 불투명하지만 한미 합동군사연습이 통상적인 수준을 넘을 경우 과거와는 다른 차원에서 대응할 수도 있다는 점을 예고한 것은 분명하다.

또한 북한은 ‘특별제안’에서 “북과 남은 6.15공동선언에서 북측의 낮은 단계의 련방제안과 남측의 련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나가기로 합의”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이를 ‘연방연합제방식의 통일방안’으로 표현했다. 북한의 대화공세가 궁극적으로 ‘연방연합제’(남측 표현으로는 연합연방제) 실현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 셈이다.

최근 동북아시아 정세가 각국의 전략적 이해관계 속에 요동치고 있고, 더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념’보다는 ‘실리’를 챙기는 외교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북한의 ‘특별제안’과 인천 아시안게임 응원단 파견 결정은 북한의 정책이 ‘실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박근혜 정부에게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남아 있는 셈이다.

외국인들만 군사분계선을 오가는 상황을 지켜볼 것이 아니라 남쪽의 기업인과 민간단체들이 군사분계선을 넘나들 수 있도록 해야 할 시점이다. 그래야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DMZ 국제평화공원도 조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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